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리스캉의 제언 (2)
(193)
김민혁은 경리단길 이석호가 찾아온 것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석호는 경리단길 식당 그만 두었데.”
“그래? 그럼 뭐한데?”
“중국에서 사업 하겠다고 했어.”
“중국사업? 무슨 사업?”
“심양에 상가가 싸서 3채를 매입했데. 한국서 가게 판돈으로 심양에 가니까 3채를 살수 있다고 자랑했어.”
“주택이 아니고 가게라... 임대를 하려고 그러나?”
“봐서 거기다가 식당을 하거나 옷가게를 하겠다고 그러더군.”
“옷가게? 한국 옷을 판다는 건가?”
“걔 마누라가 이태원에서 옷 장사 했잖아. 요즘 이태원도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많이 이전하여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런데 심양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이곳 소주까진 왜 온 거야?”
“영업집조나 세무관계를 알아보러 왔어. 놀러 올 겸 해서.”
“개인사업자와 법인은 틀릴 텐데. 개인사업자들은 조심해야 돼. 중국이 만만한곳이 아니야. 실은 나도 중국에서 돈을 번 것이 식당으론 재미 못 봤어. 아파트 사서 벌었지. 그런데 걔 중국말은 할 줄 아나?”
“전혀 못했어. 심양에선 조선족 통역이 있다곤 하더군.”
“잘 해야 할 텐데.”
“나보고 심양한번 놀러오라고 하더라.”
“너, 내일 스케줄이 어떠냐? 시간 있냐?”
“시간은 있어.”
그럼 전에 네가 말한 단동엘 가보자. 심양에서 단동은 열차 이동해도 되니까 심양에 들려 이석호도 만나보자. 이석호 이 녀석 잘 하고 있는가 보고 단동 변경 경제합작구 부국장이란 사람을 만나보자.“
“그럴까? 그럼 심양 가는 비행기표 두 장 예약할게. 오전에 공장 들려 잠깐 손익현황에 대하여 설명 듣고 오후에 출발하자. 내가 이석호와 단동 합작구의 부국장한테는 전화를 해 놓을게.”
구건호는 다음날 오전 김민혁이 운영하는 공장엘 들렸다.
지에이치 모빌에서 정년퇴임 후 이곳에 촉탁으로 와 있는 전임 공장장을 만났다.
“불편한건 없으세요?”
“김민혁 사장이 잘해 주어서 불편한 것 없습니다.”
구건호는 전임 공장장의 얼굴이 좋아진걸 보고 안심했다.
“공장장님 오셔서 이곳 기계 장비들을 말끔히 정비해주어 가동률이 100%가 됐어.”
공장은 활기차 보였다. 김민혁도 이곳에 마이머신 운동을 도입해 전보다는 공장이 깨끗해지고 직원들의 근무 태도도 많이 개선된 것 같았다. 김민혁은 과장이나 반장 등 관리자들을 구건호에게 인사시켰다.
“한국에서 오신 동사장입니다.”
“니하오!”
“니하오!”
중간관리자들이 일제히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는 김민혁으로부터 소주 기차배건 유한공사의 손익현황을 보고 받았다. 김민혁이 보고할 때는 옆에 경리담당 직원을 입회 시켰다. 김민혁은 가끔 경리담당 직원에게 숫자가 의심나면 물어보곤 하였는데 전보다 중국어가 아주 유창해졌다.
“야, 너 중국어 많이 늘었다.”
“늘긴, 뭘. 중국 여자하고 같이 살아서 그런 모양이다.“
“아니야, 정말 많이 늘었어.”
“지금 거기 표에서 보는 것처럼 월간 매출이 3억 원 선을 유지하다가 지난달부터 3억 5천으로 증가했어. 지에이치 모빌에서 새로 개발한 AM083 어셈블리 덕분인데 다음 달 부터는 내가 새로 거래처를 잡은 곳에서 매출이 발생해 4억 원 선은 유지할거야.”
“종업원도 좀 증가했겠네.”
“42명 그대로야. 직원 더 늘리지 않고 월급을 조금 더 올려준다고 하니까 종업원들이 그걸 더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회사는 일도 빡세고 월급도 많이 준다는 소문이 나 있어.”
“그래?”
구건호는 포케트에서 통장과 도장을 꺼냈다.
“내가 올 때 환전을 못해가지고 왔다. 1만 위안만 내 개인통장에서 찾아다 줘라.”
구건호는 공상은행 통장과 도장을 김민혁에게 주었다. 구건호의 공상은행 예금 잔액은 700만 위안(한국돈 약 12억) 정도 있었다. 금계 산업공단 철수시 받은 돈이었다.
김민혁은 경리직원을 불렀다. 은행용 출금전표에 도장을 두 개를 찍어 경리직원에게 주었다.
“1만 위안만 찾아가지고 오세요.”
“하오더(알겠습니다).”
경리직원이 나가자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예금 인출 요청에 도장 2개를 찍네.”
“응, 하나는 위임장이야. 예금주 본인이 직접 은행에 안가면 위임장 찍어야 돼.”
구건호는 경리직원이 1만 위안을 찾아가지고 오자 김민혁과 함께 공항으로 나갔다. 심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심양은 옛날엔 봉천이라고 불렀으며 현재 중국 동북 3성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청나라 누루하찌가 도읍으로 삼은 곳이며 병자호란 때 인조를 9번이나 절하게 만든 청 태종의 무덤도 이곳에 있고 궁궐도 이곳에 있다.
심양 공항에는 이석호가 나와 있었다.
“여, 이석호!”
“구건호! 김민혁! 반갑다. 여기까지 찾아줘 고맙다.”
이석호는 전보다 얼굴이 꺼칠해진 것 같았다.
“하루만 묵는다고 해서 렌트카는 안 빌렸어. 택시타고 가면 돼.”
“우린 짐도 없으니 호텔은 천천히 가고 네 가게부터 먼저 구경하자. 해 떨어지기 전에 가자.”
“그래, 저쪽 택시 승차장으로 가자.”
“너, 있는 곳이 어디라고 그랬지?”
“서탑(西塔)이야.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네지. 거기 가면 중국말이 필요 없어.”
서탑은 정말 조선족들이 많았다. 조선족 학교도 있고 거리의 여기저기에선 한국말이 들렸다.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도 억양이 이상한 한국말을 썼다. 한국말은 북한 말씨 비슷했다.
“허허, 이런 곳이 다 있었네.”
구건호는 신기한 듯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사람들로 복작거렸으나 건물들은 날고 우중충한 모습들을 보였다.
이석호의 가게는 서탑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있는 상가였다. 가게 3개를 샀다고 했는데 두 개는 셔터 문이 닫혀 있었고 하나만 옷 같은 것을 걸어 놓았다. 유동인구가 적은 곳이라 장사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 같은데?”
“이 동네 개발 계획은 거창해. 나도 처음에 한국에서 경리단길 가게 얻을 때는 이랬어. 조금 있어봐. 여기가 곧 활성화 된다고.”
“경리단길은 옆에 이태원이란 상권이 있는데 여기는.....”
구건호는 이석호에게 부정적인 말만 하는 게 안 좋을 것 같아 희망을 주었다.‘
“가게가 3개니 이 거리가 활성화 되면 프레미엄 왕창 받고 팔겠다.”
“그땐 되팔던 가, 가게를 직접 할까 구상중이야.”
“가게 하나는 옷을 갖다 놓았는데 한국제품이냐?”
“동대문 시장에서 떼어가지고 온 거야. 반응은 괜찮아.”
‘사업자 등록은 냈지?“
“냈어. 영업집조 받았어. 그게 있어야 체류 비자도 나오잖아.”
“여기 상가는 등기가 되어 있나?‘
“등기는 아니지만 임대분양 계약서는 다 있어.”
“흠.”
구건호는 이석호가 다소 불안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중국말을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서탑에서 있으니 중국말이 필요 없는 곳이라 그것도 편하기는 하겠지만 중국말을 익히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만 같았다. 결국 조선족 통역에게 모든 걸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래, 가게 잘 보았다. 경리단길 같이 이 거리도 떴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술한잔 사지.”
“서탑으로 갈까?”
“난, 조선족 마을 잘 안 가는데.”
“거기 내 대학 후배가 가라오케를 해. 한번 팔아줘야겠다. 내 체면 한번 세워다오.”
“하하, 그럼 알았다. 서탑으로 가자.”
이석호가 안내한 가라오케는 서탑 지하에 있는 곳이었다. 건물은 낡았으나 방은 제법 많았다. 반나체의 여자들도 많은걸 보니 술도 팔고 여자들 서비스도 파는 곳인 것 같았다.
룸으로 안내받은 이석호는 큰소리로 여자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사장님 오시라고 해. 귀한 손님들 모시고 왔으니 빨리 오라고 해.”
이석호의 후배라는 사장이 왔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왔다.
“선배님 오셨어요?”
“인사해라. 천안에서 큰 공장을 하고 강남에 빌딩을 갖고 있는 내 친구다.”
“안녕하세요? 와줘서 고맙습니다.”
“사업 잘 되지요?”
“아이고, 요즘 뭐 잘되는 장사 있습니까? 물장사 다 그렇지요.”
이석호가 호기롭게 말했다.
“야, 사장! 여기 양주 한 병하고 이 집에서 제일 예쁜 애들 3명만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양주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이석호는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사장 무슨 술로 할까?”
“네가 좋아하는 걸로 시켜라.”
“시바스 리갈 어때?”
“좋아하면 시켜라.”
“야, 시바스 리갈 하고 각시들 데려와.”
“알겠습니다. 선배님!”
종업원이 양주와 마른안주, 과일 안주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반 나체의 여자 3명이 들어왔다. “앉아라. 왔으면 앉아라. 이년들아!”
여자들 셋이 구건호와 김민혁, 그리고 이석호 옆에 앉았다. 여자들은 참으로 못생겼다. 키도 작달막하고 화장도 짙게 하고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전부 조선족 여자들이었다. 구건호는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술이 몇 잔씩 돌아가자 이석호는 취했는지 여자를 끌어안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었다.
“야? 너희들 서울에 있는 이태원 알아? 거기에 있는 돈을 내가 다 쓸어 모았다는 거지.”
“오빠가 정말?”
“야, 이년들아! 앞에 계신 사장님들에게 물어 봐라! 정말인지 아닌지!”
구건호는 옆의 김민혁을 쳐다보았다. 김민혁도 옆에 앉은 여자와 팔짱을 끼고 뭔가를 속닥거렸다.
“아이, 이 오빠는 내가 싫은가봐.”
구건는 옆에 앉은 여자가 치근덕거리며 달라붙자 몸을 내맡긴 채 술만 마셨다.
양주가 거의 떨어질 무렵 구건호는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석호가 한 병 더하자고 하면 자리가 길어질 것만 같았다.
“야, 이제 그만 일어서야 겠다. 내가 소주에서 심양까지 오다보니까 많이 피곤하다. 술은 여기까지만 먹자.”
“벌써 가려고? 입맛만 버렸잖아.”“다음에 한잔 하자.”
구건호는 룸의 불을 켰다. 환한 불빛 밑에서 본 여자들은 정말 못생겼다. 이런 얼굴이면 건전한 생산 공장엘 다니지 왜 이런 서비스 업종에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갔다. 구건호는 안 포켓에서 지갑을 꺼냈다.
“수고들 했다. 이거 차비나 해라.”
구건호는 지갑에서 백 위안짜리 두 장씩을 꺼내 여자들에게 주었다.
“이 오빠 멋쟁이다.”
여자들은 구건호의 뺨에 쪽쪽대고 입을 맞추며 룸을 나갔다. 밖에서 깔깔거리는 여자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석호의 입이 삐죽 나왔다.
“야, 구건호! 이제 시작인데 가면 어떡하냐. 내 옆에 있던 각시 좋게 생겼던데.”
“내가 좀 피곤해서 그래, 내일 또 단동 경제 합작구에도 가봐야 돼. 호텔이 어디라고 그랬지?”
“태산로에 있는 크라운 플라자 호텔이야. 북릉(北陵: 청 태종의 묘가 있는 곳) 공원이 가까워. 내일 공원 구경하고 가도 돼.”
“글쎄,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가라오케가 있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사람들은 반짝이는 불빛 아래서 흥청댔다.
“자, 우리 호텔로 갈게. 잘 놀았다. 내일 호텔로 올 필요 없다. 우리가 알아서 공항엘 갈게.”
“그래도 되겠어?”
“장사 잘 해라. 다음에 보자. 오늘 고마웠다.”
구건호와 김민혁이 단동 변경경제 합작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부국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반갑게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한국 기업인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구건호는 자기의 명함을 부국장에게 주었다.
“여기 합작구는 조선의 신의주와 마주한 압록강변에 있어서 합작구의 이름이 변경 경제 합작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