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미술 전시회 (2)
(184)
디욘코리아의 미국인 부사장 애덤 캐슬러와 김동찬 전무가 구건호를 찾아왔다. 두 사람 뒤에는 통역 이선생도 같이 따라 들어왔다.
“앞에 앉으십시오. 그동안 좁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캐슬러가 먼저 말했다.
“준공식이 끝나고 기계 장비를 선적하면 너무 늦습니다. 기계 장비를 시애틀에서 선적후 부산항까지 들어오는 데는 시일이 걸리고 통관 수속 후 부산항에서 다시 아산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발주를 내려고 합니다.”
“가까운 평택항으로 안 들어 옵니까?”
“국제 무역선이라 운항 스케줄 때문에 부산으로 들어옵니다.”
“흠.”
“이번에 들어오는 기계 장비들은 1차 현물출자에 포함되는 것들입니다.”
“아직 초기 설립 운영자금도 안 들어 왔습니다. 초기 설립 운영자금은 양측에서 각각 얼마를 송금하는지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습니다. 미국 디욘 본사와 한국의 지에이치 모빌이 45만불씩 넣어야 할것입니다.”
“맞습니다. 합자사 설립 계약에 보면 수권자본금은 2천만 달러지만 납입자본금은 1천만 달러입니다. 이중에서 초기운영자금은 1백만 달러니까 각자 50만 달러를 현금으로 집어넣으면 됩니다. 지난번에 먼저 양쪽이 5만 달러씩 넣었으니까 45만불(한국 돈 4억 5천만원)을 넣으면 되겠습니다. 미국 측에서 45만불 보낸 입금증만 보내주시면 우리도 바로 입금합니다. 돈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금 시애틀 본사에 45만불 송금을 요청했습니다. BOA(뱅크 어브 아메리카)에서 한국의 은행으로 계좌이체를 요청했습니다. 수취은행 코드까지 다 불러주었습니다.”
“납입자본금 1천만 달러이므로 각자 500만 달러를 넣으면 됩니다. 이중 50만 달러는 현금으로 납입했으니까 나머지 450만 달러를 현물 출자하면 됩니다. 우리는 공장 부지를 납입하므로 이것으로 끝나지만 마국 측은 450만 달러에 달할 때까지 기계장비를 몇 차례 나누어 현물 출자해야 합니다.”
구건호는 통역 이선생이 헷갈릴까봐 메모지에 알기 쉽게 써 주었다.
수권자본금 --- 2,000만달러 (향후 출자 범위)
납입자본금 --- 1,000만달러 (한국측 500만달러, 미국측 500만달러.)
<500만 달러 납입방법>
미국 --- 5만불 현금 + 45만불 현금 +현물(기계장비류) 450만불 = 500만불
한국 --- 5만불 현금 + 45만불 현금 +현물(공장 토지 ) 450만불 = 500만불
(공장 건물은 출자에서 제외)
구건호는 기계 장비류 반입을 동의했다.
다음날 아메리카 입금증이 팩스로 왔다. 구건호는 통장 확인 후 즉시 자기도 새로 설립된 합자사의 계좌로 이체한 입금증을 애덤 캐슬러에게 제시했다.
준공식이 날짜가 되었다.
새로 우뚝 솟은 첨단 공장 건물의 마당에는 멋진 소나무도 심고 활짝 핀 백일홍과 단풍도 심어 운치를 더 했다.
마당에는 200여개의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 놓았고 야외용 단상 옆에는 커다란 야립 조감도를 설치해 벌써부터 안전모와 건설 작업복을 입은 윤상무가 당구 큐대보다도 더 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사회는 총무이사가 보기로 하였다. 지난번 지에이치 모빌의 직산공장 준공식 때와 똑 같았다.
구건호는 일찍 행사장엘 갔다. 벌써 총무이사가 동원한 직원들이 산뜻한 제복을 입고 흰장갑을 낀 채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사장님 오신다.”
“사장님 오신다.”
직원들은 구건호가 오자 차문을 열어주며 구건호를 공장 건물 내에 임시로 설치한 대기실로 안내하였다. 대기실엔 주부사원들이 동원되어 커피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총무이사가 달려와 말했다.
“사장님은 여기 계시다가 시간되면 행사장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영업부 여직원이 와서 구건호의 양복에 꽃을 달아주었다,
준공식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지에이치 모빌 준공식 때 보다 외부 손님들은 배나 더 많은 것 같았다.
같이 대기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김동찬 전무가 말했다.
“합자사니까 기관장들이나 정치인들도 제법 올 겁니다. 여기서 사진이라도 찍고 가면 와자유치에 힘썼다고 홍보라도 할 것 아닙니까?”
김전무의 이 말에 구건호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김전무가 다시 말했다.
“어이쿠, 거물급들이 오는 모양인데요. 벌써 주차장이 꽉 차기 시작했네요. 사장님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구건호는 미소를 띤 채 마당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총무이사가 방문한 사람들에게 구건호를 소개 시켰다.
“저희 회사 사장님이십니다.”
“축하 합니다. 국회의원 이길도입니다.
“축하 합니다. 아산시 기업협의회장입니다.”
“축하 합니다. 충남 북부지역 상공인 회장입니다.”
“축하 합니다. 아산시 시의회 회장입니다.”
“축하 합니다. 아산 시청 지역경제과장입니다.
“축하 합니다. 아산은행 지점장입니다.”
구건호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였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 같았다. 인사한 사람들마다 명함은 다 주었다. 무궁화를 네 개나 어깨 위에단 경찰관도 왔다.
“서장님도 오셨네요.”
구건호는 서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준공식을 알리는 총무이사의 목소리가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주식회사 디욘코리아의 합자회사 공장 준공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내외 귀빈들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구건호는 축사를 하였다. 바쁜 기관장들을 생각해서 축사는 짧게 했다. 1억달러 수츨을 달성하여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마지막 말에 사람들은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부사장 애덤 캐슬러도 미국 라이먼델 디욘사를 대표하여 짧게 축사를 했다. 통역은 이선생이 했다. 축사가 영어로 흘러나오자 정말로 외국과의 합작 기분도 났다.
윤상무의 간략한 공사개황 설명을 마치자 사회를 보는 총무이사는 준공식 테이프 커팅을 알렸다.
테이프 커팅에는 중앙에 구건호가 나와서 섰고 옆에 애덤 캐슬러가 섰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청 관계자, 경찰서장, 송장환 사장, 신정숙 사장이 앞으로 나왔다.
테이프 커팅식에는 외국인도 있고 제복 입은 경찰서장도 있으니 정말 그럴 듯 해보였다. 박종석 이사가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폭죽을 펑펑 터트렸다., 폭죽 소리와 함께 지역 신문사 기자들이 와서 사진도 찰칵대며 찍었다.
지역인사들은 식이 끝났어도 현수막 앞에서 구건호와 함께 사진 찍기 바빴다. 이들은 사진만 찍고 리셉션 타임에는 참석도 하지 않고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공장 신 건물 내부 구경도 하지 않았다.
“제기럴, 사진만 찍으러 왔나. 리셉션 현장에는 참석도 않고 다들 가버리네.”
“아휴, 얼른 가버리니 우리한테는 좋지.”
리셉션의 다과는 직원들의 차지가 되었다.
“사장님 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구건호가 돌아보니 김동찬 전무였다.
“아까 축사할 때 보니까 우리 측 현물 출자에서 토지만 들어가고 건물은 안 들어 갔는데 원래 그런 건지, 빠트린 건지 모르겠습니다.”
“빠트린 건 아닙니다. 원래 건물은 안 들어 갔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중에 증자 형태로 갈수도 있습니다.”
“증자요?”
“예를 들어 첫해에 50억의 경상이익이 생겼다면 10억은 유보금으로 놔두고 40억을 배당한다고 가정해 보지요.”
“미국과 한국이 20억씩 배당 받겠네요.”
“40억을 증자시키는 거지요. 한국은 20억을 배당해도 미국은 20억을 과실 송금하지 않고 자본 전입하는 거지요.”
“그리고 건물은 그때 20억으로 평가되어 현물 출자된다? 그런 겁니까?”
“역시 전무님은 빨리 돌아가시네요.”
“그런데 미국측과 이야기는 된 겁니까?”
“자본금이니까 나중에 그 가치는 인정받을 거고 또 상장된다면......”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땐 주식 가치가 올라가니 대박이겠군요. 미국 놈들이 영악하니까 그걸 계산했겠군요.”
“전무님 오늘 아침에 머리 샴푸로 감고 나오셨지요? 머리 회전이 빠르시네요.”
“여기 사무실 집기들은 오늘 오후에 들어옵니다. 여기 계실 곳이 마땅치 않으니 사장님은 직산 공장에 가셔서 좀 쉬시지요.”
“전무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야 한 것도 없습니다.”
“고생들 하셨으니 점심이나 같이 하지요. 애덤 캐슬러와 통역 리선생하고 온양 관광호텔로 오세요.”
“지금 11시인데 그럼 사무실 들렸다 오실 겁니까?”
“아니요. 저기 공장 내부 구경하고 있는 신정숙 사장을 역까지 태워다 주고 온양 관광호텔로가지요.”
“신사장도 식사하러 같이 가지요.”
“아까 그냥 올라가겠다고 그랬는데 내가 다시 한 번 물어보지요.”
“그러면 식사를 좀 빨리하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오후에 집기들이 들어온다면 빨리 먹고 와야 하니까요.”
“알았습니다. 11시 50분에 호텔에서 만나지요.”
구건호는 KTX역으로 가겠다는 신정숙 사장을 반 강제적으로 온양 관광호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서울에 급한 볼일이 있으세요?”
“그렇지는 않은데 자꾸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요. 미디어가 매출도 팍팍 늘지 않고 규모도 작아 큰 사업하시는 구사장님께 번거로움만 끼치는 것 같아서요.”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조그맣게 있다가 커지는 거지, 처음부터 큰 사업이 어디 있습니까?”
“아까 테이프 커팅식에도 제가 그 자리에 있을만한 사람인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관장들도 많이 오셨던 것 같은데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고 식사하고 올라가세요.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하지요. 어차피 김전무와 애덤 캐슬러도 여기로 오기로 했습니다. 신사장님이 잘 아시는 통역 리선생도 같이 올겁니다.”
“업무적인 이야기 나누시는데 제가 끼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 참, 리스캉에게 딩펑 선생 전시회 이야기하니까 좋아하던데요?”
“아, 통화하셨습니까?”
“자기가 문화담당이라 중국의 화랑이나 작가들도 많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청년작가 전시회도 추진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던데요? 화랑이나 작가들은 자기가 소개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오늘따라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보이던 신사장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나는 그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언젠가 신문에 보니까 중국도 젊은 전위 작가들인 많이 나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중국 젊은 작가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험정신도 강하고요.”
“김민혁의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으니 딩펑 선생 오면 잘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리스캉도 딩펑 선생 한국 전시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신사장이 미소를 지었다,
“
말하고 있는 사이에 김전무와 애덤 캐슬러와 이선생이 들어왔다.
“참, 정식으로 인사하세요. 애덤 캐슬러씨. 이 분은 지에이치 미디어 사장님이십니다.”
신정숙 사장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우, 반갑습니다.”
애덤 캐슬러는 어느새 한국어를 배워 한국말로 반갑다는 소리를 했다.
신정숙이 명함을 주자 뒷면의 영어를 보았다.
“오우, 퍼블리싱 컴페니!”
애덤 캐슬러는 신정숙 사장에게 또 한 번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