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합자사 가동 (2)
(187)
부산에서 기계 장비들을 싣고 오는 대형 트레일러가 추풍령을 넘었다는 전화를 받은 구건호는 윤상무를 불렀다.
“트레일러가 추풍령을 넘었답니다.”
“알겠습니다. 30톤짜리 대형 지게차와 지브크레인, 화물용리프트를 즉각 수배하겠습니다.”
윤상무는 디욘코리아의 관리 담당 상무로 발령을 받아 이제 합자사의 일을 하게 되었다. 윤상무는 임원이기 때문에 자기 방을 배정 받았다. 구건호가 윤상무에게 다시 물었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트레일러가 12시 정도면 도착하는데 지게차 같은 것은 제시간에 다 오겠지요?”
“다 옵니다. 일단은 트레일러가 도착하면 지게차로 들어내어 생산동 안쪽에 안착 시켜야 합니다.”
“흠.”
“기계가 안착되면 배전시설, 냉각시설 등을 연결하고 시운전을 해 봐야 합니다.”
“흠.”
“원재료가 50톤 정도 들어오면 창고에 적재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철제 빔을 사다가 3단 다이를 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건 박종석 이사가 잘 하니 오면 상의하겠습니다.”
“원재료를 3층으로 보관한단 말입니까?”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회사가 정상 가동되면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50톤이 들어오지만 아마 원재료는 수백 톤씩 계속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매번 부산 세관에 내려가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기계장비가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 직원 세 사람이나 내려갔지만 계속 들어오는 원재료는 관세사 사무실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 줄 것입니다.”
“부산은 먼데. 여기 평택항은 안되나요?”
“기계 장비는 몰라도 원재료는 평택으로 오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애덤 캐슬러씨가 미국 본사와 협의하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오늘은 바람이 불고 황사가 심하네요. 사장님은 들어가 쉬십시오. 트레일러 들어오면 우리들이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흠, 흠.”
구건호는 헛기침을 두 번하고 디욘코리아의 사장실에 들어가 미디어에서 보내준 만화책을 읽었다. 바깥은 바람이 불어도 사장실은 밝은 채광에 온화한 기운이 흘렀다. 거래처에서 준공식을 축하한다고 난초 화분을 많이 보내주어 사장실은 난초 향기가 그득했다. 넓은 사장실에 앉아서 난초 향기를 맡으며 만화책을 읽고 있으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구건호는 만화책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함소리도 들려 잠이 깨었다. 사장실 2층 창밖에서 내려다보니 트레일러가 도착했고 대형 지게차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박종석의 악 쓰는 소리가 들렸다.
“지게차 아저씨! 왼쪽으로 더, 더, 아, 씨팔 그럼 벽에 닿잖아요! 박과장! 그거 아직 만지지마!”
지게차 소리와 화물 리프트 소리, 전동 공구로 무언가를 박는 소리들이 엉켜 조용하던 공장이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았다.
구건호가 아래로 내려가자 부산 출장을 갔던 사람들이 구건호에게 몰려와 인사를 하였다.
“수고들 했습니다.”
구건호가 시계를 보았다. 점심시간을 넘어 오후 1시가 되어갔다.
“식사들이나 하고 작업하세요.”
“일단 물건을 트레일러에서 내려놓고 식사를 하겠습니다.
김전무는 총무과장을 불렀다.
“어이, 박과장. 여기 있는 사람들 자장면이라도 시켜.”
“여기 있는 사람들 다요? 한 20명 될 것 같은데요?”
“자장면, 짬뽕, 볶은 밥 중에서 고르라고 해. 자장면 집은 임시 사무실로 쓰던 콘테이너 박스에 가면 스티커가 벽에 붙어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총무과장이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문 받았다.
“박과장, 나도 자장면 시켜줘요.”
“예? 사장님도 여기서 식사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먹지요.”
구건호는 회사직원들과 트레일러 기사, 지게차 기사 등과 함께 어울려 자장면을 먹었다.
총무과장이 컨테이너 박스에 남아있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모두에게 돌렸다.
총무과장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하여 요즘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나이는 구건호보다 3살 어려 구건호는 총무과장을 대할 때 가끔 반말이 튀어 나왔다.
“사장님은 올라가 쉬시지요. 현장은 아직 어수선 합니다.”
김전무의 말에 구건호는 2층 자기 방으로 갔다.
구건호는 사장실에서 ‘만화 세계의 역사’를 다 읽고 운동 삼아 현장에 다시 내려왔다.
“지게차 기사는 가버린 모양이네요.”
“예, 3시쯤에 다 돌아갔습니다. 트레일러 기사는 자장면 먹고 바로 갔고요.”
디욘코리아는 아직 지게차를 사지 않았다. 원자재를 실어 나르는 정도라면 지게차는 5톤 미만이라도 충분했다. 단지 오늘은 기계 장비가 들어오므로 대형 지게차를 하루만 임대했던 것이다.
박종석이 휴식 시간인지 종이컵을 들고 담 벽 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박이사, 오늘 수고했어.”
“수고는 뭘, 우리가 할 일인데.”
“내일도 이쪽으로 나올 거니?”
“김전무님이 이쪽으로 나와 달라네. 직산 쪽에서 싫어할 텐데.”
“나처럼 오전엔 직산에 있고 오후에 이쪽으로 넘어오면 어때?”
“글세.”
구건호는 박종석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스타렉스가 정문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미국인들이 내렸다. 강이사가 공항에서 태워가지고 온 미국인 기술자들이었다. 이들은 구건호를 보지 못한 채 바로 사무동 건물로 들어갔다.
“형, 가봐야 되는 것 아니야? 미국인 기술자들이 온 모양인데?”
“놔둬. 지금 사무실에 김전무도 있고 애덤 캐슬러도 있어.”
“기계 세팅하는 건 저 친구들 말을 좀 들어야겠어.”
“내일부터 작업해라. 오늘은 쟤들도 먼 길 오느라고 피곤할 거다.”
구건호가 다시 2층 방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총무과장을 만났다.
“잠깐 내 방으로 와 봐요.”
총무과장이 구건호를 따라 사장실로 들어왔다.
“아까 보니까 총무과장이 커피 들고 다니는데 바쁠 땐 아무래도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네요.총무과에서 근무했으니까 4대 보험 업무는 취급해 보았지요?”
“4대 보험 업무는 제 담당이었습니다.”
“이 쪽으로 온 사람들 모두 4대 보험 신고해 주세요.”
“아, 그건 직산에 있을 때 다 해놓고 이리로 넘어 왔습니다.”
“흠, 그래요. 잘했군요. 그리고 워크넷 기업회원 등록하시고 여직원 한사람 뽑아요.”
“어떤 일을 맡을 사람을 하면 되겠습니까?”
“총무과 소속으로 하고 총무과장 일을 도와줄 사람을 뽑으면 되요. 문서 수발업무도 하고 워드도 사용하고 하는 직원 말입니다. 가급적 이쪽 지역 사람으로 뽑고 커피 자판기 관리도 하면 좋겠지요.”
“전무님이 말씀하시는데 지난번 준공식 때 온 기관장 한분이 자기 처제를 써 달라고 해서 이력서를 받아 논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 이력서 한번 가지고 와 보라고 하세요.”
총무과장과 말하고 있는데 애덤 캐슬러가 미국인 기술자 3명을 데리고 들어 왔다. 통역 이선생이 함께 따라 들어왔다.
“이번에 파견된 미국인 기술자들입니다. 사장님께 인사하러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구건호가 일어나서 한사람씩 악수를 하였다.
“디욘 본사의 고급 기술을 우리 직원들에게 잘 가르쳐 주시고 여기서 나오는 제품이 디욘 본사에서 나오는 제품과 똑같이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통역해 주십시오.”
이선생이 즉각 통역을 했다.
“오케이“
기술자들은 오케이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미국과 문화의 차이가 있어 언어 소통이 힘들고 음식과 기후도 달라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나 우리에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술자들은 구건호가 말을 할 때는 멀뚱거리고 있다가 이선생이 통역을 해주면 이해를 하고 오케이를 연발 하였다.
미국인 기술자 3명이 나가자 김전무와 총무과장이 들어왔다. 김전무의 왼손에는 이력서가 들려있었다.
“준공식 때 온 기관장이 부탁한 이력서입니다. 부산항으로 기계장비가 들어와 정황이 없어 아직 사장님께 보고를 못 드렸습니다.”
“채용할 만한 사람입니까?”
“경력은 없지만 학력이나 스팩은 괜찮네요. 사진으로 봐서는 인물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어느 기관장이 부탁을 한 겁니까?”
김전무는 구건호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이야기 했다.
“xxx기관장님의 친 처제입니다.”
“흠... 아무리 그분이 부탁했다고 해도 너무 수준에 미달되면 채용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다른 결점이 없다면 같은 값이면 채용해도 좋겠죠.”
“그렇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력서 보니까 해외 1년 연수 경력도 있고 토익 점수도 고득점자입니다.”
“일단 전무님이 먼저 면접 보시고 쓸 만하면 채용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서 일 보세요.”
“그리고 한 가지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요?”
“지금 지에이치 모빌에서 아침마다 하는 영어 교육 말입니다.”
“아, 호서대학 원어민 강사가 오는 것 말입니까?”
“지금 지에이치 모빌에서는 처음에 사장님의 강력한 지시가 있어서 수강인원이 5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자꾸 수강인원이 떨어졌습니다. 30명으로 떨어지고 20명으로 떨어지더니 지금은 두세 명이 배운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영어를 많이 안 쓰는 업종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흠.”
“하지만 여기는 합자사라 영어가 필요합니다.”“그래서 영문과 출신이면서 카투사도 갔다 온 전무님이 여기로 온 것 아닙니까?”
“아이고 제 영어는 30년 전 영어 아닙니까? 그래서 말씀인데 그 원어민 강사를 이리로 오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흠. 한번 검토해 보지요.”
“지에이치 모빌에서 하루 두세 명만 배운다면 비싼 강사료만 나가는 것 아닙니까? 호서대학의 그 원어민 강사가 이리로 오면 저도 아침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검토해 보지요.”
다음날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에서 결재서류를 대충 처리하고 바로 디욘코리아로 넘어왔다.
“지에이치 모빌은 내가 없어도 깐깐한 송사장이 있으니 잘 돌아갈 거야.”
구건호가 디욘코리아의 생산동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박종석 이사가 앉아서 산소용접을 하고 있었다. 박종석 이사는 시력 보호용 검은 안경까지 끼고 용접을 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매캐한 연기도 났다. 박종석 주변에는 미국인 기술자와 이선생, 그리고 연구소에서 넘어온 부장과 과장이 서서 박종석의 용접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박종석은 용접을 하면서 계속 투덜거렸다.
“아, 씨팔. 나만 좆뺑이 치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구건호가 오자 박종석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박종석은 구건호가 온지도 모르고 앉아서 계속 용접을 했다.
“아, 씨팔. 기술자라고 온 놈들이 구경만하고 나만 이 지랄하고 있으니 이거 거꾸로 된 것 아니야.”
이선생도 웃으면서 통역을 하지 않았다. 구건호가 한마디 했다.
“야, 기술자들이 전부 배합(원재료 믹싱)기술자지 너처럼 공무 출신이 아니니까 그렇지.”
박종석이 보호용 안경을 후딱 벗었다.
“어? 형! 아니 사장님. 오셨습니까?”
“너, 그거 왜 자르고 있냐?”
“기계 세팅하는데 길어서 안 맞아. 여기 조금 잘라내야 돼.”
“그래? 그럼 수고해라. 너 아니면 할 사람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