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23화 (223/501)

# 223

운송업 베이스 캠프 (1)

(223)

정비공장 안은 아직도 오일 냄새가 풍겼다.

바닥은 오일 찌꺼기들 때문에 까만색을 띠고 있었으며 이사 갈 때 흘린 종이 조각이나 스티로플 같은 것이 흩어져 있었다.

“리프트 같은 고가 장비들은 다 떼어갔네요.”

사무실 안엔 고물 책상들이 그대로 있었다. 먼지와 흩어진 서류들로 지저분했지만 사무실은 꽤 넓었다. 한쪽에 냉장고가 그대로 있었다.

“저 냉장고는 작동이 되는 건가?”

엄찬호의 말에 부동산 주인이 대답했다.

“작동이 되면 가져갔겠지요. 안되니깐 버리고 갔겠지요. 버리는데도 돈 들어가잖아요.”

사무동 앞의 천막은 천정이 다 찟겨져 있었다.

“건물 뼈대는 있으니까 손보면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냥 땅만 보세요. 땅은 반듯한 게 그래도 모양은 이쁘지 않습니까? 큰 차 다 들어오고요.”

“조금 넓었으면 좋았을 텐데.”

“옆에 논 사세요. 전에 논 주인이 한번 팔라고 내논 적이 있어요.”

“논이잖아요. 땅 높이도 여기하고 틀리네요.”

“아이고, 이정도 높이는 양호한 겁니다. 깊이가 50센티 안 넘으니 형질변경도 가능합니다.”

“형질 변경요?”

“그럼요. 여긴 개발행위 가능지역입니다. 깊이나 높이가 50센티 이내의 농지는 농지전용부담금만 내면 형질변경이 가능하지요.”

“농지전용부담금은 금액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공시지가의 30%입니다. 하지만 사장님 형질 변경만 되면 땅값이 팍 올라갑니다.”

“그래요?”

“아니면 주자장으로만 이용한다면 밭으로 지목변경이나 하고 그대로 쓰던 지요.”

“밭인데 농사 안 지으면 관청 같은데서 뭐라고 안 할 가요?”

“농한지세 좀 내면 되겠지요.”

“흠.”

“법인 명의로 이 논을 살 수 있습니까?”

“영농법인이야 살 수 있겠지만 다른 법인은 안 되지요. 정비공장 하신다면서요? 정비공장한다면서 논을 산다면 뭐가 안 맞잖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법인 명의로 못 사면 개인이름으로 살수는 있겠지요. 이를테면 사장님 명의로 말입니다.”

“개인은 아무나 살 수 있나요?”

“농지취득 자격을 받아야겠지요.”

“농지 취득자격요?”

“농사를 지을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거지요.”

“짓는다면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우선 그 사람의 살고 있는 주소를 보겠지요. 사장님 지금 주소가 어디로 되어있어요.”

“서울 도곡동이요.”

“에이, 그럼 안돼요. 성환읍 거주자라 돼요. 아니면 다른 곳에 살더라도 이 땅에서 30키로 이내야 되요.”

“30키로요?”

“그 정도 되어야 걸어오든 자전거를 타고 오든,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농지를 사는 것도 꽤 힘들군요.”

“정비공장 하실 것 같으면 980평도 충분하니 그렇게 하세요. 평당 200만원이면 나쁜 가격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생각좀 해보고 연락드리지요.”

“명함 하나 주세요.”

“찬호야 네 명함 드려라. 내가 오늘 명함을 안 가져 왔다.”

“찬호씨요? 허, 내 동생하고 이름이 같네요.”

구건호는 돌아오는 길에 엄찬호에게 물었다.

“너, 아까 그 정비공장 자전거 열쇠 번호 아니?”

“알아요 4786요.”

“스마트 폰에 입력 시켜야겠다. 나중에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니까.”

“한 번 더 오시려고요?”

“아니, 문재식이 한테 조용히 와서 보라고 해야겠어.”

“아, 예.”

구건호는 11시가 넘어 지에이치 모빌에 도착했다.

송장환 사장은 외근 나가고 없었고 상임감사도 지역 경제포럼에 갔다고 하였다.

비서 박희정씨가 차를 가지고 왔다.

“송사장님과 감사님 안계시니 다른 임원들 오시라고 할 가요?”

“아니 놔둬. 다들 바쁘실 텐데.”

구건호는 이날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서 밥을 먹었다. 노조위원장이 구건호를 보고 얼른 식판에 음식을 타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노조위원장은 자기 식판을 들고 구건호 앞에 앉았다.

“천천히 드십시오. 사장님.”

“예, 감사합니다. 많이 드십시오.”

총무이사도 구건호를 발견하고 식판을 들고 구건호 쪽으로 왔다.

“사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왔습니다.”

“노조도 요즘 별다른 일 없지요?”

“예, 없습니다. 제가 늘 노조원들한테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잘돼야 노조도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회사에 할 말이 있으면 우리 일부터 열심히 하고 말하자고 했습니다.”

“허허. 그래요? 노조원들이 위원장님 말씀을 잘 따르는 모양이네요.”

총무이사가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이 친구가 노조위원장 된 후에는 노조원들이 잠잠한 편입니다. 전에 물파산업이었을 땐 노조위원장이 애들을 꽉 잡지 못해서 늘 시끄러웠습니다.”

“아, 그래요?”

노조위원장은 기분이 좋은지 물까지 떠가지고 와서 구건호에게 주었다.

구건호는 식사 후 자기 방에서 커피까지 마신 후에 낮잠 좀 자다가 디욘코리아로 넘어갔다. 구건호는 8호기까지 모두 가동이 되는가 현장을 돌아보았다.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 구건호를 보고 인사를 하였다.

8호기까지 가동이 되어서 그런지 창고의 재고가 제법 쌓인 듯 했다. 통제구역인 배합실을 들어갔다.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구건호를 보고 인사를 했다. 현장 책임자인 유부장이 뛰어왔다.

“오셨습니까?”

“새로 들어온 직원들은 일을 잘 합니까?”

“예, 잘 합니다.”

“잘 가리키세요.”

“알겠습니다.”

“여기는 유부장님이 계시니까 든든합니다.”

유부장이 약간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부장님은 원래 집이 서울이었죠?”

“예, 물파에 있을 때 5년 전에 이사 왔습니다. 결혼도 여기서 했습니다.”

“배합 매뉴얼은 컴퓨터에 잘 등록시켜 놓으시고 보안 유지를 잘 하세요. 이 회사의 핵심이니까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구건호는 유부장의 등을 두드려 주고 나왔다.

박종석이 말대로 배합 제원표를 사장에게 등록시키라는 말은 안했다.

구건호는 사장실에서 잠시 신문을 보다가 문재식에게 전화를 했다.

“야, 내일 토요일인데 너 어디 안가지?”

“안 가는데 왜?”

“망원동 집에 있을 거니?”

“응, 집안 청소 좀 하려고 해. 나나 와이프나 요즘 시간이 없다보니 청소를 제대로 못해놨어.”

“청소 나중에 하고 나 좀 만나자.”

“왜?”

“성환에 정비공장 나온 게 있어서 너하고 같이 봤으면 좋겠다.”

“정비공장? 정비공장은 필요 없는데?”

“아니, 정비공장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거기를 지에이치 로직스티스 베이스 캠프로 삼자는 이야기야?”

“그래? 그럼 보지. 어디서 만날까?”

“성환역에서 만날까?”

“그러지. 내가 지하철 타고 가도 되지?”

“그래, 지하철 타고 와라.”

퇴근 무렵 김전무가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결혼식에 갔다 왔습니다.”

“결혼식요?”

“만동전장 둘째 아들이 결혼식을 해서요.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송장환 사장님도 만났습니다.”

“중요 거래처는 잘 챙기세요. 내 이름으로 화환도 보낼 때 있으면 보내고요.”

“지에이치 모빌에서 화환을 보냈던데요? 구사장님 이름으로요. 송사장님은 자기 이름으로 화환을 잘 보내지 않더군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구건호가 갖고 있는 모든 회사들은 구건호 이름으로 화환이나 조화, 축의금 같은 것을 보낼 땐 구건호에게 사전 보고하게 되어있었다. 구건호가 다시 스마트 폰을 보았다. 아침에 송사장으로 부터 문자 들어온 게 있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까 현장에서 보니까 재고가 있던 것 같은데 중국으로 5톤만 보내보세요.”

“중국으로요? ”

“CIF가격으로 네고하시고 수출대금은 외상거래입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리가 무역협회 등록하는 것 깜박 잊었네요. 무역업 고유번호도 받아야 되는데 말입니다.”

“우리 사업자 등록증에 보면 업태에 무역업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있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가서 총무과장에게 온라인 등록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번 수출 운송은 지에이치 로직스티스에 의뢰할 가요?”

“다음에 하세요. 아직 컨테이너 차량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중국 김민혁 사장한테는 물건 보낸다고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퇴근길에 벤트리 승용차 뒷좌석에서 스마트 폰을 보았다.

설빙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어디를 갔다 오다가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찍힌 모양이었다.

[설빙의 공항 패션. 어느 쪽으로 보아도 여신의 자태.]

기사는 사진과 함께 나왔다. 댓글엔 찬티와 안티가 반반인 것 같았다. 구건호는 댓글을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설빙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일요일 시간 있으면 식사나 같이 할까? 설빙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이 좋겠지?]

도곡동 타워 팰리스에 도착할 무렵 답신이 왔다.

[일요일 선약이 있어요. 제가 연락할게요.]

모리 에이꼬에게 연락을 해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따로 엄찬호를 부르지 않았다.

“찬호를 쉬는 날 불러내면 속으론 안 좋아하겠지? 그놈도 연애도 하고 친구들도 만날 텐데 말이야. 오래간만에 나도 운전 좀 해보자. 랜드로버 차고에 오래 세워두면 그것도 안 좋아.”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끌고 나왔다. 차를 오래 동안 안 써서 그런지 먼지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구건호는 양재동에 있는 주유소에서 주유 후 자동세차로 세차까지 했다.

“세차하니까 내가 샤워한 것처럼 시원하네.”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타고 양재동 시민의 숲 윤봉길 사당 앞에서 옛 트럭터미널 쪽으로 갔다. 트럭터미널 앞에서 유턴하면 바로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기 때문이었다.

“야, 여기가 트럭터미널이구나. 트럭터미널이 아직도 있다면 문재식이 하는 운송회사 벤치마킹을 했을 텐데 아쉽군.”

양재동 트럭터미널은 하림그룹에서 4500억에 낙찰 받아갔다.

“트럭 터미널은 몇 번 유찰하다가 하림그룹에서 도시첨단 물류단지를 만든다고 4500억에 인수했다지? 참, 하림 그룹은 병아리 몇 마리 길러서 재벌된 그룹인데 구건호는 언제 그렇게 되나? 나 구건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차가 엄청 밀렸다. 구건호는 차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수원까지 내려갔다. 기흥을 지나니 조금 차량 속도가 빨라졌다.

“문재식이 성환역에서 많이 기다리겠는데.”

구건호는 아이유의 음악을 틀어놓고 계속 달렸다.

성환역에 당도했다.

문재식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구건호는 문재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살이 홀쭉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야, 너 왜 얼굴이 반쪽이 됐냐?”

“나? 몰라. 사람들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더군,”

구건호는 문재식에게 미안했다. 사업이라고 맡겨주니 경험도 없는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그렇게 된 모양이라고 생각 되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너 입술까지 부르텄구나.”

“몰라, 이거. 몇일 전부터 그러네.”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다. 오늘 쉴 걸 잘못했다.”

“아냐, 아냐. 괜찮아.”

구건호는 랜드로버에 문재식을 태웠다.

“정비공장이 하나 나왔어. 현재 비어 있는데 거길 지에이치 로직스티스의 본사로 삼으려고 그래. 아직은 지저분하고 손볼 곳도 많아. 땅도 그리 넓지도 않아.”

“몇 평인데?”

“980평.”

“어휴, 엄청 큰데? 파주에 우리가 빌린 창고가 250평 밖에 안 돼. 거기 4배 가까이 되면 엄청 크겠는데?”

“아냐, 장래를 보아서는 좀 컸으면 했는데 말이야. 일단 가보자.”

구건호와 문재식이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야.”

구건호는 영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문재식은 놀랐다.

“와, 굉장히 큰데?”

문재식은 얼굴까지 상기 되었다.

“이런 건 비싸지? 얼마나 해?”

“20억 정도 돼

“힉! 20억!”

문재식은 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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