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중매 (1)
(204)
다음날 아침 구건호는 은밀히 송장환 사장을 불렀다.
“코스닥 등록 전 분산요건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종업원이 500명 미만입니다. 30% 분산요건을 충족시키다 보면 대주주의 파이가 줄어듭니다.”
“흠.”
“또 30%의 분산요건을 채우기 위해 현재의 260명 종업원에게 무리하게 나누어 주면 실권주가 발생합니다.”
“나누어 주는 액수가 커지면 돈 없는 종업원은 인수를 포기하니까 그렇게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회사를 키워 500명이상으로 하고 분산요건 10% 조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코스닥 등록 심사요건에 보면 등록 신청 전 주식의 분산요건은 소액 주주수가 500명 이상이면 10%먼 분산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는 30%를 분산해야 한다.
“결국 종업원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군요.”
“그렇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겠네요. 회사를 키워 종업원 500명 이상의 회사를 만들던가 아니면 250명 종업원을 가지고 있는 회사를 인수하여 합병하거나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등록 주선회사가 될 증권사에서 분산작업에 협조해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비람직한 건 종업원에게 우리 사주를 나누어주어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송사장님이 회사를 키워 500명 종업원 회사를 만들어 보십시오. 아니면 적당한 기업을 M&A하던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앞으로 부채를 갚지 마십시오?”
“옛? 부채를 갚지 말라니요?”
“상거래 채권 중 악성부채는 대충 갚았으니 이제는 정지하고 수금이 되면 그냥 통장에 쌓 놓으세요.”
“수금되는 족족 부채를 상환해야 이자가 줄어들 것 아닙니까? 아직도 금융권 부채는 많습니다.”
“이자를 지불하더라도 쌓아 놓으세요. 코스닥 상장시 주식 분산요건에 해당이 안 되면 동종 유사업종의 업체를 M&A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총알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상임감사는 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구건호의 말을 금방 이해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디욘코리아를 방문했다.
디욘코리아도 생산량이 조금씩 늘고 판매량도 조금씩 늘어났다.
김전무와 윤상무가 구건호가 왔다는 소릴 듣고 구건호 방에 들어왔다.
“3호기, 4호기에서도 생산량이 나오고 있습니다. 5호기 6호기 발주를 신청해 달라고 애덤 캐슬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7호기, 8호기가 들어오면 끝인가요?”
“출자금으로는 끝입니다. 이후 기계장비가 더 필요하면 이제 합자사에서 돈 주고 사야 합니다.”
“8호기 까지 들어오면 100% 풀 가동시 매출을 최대 얼마까지 올릴 수 있을 가요?”
“글쎄요. 4천억 정도 되지 않을 가요?”
“6호기까지 들어오면 국내 수요는 커버 합니다. 이후 생산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가야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리급 이하 사원 채용은 캐슬러와 함께 두 분이 의논해서 하시고 저한테 상의할 필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전무와 윤상무가 나가고 나서 애덤 케슬러가 통역 이선생을 데리고 왔다.
“디욘 본사에서 파견한 기술자 3명이 다음 주 시애틀로 돌아갑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벌써가 아니라 3개월 시한을 이미 넘기고 있습니다.”
“고생들 했습니다.”
“지난번에 총무과장이 경복궁과 남산타워를 구경시켜주어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허허, 그래요?”
“한 번 더 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그냥 보내면 섭섭할 것 같아 회식이라도 시켜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고급 음식점이나 룸싸롱보다는 한국 전통미를 느끼는 곳에서 회식을 하고 싶습니다.”
“천안 아산지역에 그런 데가 있나?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조금 전에 디욘제펜의 리차드 아미엘 사장과 통화를 했는데 감명 깊은 장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구사장님이 잘 아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내가요?”
“서울에 있는 요정인데 한국 전통악기인 가야금도 나오고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한남동 요정!”
“맞습니다. 거기인 것 같습니다.”
“거긴 좀 비싼 곳인데. 합자사 경비로 한다면 안내해 드리지요.”
“합자사 경비로 하는 것으로 하지요. 사장님.”
“그럽시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 출국하니까 이번 주 토요일 어떻습니까?”
“좋아요.”
“그럼 사장님께서 예약해 주십시오. 사장님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구건호는 경리부 차장을 불렀다. 경리 차장은 지에이치 모빌에서 경리과장으로 있다가 한 계급 승진하여 디욘코리아로 온 사람이다.
“법인카드 가지고 있지요?”
“예, 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카드를 애덤 캐슬러 부사장에게 빌려주세요. 손님 접대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한남동 장마담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 구사장님. 오래간만이에요.”
“지방에 합자사 꾸민다고 해서 자주 서울에 못 올라갔습니다.”
“인테리어도 다시해서 꼭 모시고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신문에서 보니까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미술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혹시나 했더니 사장님 빌딩에 있는 화랑 맞더군요.”
아, 신문 보셨군요.“
“제조업만 하는 분 인줄 알았는데 문화사업도 하시고 멋쟁이네요. 호호.”
“토요일 6명 예약합니다. 4명이 미국인입니다. 한국의 미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호호.”
토요일 승합차를 렌트하여 6명이 탔다. 구건호와 통역 이선생, 애덤캐슬러, 미국인 기술자 3명 등이었다. 렌트카는 기사까지 보내 달라고 하였다.
구건호는 이들을 인사동과 북촌까지 구경시켜주고 저녁에 한남동으로 갔다. 렌트카는 순천향병원 근방의 유료주차장에 주차시켰다.
“렌트카 기사님은 식사 후 밤 9시쯤 오세요. 이거 식사 값 입니다. 근처 아무 식당에서 식사후 놀다가 시간 맞추어 오시면 됩니다.”
“어이쿠, 식대 값이 많네요.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미국인들을 데리고 요정엘 갔다. 간판이 없는 양옥집으로 들어가자 통역 이선생이 어리둥절하였다. 깍두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큰형님 오셨습니까?”
“오, 임태영! 잘 있었나?”
“작은 형님은 안 오셨네요?”
“작은 형? 오, 박종석 말인가? 일이 있어 못 왔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요정은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그런지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양옥집이지만 실내는 한옥 식으로 꾸몄다. 미국인 기술자들은 요정의 내부를 사진 찍기 바빴다.
“어서 오세요. 구사장님. 오래간만이에요.”
장마담이 고운 한옥을 입고 나왔다.
“온돌방은 외국인들이 앉기가 불편해서 이번에 다리를 뻗는 방을 새로 만들었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장마담이 안내한 방은 자수 병풍이 있는 방이지만 테이블 밑에 다리를 뻗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애덤 캐슬러는 자수 병풍과 방 뒤에 있는 자개 문갑, 백자 항아리 등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촛대를 보고는 무슨 물건이냐고 묻기도 하였다.
통역 이선생도 대기업의 부장으로 퇴직하고 해외 지사장도 했다는데 이런 데는 처음인 것 같았다. 통역 이선생이 물었다.
“사장님은 여기 자주 오시는 모양입니다.”
“자주는 못 옵니다.”
음식이 나왔다.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큰 상을 가져와 음식을 날랐다. 미국인 기술자들은 음식을 사진 찍기에 또 바빴다. 음식은 정갈한 한식 위주였다.
“굳!”
불고기와 돼지고기 수육 등을 먹어본 애덤 캐슬러가 굳을 연발했다. 전통 술이 몇 잔 돌아가자 거문고를 든 도우미들이 나와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애덤 캐슬러는 눈을 감고 거문고 곡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거문고 곡이 끝나자 한복을 입은 예쁜 도우미들이 와서 음식 서빙을 해 주었다. 이 도우미들은 놀랍게도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애덤 캐슬러와 미국인 기술자들은 도우미들의 서비스 속에 가야금 병창을 들으며 뽕 가버렸다.
후식으로 과일과 감로주가 나왔을 때 장마담이 들어왔다. 장마담이 애덤 캐슬러 옆에 앉았다.
“이 분이 여기 마담이요.”
구건호의 말을 이선생이 통역을 하자 애덤 캐슬러는 장마담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 분은 구레나룻이 참 멋있네요.”
장마담의 말을 이선생이 통역을 하자 애덤 캐슬러는 장마담의 손을 잡고 또 흔들었다.
“장마담, 옆에 있는 그 미국인이 오늘 음식값 낼 사람이요. 잘 모셔요.”
장마담이 과일을 포크로 집어 애덤 캐슬러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이번엔 장마담이 구건호 쪽으로 왔다.
“구사장님, 저 술 한잔 주실래요?”
“오, 장마담이!”
구건호는 전통주 술을 따라 장마담에게 주었다.
장마담은 구건호가 준 술을 단숨에 마시고 빈 잔을 구건호에게 주면서 말했다.
“구사장님, 제가 중매한번 설까요?”
“좋은 사람 있어요?”
“TV탤런트 이미령 아시죠?”
“아, 엄마 역할로 많이 나오는 사람 말이죠?”
“제 친구에요. 젊어서 같이 탤런트 생활도 하고 그랬지요. 그 친구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데 발이 넓어요. 구사장님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 했더니 중매 한번 서겠다고 하네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한잔 더 드리지요.”
구건호는 승낙의 표시로 장마담에게 술을 한잔 더 따라 주었다.
요정에서 기분 좋은 대접을 받은 애덤 캐슬러와 미국인 기술자들은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왔다.
“보스! 우리가 한국에 와서 최고로 기분 좋은 날이요!”
외국인들은 구건호를 보스라고 부르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술값은 도우미 차지까지 포함하여 애덤 캐슬러가 법인 카드로 계산했다.
마당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미국인 기술자 한명이 화장실을 다시 가는 바람에 구건호는 단풍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임태영이 구건호에게 다가왔다.
“큰형님 혹시 운전기사 채용 안합니까? 전에 보니 큰형님이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걸 보았습니다. 형님보다 나이어린 이지노팩 회장 아들도 운전기사를 데리고 다니는데 말입니다.”
“좋은 사람 있냐?”
“있어요. 제 후배인데 운동도 좀 하고 영어도 할 줄 알아요. 용인에 있는 체육대학 제 후배에요.”
“그래?”
“찬호야, 이리 와봐!”
깍두기 한사람이 와서 구건호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엄찬호입니다.”
임태영이 엄찬호를 소개했다.
“얘에요. 태권도가 3단이고 유도도 4단이에요. 직접 채용안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경비 용역업체에서 파견 나가는 것으로 해도 됩니다. 큰형님.”
“오, 그래?.”
구건호가 엄찬호에게 악수를 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지방에 있어서 어쩌지? 내가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 연락하지. 인상이 참 좋게 생긴 친구네.”
“감사합니다. 큰형님.”
화장실에 갔던 사람이 돌아오자 일행들이 주차장 쪽으로 이동했다. 임태영이 다시 구건호에게 왔다.
“오늘 취하신 것 같은데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일행이 많아서 렌트카 가지고 왔어. 아까 그 친구는 이름이 엄찬호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큰 형님.”
“흠, 알겠네.”
구건호는 임태영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