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96화 (19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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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이회장의 별장 (1)

(196)

설빙의 전화번호를 확보한 구건호는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다. 특별한 명분도 없이 전화 걸기도 좀 그랬다. 더구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촬영 중에 있다면 전화도 받지 못할 것만 같았다.

구건호는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일본에서의 화보 촬영은 끝났는지요? 오는 22일 제가 일본에 체류 중입니다.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동경 뉴오따니 호텔 커피숍에서 그날 오후 5시에 뵐 수 있을 런지요? 시간 변경은 가능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지에이치 모빌 구건호 드림 - ]

구건호는 쑥스러운 생각에 문자를 지울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보내버린 문자는 취소할 수도 없었다.

구건호는 카렌다를 보았다.

[22일이면 금주는 안 되고 다음 주에 가자. 안 나오면 마는 거지 뭐. 날 만나러 일본까지 오겠어? 스타들은 사람들 눈에 띠는 걸 싫어해 일본에서 만나자고 한 건데 올까? 그 호텔은 가끔 한국 관광객도 오는데 다른 데를 잡을 그랬지?]

[그러고 보니 모리 에이꼬 한테 미안한데. 아카사까의 뉴오따니 호텔은 모리 에이꼬와 추억이 있는 호텔인데 말이야. 모리 에이꼬는 지방 공연이 많다니까 부딪칠 염려는 없겠지?]

구건호는 설빙과 모리에이꼬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이거 내가 너무 속물이 되는 것 아니야? 사주팔자에 돈이 많으면 여자도 많고, 돈이 없으면 여자도 없다는데 난 돈이 좀 생겼다고 이 여자, 저 여자 친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없잖아? 김민혁, 박종석 다 여자가 있고, 문재식도 동거녀가 있고, 동창 조원철, 황병철, 이석호, 이놈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몸이고 나만 개털이네? 사주가 틀린 건가?“]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관리를 담당하는 윤상무가 들어오는 바람에 생각하던 것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윤상무는 결재판 속의 서류를 꺼냈다.

“말씀하세요.”

“이번에 기계 설비 3, 4호기가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가공하기 전의 1차 원재료 100톤을 기계 들어올 때 같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100톤요? 쌓아둘 공간은 다 있나요?”

“충분합니다. 지난번에 박종석이사와 안용덕 과장이 3층으로 다이를 만들어 300톤 정도도 다 들어갑니다.”

“애덤 캐슬러와는 이야기 다 됐지요?”

“다 됐습니다. 결재서류에 애덤 캐슬러씨 싸인도 받았습니다. 김동찬 전무도 공람 싸인까지 받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수입의뢰는 어디에 합니까?”

“부산세관이라 지난번 거래했던 부산 관세사 사무실에 의뢰 합니다. 기계 다 들어오고 원재료만 가져 올 때는 평택항을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서류를 보았다.

“금액이 꽤 되네요. FOB가격이지요?”

“그렇습니다. 다음 달부터 판매된 것 수금이 되면 사정이 좀 나아질 것입니다.”

“미국인 기술자들은 불평 없나요?”

“이번 일요일 총무과장이 자기 차로 서울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총무과장은 역시 젊은 사람이라 영어회화가 많이 늘었습니다.”

“총무과장이 일요일 날 쓰는 유류비와 식대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일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낚시도구를 챙겨 포천으로 떠났다.

“이회장님이 낚시터에 요즘도 나오실까?”

구건호는 자기만 먹을 김밥과 음료수를 챙겼다.

이회장은 낚시터에 나오지 않았다.

구건호는 혼자 낚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구건호는 대낚시가 아니고 루어 낚시라 찌를 담근 채 호수를 천천히 돌았다.

“이놈의 고기들이 낮잠을 자러 갔나?”

호수를 거의 한 바퀴 돌때까지 고기는 입질도 안했다. 아마 점심때라 그런 것 같았다.

“힘도 들고 땀만 나네. 저기 그늘에서 가져온 김밥이나 먹을까?”

구건호는 호수 위에 릴 낚시대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천천히 그늘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밀짚모자를 쓰고 올라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이회장님이다.”

구건호는 반가운 마음에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소리쳤다.

“이회장님!”

이회장은 구건의 목소리를 듣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회장은 자기가 늘 앉던 포인트에 와서 낚시 도구를 내려놓았다.

“천안서 여기까지 왔네!”

“안녕하세요? 회장님! 권부장님도 잘 계셨어요?”

“어휴, 그 멀리서 여기까지 와? 천안도 저수지가 많고 밑에 공주나 부여로 가면 사람 없는 저수지도 많은데!”

“아닙니다. 회장님과 권부장님도 뵙고 하니 이리로 와야지요.”

“사업 잘 되지”

“예, 잘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이 낚시터 매주 오시는 것 같아요.“

“우리 별장하고 가깝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네.”

“참, 별장이 여기서 가깝다고 했지요?”

“글쎄, 한 2, 3키로 될까?”

“언젠가 권부장님 한테 들으니 별장이 크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되나요?”

“글쎄. 한 천평 될까?”

“예? 천평요?”

구건호는 이회장에게 순간적으로 실망을 하였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지만 천평 별장은 너무한 것 아니야? 신사동에 있는 지에이치 빌딩 바닥면적의 3배가 넘잖아. 사치를 너무 하시는 것 같군.]

“건평은 얼마나 됩니까?”

“한 200평 될라나?”

“예? 200평이요?”

“한번 놀러오시게. 나도 여기 낚시가 끝나면 들렸다 갈 거네.”

구건호는 언젠가 권부장이 한 말이 생각 났다.

[내가 일요일에도 회장님을 모시고 다니는 건 순전히 별장 때문이야. 별장을 보고 이회장님에게 존경심이 갔어.]

구건호는 권부장도 속물로 보였다.

[군인 출신이란 사람이 그까짓 호화별장 하나 가지고 있다고 뭘 그렇게 부러워해.]

구건호는 이회장이 별장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샴페인이라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천평 정도의 별장이라면 관리인도 있을 것 같았다.

“부럽습니다. 그렇게 큰 별장은 아무나 못 갖는데 공기 좋은 곳에 별장이 있다니 부럽습니다.”

“그런가? 하하. 내가 늘그막에 낙이 뭐가 있겠는가. 별장에서 뒹굴며 노는 거지.”

이회장은 김밥을 2인분만 가져왔다고 하면서 나누어 먹자고 하였다.

“저도 가져왔는데요? 1인분만 가져왔는데 잘 되었네요. 같이 앉아서 먹지요.”

구건호는 랜드로버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가져와 폈다. 세 사람은 음료수와 함께 김밥을 먹었다.

“구사장 좋지?”

“네? 뭐가요?”

“여기 말이야. 나, 여기만 오면 마음이 푸근해.”

“네, 좋네요.”

“나는 사업상 머리가 아플 땐 여기에 와서 영감도 얻고 그래. 여기에 내가 자주 오는 건 가까이 별장이 있어서 오기도하지만 사업구상 때문에 오기도 하지. 여기서 이렇게 낚시를 하다보면 잉어가 아닌 사업상의 대어를 낚을 때가 가끔 있다네.”

“아, 예. 그렇습니까?”

“구사장도 오늘 여기서 커다란 베스가 아닌 사업상 대어를 낚아봐. 참, 루어 낚시는 그게 잘 안될지도 모르겠네. 돌아다니면서 자주 낚시대를 던져야 하니까 말이야.”

구건호는 이회장과 함께 김밥을 먹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 지하에 화랑을 하겠다고 하니까 이회장은 흥미 있게 들었다.

“그럼 저는 호수를 또 한 바퀴 돌겠습니다. 회장님 오늘 큰 대어를 낚으십시오. 사업상 대어 말입니다.”

이회장은 빙그레 웃었다.]

“알겠네.”

구건호가 베스를 한 마리 잡고 이회장은 붕어 4마리를 잡았다.

“이제 그만 갈까?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네.”

이회장은 낚시대를 걷기 시작했다. 잡은 물고기가 4마리밖에 안 되어 도로 저수지에 놓아줄 줄 알았는데 이회장은 붕어를 프라스틱 통속에 담았다.

“집에 가서 매운탕 끓이실 거예요? 그럼 제 베스도 가져가세요.”

구건호는 자기가 잡은 베스를 이회장의 통속에 담가주었다.

“매운탕이 아니라 붕어죽을 끓이려고 하네. 붕어는 가시가 많지. 하지만 오래 푹 삶으면 뼈가 흐믈흐믈 해지고 죽을 끓이면 아주 좋지.”

구건호는 돈 많은 양반이 참 궁상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가 많아 치아가 부실하니까 붕어죽을 드시는 모양이네.”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기도 낚시 도구를 거두었다.

“회장님은 서울 청담동으로 바로 가실 겁니까?”

“아니, 별장에 들려. 연못에 잡은 고기 풀어놓고 와야지.”

“별장에 연못도 있습니까?‘

“그럼, 3, 4백평 될까? 수초도 연못 주변에 심어 아주 경관이 좋지.”

구건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평이 넘는 별장에서 아름다운 연못을 바라보며 술 한잔 한다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 같군.“

별장 들렸다 가시면 저도 한번 별장 구경하지요. 대지 천평에 건물 200평, 그리고 연못이 3, 4백 평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별장 이겠습니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안구 정화가 되겠네요.“

“따라오려면 오시게. 내가 별장을 공개 안하지만 구사장은 이제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 공개하지.”

구건호는 이회장이 타고 가는 제너시스 뒤를 따랐다. 제너시스는 좁은 시멘트 도로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더니 숲속에 있는 웅장한 건물 앞에 섰다. 문틈으로 보니 커다란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보였다. 나무 때문에 운치를 더했다.

“진짜 엄청나게 큰 별장이네.”

구건호는 이회장과 권부장을 따라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 안에서 갑자기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할아버지 오셨다!”

“아휴, 내 새끼들!”

구건호는 어리둥절하였다.

별장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중증 장애인도 많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말도 이상하게 하는 장애인도 있었다.

“아아, 내가 잘못 봤구나.”

별장이 아니라 장애인 시설이었다.

“여기를... 회장님이 운영하십니까?‘

“암, 내 개인적으로 운영한다네. 운영한지가 한 20년 되었을까?”

“아이들이 모두 몇 명이나 있습니까?”

“30명 정도가 있네. 많응 때는 50명 가까이도 있었지. 왜 지난번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이 나보고 인사하며 물은 것이 있었지? 세종대학 이혜숙 교수 아버님 아니냐고 했었지?”

“예,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혜숙 교수도 여기 출신이야. 고아였지. 그런데 아이가 참 똑똑했어. 이혜숙 또래 애들은 나보고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지금 이 아이들은 나보고 할아버지라고 그러네. 허허.”

구건호는 심장이 떨리는 큰 울림을 받았다.

“아아, 이회장님은 정말 존경하실 만한 분이다. 나는 근처에도 못갈 것이다.”

구건호는 괴산에 있는 박도사가 한 말도 기억이 났다.

"청담동 이회장에게 안부 전해 주시게. 그 친구 생각 보다는 멋진 친구네.“

“지난번에 잡은 것 보다 작은데.”

“다음엔 할어버지가 더 큰 것 잡아올게. 이만큼 큰 걸로.!”

이회장은 말하는 아이를 끌어당겨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는 장애가 있는지 말소리가 이상했다.

“저 고기는 뭐야. 이상한 고기네.”

“응, 저건 베스야. 저기 서있는 아저씨가 잡았어.”

“와, 크다.”

아이들은 잡아온 고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거 연못 속에 넣었다가 주방 아줌마 시장 갔다 오면 붕어죽 끓이라고 할게.”

“난 붕어죽 보다 피자가 더 좋은데.”

“너 키가 중학생만큼 크려면 붕어죽 먹어야 한다. 피자는 자주 먹으면 안 돼.”

“정말이야?”

“그래 언제 할아버지가 거짓말 하는 것 보았어?”

구건호는 이회장과 아이들이 대화하는걸 보고 웬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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