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14화 (214/501)

# 214

지에이치 로직스틱스 (3)

(214)

한미 합자사 디욘코리아의 기계 설비 7호기, 8호기가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미국측의 마지막 현물출자가 모두 끝난 셈이었다. 라이먼델 디욘사라는 세계적 브랜드와 자체 영업력에 힘입어 디욘 코리아는 순항을 하고 있었다.

부사장 애덤 캐슬러가 통역을 데리고 구건호 방에 들어왔다.

“이제 미국의 디욘 본사의 현물 출자는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이제 영업에만 총력을 기우릴 차례입니다.”

“쌍방 출자가 모두 끝났으므로 디욘 본사에서는 첫 번째 보드 미팅(Board Meeting: 이사회) 개최를 원하고 있습니다.”

“합자 계약 조건 사항이므로 해야 되겠지요.”

“이사회장과 이사 한분이 내한할 것으로 보입니다.”

“브렌든 버크씨가 오는가요?”

“이사회장 자격으로 디욘 본사의 부사장 브랜든 버크씨가 오고 이사의 자격으로는 해외 담당 부장인 안젤리나 레인이 올지, 아니면 동경에서 디욘제펜의의 리차드 아미엘 사장이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측에서는 나와 김전무, 그리고 윤상무가 참석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본사와 일정을 조율해서 사장님께 알려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방금 들어왔던 애덤 캐슬러가 동경의 아미엘 사장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모리 에이꼬가 보고 싶어졌다.

“못 본지가 꽤 오래됐네. 내가 설빙만 생각하느라고 에이꼬를 못 만났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에이치 모빌의 비서 박희정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저 박희정입니다.”

“오, 희정씨 웬일?”

“사장님께 국제 우편물이 왔어요. 오늘은 사장님이 이쪽에 안 들리시고 바로 디욘코리아로 가셔서 전해드리지 못했어요.”

“중국에서 온 겁니까?”

“아녜요. 일본서 왔는데요?”

“일본? 누가 보낸 거요?”

“발신자 이름은 영문으로 되어있는데 잠깐 기다려 보세요. ‘아이코’ 같은데요?”

“아이코?”

구건호는 직감적으로 에이꼬가 보낸 것임을 알았다.

“내가 엄찬호씨 보낼 테니 이리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엄찬호를 전화로 불렀다.

“찬호냐?”

“네, 사장님.”

“너 직산 공장에 좀 갔다 와야겠다. 비서 박희정씨 한테 가면 우편물 하나 줄 거다. 이리 가지고 와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무슨 내용일까?”

구건호는 천천히 우편물을 개봉해 보았다.

동경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전통예능 공연 초대장이었다.

초대장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공연에 대한 짧은 안내가 있었다. 화가(花街: 화류계)의 댄스로 인기 무기(舞妓: 춤추는 기생)인 모리 에이꼬가 출연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화가의 댄스?”

얼마나 또 치장을 하고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게이샤는 짙은 화장을 하면 할수록 어쩐지 더 슬퍼 보이는 것도 같았다.

“초대권이 두 장이네? 누구하고 같이 보라는 건가? 내가 결혼할 여자라도 있으면 같이 오라는 건가?”

구건호가 날짜를 집어보니 공연은 이번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 까지였다.“

“공연도 보고 모리 에이꼬도 만나보고 싶다.”

신정숙 사장이 프랑스 작가 마리옹 킨스키 전에 대한 결산을 보고했다.

“입장객은 많았고 팜프렛도 많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림 판매는 조금 미흡했습니다.”

“그림이 너무 어려워서 그런가요?”

“우리 정서에는 조금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색채가 강해도 문제이군요.”

“팜프렛은 인쇄한 것이 다 나가서 인쇄비는 건졌습니다. 그림은 일반인 보다는 대학교 같은데서 몇 점을 샀습니다. 강남 아줌마들도 안목 있는 사람들은 몇 점 샀습니다.”

“그래요?‘

“제가 큐레이터 생활할 때부터 알던 압구정동의 김 아줌마는 거침없이 두 점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분은 미술품 투자로만 년 수억씩 버는 분입니다.”

“되팔기도 하는 모양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림을 잘 보기도 하고 수완도 좋습니다.”

“남편이 돈이 많은 모양이지요?”

“남편은 국영기업체 사장을 하고 은퇴한 분인데 원래 할아버지 대부터 돈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분 잘 알아놔야 하겠군요.”

“마리옹 킨스키전에서는 1500만원 정도 떨어졌습니다. 지난번 중국 전위 작가전까지 합하면 이제 출판 수입과 화랑 수입이 비슷해졌네요. 호호.”

“다음번엔 무슨 전시회를 기획하시겠습니까?”

“한국 작가전입니다. 양평에서 수채화를 그리는 작가의 전시회입니다.”

“이름이 있는 분입니까?”

“크게 이름은 떨치지 못했지만 그림 실력은 좋습니다. 지에이치 갤러리는 세계적 유명작가의 초청 전시회도 하지만 국내 작가 중 실력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실력은 있지만 돈이 없는 신예 작가들에게 대관료를 싸게 해주면 갤러리의 이미지도 높아지고 결국에는 구사장님의 평판도 좋아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나까지야, 뭐....”

“참, 이번에도 마리옹 킨스티 여사가 그림을 한 점 기증했습니다. 지에이치 미디어에 기증한 것이므로 이 그림에 대한 처분 권한은 저에게 없습니다.”

“그냥 신사장님 집에 가져가세요.”

“아닙니다. 그러시면 제가 일하기 힘듭니다.”

“그 울긋불긋한 그림을 어디에 거나.”

“보관하십시오. 그리고 그림이 쌓이면 먼 훗날 구사장님 소장전 전시회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훗날 ‘구건호 선생 소장전’ 같은 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하, 그렇게 까지야 되겠습니까?”

“참, 문재식 주간님은 운송회사 잘 하시는가요?”

“의욕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미술품 반입 반출도 그 쪽에 맡기면 됩니다.”

“어머, 그 일도 하세요?”

“토탈 운송회사로 발전시키겠답니다.

“와, 대단하네요.”

“편집주간은 새로 뽑았어요?”

“공개 모집은 아니고 전에 같이 있던 사람인데 편집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빼내려고 물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게 되면 사장님께 인사시키러 오겠습니다.”

“아니오, 인사시켜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신사장님이 알아서 쓰세요.”

금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동경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경 문화회관이 우에노공원 앞에 있다고 했지?”

구건호는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경 시내로 들어왔다.

동경 문화회관은 우에노(上野)역 바로 앞에 있었다.

“교통은 좋네. 접근성이 좋으니 공연 관람자들도 많겠는데?

이번 공연은 게이샤 댄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극까지 있었다. 구건호는 공연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공원이나 한 바퀴 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공원 입구에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옛날 사무라이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응? 저건 누구 동상이지?”

가까이 가서 보니 사이고 다까모리(西鄕隆盛)의 동상이었다.

“쳇! 사이고 다까모리의 동상이네!”

구건호는 사이고 다가모리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빴다. 사이고 다가모리는 일본 근대화를 위하여 대한제국을 침략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사람이라 그랬다.

구건호는 우에노 공원의 벚꽃 사이 길을 걸었다. 지금은 봄철이 아니라서 벚꽃은 없고 낙엽만 뒹굴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처음 요정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머리 위에 벘꽃 모양의 조화를 꼿고 춤을 추던 에이꼬는 완전히 요정 같았었다.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왔다. 공연 보러왔어.]

모리 에이꼬는 공연 준비 때문에 스마트 폰을 보지 못했는지 답신이 없었다. 구건호는 한참 걷다가 알림 톡이 울려 폰을 보았다.

[앗! 오빠다!]

구건호가 빙그레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공연 끝나고 다이칸 야마의 맨션에서 기다릴게.]

↳ [저, 늦게 끝나요. 저녁 먹고 들어오세요.]

↳ [알았다. 천천히 와라.]

구건호는 동경 문화회관에서 전통극을 관람했다. 일본 말을 모르니 반은 졸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본사람들은 연극이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기도 하고 중간에 박수도 쳤다. 박수를 칠 때는 구건호도 영문도 모르면서 같이 쳐주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영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게이샤의 기원(祇園) 댄스 퍼포먼스가 있다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영어 방송 후 다시 일본어 방송이 나왔다. 관람객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폰을 꺼내 사진 찍을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 나오는 기원 오도리(춤)는 모리 에이꼬 혼자 나오는 춤이 아니고 군무(群舞)였다. 여러 예능 보유자들이 함께 나오는 춤이었다.

이상한 전통 악기가 울리면서 무대가 열렸다. 환한 조명 아래 수십 명의 게이샤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짙은 화장과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나왔다. 정 중앙에 나온 게이샤를 보니 모리 에이꼬였다. 모리 에이꼬의 인물이 가장 우수하기 때문에 중앙에 배치한 모양이었다.

전통 악기 사미센 소리와 함께 화려한 군무가 시작되었다.

“모리 에이꼬 기레이!”

“기레이!(예쁘다).”

“기레이!”

사람들은 정 중앙의 모리 에이꼬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구건호도 모리 에이꼬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구건호가 다이칸 야마에 돌아온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문의 키 번호는 아직도 구건호의 전화번호였다. 구건호는 사가지고 온 음료수와 생수, 그리고 과일을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집에서 밥을 자주 못 먹나? 냉장고 안이 텅 비었네.”

모리 에이꼬는 밤이면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지 침대 위에 곰 인형이 앉아 있었다. 구건호가 사다준 인형이었다.

“밤이면 이걸 끌어안고 잤나?”

갑자기 모리 에이꼬가 가여운 생각이 났다. 설빙이 도도한 장미꽃 같다면 모리 에이꼬는 수줍은 한 떨기 비 맞은 분꽃 같았다.

구건호는 씻지도 않고 향수냄새 나는 모리 에이꼬의 침대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구건호는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모리 에이꼬가 과일을 한보따리 사들고 들어왔다.

“에이꼬!”

“오빠!”

모리에이꼬는 과일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깡충 뛰며 양팔로 구건호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버릇대로 구건호의 얼굴에 수없이 뽀뽀를 하였다.

“공연 봤어?”

“봤지.”

“어땠어?”

“너 예쁘더라.”

“정말?”

“사진도 찍었는걸.”

구건호가 폰에 찍은 모리에이꼬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정말 나다.”

모리에이꼬는 또 깡충 뛰면서 구건호의 목에 매달렸다.

둘은 식탁에 앉아서 방금 모리에이꼬가 사온 과일을 먹었다.

“내가 사온 과일하고 똑 같은걸 사왔네?”

모리 에이꼬가 쪼르르 냉장고에 달려가 문을 열어보았다.

“오마나. 정말이네.”

과일을 먹고 나서 모리에이꼬가 말했다.

“오빠 먼저 샤워해.”

“나중에 할게.”

“그럼 치아하고 발만 닦아.”

모리에이꼬가 칫솔 새것을 주면서 말했다.

구건호가 치아와 발을 닦고 나오자 모리 에이꼬는 샤워를 하고 나왔다.

구건호가 시계를 보니 거의 밤 12시가 가까워 왔다..

모리에이꼬는 로션까지 바르고 나서 구건호가 앉아있는 침대로 왔다.

“밤마다 저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잤니?”

“응, 오빠가 사준 거잖아.”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의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볼에 뽀뽀를 하고 침대에 눕혔다. 방금 샤워를 해서 그런지 모리 에이꼬의 피부는 탱탱했다. 구건호는 소등을 하고 모리 에이꼬를 더욱 힘차게 끌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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