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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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 구건호가 디욘코리아에 도착하자 바로 애덤 캐슬러가 통역 이선생과 함께 사장실로 들어왔다.
“할 말이 있으신 모양인데 우선 앉으십시오.”
구건호는 비서 이선혜씨에게 차를 주문했다.
“한국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사장님 이하 전 직원이 잘 대해줘 불편함이 없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두 분이 함께 이렇게 오셨습니까?”
“실은 디욘 본사에서 감사반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감사요?”
“시애틀에 있는 디욘 본사에서는 현물 출자 완료 시점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디욘코리아의 마지막 현물 출자인 7호기, 8호기가 선적 완료되어 다음 주에 부산항으로 들어옵니다. 이미 들어온1호기부터 6호기까지가 정상 가동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러 옵니다.”
“흠, 그런 건 나쁜 제도는 아니군요.”
“기계장비 확인뿐만 아니라 생산제품의 품질은 어떠한가, 종업원은 매출에 비해서 적정 규모인가, 수입과 지출은 공정하게 처리되고 있는가, 세금 누락 사실은 없는가 하는 것들을 감사합니다.”
“흠, 감사는 몇 명이 나옵니까?”
“두 명입니다.”
“감사는 몇 일 합니까?”
“디욘코리아의 출자 규모로 보아서는 한 이틀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감사반이 오면 숙식에 대해서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윤상무에게 잘 말해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감사반의 항공권 구입비용은 디욘 본사에서 지불합니다. 체류 경비는 합자사에서 지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애덤 캐슬러가 나가고 김전무가 사장 방으로 들어왔다.
“애덤 캐슬러가 무슨 일로 왔습니까?
“감사가 나온다고 하네요.”
“감사요?”
“디욘 본사에서 감사가 나온답니다.”
“현물 출자가 끝나서 그런 모양이네요. 7호기, 8호기 선적했다고 팩스 받았습니다.”
“감사 나오면 협조 잘 해 주세요. 자기들도 잘 해보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알겠습니다.”
“7호기, 8호기 통관 업무는 지난번과 같이 윤상무가 생산부장과 공무과장을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이지노팩 물량이 늘어나서 매출은 좀 올랐겠네요?”
“월 매출 20억 언저리에서 놀다가 처음으로 25억 돌파했네요.”
“년 매출 300억이네요.”
“지금 애덤 캐슬러가 놀라고 있습니다. 합자사 초기년도에 3천만달러를 기록하는 합자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제력에 새삼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높은 게 아니라 우리 회사 영업력이 높아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이 직접 이지노팩이란 회사의 회장을 만나 담판을 짓고 큰 오더를 따냈다고 하니까 사장이 직접 뛰는 회사도 없다고 하면서 본사에 보내는 위클리 리포트에 기록을 했다고 합니다.”
“허허, 그래요? 김전무님 활동 덕이지 내가 무슨....”
“이러다가 우리가 지에이치 모빌보다 먼저 코스닥 등록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요.”
“신입사원 12명 뽑았는데 소집일이 내일입니다. 사장님은 내일 서울에 계시는 날이라 인사를 못시키겠네요.”
“일단 배치하시고 목요일 내가 오면 그때나 인사하지요.”
“알겠습니다.”
“제복은 지에이치 모빌이 거래하는데서 가져오나요?”
“그렇습니다. 가슴에 부착된 상호만 바꾸면 됩니다.”
“인원이 늘어나는데 식당 아줌마는 혼자 상관없겠습니까?”
“아직은 괜찮습니다. 단, 여기는 원재료가 많아서 야간 경비는 한사람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윤상무가 품의서 가지고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서울에서 출퇴근하므로 디욘코리아에 온 날은 대개 오후 4시면 퇴근한다. 너무 늦게 출발하면 고속도로가 양재 부근에서 많이 밀리기 때문이었다. 구건호는 보던 신문을 들고 사장실을 나왔다.
“신문은 가면서 읽어야지. 엄찬호가 운전하니까 차에서 신문 보기는 좋네. 그런데 이 녀석이이 어디 갔지?”
엄찬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총무과장이 있어 물어보았다.
“엄찬호 못 봤어요? 전화도 안 받네.”
“저기 생산부에 있던데요?”
구건호가 생산부에 가보니 엄찬호가 쭈그리고 앉아 기계 돌아가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하냐?”
“아, 사장님!.”
엄찬호는 얼른 주차장으로 뛰어가 벤틀리 승용차를 몰고 나왔다.
차가 아산 방조제를 지날 무렵 구건호가 물었다.
“엄찬호! 너 생산부 가고 싶냐?”
“아, 아닙니다. 그냥 구경한 겁니다. 신기해서요. 저는 생산부에서 일은 못하겠어요.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니 답답할 것 같아요. 저는 이 운전이 좋아요. 저렇게 아산호도 구경하고, 사장님 차 안 쓸 땐 낮잠도 자고 좋잖아요?“
“그래? 운전이 맞는 모양이구나. 너 애인 있냐?”
“에이, 없어요. 태영이 형도 없는데요. 뭘.”
“태영이는 경비용역업체 잘 되나?”
“어려운 모양이에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운동만 했지 기술 같은 건 없잖아요. 다른 것 하고 싶어도 못해요.”
“흠, 그래? 한남동 요정에서는 얼마나 주냐?”
그건 잘 모르겠어요. 태영이 형이 관리하니까요. 한남동 요정은 4명 나가 있는데 일은 참 편해요. 오후 6시쯤 나가서 손님 안내나 해주고 10시쯤 퇴근해요. 가끔 대리 운전도 해주긴 하지만 10시면 끝나요. 저녁도 거기서 제공해주고 또 거기 이모님이 잘 해주잖아요.“
“이모? 장마담 말이냐?”
“네, 장마담이요. 그런데 거기는 룸싸롱과 달라서 사장님처럼 점잖은 손님들만 와서 할 일도 없어요. 룸싸롱도 일해 보았는데 거긴 가끔 싸울 때가 있어요.”
“그래?”
“사장님, 그런데 저 전과 기록은 없어요. 지에이치 모빌의 총무이사님이 제 문신을 보고 신원조회를 했는데 전과 없다고 좋아했어요.”
“너 문신 있냐?”
“네, 팔에 조금 있어요. 미군 애들은 대부분이 문신 있어요. 그것도 엄청 크게 하고 다니잖아요.”
“그래? 앞으로 문신은 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평택 인터체인지 다 왔네요. 이제 경부선 쪽으로 빠지겠습니다.”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했다.
신정숙 사장이 프랑스 색채미학의 거장 마리옹 킨스키의 한국 전시회 계약을 하고 왔다고 보고했다.
“작품 계약 조건이나 작품 반입 반출은 지난번 중국 청년 작가전과 비슷합니다.”
“보도 자료도 만들어 놓아야 하겠군요.”
“호호, 벌써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혹시 여기 입주회사들 중 계약 만료되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지에이치 미디어가 여기로 다시 들어오려고요?”
“출만만 하면 거기서 있어도 되지만 좀 더 큰 일을 하려면 이곳으로 와야겠어요. 강이사님에게 임대보증금 낮추어 달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합니다. 나가는 사람 보증금 내어주어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요? 허허.”
“마리옹 킨스키 전시회만 성공하면 30평 정도 사무실 보증금 문제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전에 BM엔터인먼트란 회사에서 한국 연예인을 데려다가 상해에서 크게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 그 공설운동장에서 한 공연 말이지요? 그건 저도 알지요. 그때 공연 팜프렛을 국제 도서전 전시회장에서 나누어 주었잖습니까?”
“한국 연예인을 중국에서 공연시키는 건 유명한 엔테테인먼트 회사가 하겠지만 반대로 중국 연예인을 데려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런 건 우리도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대 예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되겠지요. 사장님 정도의 재력을 가지신 분이면 무대예술 전공자들을 순식간에 모집해서 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 연예인은 흥행에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꼭 내가 해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물어본 겁니다.”
“연극이나 전통음악 공연, 이런 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중국의 뮤지컬 오페라 투란도트를 우리나라에서 공연했고, 중국 크로스 오버 여자 밴드 ‘여자 12악방(十二樂坊)’의 한국 공연은 성공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중국통인 나도 모르는 걸 신사장님은 많이 알고 계시네요.”
“문화 쪽이니까요. 호호.”
구건호는 신사장이 돌아가고 바람이라도 쏘일 겸 옥상으로 올라갔다.
입주회사 직원 몇몇이 올라와 와이셔츠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북 카페 안을 쳐다보았다. 여자 손님 세 사람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구건호가 북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구건호가 테이블에 앉았다.
“손님, 주문은 무엇으로....?”
매장을 관리하는 여자가 구건호를 보고 크게 놀랐다. 여자는 문재식의 처였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여자가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가져왔다.
“손님들 많이 옵니까?”
“네.”
여자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문제식씨도 여기 가끔 옵니까?”
“한번 왔다 갔습니다.”
“문재식이와 저는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죠.”
여자는 대답이 없다.
구건호가 매장에 계속 앉아 있으면 부담스러워 할까봐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가 맛있네요. 저는 저쪽에 가서 마시겠습니다.
구건호는 커피를 들고 매장 밖으로 나왔다.
구건호는 문재식과 문재삭의 처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끌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적당한 자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글만 썼던 사람이라 적당한 자리가 없네. 월급이 더 많은 지에이치 모빌이나 디욘 코리아로 빼고 싶은데 말이야.”
문재식은 김민혁이나 박종석과는 달랐다. 기업에 들어와 생산부에서 제품을 만들거나 품질 쪽에 관여할 수도 없었고 거래처에 다니면서 매끄럽게 영업활동도 못할 것 같았다. 사람을 관리하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문재식이 생각하다가 보니 학교 다닐 때가 떠오르네.”
구건호는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한 모금 빨면서 옛날을 반추해 보았다.
[조원철이 생일이라고 반 아이들 대부분 자기네 아파트로 불렀지. 엄마가 피자 파티 열어준다고 말이야. 그런대 문재식이하고 김민혁, 그리고 나, 이렇게 3사람만 뺐지. 달동네 사는 애들이라고 왕따를 시켰지.]
[생일 파티에 가던 한 놈이 ‘지하실은 꺼져’하면서 돌까지 던져 문재식이가 울던 기억이 나네. 지금은 마포에서 연립주택 세를 하나 얻어서 산다고 하는데 돌을 던졌던 놈들에게는 금생에서는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건가?]
구건호는 옥상 정원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문재식이가 그래도 책만 읽고 불량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인데 세상은 참 공평하지 못한 것 같네.]
구건호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문재식에게 전화를 했다.
“재식이냐? 나다.
“어! 구사장.”
“요즘 편집 많이 하냐?‘
“응, 몇 권 하고 있어. 교정까지 보니까 바쁘게 지내고 있어. 내 처를 북카페에서 일하게 해줘 고맙다.“
“내가 조금 전에 올라가 보았는데 네 처가 고생하고 있는 것 같더라. 힘들다고는 하지 않니?”
“그런 말은 없었어. 구사장한테 미안하다고 하더라. 집이 멀어 출퇴근이 조금 힘들긴 한 모양이야. 하지만 그 정도야 괜찮지. 더 먼 곳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너, 운전면허증은 있냐?”
“면허증? 있지.”
“1종이냐, 2종이냐.”
“1종 보통이야. 나, 한때는 교정 일 일감이 없어서 택시 운전도 했어.”
“택시운전? 그런 것도 했었나?”
“힘도 들고 쪽팔려서 그만 두었어. 동창들이라도 만나면 지하실 그놈 택시 운전하더라 하는 소리를 하는 것만 같았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 마침 교정일 일감도 있고 해서 바로 그만 두었어.”
“나는 몰랐었네.”
“지금이 행복하다. 내가 여기서 편집장 하면서 300정도 받고 처도 거기 일하면서 200 받으니 빚은 다 갚을 수 있을거야.”
“집을 사야 할 텐데.”
“집은 포기했어. 지하실 면한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