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20화 (220/501)

# 220

합자사 보드 미팅 (3)

(220)

합자사 이사회에서 브렌든 버크가 이의를 제기했다.

“방금 사회자가 합자사 부사장인 애덤 케슬러씨에게 실적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당합니다. 나는 분명히 이 합자사의 이사회장 자격으로 말씀드립니다.”

이선생의 순차 통역이 끝나자 모두 번쩍거리는 대머리 브렌든 버크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실적보고는 사장이 해야 합니다. 즉 구건호 사장이 해야 합니다. 경영에 대한 책임은 사장에 있지 부사장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하라고?”

구건호가 자료를 보니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 앞이 캄캄했다.

“글로벌 기업인 라이먼델 디욘사는 해외 합자사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실적 발표를 부사장이 한 예는 없습니다. 합자사 계약 조건에 따라 3년 후에는 구건호 사장님이 이사회장이 되십니다. 아마 구사장님도 이사회장이 되시면 나와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겁니다.”

구건호가 생각해 보니 브렌든 버크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반박할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구건호가 앞의 자료를 다시 보았다. 하지만 자료는 대개 숫자의 나열이므로 숫자에 밝은 구건호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구건호는 이사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영어는 제일 못했지만 숫자에는 제일 밝았다. 이것이 오늘의 구건호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구건호가 자료를 대충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앞에 있는 자료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구건호의 통역은 오연수가 했다. 오연수의 맑은 음성이 회의장을 울렸다.

“렛미 쇼우유 왓위 헤브히어(Let me show you what we have here: 앞에 있는 자료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합자사가 설립된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달은 매출 3억이지만 차츰 늘어 지난달은 25억을 기록 했습니다. 6개월간 매출 총액은 122억입니다. 이것은 여기에 계신 부사장 애덤 케슬러씨를 비롯한 합자사 임직원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초기년도 실적으로는 디욘사의 해외 합자사중에서도 흔치 않은 성적일 것입니다.”

오연수의 통역이 끝나자 안젤리나 레인이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이어서 브렌든 버크가 박수를 치고 참석자 모두 박수를 쳤다.“

“여러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사회장 브렌든 버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구건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6개월간 실적이 122억이지만 향후 6개월간 실적을 포함한 년말 결산은 300억은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현재 추세로 보면 그렇습니다.”

“흠.”

브렌든 버크가 메모를 했다.

“제조원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조원가중 재료비가 59억으로 매출 총액에 48%가 넘고 있습니다.”

모두 자료를 찾아보고 있지만 구건호는 자료도 보지 않고 말했다. 역시 경리 출신 구건호의 기억력은 탁월했다.

“이것은 라이먼델 디욘의 본사에서 공급하는 재료비 단가가 너무 고가인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한국으로 보내는 재료비를 재조정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구건호는 실적 보고를 하면서도 꼭 할 말은 잊지 않고 했다.

브렌든 버크가 답변했다.

“재료비 단가 부분에 대해서는 본사에 돌아가 관계자들과 협의하겠습니다.”

“다음은 인건비 부분에 대하여 보고 드리겠습니다.”

역시 통역을 대동한 합자사의 회의는 길었다.

구건호의 실적 보고가 끝나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휴식시간이 되었다. 회의 참석자들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아휴, 오후 1시에 시작한 회의가 벌써 3시나 되었네.”

“그런데 구사장님 대단하네. 자료도 안보고 이야기하는데 자료 숫자하고 딱딱 맞네.”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야.”

“오늘 회의는 늦게 끝나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회의는 4시가 넘어 5시에 가가까워져 갔다. 브렌든 버크나 안젤리나 레인은 세밀했다. 경비지출 부분도 꼼꼼히 따졌다. 다행히 애덤 케슬러가 준비한 자료도 성실했다.

“애덤 케슬러가 노는 줄만 알았더니 챙길 건 다 챙겼네.”

김전무도 윤상무를 쳐다보며 감탄한 듯 말했다.

그런데 회의가 5시에 들어갈 무렵 합자사 현물 출자부분 문제로 브렌든 버크와 구건호가 크게 충돌했다. 심한 고성이 오고가고 합자사 철수론 까지 나왔다.

“여보세요! 브렌든 버크씨! 나는 현물 출자로 지금 이 공장의 토지를 내놓았습니다. 대한민국 공적기관인 한국 감정원의 감정 평가는 현물출자 약정액 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뭐? 중고기계 갖다놓고 445만 달러를 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요!”

“우리도 기계 감정평가서를 보냈소. 그걸 못 믿는다면 구사장 합자 의지가 없는 거요.”

“공식 기관도 아닌 일개 어카운팅 펌(회계법인)의 감정서 한 장으로 다 끝난 거요?”

“디욘사도 납입자본금 1천만 달러의 절반인 500만불을 다 넣었소. 초기 준비자금으로 5만불은 현금으로 넣고 이후 운영자금으로 45만불을 현금으로 송금했소.”

“거기 까지는 맞아요.”

“나머지는 기계장비와 원재료로 445만달러를 친 거요. 원재료는 아메리카 합중국 시애틀 세관의 수출신고서 사본을 가져왔고, 기계 장비류도 감정평가서를 가져왔소. 이것을 믿으니까 당신들 관세청에서도 현물출자 완료 증명서도 떼 준 것 아니요?”

“이 양반들이 누굴 핫바지로 아나? 지금 당장 내려가서 보시오. 저 낡은 기계들이 445만달러 짜린가! 기계 년 식만 해도 그래요. 애덤 케슬러 당신이 한번 이야기 해보시오. 몇 년 식인가!”

브렌든 버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못 믿으면 기계 떼어 가겠소!”

구건호도 고함을 질렀다.

“당장 떼 가세요! 내가 합자사 안 하면 밥 못 먹을 줄 아세요?”

고성이 오고가자 다른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구건호와 브렌든 버크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마침내 브랜든 버크가 서류를 집어 던지고 구건호가 빈 생수병을 바닥에 던졌다.

이 모습에 통역 오연수는 통역도 제대로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도 회의장에서 고함소리가 나자 몰려왔다.

안젤리나 레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두 분 격해지신 것 같으니 10분간 휴식하고 회의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브렌든 버크와 구건호만 빼고 모두 좋다고 찬성을 했다. 회의가 10분 연기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고 미국인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였다.

김전무와 윤상무가 구건호 앞으로 몰려왔다.

“사장님 그렇게 화내시는 것 처음 봤습니다.”

“사장님이 기계 다 뜯어가고 합자사 철수하라고 할 땐 저도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구건호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저 놈들은 저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의가 다시 시작 되었다. 6시가 다 되어갔다.

안젤리나 레인이 먼저 발언했다.

“합자는 결혼과 같습니다. 때로는 부부싸움도 할 때가 있듯이 의견이 충돌될 때가 있지만 모두 한발자국씩 뒤로 물러나 양보를 하시면 그 부부는 오래 동안 해로할 수가 있습니다.”

안젤리나 말에 참석자들의 긴장된 얼굴이 다소 펴졌다.

브랜든 버크가 생수를 마시며 말했다.

“언성을 높인 건 사과를 드립니다.”

구건호도 브랜든 버크가 사과한 이상 자기 주장만 내세울 수도 없었다.

“저, 역시 언성을 높인 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내 개인생각으로는 기계 장비류의 현물 출자금액이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번 디욘사에서 감사반이 나왔을 때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감사원들은 내 승용차의 자동차 등록증을 복사해 갔습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 벤트리는 시가 3억원입니다. 비싼 건 압니다. 하지만 차량은 지에이치 모빌에서 구매한 것이지 합자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월급이외 합자사의 돈에 십원 짜리 하나 손댄 것이 없습니다.”

브렌든 버크가 빙긋이 웃었다. 애덤 케슬러는 처음 듣는 소리라 어리둥절하였다. 브랜든 버크가 입을 열었다.

“차량등록증 복사에 대해서는 내가 라이먼델 디욘사를 대표하여 사과드립니다.”

“브랜든 버크 이사장님께서 사과하셔서 나도 앞으로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합자사 비서 이선혜씨가 생수와 함께 과일을 깎아 가지고 왔다.

브렌든 버크가 사과 한쪽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구사장님이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현물 출자가 모두 끝난 상태에서 다시 번복하기도 어렵습니다. 디욘사는 내 개인의 회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한국 합자사는 초기년도 매출 목표가 300억입니다. 디욘 본사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합자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제시하는 안을 수용하여 합자사가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말씀해 보시죠.”

“첫째 디욘코리아의 아시아 판매권은 중국과 동남아로 되어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아시아 전역으로 넓혀드리겠습니다.”

옆에 있던 윤상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뭐, 별것도 아니네.”

하지만 구건호는 귀가 번쩍했다.

“인도와 중동지역과 중앙아세아를 포함한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구건호는 아침에 송장환 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인도의 첸나이를 보십시오. 베르나의 판매 속도를 보십시오. 인도는 떠오르는 별입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수출 전진 기지도 될 수 있습니다.]

구건호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두번 째 안은 뭡니까?”

“재료비 공급단가를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이 문제는 본사에 돌아가 협의를 해 보아야 하겠지만 3% 조정 선에서 협의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 구건호의 얼굴을 응시하였다.

“좋소! 수용하겠습니다.”

브렌든 버크가 벌떡 일어나 구건호에게 솥뚜껑만한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도 일어나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악수를 하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통역 이선생이 황급히 일어나 이 장면을 사진 찍었다.

합자사의 첫 번째 이사회는 무사히 잘 끝났다.

애덤 케슬러가 자기가 준비한 실적보고 서류를 브랜든 버크와 구건호에게 내밀었다. 브랜든 버크가 볼펜을 꺼내 서명하였다.

“수고했네. 케슬러.”

구건호도 케슬러의 어깨를 쳐 주었다.

“수고했습니다. 애덤 캐슬러씨.”

내일 스케쥴은 어떻습니까?

“내일은 오전에 나와서 오늘 협의 사항을 서명해야 합니다. 협의사항은 통역 이선생님이 내일 아침까지 정리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을 보신 후에 지에이치 모빌 방문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지에이치 모빌의 임원들과 상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구사장님이 서울에서 베푸는 만찬이 있습니다.

구건호는 송장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합자사 이사회에 참석하러 오신 분들이 내일 오전11시쯤 거기로 갈 예정입니다.”“예, 이야기 들었습니다.”

“송사장님이 박종석 이사한테 지시해서 현장을 깨끗이 정리해 놓으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디욘사에서 오신 분들하고 지에이치 모빌 임원들하고 상견례가 있습니다. 상견례 끝나고 모빌 임원들 초청 명의로 중식을 합니다. 직산 공장 주변에 좋은 식당 있으면 예약해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김전무가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장시간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합자사 임원 명의의 초청 만찬이 있습니다. 모두 7시까지 온양 관광호텔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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