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합자사 보드미팅 (1)
(218회)
구건호는 신정숙 사장과 약속한 음식점으로 갔다.
바로 구건호의 빌딩이 있는 건너편 스타벅스 뒤에 있는 김수사(壽司: 스시)란 간판이 붙어 있는 일식집이었다. 일식집에는 신사장과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으며 일본인 마츠이 요시타카씨도 앉아 있었다.
신사장이 여자를 소개했다.
“서양화가 최정순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구건호입니다.”
화가가 구건호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았다.
“혹시 전시회 첫날 그림 구입 예약하신 분 아닙니까?”
“예, 선생님 그림이 좋아서 소품으로 한점 예약했었지요.”
신사장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머나! 구사장님이 그런 면이 있었네요. 저는 그림이야기만 하면 덤덤하신 것 같아 말 꺼내기도 힘들었는데 이제 보니 애호가이시네요.”
마츠이 요시타카도 웃으며 말했다.
“그림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네다.”
점심시간이 되어 음식점 홀 안이 복작거리기는 했어도 대화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최선생님 일본 전시회는 어디서 합니까?”
“요꼬하마 쪽에서 합니다.”
구건호는 일본 이야기가 나오자 모리 에이꼬가 또 생각났다.
“저도 일본을 자주 가는데 혹시 가게 되면 한번 들러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구사장님.”
구건호가 맥주 한 병을 시켜 한잔씩 따라 주었다.
“한잔씩만 하세요. 만난 기념으로요.”
최정순씨가 맥주잔을 들어 구건호의 잔에 부딪치며 말했다.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갖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더구나 대관료도 파격적이고 팜프렛 인쇄도 잘해주어 고맙습니다. 구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옆에 계신 신정숙 사장님이 다 하신 겁니다. 저는 갤러리 일에 대하여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 구사장님 그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 아닙니까. 고마운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구사장님이 여러 사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라서 우락부락 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선하게 생긴 젊은 분이시네요.”
“구건호는 최정순 화가의 칭찬을 듣기가 민망해 맥주잔을 요시타카씨 잔에 부딪쳤다.
“요시타카 선생님이 일본 만화가들의 원화 전시회를 추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핫, 저 역시 전시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신사장이 구건호에게 말했다.
“요시타카 선생님은 언론인 출신입니다. 최정순이의 요꼬하마 전시회를 일본 언론에 알려주시겠답니다.”
“이번에는 최정순 화가가 고맙다고 하면서 요시타카 선생의 잔에 맥주잔을 부딪쳤다.
말 하고 있는 사이에 신사장은 전화가 와서 밖으로 나갔다. 전화를 받고 온 신사장은 미안하다고 하였다.
“죄송합니다. 전화가 와서요. 문재식 사장님 전화입니다. 최정순 화가 그림을 실으러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해서요.”
최정순 화가가 신사장에게 말했다.
“양평으로 오라고 했니?”
“응, 양평으로 오라고 했어.”
구건호가 초밥을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말했다.
“양평 사시는 모양이네요.”
신사장이 대신 대답을 했다.
“얘 양평 살아요. 전원주택이에요. 시집도 안가고 거기서 혼자 청승맞게 그림 그려요.”
“하하, 예술 하시는 분들이 전원주택에 많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얘네 집은 크지 않아요. 혼자 넓은 집 살면 무섭다고 해서 작은 집이에요. 그래도 마당에 온갖 화초는 다 심었어요. 대추나무도 있고 산수유도 있고 그래요. 강아지도 한 마리 있고요.”
“허허, 그래요? 한번 보고 싶군요.”
“언제 한번 오세요. 얘가 콩국수를 잘 만들어요. 오시면 콩국수 한 그릇은 대접해 드릴 거예요.”
“하하, 한번 먹고 싶군요.”
“그리고 거기 얘 조카도 가끔 와요. 아, 참 그 조카!”
신사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왜 말을 끊습니까?”
“말해도 되나? 구사장님에게 소개시켜 주려고한 조카에요.”
“하하, 그래요? 조카분이 뭐하시는 분에요?”
“서울대학교 병원 의사에요.”
이 말에 구건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구건호는 식사 후 일행들과 헤어져 자기 사무실로 올라왔다.
사장실로 들어가자 바로 비서 오연수씨가 커피를 가지고 왔다. 구건호는 커피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서울대학교 병원 여의사가 그 사람 혼자는 아니지 않는가? 설마 그 사람은 아니겠지.]
구건호가 쇼파에 기대어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문재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사장? 어제 음성에 가서 용역 3대 계약은 했네.”
“수고했다.”
“그런데 한 대는 평택항이 아니라 인천공항을 왔다 갔다 하는 거였어. 인천 공항에 가서 명함 좀 뿌리고 왔어.”
“잘했다. 차는 언제 뽑냐?”
“새차 안 샀어. 새차는 가져와서 탑 같은 것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중고차 사니까 그런 게 다 되어있어 편했어. 할부로 샀어. 다 5만키로 이내 운행한 차들이야,”
“오, 그래?”
“새차 안 사서 돈이 여유가 생겨 미술품 운반차도 한 대 샀어. 이 차도 중고차야. 안에 행거 같은 것 도 설치가 되어있고 철제 프레임도 다 있어. 벼룩시장에 기사 모집 광고 내니까 사람들 참 많이 왔데. 지입차 아니고 회사 직영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것 같아. 미술품 수송했던 지원자가 있어 얼른 뽑았지.”
“흠, 그래?”
“미술품은 벌써 오늘 한건했어. 광주에서 서울 올라오는 거 한건했어. 다음 주엔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전시회 했던 사람 미술품도 우리가 수송하기로 했어. 바쁘기는 한데 별로 남는 게 있는 것 같지는 않네.”
“그래도 지에이치 로직스티스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인식은 줘야겠지.”
“그렇지 않아도 홈페이지에 종합 물류회사라고 했어. 제조회사 생산품 수송, 미술 및 조각품 특수 운송, 항공 및 해상 운송, 건설 중장비 대여 등 다 집어넣었어.”
“야, 네가 맡고 있는 회사 금방 커지겠다.”
“참, 새차 할부로 사는 것도 알아보니 가능해. 대표이사의 신용이 나빠도 보증인만 세우면 돼."
”열심히 하는 네 모습 보니 보기 좋다.“
“열심히 해야지. 살길은 이것 뿐인데.”
구건호는 문재식이 슬슬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심했다.
[화물 허브터미널을 할 부지는 나도 알아봐야 겠군. 택배회사가 아니라 허브터미널이란 명칭을 붙이긴 어렵지만 베이스 캠프는 오산이나 평택 쯤에 만들어 줘야겠군.]
디욘 코리아의 윤상무가 새로 들어온 7호기 8호기에서 정식 제품이 출고되기 시작했다고 전화 보고했다.
“제품은 이상 없이 잘 나오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관세청에 현물투자 완료 신청서도 제출했습니다.”
“한부 복사해 놔요. 통역 이선생한테 영문 번역도 해 놓으라고 하세요. 보드미팅 할 때 미국측 이사들 오면 제출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윤상무의 전화가 끝나자 바로 통역 이선생한테 전화가 왔다.
“이사회 날짜는 다음주 화요일로 정해졌습니다.”
“그래요? 그럼 하루 전날인 월요일에 인천공항으로 가겠군요. 누가 온답니까?”
“부사장 브랜든 버크와 안젤리나 레인이 온답니다.”
“한사람은 여자니까 숙소에 신경을 써야겠군요. 윤상무에게 온양관광호텔에 방 예약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김전무와 윤상무에게 보드미팅 자료 준비하라고 하세요. 두 사람 다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오연수씨는 다음주 화요일 나하고 같이 아산엘 가야합니다.”
“아산에요? 충남 아산요?”
“거기 합자사에서 이사회가 열립니다. 통역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거기 합자사에도 통역은 있지만 오연수씨는 미국측 통역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이사회는 회의가 길어 통역도 두 사람 있는 게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중국 합자사의 이사회 참석 경험이 있다. 이사회를 중국에서는 동사회(董事會)라 하고 미국은 보드미팅(Board Meeting)이라고 한다. 이사회는 중간에 통역을 끼고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엄청 걸리고 지루하기도 하였다. 중간에 통역 한사람이 화장실에라도 가면 다른 이사들은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구건호는 오연수를 추가 시킨 것이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퇴원한데.”
“벌써? 병원에 간 김에 푹 쉬었다 오시지.”
사실 구건호는 오늘 저녁에 병원에 들리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 여의사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엄마한테 병원에서 푹 쉬라고 했어. 엄마는 입원비 많이 나가고 간병인 돈 나간다고 퇴원해달라고 졸라 할 수없이 했어. 병원이 갑갑하고 집이 편하데.”
“화장실은 혼자 가실 수 있나?”
“지팡이 집고 가긴 가.”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네.”
“퇴원 수속비는 네가 나한테 준 카드로 계산할게.”
“그렇게 해.”
오늘은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하는 날이지만 구건호는 오산과 평택 일대의 부동산 몇 군데를 들려보기로 했다. 평택에서 ‘땅’이라고 커다란 글씨를 쓴 부동산이 눈에 띄었다.
“대로변에 공장 나온 것 있습니까?”
“평수는 어느 정도 되는 것 원합니까?”
“2천 평 내외면 되겠습니다.”
“공장 하시는 분이 왜 대로변을 찾습니까? 대로변은 땅값도 비싼데.”
“대로변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지만 40피트짜리 컨테이너가 들어와서 돌릴 자리는 있어야 합니다.”
“연락처 주십시오. 대로변이라 공장보다는 상가할 자리가 딱 하나 있는데.”
“상가는 안합니다.”
구건호는 경매를 통하여 하나 잡아볼까도 생각했다.
“경매는 시간이 오래 걸려. 모양 좋은 땅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구건호는 부동산을 찾았던 것이었다.
구건호는 부동산 주인에게 명함을 주지는 않고 메모지에 전화번호만 적어 주었다.
구건호는 평택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쪽은 평택 미군기지 들어가는 길인데.”
또 땅이라고 엄청 크게 쓴 글씨가 붙어 있는 부동산이 눈에 띄었다. 공장부지 전문이란 글씨도 보였다.
“찬호야, 저 부동산 앞에 차 좀 세워봐라.”
구건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대로변에 나온 공장부지 있습니까?”
“대로변요? 무슨 공장을 할 건데요? 하나 있긴 있는데요. 대로변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오시다가 팽성이라고 쓴 입간판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그 부지가 매물로 나왔어요. 3천평 정도 됩니다.”
“그래요? 가격이 얼마나 됩니까?”
“찔러만 보시는 거 아니죠.”
“아니요, 나 지금 공장 하고 있는 사람이요.”
부동산 주인이 유리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엄찬호가 차에서 내려 차 먼지를 털고 있었다.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온 것으로 보아 만만치 않은 손님이란 걸 느낀 모양이었다.“
“평당 300이하론 안됩니다.”
“지목이 농지인 것 같은데....”
“아닙니다. 대지입니다.”
“그럼 모두 90억이네.”
“그렇습니다.”
구건호는 생각해 보았다.
[참, 누군지는 몰라도 옛날에 농사짓던 땅주인은 완전히 대박 났네.]
구건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부동산 사장이 다시 말했다.
“그 자리는 공장 조금 하다가 뭘 해도 되는 자리입니다. 상가를 해도 됩니다. 땅이 크니까 쪼개서 팔아도 좋습니다. 땅은 가격이 올라갈 땅을 사야 됩니다. 아, 서울의 아파트도 강남이 2억 올라가면 다른 지역은 2천도 안 올라가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