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합자사 보드 미팅 (4)
(221)
온양 관광호텔 만찬장에서 와인이 몇 잔 돌아갔다. 사람들은 이사회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기분 좋게 술들을 마셨다.
구건호가는 와인 잔을 브렌든 버크씨의 잔과 부딪치며 한마디 했다.
“현물 출자가 끝났으니 기계 장비는 앞으로 합자사에서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합니다. 혹시 디욘 본사에서는 리스도 가능합니까?”
“리스요? 리스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9호기 10호기도 발주를 해야겠네요.“
“공문을 보내 주십시오. 애덤 케슬러보고 만들어 보내라고 하면 될 겁니다. 아니면 외상 구입했다가 과실 송금할 때 정리해도 됩니다.”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다면 여유분 기계는 있어야 할 것 같네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다시 두 사람은 또 술을 마셨다.
브렌든 버크가 구건호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합자사가 이 상태로 가면 3년이면 코스닥 등록이 가능할겁니다. 나중에 사업 확장을 위하여 공장 증설이나 기계 장비 구입에는 해외 전환사채(CB) 발행을 고려해 보십시오.”
“해외 전환사채요?”
“한국의 주식시장은 사모 형태지만 해외 전환사채는 공모 형태입니다. 모건 스탠리나 골드만 삭스 같은 글로벌 투자 은행을 이용하십시오.”
“흠.”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려울 땐 국내에서는 전환사채 발행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 정보당국은 한국의 증권시장을 꿰뚫고 있습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긴 있지요. 그건 내가 주식투자를 해봐서 알아요.”
“해외 전환사채는 실질적 국가 부도인 디폴트 리스크만 없으면 원금 보장이 되기 때문에 발행 성공률이 높습니다.”
“좋은 말씀 참고하겠습니다.”
“사실 디욘코리아는 50%가 내 개인 것이 아니고 라이먼델 디욘이라는 주주들의 것이지만 한국 측에서는 구사장님 단독 투자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국제 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의 힘으로 수익성 있는 자회사나 관계사를 설립하면 구사장님의 위상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브랜든 버크와 구건호가 서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이 궁금한 모양이었다.김전무가 오연수한테 물었다.
“지금 두 분 무슨 말씀들입니까?”
“통역 내용은 통역사 직업 윤리상 제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밤 9시 30분정도 되어 만찬이 끝났다.
구건호는 브랜든 버크와 호텔 입구에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내일 아침엔 온천욕도 하면서 푹 쉬시고 지에이치 모빌은 오전 11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애덤 케슬러의 차를 타고 가지요.”
“오늘 수도 많이 하셨습니다. 브랜든 버크 이사장님, 그리고 안젤리나 레인 여사님!”
“구사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구건호는 일행들과 헤어져 오연수와 함께 주차장 쪽으로 왔다. 엄찬호가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너 밥 먹었지?”
“예, 따로 잘 먹었습니다.”
“여기서 자고 갈까? 서을로 갈까?”
“사장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오연수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전 집에 가봐야 해요. 엄마가 걱정 많이 해요. KTX역까지만 태워주시면 제가 알아서 갈게요.”
“그럼, 다 같이 서울 가자.”
구건호와 오연수는 차에 타자마자 바로 졸았다. 둘 다 오늘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교통량이 뜸해서 그런지 엄찬호가 운전하는 벤트리 승용차는 잘도 달렸다. 한 시간도 못 되어 서울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엉? 여기가 어디야?”
“서울 톨게이트입니다.”
“벌써 여기 왔네.
“사장님 댁을 먼저 갈 가요?”
“아니야. 오연수씨가 집에서 걱정한다고 하니 압구정동으로 먼저 가자.”
“알겠습니다.”
오연수도 잠에서 깨어 나불대기 시작했다.
“아휴, 아까는 브랜든 버크씨 하고 사장님하고 큰 싸움 나는 줄 알았어요.”
“그렇다고 중간에 통역이 울어버리면 되나.”
“무서웠어요. 브랜든 버크씨가 일어나서 서류를 막 집어던지고 사장님도 막 생수병을 던질 때는 큰 싸움이 나는 줄 알았어요. 더구나 버크씨는 덩치도 엄청 큰데다가 빡빡 깎은 대머리라 무슨 마피아단 두목 같잖아요.”
“하하, 마피아?”
“사장님 화내시는 것 처음 봤어요.”
“그래, 다음서 부터는 화 안내지.”
차는 양재를 지나 서초동에 왔다.
“찬호야, 너 피곤하겠다.”
“아닙니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 회의하실 때 좀 잤습니다. 김전무님이 오늘 회의는 길어질 것 같다고 해서 숙직실에서 좀 잤습니다.”
“그래? 그래도 네가 있어서 내가 술도 마시고 그런다. 옛날엔 툭하면 대리 불렀지.”
“하하, 그랬습니까?”
“너, 내일 저녁엔 태영이 만나겠다.”
“태영이 형요?”
“미국사람들하고 한남동 가기로 했어.
압구정동에서 오연수를 내려주고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오면서 엄찬호가 물었다.
“사장님.”
“왜?”
“아까 오연수씨가 있어서 말 못했는데요. 태영이 형 한번 써먹어 보세요.”
“뭘 어떻게 써먹어?”
지에이치 로직스티스 문사장님이 건설장비도 취급한다고 했지요?“
“그랬지.”
“사실 건설현장에는 가끔 우리 같은 건달들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
“대형 건물 철거 같은 것 할 때는 싸움 붙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 가서 상대를 패준다는 거냐?”
“아휴, 그건 안 되지요. 잘못 때렸다간 깜빵 가게요? 가서 쪼개고만 있으면 됩니다.”
“쪼개?”
“실실 웃으며 폼만 잡는단 이야기입니다. 깍두기들이 가서 문신 들어 내놓고 시위하면 다들 꼬리 내리고 덤비는 놈 없어요.”
“시위만 해도 상대방이 깨갱, 깨갱 한다는 말이냐?”
“뭐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그게 문사장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철거 다음엔 뭐합니까? 중장비 들어가야 하잖아요.”
“흠.”
“뽀찌나 좀 주면 애들 일 잘 할 겁니다.”
“뽀찌?”
“용돈 말입니다.”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 결과적으로 압력을 넣어서 일감 가져온단 이야기 아니냐?”
“그건 아닙니다. 건물주나 건축 업자들 한테 소개하고 정당한 수수료 챙기는 거지요. 이를테면 부동산 업자들의 부동산 소개와 같은 겁니다
“일단은 알았다. 내가 문사장과 한번 의논해 보지.”
다음날 구건와 오연수는 직산 공장엘 내려왔다. 사장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브렌든 버크 일행이 왔다. 현관에 대기하고 있던 총무이사가 이들을 소회의실로 안내했다. 임원들이 소회의실로 가기 전에 사장실로 몰려왔다.
“브렌든 버크씨 일행은 소회의실에 모셔 놓았습니다. 가서 인사만 하고 현장 안내만 하면 되겠습니까?”
“현장 안내는 안 해도 됩니다. 합자사 시작전 한국 방문했을 때 우리 공장을 보고 간 사람입니다. 우리 임원들하고도 대부분 인사를 한 사람이니까 찾아주어서 고맙다는 말만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임원들을 대동하고 소회의실로 갔다.“
임원들이 내려가서 소리도 요란하게 서로 인사를 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안젤리나 레인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 구건호가 소개를 시켰다.
“이분은 송장환 사장님으로 이 회사의 CEO입니다. 이분은 상임감사님이고 이분은 독일 뮌헨
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연구소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아까 정문에서 여러분들을 이 방으로 안내한 분은 총무이사이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생산담당 이사입니다.”
안젤리나 레인은 명함까지 받았지만 누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총무이사를 생산이사로 불렀고 생산이사를 총무이사로 부르곤 하였다.
송장환 사장이 직접 영어로 브렌든 버크씨에게 물었다.
“현장은 지난번 보셨기 때문에 안 보셔도 되겠지요?”
“예, 현장은 됐습니다. 여기 영문 카다로그나 있으면 하나주세요.”
“영문 카다로그는 없고 컴퓨터에 입력된 영문 안내 자료는 있습니다. 출력해 드리겠습니다.”
“없으면 됐습니다. 영문 카다로그가 나중에라도 만들어지면 내 명함 주소로 부쳐주시면 됩니다.”
구건호와 송사장은 영문 카다로그 하나 없는 회사로 비쳐질까봐 좀 창피는 하였다.
“영문 홈페이지는 있지요?”
“예, 있습니다.”
구건호와 송사장은 영문 홈페이지도 보여 달라고 할까봐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홈페이지도 자료가 너무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현대차나 기아차만 바라보고 영업할 것이 아니라 미국 제조사를 공략해 보세요. 이를테면 포드나 GM, 제너랄 모터스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 가을에 시카고에서 모터쇼가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카다로그도 만들고 가서 명함도 뿌리고 올 예정입니다.”
“뿌리는 것도 좋지만 아예 부스를 하나 임대하여 박람회 기간 동안 여기의 생산 제품을 출품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예, 브렌든 버크 선생님 말씀 깊이 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인들과 지에이치 모빌의 임원들은 송장환 사장의 안내로 매실나무 과수원 안에 있는 한정식 집으로 갔다.
안젤리나 레인은 매실 열매를 보고 탄성을 지르며 한 개를 따서 씹어보기도 하였다.
이들은 또 간장게장과 너비아니와 파전을 주문하고 동동주를 시켰다.
지에이치 모빌 임원들이 초청한 오찬회는 이렇게 즐겁게 흘러갔다.
브렌든 버크씨는 내일 귀국한다.
구건호는 이들을 융숭히 대접했다. 나중에 더 큰 것을 얻어내기 위해선 식사 값 몇 푼은 아끼지 않았다. 하긴 식사 값도 모두 법인에서 지출하는 것이니까 구건호 개인부담은 아니었다.
구건호가 합자사 부사장 애덤 케슬러에게 말했다.
“브렌든 버크씨는 당신 상사 아니요? 서울에서 고급호텔로 안내하지요. 이태원에서 가까운 하야트 호텔로 숙소를 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또 한남동에서 전통 악기를 감상하며 식사를 하겠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은 애덤 캐슬러 부사장이 안배한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오우, 감사합니다. 보스!”
브랜든 버크씨는 직산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시간이 많이 남아 시내 몇 군데를 구경하고 한남동에서 저녁때 만나기로 하였다.
구건호가 한남동 장마담에게 전화를 하였다.
“오늘 참석인원은 미국인 셋, 한국인은 나 혼자입니다. 통역은 여기 오기가 어려우니 영어를 할줄 아는 도우미 배치해 주세요. 아, 그리고 미국인 세명 중 한명은 여성입니다.”
“호호, 알겠어요. 구사장님 체면이 팍팍 살아나도록 잘 준비 할게요.”
구건호는 인사동에 가서 선물 두 개를 준비했다. 한국인형과 도자기를 준비했다. 도자기는 은은한 청자 빛깔에 포도송이가 그려진 도자기였다.
구건호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현재 기계 8대가 들어와 24시간 풀가동한다면 3, 4천억 매출은 올릴 수 있다고 했지? 김전무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나. 기계는 리스가 가능하다고 했으니 목돈 들어갈 일 없을 것이고 8대가 더 들어와 풀로 돌리면 7, 8천억이 된다면?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가는 거야.]
[골드만 삭스나 모건 스텐리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을 통하여 해외 전환 사채를 발행하면 해외에 공장 몇 개 지을 수 있는 돈도 들어오겠지? 그럼 매출이 조 단위가 넘어 가겠지? 그럼 나는 대기업 오너가 되는 거네?]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구건호를 태운 벤트리 승용차는 서서히 한남동 요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