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리스캉의 제언 (1)
(192)
구건호는 오늘 따라 많은 우편물을 받았다.
지에이치 모빌 쪽으로도 광고성 우편물이 많았는데 디욘코리아 쪽으로도 많은 우편물이 왔다.
구건호는 중국에서 김민혁이 보내온 우편물과 지에이치 미디어에서 보낸 ‘만화 세계역사’ 5, 6권만 챙기고 나머지는 휴지통에 버렸다.
“김민혁이 보낸 팜프렛이 여러 장 들었네. 중국 청년 작가전(展)? 그림을 잘 볼 줄 모르지만 이상하네. 꼭 초딩들 수채화 그린 것 같네.”
구건호는 다음 팜프렛을 보았다.
“세계적 거장 천차오 선생 유품전? 돌아가신 분인 모양이네. 이 그림도 이상해. 너무 고리타분하고 중국 냄새가 너무 많이 나. 다음은 또 뭐냐? 차이나 아방가르드전? 흠, 작은 글씨로 청년 전위 작가전이라고 쓴걸 보니 아방가르드가 전위예술이란 말인가? 아직 상해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는 중이네.”
구건호는 그림에 문외한이라 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인 신정숙 사장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전화를 걸었다.
“신사장님?”
“아, 예. 신정숙입니다.”
“보내주신 만화 세계역사는 잘 받았습니다. 이 책 잘 나갑니까?”
“예, 현재 6권 발간했는데 꾸준히 나가고 있습니다.”
“상해의 리스캉 국장이 김민혁씨를 통해서 팜프렛을 여러 장 보냈네요. 미술 전시회 팜프렛입니다. 내가 신사장님께 다시 우편으로 모두 보내드리지요. 나는 봐도 잘 모르겠군요.”
“무슨 전시회 팜프렛인지 알 수 있을 가요?”
“중국 청년 작가전, 세계적 거장 천차오 선생 유품전이네요.”
“아, 예.”
신정숙 사장의 반응이 별로 신통치 않았다.
“하나 더 있네요. 차이나 아방가르드전?”
“어머, 그 팜프렛 있어요? 저한테 보내주세요. 아방가르드전 전시회 이야기는 인터넷에서도 보았어요.”
“이상한 그림인데 관심 있는 것 같네요.”
“중국 청년 작가들 전위 예술은 해외에서도 알아줍니다. 쟝사오강(張曉剛) 같은 작가가 그린 ‘영원한 사랑’은 110억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요?”
“아방가르드전 팜프렛은 꼭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네요.”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작품 한 점에 110억원이라.... 거, 하나만 팔아도 팔자 고치겠는데?]
구건호는 그림이라면 딩펑 선생 작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작품 한 점에 수십억이나 수백억이라면 생각을 달리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0억이면 화랑에 얼마 떨어질까? 예술은 예술로 보아야 하는데 나는 장사 속만 생각하니 큰일이군. 난 역시 예술가는 못 되지. 김민혁이 엄마가 2억 짜리 아파트를 사고 평생에 처음 가져보는 큰집이라며 춤을 덩실 덩실 추었다는데 110억이면 그런 집 55채를 사네.]
구건호는 신정숙 사장이 뻥치는 것 아닌가 해서 인터넷에서 쟝사오강이란 이름을 검색을 해보니까 정말 그랬다.
구건호는 이선혜씨를 불러 팜프렛을 미디어의 신사장에게 부쳐주라고 지시하고 강이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빌딩 지하1층 보러오는 사람 없지요?”
“평수가 넓어서 그런지 보러오는 사람이 없네요.”
“거기 24시간 사우나 있을 땐 월세 얼마나 받았지요?”
“1억 보증금에 월세 1,000만원 받았습니다. 현재 보증금 5천에 월세 500에 낮추어 내 놓았는데 아직 안 나갔습니다. 사우나 자리라 식당 같은걸 하려면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가는 모양입니다.”
“거기다 화랑을 하려면 인테리어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 가 견적 한번 내 보세요.”
“화랑이요?”
“네, 미술품 전시하는 화랑입니다.”
“화랑이 될까요? 알겠습니다. 화랑에 대해선 전 잘 모르지만 견적은 한번 내 보겠습니다.”
구건호는 이름도 이상한 그 아방가르드전을 구경해 보려고 상해행 비행기를 탔다. 구건호는 요즘 해외여행 때는 항상 퍼스트 클래스 아니면 비즈니스 석을 탔다. 구건호는 자기가 투자한 중국 소주의 부품 공장이 있지만 조용히 상해부터 들렸다.
구건호는 난징루에 있는 현대 미술화랑에서 열리는 차이나 아방가르드전을 구경했다. 딩펑 선생의 전시회 보다는 사람도 많고 젊은 관람객도 많았다.
“그림들은 괴상망측하네.”
그림은 정말 이상했다. 사람의 얼굴이 비틀어지고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 입이 있고 입이 있어야할 자리에 갑자기 손가락이 있고 그랬다. 하지만 그림은 무언가 예술적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구건호는 그림 밑에 있는 스티카를 보았다. 제목과 작가 이름들이 있었다.
“5월의 욕망?”
그림은 정말 불나는 태양도 있고 눈동자가 이상한 얼굴이 그려져 있지만 욕망으로 들끓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지에이치 빌딩 지하 화랑에서 한다면 될까? 이 정도 작품이면 한국에서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해야 될걸?. 한번 내가 해봐?”
구건호는 리스캉에게 전화를 했다.
“나야. 구건호. 차이나 아방가르드전 전시회 구경 왔어.”
“어? 그래? 팜프렛 보낸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벌써 왔네.”
“얼굴이나 한번 보자.”
“내가 당서기가 참석하는 회의에 가야돼. 나 아직 점심도 못 먹었어. 시간도 그러니까 전시회장 앞에 있는 맥도날드 가게에서 만나자. 햄버거나 하나 먹어야겠다.”
“햄버거? 좋아. 나도 중국의 기름기 있는 음식은 오늘 잘 안 맞는 것 같네.”
구건호가 햄버거 가게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데 리스캉이 잠바를 입은 모습으로 뛰어 왔다.
“리스캉! 여기야 여기.”
“오, 구건호!”
”오늘 되게 바쁜 모양이다. 바쁠 때 내가 온 것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오늘 따라 좀 그러네. 원래 내 자리가 좀 바빠. 언론이나 방송을 맡고 있으니까 그래.”
“아방가르드전은 잘 보았다. 중국 청년 작가들도 대단하던데? 모르는 내가 봐도 예술적 감각들이 대단한 것 같아.”
“그렇지? 중국도 실력 있는 애들이 많아. 내가 너한테 팜프렛 준 것은 한국에서도 한번 전시회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낸 거야.”
“참, 뭐 시켜라.”
“응, 난 치킨버거 세트!.”
“나도 그걸로 하지.”
구건호는 치킨버거 세트 두 개를 시켰다.
둘은 치킨버거를 먹으며 이야기 했다.
“그러면 한국서 내가 만일 그런 전시회를 한다면 여기에 있는 화랑들을 소개해 준다는 건가?”
“그렇지. 그건 내가 얼마든지 해주지.”
“실은 내가 한국에서 미국 라이먼델 디욘이라는 케미컬 회사와 합작 공장을 만들었어.”
“응, 그건 지난번에 왕지엔 한테 들었어.”
“그래서 나도 조금은 그쪽에 신경 쓰느라고 미술까지 쳐다보기는 어려워. 하지만 지금부터 자료는 한번 수집해 보려고 해.”
“그래? 미리부터 자료 수집하는 건 좋지. 그런대 너 참 대단하더라.”
“뭐가?”
“왕지엔이 서울대학교 심포지움에 갔다가 네 공장에 들렸었잖아. 한국 천안시에 있다는 그 공장 사진을 보았는데 대단하더라. 거기 주식의 100%는 네 것이라며?”
“응, 거기는 다른 사람한테 맡겨놓고 요즘 천안시 옆에 있는 아산시의 합작공장에 많이 가 있어.”
“합작공장은 지분이 얼마나 되나?”
“미국 디욘사가 50%, 내가 50%야.”
“투자액이 얼만데?”
“수권자본금 2천만 달러, 납입자본금 1천만 달러.”
“헉! 2천만과 천만! 와, 너 참 대단하다. 천만 달러면 중국에서 대단한 돈이다.”
“미술품은 내가 만든 지에이치 미디어의 여자 사장이 관심이 있어 나도 덩달아 관심 가져보는 거야.”
“그 여자 사장은 지난번에 왔었던 사람이지?”
“응. 맞아.”
“교양 있어 보이더라.”
“하하, 그래?”
“그리고 구건호, 이거 한번 생각해봐.”
리스캉은 의자를 앞당겨 목을 내놓고 말했다.
“드라마 제작사 한번 투자 해봐.”
“드라마 제작? 나, 그런 거 잘 몰라.”
“한국 드라마가 아니고 중국 드라마 말이야.”
“중국 드라마?”
“지금 왕지엔과 내가 드라마 제작사를 하나 인수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돈이 부족해. 네가 한번 절반만 투자 해봐. 잘 하면 괜찮아.”
“중국 드라마가 돈이 되나?”
“중국 드라마 제작사 우습게보지 마. 화처미디어(華策影視: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수입한 회사)라는 중국 제작사는 지금 몸값만 해도 200억 위안(한국돈 3조 6천억)이 넘어.”
“헉! 200억 위안!”
구건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내가 지금 벌어들이는 돈은 완전히 껌 값 밖에 안 되네.”
“또 그 뿐인 줄 아는가? 새로 설립한 드라마 제작사가 뜨게 되면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도 할 수 있어.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국가 아니냐?”
“그, 그건 그렇지.”
구건호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 구건호가 가지고 있는 회사가 지에이치 미디어라 종합 컨텐츠 제작사인 줄 알았어. 나중에 알고 보니 출판만 하는 회사라 다소 실망은 했었지. 그런데 지에이치 미디어의 그 여성 사장이 그림에 관심이 있고 지적인 여성이라 관심을 갖게 되었어.”
“흠.”
“물론 왕지엔이나 나는 교수와 공무원의 신분이라 중국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한다고 해도 경영 참여는 못해. 투자만 하려고 해. 어떤 제작사가 능력 있는 회사인데 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다면 도와주고 그 과실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지.”
“일단 잘 알겠다. 디욘코리아가 안정권에 들어가고, 지에이치 미디어에서 추진하고 있는 딩펑선생 한국 전시회 성공 여부를 보아 결정하겠네.”
“좋은 생각이야. 나는 구건호의 그 신중함. 그리고 결정되면 신속히 밀어붙이는 사업가적 기질을 좋아해. 그건 나뿐이 아니고 왕지엔도 일찍부터 말해 왔어.”
“그렇게 보아주니 고맙다.”
“자, 나는 일어날게. 당무회의가 있어. 저녁에 술이나 한잔 할까?”
“술은 다음에 하자. 소주에 있는 공장에 들려봐야지.”
“김민혁이 있는데 말이지? 그래, 왔으니 거기 들려봐야겠지. 그럼 다음에 또 보자. 햄버거 잘 먹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구건호는 김민혁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상해다. 고속버스 터미널 가고 있는 중인데 저녁에 만나자.”
“상해에 있다고? 진작 이야기 하지. 내차로 상해 공항까지 마중 나갔을 텐데.”
“아니, 괜찮아 바쁜데 여기 까지 기름 없애가며 올 필요 없어. 고속버스만 타면 금방인데 뭐.”
“그럼 내가 소주시 터미널까지 나갈게.”
“그래, 호텔이나 잡아줘라.”
구건호는 저녁놀이 빨갛게 비추는 저녁 무렵 소주(쑤저우)시의 북광장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는 옆에 중국 아줌마가 탔는데 어찌나 이상한 냄새가 나는지 상해에서 소주까지 오는 동안 내내 고통이 심했다.
“구사장!”
“여, 김민혁!”
“버스라 힘들었겠다.”
“다른 건 괜찮은데 옆에 아줌마한테 이상한 냄새가 나서 혼났다.”
“여기는 가끔 그럴 때가 있어. 그래서 내가 차를 가지고 간다고 했지.”
“호텔은 잡았지?”
“잡았어. 퍼시픽 호텔이야. 시내에 있으니까 관광지 구경하기도 좋아. 호텔 안에 수영장도 있어.”
“식사는 호텔에 가서 양식이나 먹자. 오늘은 이상하게 중국음식이 안 들어 갈 것 같다.”
“하하, 고속버스 같이 타고 온 아줌마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호텔에 가서 스테이크에 와인이나 한잔 하자.”
구건호는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룸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간편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로비로 내려왔다.
구건호는 호텔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프랑스 와인을 시켰다.
“너, 신혼살림 하는데 내가 시간 뺏은 것 아니야?”
“아니야, 와이프도 늦게 들어와.”
“학교는 일찍 안 끝나나?”
“학교 끝나고 학원에서 과외 해.”
“그래? 돈 금방 모으겠다.”
“에효, 중국에서 월급쟁이 해서 벌어야 얼마나 버나. 그래도 여기에 내 집이라도 있으니 기분은 좋아. 와이프도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남편이 아우디 타고 다니는 총경리라고 해서 폼 잡고 다녀.”
“그래? 참, 경리단길 이석호는 만났니?”
“만났어.”
“왜,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