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북카페 (2)
(203)
신문에 중국 청년 전위작가들의 한국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크게 보도가 되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간신문은 물론 경제지와 지방지까지도 보도되었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중국 청년 전위 작가들의 한국 전시회가 오는 9월10일부터 2주간 열린다. 서방 세계에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중국의 전위 작가들은 실험정신과 예술성을 높이 평가 받아왔다. 이번 전시회는 강남 신사동의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열리며 벌써부터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크게 받고 있다.]
신문 기사는 미술 평론가의 논평도 실리고 이번에 출품될 그림도 한점 게재되었다. 구건호가 보기에 그림이 좀 괴상망측했지만 이 그림은 천안문 광장 사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구건호는 신정숙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문기사 잘 보았습니다. 크게 나왔네요.”
“신문기사는 전시 기간 중에 한 번 더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요?”
“미술 평론가나 미술담당 신문기자들이 전시회를 직접 보고 써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작품 들어오는데 인력 지원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지에이치 모빌의 직원들을 차출해 드리지요.”
“괜찮습니다. 제가 옛날에 근무했던 미술관에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다행이군요.”
“북카페는 내일 오픈합니다. 오늘 도서를 비치했고 커피 내리는 기계 설치도 끝났습니다. 사장님 시간 있으면 구경 오세요.”
“하하, 그래요? 내일 구경 가지요.”
서울에 올라온 구건호는 강이사와 같이 옥상엘 올라갔다. 옥상 북카페에는 벌써 손님들이 있었다. 빌딩 입주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올라와 담배도 피우고 있었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허허, 벌써 북카페가 오픈한줄 알고 사람들이 왔네요.”
“엘리베이터에 북카페가 오픈했다는 광고지를 붙였어요. 그래서 입주회사 직원들이 올라온 모양입니다. 담배도 피울 겸 해서요.”
“그래요? 나는 아까 올라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못 봤는데. 다른 생각하고 오느라고 못본 모양이네요. 어이구, 그런데 담배는 여성들이 더 많이 피우네요.”
“담배꽁초는 이제 아래층으로 던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건호가 북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강이사가 일하고 있는 오종종한 여자를 불렀다.
“인사하세요. 우리 회사 사장님입니다.”
여자는 구건호에게 인사만 하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 여자가 문재식과 동거한다는 여자구나. 그런데 나하고 눈을 마주치려고 하질 않네.]
구건호는 이 여자가 남편 친구이기 때문에 쑥스러워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긴장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많이 힘드실 겁니다. 혹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여기계신 강이사님에게 말씀해 주세요.”
“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하였다.
강이사가 옥상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다가 소리쳤다.
“어? 현수막 달러 왔네!”
“현수막을 답니까?”
“중국 청년 전위 작가전 홍보 현수막입니다. 대형사이즈입니다. 문안은 신사장님이 작성했고요, 북카페 오픈 현수막도 같이 걸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구건호는 사장실에 앉아서 경제 신문을 보다가 빌딩 밖으로 나와 현수막이 걸린 것을 보았다. 사각형 대형 현수막은 디자인도 산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도 귓가에 들려왔다.
“지에이치 갤러리? 화랑이 여기 생겼구나. 점심 때 눈요기 할 데 생겨서 좋겠는데?”
“전위예술 작가전이 여기서 열리는 구나.”
구건호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서 있는데 뜻밖에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사장님, 저, 지에이치 모빌의 총무이사입니다.”
“총무이사? 무슨 일이요?”
“급히 직산으로 내려오셔야 되겠습니다.”
“내가? 왜요?”
“임금협상 3차가 결렬되고 지금 종업원들이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거기 송사장도 있고 임원들도 다 있잖아요?”
“종업원들이 오너 사장 나오라고 아우성입니다. 농성으로 라인이 서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게 뭐요?”
“법정관리 들어갔을 때 3년간 임금인상이 안되었으니 소급해 달라는 겁니다.”
“그것뿐입니까?”
“이번 임금 인상율도 16.5%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알았어요. 지금 가지요.”
구건호가 급히 나가자 강이사가 쫓아 나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직산 공장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났다고 하네요.”
“망할 자식들! 외부세력과 연결된 놈들이 있을 겁니다. 그 놈들 잡아넣어야 됩니다.”
구건호가 직산 공장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총무이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 농성자들이 대강당에 집결해 있습니다. 사장님이 오시지 않으면 농성을 안 풀겠다고 합니다.”
구건호가 현관 쪽으로 오자 대강당에서 소리가 들렸다. 무슨 구호 소리가 들리고 요란한 노동가요도 흘러나왔다.
상임감사가 뛰어왔다.
“경찰에 연락해서 공권력을 이용할 가요?”
“하지 마세요. 송사장님은 어디 있습니까?”
“시위 현장에 잡혀 있습니다.”
구건호가 강당으로 들어서자 노래 소리가 뚝 그쳤다.
“왔다!”
“구사장 왔다!”
“오너 사장 왔다.”
구건호가 연단위의 의자에 앉았다.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투쟁이라고 쓴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시위대와 함께 있었던 송사장도 피곤한 모습으로 연단 위로 올라왔다.
구건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서울에 행사가 있어 참여했다가 소식 듣고 달려왔습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현재 주식회사 지에이치 모빌은 내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송장환 사장님이 책임 경영을 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대화로 일을 풀어가야지 물리적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노조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송장환 사장님은 결재 권한이 없는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너 사장님과의 대화를 원합니다.”
뒤에서 옳소!, 옳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사장님이 들어줄 수 있는 건 나도 들어줄 수 있고, 송사장님이 들어줄 수 없는 건 나도 들어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내가 왔으니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총무이사님이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메모해 주십시오.“
노동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은 끝이 없었다. 별의별 요구사항이 많았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구 사항이 빗발쳤다.
구건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법정관리 기간 중 여러분의 희생이 있었기에 회사가 살아났습니다. 이 점은 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관리로 임금인상이 없던 시절까지 소급해 인상을 해달라면 임금 인상률이 30%가 넘습니다. 지금 새로 오신 송사장님의 영업력에 힘 입어 소폭의 영업 신장률이 있지만 임금 30%를 인상한다면 우리는 다시 법정관리 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위원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경쟁업체는 우리하고 임금격차가 벌써 30%나 됩니다.”
“우리가 영업이익률 증가율이 30%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10%미만입니다. 영업신장률이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맞추어드릴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사주를 나누어 주기로 지금 여기 계신 송사장님이나 상임감사님과 의견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주?”
조합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구건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회사는 최근에 영업력도 높아지고 여러분들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추세라면 3년 후에는 코스닥 상장을 하게 됩니다. 상장직전 우리 사주를 근속년수에 비례하여 나누어 드립니다. 송사장님이 오신 것도 상장 전문가이기 때문에 모셔온 것입니다.”
다른 조합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사주도 휴지나 다름없는 종이 짝이 된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종이 짝이 되고 안 되고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생산성 높아지고 영업이익이 많아지면 크게 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종이 짝이 되는 것입니다.”
강당 안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구건호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옛말에 누울 자리보고 이불 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 법정관리를 막 벗어난 회사에게 30% 인상은 여러분들 중에서도 일부는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금년은 최저임금 인상률에서 여러분들이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사는 영업신장률에 따른 단계적 보상을 해드리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회사가 잘되어 우리사주가 오른다면 여러분들의 가정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함께 좋은 회사로 키워보도록 합시다.”
구건호가 단하로 내려가 노조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부는 악수를 하고 일부는 피했다.
노조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끼리 회의를 할 테니 사장님과 임원님들은 잠시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강당을 나오면서 송사장이 구건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하셨습니다. 어차피 코스닥 상장에는 소액주주 분산요건이 있으니까요.”
“소액주주 분산요건이 몇%이죠?”
“30%입니다. 500명이상 분산이면 10%입니다.”
“흠, 종업원 500명이상의 회사로 키워야할 필요가 있겠네요. 갈 길이 머네요.”
구건호가 송사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씩 웃었다.
“내 방에서 커피나 한잔씩 하지요.”
임원들이 모두 구건호의 방으로 들어왔다.
“조합원들이 사장님 안을 수용할 가요?”
“글쎄요. 조합원 중에서 강성파와 온건파간에 서로 논쟁이 있겠지요. 외부세력 연결은 없나요”
“외부세력 연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총무이사님이 총무과 직원을 시켜서 강당엘 한번 슬쩍 보고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갔던 총무이사가 들어와 중간보고를 하였다.
“직원이 가보니까 서로 자기들끼리 큰소리로 싸우고 있답니다.”
“싸우고 있다는 것은 투쟁을 종료하자는 반대파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임금 협상도 3차가 결렬되고 4차라면 피곤할 때도 되긴 했네요. 4차까지 오는 동안 여기계신 임원님들도 상당히 피곤했겠네요.”
“저희들이야 한 일이 없습니다. 사장님이 나서지 않고도 해결 되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 타결 된다면 온양에 가서 온천 사우나라도 하세요.”
직원이 들어와서 보고를 했다.
“노조에서 구사장님을 뵙자고 합니다.”
“같이 들 가시죠.”
구건호가 다시 강당으로 들어갔다.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이야기들 많이 나누었습니까?”
“법정관리 때의 임금동결을 소급하여 달라는 건 우리도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금년은 최저 임금인상률에 동의 하지만 향후 영업이익률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상회한다면 플러스 알파는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지금 구사장님이 답변하신 말씀은 기록을 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종업원들에게 나누어줄 우리 사주는 몇%를 주실 예정입니까?”
“코스닥 등록법에 따른 한도액은 다 드립니다. 단 공평하게 주지는 않습니다. 장기 근속자와 엊그제 들어온 사람의 회사 기여도는 다릅니다. 근속 년한에 따른 차등은 있을 겁니다.
“직위에 따른 차등은 없습니까?” 이를 테면 부장은 100주, 대리는 50주처럼 말입니다.“
“직위에 따른 차등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협약서에 서명을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일어나서 노조 간부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 주었다. 그리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