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82화 (182/501)

# 182

톱스타 설빙 (3)

(182)

구건호가 직산 공장으로 돌아오자 임원들이 몰려와 그간에 있었던 업무보고를 하였다.

업무보고가 끝나자 송장환 사장이 다시 구건호의 방엘 들어왔다.

“사카다 이쿠조씨가 사장님께 드리라고 이걸 주었습니다.”

“쇠로 깎아 만든 사무라이 장식물이네요.”

“그렇습니다. 이걸 주면서 사장님께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정교하게 잘 만들었네요.”

“사카다 이쿠조씨가 심심해서 만들었답니다.”

“역시 쇠를 깎는 기술은 세계 최고인 것 같네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쿠조씨는 건강이 어떠십니까?

“좋아보였습니다.”

“동경 시내에 살던가요?”

“아닙니다. 요코하마의 변두리인 모토마치(元町) 라는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집에 창고 같은 것이 있어서 장비를 갖추고 쇠를 깎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문 같은 것이 들어오면 일을 해주고 보수를 받는 모양입니다.”

“그 연세에 일을 하시네요. 제자는 안 키우던 가요?”

“제자를 키웠으면 좋겠는데 요즘 일본의 젊은이는 이런 일을 배우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더군요.”

“맥이 끊기게 생겼네요.”

“우리가 부탁한 금형은 일주일 후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메일 보다는 직접 가서 설명을 해주니 이해가 빨랐습니다.”

“같이 간 연구소장은 뭐라고 합니까?”

“독일에도 그런 노인이 한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그리고 도면대로 만들지 않는데 나오는 물건은 예쁘게 나온다고 감탄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쿠조씨 창고에는 벽에 붓글씨를 표구해 걸어 놓았는데 잇쇼겐메이(一生懸命: 목숨을 걸다)라는 글자를 써놨더군요.”

“그 말은 여기 있을 때도 자주 썼었는데 거기에도 붙여 놨군요.”

“자기는 물건을 하나하나 만들 때마다 목숨을 건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특이한 노인입니다. 우리 물건이나 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네요.”

구건호와 송사장의 대화가 길어지자 비서 박희정씨가 녹차를 가져왔다.

“차 한 잔 마시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송사장님은 이곳에 오셔서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아닙니다. 모두 잘 대해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S기업에만 오래있어 다른 기업을 뚫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고마우신 말씀이지만 코스닥 상장을 위해선 더 힘을 쏟아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일단은 코스닥 등록 전에 회사의 펀더멘탈을 튼튼히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부채비율을 낮춰야 된다는 말씀인가요?”

“우선 지속적 경상이익이 나와 줘야 됩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물파산업 시절의 중국투자 손실을 털어내느라 막대한 특별손실을 기록했습니다. 그건 상임감사님이 잘 하셨습니다. 일찍 털어냈기 때문에 금년도부터는 경상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기표 될 겁니다.”

“그러면 신청 가능한가요?”

“아닙니다. 지속적 경상이익 흑자가 3년은 나와 주어야 증권업 협회에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을 겁니다. 경상이익이 나와야 이익금으로 부채를 줄여간다면 그것처럼 좋은 건 없지요. 등록 요건에 보면 부채비율은 업계 평균 부채비율보다 1.5배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흠.”

“당장에 할 일은 매출 증대인데 아시다시피 우리 업종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맥이 많이 작용하는 업종입니다. 별 수 없이 전 사원이 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술력이 뒷밭침은 되어야 하겠지요. 그 다음엔 관리입니다.”

“관리요?”

“관리를 통하여 새는 곳을 막아야 합니다. 특히 생산 현장의 새는 곳을 막아야 합니다.”

“박종석 이사를 특별히 교육시켜야겠군요.”

“그 친구는 가끔 저한테 혼나기는 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친형제 같다는 박종석 이사를 현장에 꽂아둔 건 잘한 일입니다. 실세인 박이사가 솔선하여 일을 하니까 그만큼이라도 따라오고 있습니다. 사실 생산 공장에 가보면 공장장이나 생산이사들이 놀고먹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박이사는 꾀를 부리는 친구는 아니니까 일단은 합격점입니다.”

“그런가요?”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생산 공장을 방문했다가 공장장이 자동차 본넷트 뚜껑 여는 것도 모르자 바로 해고한 사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거래처 갈 일이 있어서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구건호가 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에 들어갔다. 구내 식당에는 벌써 직원들이 줄을 서 있었다. 구건호를 보자 줄선 직원들이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도 줄을 설까 하다가 직원들이 불편해 할까봐 도로 나갔다.

식당을 나오고 있는데 총무이사가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장님 벌써 식사하고 나오십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많아서 도로 나왔습니다. 최이사님 식사 안하셨으면 나하고 같이 나가서 식사하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차를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구건호는 총무이사 차를 타고 성거읍 저수지 부근 순두부집으로 갔다. 식사를 하면서 최이사가 보고를 하였다.

“디욘코리아 공장 준공식 초청장은 다 보냈습니다. 아산시의 기관장한테는 다 보냈습니다.”

“얼마나 올지 모르겠네요. 기관장들은 안 와도 문제고 많이 와도 문제지만 말입니다.”

“안 와도 초청장도 안 보내 주면 섭섭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잘못하면 괘씸죄에 걸립니다.”

“하하,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닙니다. 공무원이나 기관장들은 살리는 재주는 없어도 죽이는 재주는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 최이사님도 농담을 잘하시네요.”

“정말입니다.”

“이 집 두부 요리를 잘하네요.”

“그래서 제가 이 집으로 사장님을 모신 겁니다.”

“준공식 날짜도 거의 다가오니 행사요원들도 선정을 해야 되겠군요.”

“다 해 놓았습니다. 직산 공장 준공식 때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당황했지만 이번에는 한번 해본 경험이 있어 잘 할 겁니다. 미국에서 연수 받고 온 연구소의 차장과 대리는 자기들도 행사 진행요원으로 끼어 달라고도 했습니다. 벌써 디욘코리아로 전출 발령 날것으로 알고 그러더군요.”

“흠, 그렇습니까?”

건너편 옆자리에서 노무자로 보이는 세 사람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들은 소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벌써 빈 소주병이 3병이나 나왔다.

“아줌마 술 한병 더 주세요.”

이들은 큰 소리로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구건호가 총무이사에게 가만히 말했다.

“저 사람들은 대낮부터 벌써 소주를 3병이나 까고 또 시키네요.”

“노동일 하는 사람들은 원래 술 힘으로 일을 하시잖습니까. 지금 저 양반들이 시킨 소주가 요즘 잘 나가요. 예쁜 여배우 사진이 붙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여기 벽에 포스터도 있네요.”

구건호는 포스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여배우는 술잔을 들고 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설빙이다!]

구건호는 설빙이 나온 포스터를 보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예쁘지 않습니까? 설빙이라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배우입니다.”

“흠...”

“사장님 모르세요? 요즘 욕망의 그늘이란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오고 있잖습니까? 제 처는 만날 그 드라마만 봅니다.”

“설빙이라는 여자가 그렇게 유명합니까?”

“현재 최고의 톱스타로 치고 있지 않습니까? 사장님은 연예계에 관심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하하.”

구건호는 총무이사의 말에 답변도 않고 정신없이 밥만 먹었다.

구건호는 점심만 먹으면 나른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설빙만 생각하는데 갑자기 전화벨일 울렸다.

“강남 증권사 지점장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예? 아 예.”

“강남에 돈을 가지긴 분들이 요즘 통 움직이지 않으니 저희도 죽겠습니다. 특히 강남 큰손인 구사장님도 활동을 안 하시는 것 같아 전화 드렸습니다.”

“큰손이야 저 밀고도 많이 있겠지요.”

“아닙니다. 구사장님이 진짜 큰손이지 다들 조막손입니다.

“어째 전화 하셨습니까?”

“요즘도 지방에 계십니까? 왕성하게 사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뭐, 그저 조그맣게 하고 있습니다.”

“전에 주식을 대량 매도 후 크게 돈을 빼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금을 묵혀 두시는 것보다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우리도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식시장 돈들이 이탈 하겠군요.”

“그래서 우리들도 주요 고객인 큰손들의 출구전략을 마련하려고 고민 중에 있습니다. 혹시 해외 주식 펀드는 관심이 없는지요?”

“관심 없습니다. 금리 올라간다면서 해외펀드는 또 뭡니까?‘

“개발도상국 주식 중에는 숨은 진주들이 많습니다.

“주식은 이제 안합니다.”

“사장님 돈을 그냥 묵혀 두는 건 비경제적입니다. 요즘 안전자산도 2.5%를 보장하는 상품들이 많습니다. 2.5%라고 해도 100억 투자면 년 2억 5천만 원의 수익이 발생하고,. 1천억 투자라면 25억의 수익 발생합니다. 이러한 돈들을 다 포기하실 셈입니까?”

“흠.... 무슨 상품들이 2.5%입니까?”

“”사모펀드도 있고 외화투자도 있습니다. 아니면 지방채나 국채 투자도 있습니다.“

“그럼 내게 맞는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포트폴리오는 제가 만들어 놓을 테니 식사라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은 자주 올라오시지요? 신문에서 보니까 신사동 리버스타 빌딩도 인수하셨던데 업무상 올라오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연락드리지요.”

구건호도 거액을 그냥 놀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란 생각을 했었다. 욕심 안 부리고 2.5% 수익률이라면 해 볼만 하였다. 1천억 투자하면 25억이니 이자만 가지고도 할 짓, 못할 짓 다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 구건호가 증권사에 예치한 돈은 1,700억이었다.

5월이 되었다.

김민혁이 한국에서 하는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주안의 현대 홈타운 아파트 이사문제로 결혼식을 약간 늦게 잡았다. 디욘코리아의 준공식이 끝나고도 일주일이나 지나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준공식 날짜와 겹치지는 않는군.”

구건호는 지에이치 미디어의 문재식에게 전화를 하였다.

“문 주간? 나야. 구건호!”

”오, 구사장!“

“김민혁이 한국에서 하는 결혼식 날짜 잡힌 것 알지?”

“응, 연락 받았어.”

“동창들한테 연락해 줘라.”

“응,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고 있는 중이야. 모르긴 몰라도 동창들 다 올 거야.”

“그래? 김민혁이 동창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문재식은 구건호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동창들은 다 온다. 김민혁이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구건호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올 것이다. 두고 봐라. 동창 놈들이 얼마나 영악스러운 놈들인가. 동창회 명부 만들려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연시키니까 날보고 온갖 욕설은 다하며 사기꾼으로 몰아간 놈들 아닌가. 내가 그놈들 집구석을 말아먹은 것도 아니고 찬조금 3만원 아니면 5만원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그것 보면 그래도 구건호가 인간적이다. 빚도 져보고 공돌이 노릇도 오래했으니 그런 수양이 된 모양이다.]

문재식은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구건호가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를 인간적으로 대했을까? 구건호는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도 조원철의 결혼 축의금을 10만원 보냈었다고 나한테 말했었다. 그때 나는 연락을 받고도 가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구건호보다도 형편이 나을 때 아닌가. 그것 보면 구건호가 더 인간적일 수도 있다.]

핸드폰 속에서 구건호의 음성이 들렸다.

“야, 너 왜 말이 없냐? 내 소리 들려?”

“응, 잘 들려. 잠시 전화기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동창들한테 연락하는 건 염려마라.”

“그래? 그럼 수고해라. 전화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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