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97화 (197/501)

# 197

청담동 이회장의 별장 (2)

(197)

구건호는 포천 낚시터에서 돌아오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돈만 보고 너무 바쁘게 달려왔어. 이회장님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역시 멀었어.]

[나도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어? 이회장님은 뜻있는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내색을 하지 않았어. 수십 년 동안 저 일을 하면서 언제 티를 냈던가?]

구건호는 천안 불당동 아파트로 돌아와서도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구건호는 어제 낚시터에 갔다 와서 그런지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에이치 모빌에 들려 간단한 결재를 하고 아산의 디욘코리아로 넘어갔다.

현장을 둘러보았다.

기계를 잡고 있었던 사람들이 구건호를 보고 인사를 했다. 미국서 가져온 하얀 원재료는 이곳에서 각종 화공약품을 배합하여 노란 색깔과 회색 빛깔의 다른 원재료로 재탄생하였다.

미국에 연수를 받고 온 생산부 유희열 부장이 구건호에게 설명을 했다.

“이 하얀 원재료는 석유에서 뽑아져 나온 것으로 그대로 팔면 상품성이 없습니다. 내구성이나 내한성, 내열성, 탄력도, 모두 떨어집니다. 현재 여기에 36가지 화학재료를 배합하여 재가공후 완전한 상품성 있는 원재료로 재탄생 하는 것입니다.”

“흠.”

구건호는 윤기가 흐르는 노란 빛깔의 원재료를 손바닥에 놓고 살펴보았다. 쌀알보다 약간 큰 것 같았고 콩알보다는 작았다.

“여기 포대에 찍힌 번호들은 뭐요?”

“제품 시리얼 번호입니다. 숫자 앞의 DK는 디욘코리아를 말하며 다음은 출하날짜, 다음은 로트번호와 시리얼 번호입니다.”

“그런 배열이었군요."

“즉, 불량이 나와도 언제 만들었고 작업자는 누구였고 배합은 어떻게 했고 하는 것이 추적 가능합니다.”

“흠.”

구건호는 현장을 한 바퀴 돌고 사장실로 들어왔다.

구건호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인천에서 이회장과 같은 장애인 시설을 만들고 싶었다.

[몇 년 후에 복지 재단을 설립하자. 그러기 위해선 이회장님의 별장처럼 1천 평의 땅을 사놓자. 나중에 땅값이 올라가면 사기도 힘드니 지금 사자. 인천 변두리 동네에는 아직 농지가 있으니 우선 천평만 사놓고 건물은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코리아가 상장되면 그때 짓자. 복지재단은 법인 명의로 해도 되지 않겠는가.]

구건호는 전에 부모님이 살고 계신 구월동 아파트를 소개해준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아파트 말고 토지도 취급하십니까?”

“합니다. 무슨 용도입니까? 상가용 토지도 있고 투자용 농지도 있습니다.”

“투자용 농지는 투자를 하면 올라간단 이야기입니까?”

“도로변의 농지는 투자해 놓으면 나중에 지가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장애인 시설을 알아봐 달라고 해서 문의합니다.”

“장애인 시설은 혐오시설이라고 해서 주민들이 반발합니다. 주택지와 좀 떨어진 곳에 농지를 사면됩니다. 농지는 농사만 지어야 하는데 복지 시설 같은걸 만들려면 농지 전용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농지 전용허가가 좀 까다롭지 않은가요?”

“세금 내면 됩니다. 까다롭진 않습니다. 돈이 좀 들어가서 그렇지요.”

“그런 땅이 매물로 나온 것이 있습니까?”

“있지요. 지금 계양구 쪽에도 좋은 매물이 있고 남동구 쪽에도 좋은 매물이 있습니다.”

“남동구 쪽에 있는 토지는 몇 평입니까?”

“복지시설을 한다면 남동구 남촌동에 좋은 농지가 있습니다. 평수는 천평입니다. 대로변은 아니지만 6미터 도로변입니다. 개울도 옆에 흐르고 주위가 개발되면 지가가 상승할 만한 위치입니다.”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직접 오셔서 말씀 하시지요. 전화로 찔러만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한번 시간 내서 가지요. 몇 시까지 근무하십니까?”

“저는 이 동네 살아서 저녁 9시까지 있습니다. 복지시설은 아마 지자체 지원금도 있는 걸로 아는데 빨리 하시는 게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구건호는 부모님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조용히 구월동 부동산을 찾아갔다.

“어제 전화 걸었던 사람입니다, 남촌동 농지를 물어봤던 사람입니다.”

“직접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요즘은 찔러만 보고 연락이 없는 사람이 많아서요.”

“여기서 직접 안내합니까? 여기서 남촌동까지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웬걸요. 안내는 남촌동 부동산에서 합니다. 저희 부동산끼리는 다 연결이 되어서 그쪽에 가시면 다 안내해 드립니다.”

부동산 사장은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남촌동 승일 부동산이지요? 나, 구월 부동산이요. 남촌동 농지 아직 안 나갔지요? 혹 달린 영감님이 내 논 농지 말이요.”

“아직 안 나갔어요. 찾는 사람 있어요?”

“여기 점잖은 사장님이 한분 오셨는데 그 땅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모양이에요. 내가 그쪽으로 가시라고 할 테니 안내 좀 잘해줘요.”

“알겠습니다. 오시라고 하세요.”

구건호는 승일 부동산을 찾아갔다.

키가 작은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사장이었다. 승일 부동산 사장은 대번에 구건호가 땅 보러 온 사람임을 알았다.

“구월 부동산에서 소개하신 분이지요?”

“그렇습니다.”

“가시지요. 제 차를 타시지요.”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부동산 앞에 세워놓고 부동산 사장차를 탔다. 털털거리는 싼타페를 타고 10분 정도 가다가 멈추었다. 동네는 개발이 아직 안되었는지 비닐하우스도 있었고 고추나 들깨 같은걸 심어 놓은 밭도 있었다. 부동산 사장은 고추밭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여기입니다. 저쪽 경계선까지이고 토지 1천 평입니다. 정확히는 1,020평입니다. 대로변은 아니지만 6미터 지방도로에 접해있고 옆에 작은 하천도 흘러 위치는 좋습니다. 대로변에 있는 버스 정류장도 200미터밖에 안 됩니다. ”

“흠.”

“돈 있는 분들이 사 놓으시면 지가 상승은 됩니다. 이쪽 지역에 개발 호재들이 많습니다.”

“얼마에 나왔습니까?”

“저 안쪽의 맹지 같은 곳은 평당 60만원이지만 이쪽 지역은 평당 120만원입니다.”

“그럼 12억이군요.”

“그렇습니다. 땅 주인이 가격은 조정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마음에 들면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생각 좀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동산 사장은 구건호에게 명함을 한 장 주었다.

구건호는 땅이 마음에 들었다.

[땅의 모양이 반듯해서 좋네. 6미터 도로에 접했으니 차량 출입은 가능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도 않네. 그런데 가격이 좀 쎄. 이 근처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었겠는데? 12억이면 얼마야? 우리 집이나 김민혁, 문재식은 단돈 1억이 없어서 연립주택 세를 살았는데 말이야. 12억이면 김민혁이 부모님을 위해서 이번에 산 주안 현대 홈타운 아파트를 5채나 사겠네.]

[땅을 사놓고 엄마 아빠보고 관리해 달라고 하자. 누가 사논 땅에 경작을 하거나 건축물 폐자재 같은걸 버리면 안 되니까. 그리고 몇 년 후에 이쪽 환경이 좋아지면 건물을 올리자. 복지법인을 만들어 이사장은 내가 하더라도 원장은 누나를 시키자. 복지사 1급 자격증도 있다고 하니까 딱 맞는 자리이다. 매형도 트럭 지입차 그만하게 하고 이곳 복지원에서 일하게 하면 남들 보기에도 좋지 않겠는가?]

구건호는 다음날 땅을 계약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땅을 구경시켜주었다.

“투자용으로 샀어요. 이 땅에 먼저 주인이 고추를 심었는데 내가 올해까지만 경작하고 내년에는 작물 심지 말라고 했어요. 두 분이 가끔 와서 다른 사람이 몰래 와서 경작하는가 보세요.”

“우리가 심어야겠다. 부추 같은 것 심으면 돈이 된다더라.”

“에이, 농사는 힘들잖아요.”

“아니다. 비싼 땅 왜 남 좋은 일시키냐? 너희 아빠하고 와서 마늘을 심던가 대파를 심던가 그래야겠다.”

엄마는 소녀같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구건호는 천안으로 내려가는 도중 차 안에서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 전화를 받았다.

“딩펑 선생 전시회 일정이 잡혔습니다. 보도자료 나갔으니 오늘부터 각 신문사에서 다루어 줄 것입니다.”

“보도 자료는 우리가 직접 보내는가요?”

“보도 자료는 우리가 작성합니다. 언론사에 보내는 일은 용역 줍니다. 맡아서 해 주는 회사가 있습니다. 보도 자료는 문재식 주간님이 만들었습니다. 문장력이 좋으니까 언론사에서도 다루어 줄 겁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전시회 때 나도 가 보겠습니다.”

“전시회 첫날 축하 난초 화분 하나 보내주세요. 사장님 이름으로요.”

“하나가 아니라 3개 보내지요. 지에이치 모빌, 디욘코리아, 지에이치 개발 이렇게 3개 보내지요.”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오후에 지에이치 모빌에서 신문을 보았다. 디욘코리아는 신설회사라 경제지만 보았지만 모빌 쪽은 신문을 3종류나 보았다. 딩펑 선생의 기사가 나왔다. 딩펑선생이 그린 동양화 한 점과 함께 나왔다.

“문재식이 써준 보도 자료라지?”

[동양화 거장 중국의 딩펑 선생 작품이 인사동 솟대 화랑에서 오늘부터 2주간 열린다. 딩펑 선생은 중국 북종화의 대가로 이미 일본이나 홍콩, 대만 등지에서 높게 평가를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전시회다.

중국은 남종화 계통인 우리나라와 달리 채색이 들어가는 북종화가 더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딩펑 선생의 작품 전시회를 통해 우리 미술 애호가들도 북종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짜식, 문장력은 좋네.”

문재식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면서도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생활에 대한 대책이 없는 양반이라 문재식도 늘 가난했다. 왕따를 당하고 사니 혼자서 만화방에 쪼그리고 앚아 만화만 보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 도서실에서 소설만 빌려다 보았다.

“그래도 시를 쓰는 아빠의 영향으로 지금 편집 주간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구건호는 눈을 감고 중, 고등 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아파트에 사는 조원철은 황병철, 이석호와 어울렸고 축대 위 낡은 연립에 살던 구건호는 같은 생활 수준의 김민혁, 문재식 등과 어울렸다. 구건호는 설렁탕을 얻어먹는 재미로 가끔 두 살 어린 박종석과도 잘 어울렸다,

김민혁과 문재식은 조원철과 이석호에게 자주 맞고 다녔다. 김민혁과 문재식은 아파트쪽에 사는 아이들에게 열등의식이 있어서 대항한번 제대로 못하고 당하기만 하였다,. 다행히 구건호는 설렁탕을 먹어서인지 체격이 실팍하여 덜 당하기는 하였다.

연립주택 지하에 사는 문재식을 부를 때 아이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어이, 지하실! 내 가방 좀 들어줘!.“

문재식은 지하실 소리만 나오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깨를 늘어트렸다.

아파트에 사는 조원철은 엄마가 약국을 했다. 황병철은 엄마 아빠가 부부 교사였고 이석호의 아빠는 목재소 사장이었다. 이들 셋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학교도 모두 인서울에서 다녔다. 현재 조원철은 대기업 과장이고 황병철은 카이스트를 나와서 판교에 있는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다. 공부는 교사 아들인 황병철이 제일 잘했었다. 목재소 사장 아들인 이석호는 부모의 지원으로 경리단길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최근에 정리하고 중국에 들어왔다. 사회단체에 있는 강민호는 다른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빠가 시의원도 하고 정치를 한다고 했었다.

낡은 연립에 살던 구건호는 아빠가 공단 생산직 근로자로 있다가 경비원을 했었다. 김민혁의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였는데 버스회사를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어린이 미술학원 차를 운전하고 있다. 문재식의 아버지는 시를 쓰는 노동자였는데 신용불량으로 그 영향이 문재식에 까지 미치자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지내고 있다.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대개는 아버지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구건호가 출세하여 지금은 구건호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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