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16화 (216/501)

# 216

하늘의 인연 (2)

(216)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 사무실에서 경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기사를 보니 정치권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정치인들이 기업 활동을 잘하게끔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네. 대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고용 대란이 일어날 텐데 큰일이군.”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가 타다 준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보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구건호 사장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동경 아카사카에 있는 최지연 사장님 소개로 구사장님 전화번호를 알았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전화 거는 사람의 발음이 좀 이상했다.

“한번 찾아뵐까 하는데 오늘 괜찮겠습니까?”

“예, 오시는 건 상관없는데 무슨 일로?”

“일본의 현대미술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습니다.”

“일본 현대미술요?”

“예, 그렇습니다. 오전 중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왔다. 50대로 보이는데 곱슬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기이한 모습의 사내였다.

“전화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동경 최지연 사장님이 소개하신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죠.”

남자가 콤비 상의의 안 포켓에서 명함을 꺼내 구건호에게 주었다.

“저는 마츠이 요시타카(松田義孝)라고 합니다.”

“아, 일본인 이셨군요.”

구건호도 자기의 명함을 꺼내 방문객에게 주었다. 그리고 비서 오연수를 불러 차를 주문했다.

“한국어를 굉장히 잘 하십니다.”

“저는 일본 신문사의 한국 특파원을 7년이나 했습니다.”

“아, 그래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시는군요. 지금도 특파원을 하십니까?”

“아닙니다. 지금은 미술품 중간거래를 합니다. 한국의 예술품을 일본에 팔거나 일본의 예술품을 한국에 가져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문화재도 취급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아까 전화상으로는 일본 현대미술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현대미술이라고 했지만 일본 만화 그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화요?”

“일본 만화는 한국에서도 많이 퍼져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가도 많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지에이치 화랑에서 일본 만화가의 원화(原畵) 전시회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원화요?”

“네, 일본 만화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지에이치 갤러리는 정식 미술품 아니면 취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화도 예술이고 조각도 예술입니다. 눈의 지평을 넓히셔야 합니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화랑이 순수 회화만 취급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유치하려는데 만화 따위 전시회를 하자는데 기분이 나빴다.

“지에이치 캘러리는 제가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지에이치 미디어란 회사에서 운영을 합니다.그 분들과 상의를 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방문객이 가버리자 구건호가 혼자 중얼거렸다.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오후에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이 왔다 신정숙 사장은 최근엔 자주 신사동 빌딩엘 왔다. 지하의 갤러리를 관리하고 옥상의 북카페도 관리하니까 그랬다.

“아래층 갤러리 수채화전은 다음 주까지 인가요?”

“그렇습니다.”

“오전에 별 이상한 친구가 왔었습니다. 우리 갤러리에서 만화전을 하자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만화전요?”

“일본 만화가들의 원화 전시회를 하자고 해서 쫓아버렸습니다. 우리는 순수 회화만 취급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그 사람 연락처 아십니까?”

“알지요. 명함을 놓고 갔으니까.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일본인이더군요.”

신정숙 사장은 구건호가 준 명함의 전화번호를 얼른 메모했다.

“그런데 왜 그 사람 연락처를 적습니까?”

“일본 만화가의 원화 전시회는 승산 있습니다. 일본 만화가의 원화 작품은 시시한 회화보다 낫습니다.”

“그래요?”

“특히 일본 만화가는 이곳 강남지역의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작품 값도 몇푼 안되어 학생들이 많이 올 겁니다. 만화도 관심을 가저야 할 대상입니다. 눈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신사장님도 그 일본사람하고 똑 같은 말을 하네요.”

“네?”

“나보고 만화도 예술이고 조각도 예술이니 눈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하더군요.”

신정숙 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구건호는 자기가 너무 예술에 대하여 문외한인 것 같아 창피했다. 화재를 얼른 바꾸었다.

“참, 지난번 프랑스 화가 마리옹 킨스키 전에도 설빙이 왔다 갔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저는 못 봤네요.”

“전시회 끝나고 특별히 8시쯤 왔다 갔어요.”

이 말에 신정숙 사장이 찬찬히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설빙을 좋아하시는 것 아닙니까?”

“좋아하기보다도.... 팬입니다. 하하.”

“저는 구사장님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요.”

“그랬었습니까?”

“설빙은 좀 더 관찰 후 사귀십시오.”

“왜요?”

“설빙은 잘 모르겠는데 그 엄마가 좀......”

“엄마가 좀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두 분 잘 사귀십시오.”

대학병원에 나가 있는 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다.

“엄마 조금 있으면 수술실 들어가.”

“그래? 나, 지금 갈게.”

“올 필요 없어. 저녁 때나 와.”

“간병인 아줌마 한 사람 불러.”

“돈 나가잖아?”

“돈 걱정하지 말고 둬.”

“알았다. 저녁 때 올 때는 XXX호실로 와라. 병실 옮겼다.”

“일인 실인가?”

“일인 실이야. 엄마는 돈 나간다고 뭐라고 하는데 내가 푹 쉬었다 퇴원하라고 했어.”

“잘 했어.”

구건호가 저녁때 병실에 들렸다.

낯모르는 아줌마가 인사를 했다. 간병인인 모양이었다. 엄마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왔어? 바쁘면 오지 말지.”

“수술 끝났으니 밥 먹어도 돼?”

“된데. 그동안 밥을 못 먹었더니 기운이 없었는데 밥을 먹으니 좀 낫네.”

“관장은 안 해도 되지?”

“먹은 게 없어서 아직은 몰라. 병실은 내일 6인실로 다시 옮기자.”

“병실은 그대로 계세요. 박카스나 하나 드세요.”

“싫다. 사과즙이나 하나 먹자. 박카스 먹으면 저녁에 잠이 잘 안와.”

“아직 화장실엔 혼자 못가지요?”

“아직은 혼자 못 가는데 간병인 아줌마가 도와줘 편해.”

의사와 간호원들이 들어왔다. 회진하는 의사인 모양이었다. 의사는 40대 후반의 남자였고 어제 관장을 한 여의사는 그 뒤에 있었다. 주치의인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

“예, 괜찮아요.”

“수술은 잘 되었어요. 밥 잘 드시고 며칠 있다가 걸을 수 있으면 나가셔도 되요. 엎드려 보세요.”

엄마가 엎드리자 간호원들이 엄마의 옷을 벗겼다. 남자 의사가 엄마의 허리를 눌렀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이 쪽은요?”

“악, 악! 아파요.”

“이 쪽은요.”

“거긴 괜찮아요.”

“”됐어요. 식사 잘 하세요.“

남자 의사가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아드님 되세요?”

“네, 그렇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요. 골다공증도 염려할 수준은 아니에요. 며칠 계시면 혼자 일어나실 수 있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의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고 어제의 여의사에게도 목례를 보냈다. 구건호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여의사가 미소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구건호는 서울대학 병원에서 나와 엄찬호가 운전하는 벤틀리 승용차 뒷좌석에서 스마트 폰을 보았다.

스마트 폰 속에서는 동경 문화회관에서 공연하던 모리 에이꼬의 사진이 있었다.

“언제 보아도 귀엽군.”

구건호는 스마트 폰에서 설빙을 검색했다. 톱스타라 이름을 찍자 바로 많은 사진들이 떴다.

“역시 예쁘군.”

구건호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모리 에이꼬나 설빙의 모습이 안 떠오르고 오늘 저녁때 병원에서 목례를 한 여의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구건호는 눈을 비볐다. 그래도 자꾸 여의사의 얼굴만 떠올랐다.

“내가 정말 바람둥이인가? 강남의 큰손이 아니고 강남의 바람둥이인가?‘

그러나 사실상 몸을 섞은 건 모리 에이꼬 하나 뿐이었다.

구건호는 신사장이 말한 설빙의 엄마가 생각났다. 앞에서 운전하는 엄찬호는 구건호보다 7샇이나 어린 사람이었다. 연예계 소식은 엄찬호가 잘 알 것 같아서 물었다.

“찬호야, 너 탤런트 설빙 알지?”

“요즘 되게 뜨고 있잖아요?”

“너 걔 좋냐?”

“아, 좋죠. 예쁜데.”

“우리 갤러리에 한 번 왔다 갔다.”

“그래요? 설빙은 예쁜데 그 엄마가 좀.”

엄찬호도 신정숙 사장과 똑 같은 소리를 했다.“

“엄마가 왜?”

“너무 설쳐요. 매니저들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래?”

“인터넷에도 나왔잖아요. 자기 딸은 재벌 아니면 시집 안 보낸다고 하잖아요.”

“그래? 사귀는 사람은 없던 것 같은데?”

“누가 알아요. 전에도 N그룹 둘째 아들하고 연애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너 그거 어떻게 아냐?”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인터넷 카페 같은데 나오니까 알지요.”

“설빙은 서문여고 다닐 때 공부 잘했다고 하더라.”

“푸핫핫.”

“왜 웃냐?”

서문여고 다닌 것 맞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다닌 것 맞아요.“

“근데 왜 웃냐?”

“방송 못 봤어요? 방송 진행자가 김구 선생 사진을 보여주고 누구냐고 하니까 이완용 아니냐고 했어요.”

“그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김구 선생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책을 안 봤다는 이야기죠.”

“중앙대 연극영화과 같은데 갔으면 공부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모르지요. 특기생으로 갔는지. 또 걔 아버지가 방송국 간부 출신이라고 하잖아요.”

“흠, 그래?”

“하여튼 난 걔 엄마 방송에 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토할 것 같아요.”

“흠....”

구건호는 별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찬호, 이 자식이 뜬소문만 믿고 그러는 거 아니야?]

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직산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을 했다.

송장환 사장이 들어왔다.

“별일 없지요?”

“예, 회사는 별 일없습니다. 매출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여긴 송사장님이 계시니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익금을 부채상환하지 않고 유보하시라고 했습니까?”

“나중에 좋은 기업 있으면 인수하면 좋지 않을 가요? 어차피 코스닥 상장 조건에 주식 분산해야 하니까요.”

“물론 우리 회사는 소액 주주 숫자도 500명이 안되고 자기자본도 500억이 못 됩니다 코스닥 등록 예비 심사 전에 주식 분산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수하면 좋지 않을가요?”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코스닥 등록을 위한 주간사 증권사가 등록전 사모나 공모를 통해 소액 주주를 모집하면 됩니다. 저는 그것보다도 증자를 했으면 합니다.”

“증자요? 나보고 더 투자하란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이번 연말에 배당을 하고 그걸 다시 회사에 넣어 증자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떡해요? 다시 설명해 보세요.”

“이번 회계연도에는 법인세 납부 후 순이익이 25억 내지 30억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걸 주주에게 배당하는 겁니다. 주주는 구사장님 혼자이므로 구사장님 앞으로 전부 배당하는 겁니다.”

“그리고요?”

“그리고 배당 받은 돈을 다시 회사에 집어넣어 증자하는 것이지요. 즉, 번돈 가지고 증자하는 것입니다. 사장님이 배당을 받아 개인적으로 쓰진 못하지만 회사 자산은 늘어나는 것입니다. 즉, 사장님 재산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흠.”

“이 회사의 자본금은 30억입니다. 배당금 20억을 증자용으로 넣는다면 자본금은 50억이 되고 회사는 20억의 현금이 있어 여유로워 집니다. 이 돈으로 부채를 상환해도 좋습니다. 즉, 증자후 부채가 감소되는 것이지요.”

“흠.”

“코스닥 등록하면 자금 조달이 용이해 집니다. 주식 상장 제도가 원래 취지는 기업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해서 기업 확장이나 기술개발에 도움을 주자는 제도 아닙니까? M&A는 그때 가서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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