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80화 (180/501)

# 180

톱스타 설빙 (1)

(180)

지에이치 모빌의 공동 대표이사인 송장환 사장이 구건호를 찾았다.

“S기업 자회사 오더 5건 중에서 2건은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하여 시제품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초도물량 5천개씩 뽑아 물류팀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고생들 하셨네요.”

“연구소장이 의외로 실력이 있네요. BMW연구소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성격이 칼칼한 것 빼면 그만하면 연구소장으로는 그만입니다.”

“성격이 그렇게 날카롭습니까?”

“고급 기술자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 날카로움도 없으면 제품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나머지도 곧 실험에 들어가겠군요.”

“그런데 창원에 납품할 하나는 아무래도 일본으로 간 사카다 이쿠조씨에게 의뢰해야 될 것 같습니다. 창원공단에 납품할 것이 물량은 제일 많습니다.”

“우리 실력으론 도저히 안될 것 같습니까?”

“쇠를 깎는 것은 오랜 연륜이 말해줍니다. 연구소는 이론적인 것은 뒷받침해도 숙련도에서는 오랫동안 쇠를 만져본 사람이 더 낫습니다. 우리가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면 개발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쿠조씨에게 맡기는 것보다 인건비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도면을 가지고 제가 이쿠조씨를 만나보겠습니다.”

“혼자 가시려고요?”

“둘이 갔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여행 경비가....”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연구소장님과 같이 가보세요. 물론 단순 깎는 기술자와 연구소장은 분야가 다르긴 해도 봐두면 나쁠 건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쿠조씨 연락처를 알고 계십니까?”

“박종석 이사가 이쿠조씨 명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함에 있는 이메일로 연락을 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요? 송사장님은 일본어를 아시는 모양이네요.”

“잘은 못하지만 약간은 압니다. 40대 중반 무렵 S기업 일본 지사장을 3년간 한 경력이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를 만날 겸 해서 자기도 일본에 가볼까 하다가 송사장이나 연구소장 눈에 놀러만 다닌다는 인상을 줄까봐 그만 두었다.

대신 구건호는 중국을 가기로 했다. 구건호는 임원회의에서 중국을 간다고 말하였다.

“제가 상해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 송사장님과 연구소장이 일본 출장 중이라 자리를 빈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출장 중인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리 이석은 삼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옆에 있던 상임감사가 물었다.

“상해 출장은 무슨 일로....”

“아, 그건 제가 여러 회사를 맡다보니 지에이치 미디어에서 상해 국제 도서전에 참석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디어 사장과 함께 출발할 예정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조심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임원들은 구건호가 나이가 어려도 깍듯이 존칭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이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어 갔다.

구건호와 신정숙 사장은 상해 홍차오 공항에 내려 공항에서 가까운 힐튼호텔에 방을 잡았다. 구건호와 신정숙 사장은 10살 이상 나이 차이가 있어 부부사이 같지는 않았다. 힐튼 호텔은 공항도 가깝고 한인 타운도 가까워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호텔이었다.

“점심시간이 아직 이르네요. 룸에서 쉬시다가 식사시간에 로비로 내려오세요.”

신정숙 사장이 자기 배를 만지면서 이야기 했다.

“사장님 먼저 식사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기내식 먹은 게 얹혔는지 소화가 잘 안되네요. 그냥 룸에서 좀 쉬겠습니다.”

“약을 사다 드릴까요?”

“상비약은 제가 가방에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

“흠, 그래요? 그럼 얼른 올라가서 쉬세요.”

신사장이 자기 룸으로 가버리고 구건호는 로비의 쇼파에 앉아 있다가 김민혁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나, 조금전에 상해 도착했어.”

“도착했어? 내가 내일 가면 어떨까? 지금 칭따오 거래처에 출장 나와 있어.”

“아, 그래? 그럼 일부러 여기 올 필요는 없다. 일 보고 내일 만나자.”

“내일 만나면 미술 전시회 한번가자.”

“미술 전시회?”

“장인 영감이 화가잖아. 상해 인민공원 근처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해. 구사장도 시간이 있으면 같이 가자.”

“그래? 좋지. 한번 같이 가보자.”

구건호는 아직 시간이 있어 리스캉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국장? 나, 구건호.”

“오, 구건호. 상해 왔나?”

“조금 전에 도착했어. 홍차오 힐튼 호텔이야. 도서전은 내일 개막식이지? 개막식에 맞추어 나갈게.”

“야, 점심 안 먹었으면 이리 와라. 여기 시 정부청사 옆에 한국인이 낸 삼계탕집이 있어. 잘 한다고 소문난 집이야. 지에이치 미디어 사장도 왔으면 같이 와라.”

“우리 미디어 사장은 지금 방에 들어 누웠어. 배탈이 난 모양이야.”

“중국과 한국이 물이 달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럼 너 혼자라도 와라.”

구건호는 택시를 타고 혼자 시청엘 갔다. 중국은 시청이라고 부르지 않고 시 인민정부라고 부르고 있었다.

구건호는 바로 국장실로 갔다. 여직원이 누구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온 구건호 사장이라고 중국어로 말하자 여직원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해 주었다. 구건호가 국장 방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던 리스캉이 벌떡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여, 구건호!”

“리스캉!”

“앉아라.”

“손님들이 계신 것 같은데?”

손님은 남자 둘과 여자 한명이었다. 여자는 세련된 모습인데 건방지게 실내에서 선그라스를 끼고 있었다. 안경을 벗고 있다가 구건호가 들어오자 다시 쓴 것 같았다.

남자 중 홀쭉한 사람이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구사장님 아니십니까?”

남자의 입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오자 구건호가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언젠가 한번 보았던 BM엔터테인먼트의 기획이사였다. 기획이사는 허리를 굽혀 정중히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여기서 뵙게 되었군요.”

“엔터테인먼트에 계신 분이군요.”

구건호는 별로 반갑지 않다는 듯이 악수를 하였다.

리국장이 자리를 권했다.

“자자, 앉아. 여기 모두 한국 사람들이네.”

구건호가 의자에 앉으며 기획이사 옆에 있는 약간 몸이 건장한 남자를 보았다. 50대 후반쯤 보이는 사람으로 포스가 남달랐다. 연예인 같기도 하고 야꾸쟈 두목 같기도 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어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리국장이 말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들인 모양이네. 인사들 해요.”

기획이사가 살살 웃으며 남자를 소개했다.

“저희 BM엔터테인먼트 사장님이십니다.”

“아, 그러십니까?”

구건호는 건성으로 이야기 했다. 엔터테인먼트는 제조업을 하는 구건호와는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사장이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만입니다.”

이현만이라는 이름은 구건호가 들어보았던 이름이었다. 자세히 보니 가끔 언론이나 방송에서 보았던 유명한 사람이었다. 한국의 유명 걸그룹과 빌보드 챠트에 이름을 올린 보이그룹을 만든 인물이었다.

이현만은 구건호에게 명함을 주었다.

“구건호입니다.”

구건호도 이현만에게 명함을 주었다. 이현만은 구건호의 명함을 자세히 보았다. 구건호가 자기소개를 다시 하였다.

“지방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획이사가 살살 웃으며 구건호의 말에 토를 달았다.

“구사장님은 강남 신사동의 리버스타 빌딩을 인수하신 분입니다.”

“오, 그래요? 그 빌딩 7층에 있는 연예기획사 사장이 제 친구입니다.”

“지금은 지에이치 빌딩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 사람도 소개 해야지.”

리스캉이 선그라스 여자를 가리켰다.

“배우 설빙입니다.”

이현만씨가 여자를 소개했다. 여자가 웃으면서 선그라스를 벗었다. 엄청난 미모에 구건호가 놀랐다. 설빙은 걸그룹 출신의 배우로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기도 했다. 구건호가 약간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유, 유명하신 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구건호가 명함을 주자 여자가 웃으며 받았다.

기획이사가 다시 살살 웃으며 말했다.

“여기 구사장님이 이국장님 하고 친구 분이라 제가 지난번에 부탁을 드린 그분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현만은 주머니에 넣었던 구건호의 명함을 다시 꺼내 보았다. 구건호는 4개 회사의 대표이사로 되어 있었다. 이현만이 천천히 말했다.

“상해 공설운동장 공연 허가를 위해 내가 직접 왔는데도 안 들어주네요. 요즘 설빙의 드라마가 중국에서도 떠 같이 왔는데도 요지부동이네요.”

기획이사가 서툰 중국말로 리국장에게 말했다.

“서울에서 직접 사장님도 오시고 그랬으니 허가를 해 주십시오. 공연 실황 중개를 위해 TV방송과는 협의를 마친 상태입니다.”

“이미 결정된 걸 내가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돌아들 가세요.”

“방송과 언론은 모두 국장님이 관장하시니 허가해 주세요.”

설빙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빙은 한창 자기 주연의 드라마도 중국에서 방영되고 있는데 공설운동장 공연에 매스컴을 탄다면 중국내 인기는 하늘을 찌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한국 내에서도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될 것은 분명했다.

리스캉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획이사가 살살 웃으며 구건호에게 매달렸다.

“사장님이 한번 힘 좀 실어주세요. 설빙씨의 미인계도 안 통하네요.”

이 말에 이현만과 설빙이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건호가 난처하게 되었다. 함께 삼계탕이나 먹으려다가 이상하게 꼬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의 입에서 중국어가 흘러 나왔다.

“리국장 허가해 줘라. 국제도서전하고 운동장 공연하고 연계시키면 좋은 방안도 나올 것 같다.”

“어떻게? 도서전과 공연일은 서로 날짜가 틀린데.”

“이 사람들이 공연 팜프렛을 만들었을 것 아닌가? 그걸 도서전시장에서 배포하는 방법도 있지. 그러면 도서 전시장에 사람들이 더 몰려올 수 있잖아?”

“흠. 하지만 도서전은 당장 내일부터인데 팜프렛은 언제 만드나.”

중국어를 잘 모르는 이현만과 설빙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궁금해 여기는 눈치였다. 기획이사는 대충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구건호가 기획이사에게 말했다.

“팜프렛은 다 만들었습니까?”

“시안은 다 되었는데 허가가 안 나와 표지의 날짜만 픽스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날짜만 픽스되면 밤새워 인쇄하여 국제도서 전시장에 갖다 놓을 수 있겠습니까?”

“물어봐야겠는데요.”

“기획이사가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필름 뽑고 제본까지 하려면 3일 이상 걸린 데요.”

구건호는 잠시 팔짱을 끼고 있다가 말했다.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공연 광고는 팜프렛을 사흘 후부터 도서전시장에서 나누어 준다고 하지. 그 안에 오는 사람들은 대기표를 나눠 주고 사흘 후 대기권과 교환해 팜프렛을 준다고 하고 말이야.”

“흠.”

리스캉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구건호가 다시 재촉하였다.

“공연 거절이 교통 환경 평가가 아닌 자국 연예사업 보호가 목적이라면 차라리 공연 허가를 해주고 중국 연예인을 공연에 같이 참여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흠”

이스캉은 한참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허가는 해 주겠다. 그러나 3가지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

“조건의 첫째, 공연의 삼분의 일은 중국 연예인을 참여 시킬 것.”

기획이사의 통역에 이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팜프렛을 인쇄해 국제 도서전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도록 할 것. 인쇄가 늦게 도착하므로 사흘 전에 오는 사람은 팜프렛 교환 대기표를 나누어 줄 것.”

이현만은 두 번째의 요구 조건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는 공연의 협찬에 상해시 문화 광파영시국을 삽입할 것.”

세 번째 조건에도 이현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스캉은 직원을 불렀다. 직원에게 지금 자기가 한말을 불러주고 워드로 찍어오게 하였다.

여직원이 와서 테이블 위에 있는 컵에 물을 다시 따라주고 갔다.

이현만이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 다하십니다.”

“신사동 빌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요즘 신사동에 안 있습니다. 충남 아산에 2천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 라이먼델 디욘사와 합작공장을 세웁니다. 그쪽에 많이 나가 있습니다. 서울엔 가끔 옵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올라오실 때 연락을 주십시오.”

기획이사도 일어나 구건호에게 90도로 인사를 하였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기획이사는 연예 지망생들에게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구건호 앞에서는 쪽을 쓰지 못하였다,.

직원이 리스캉이 말한 3가지 요건을 워드로 찍어 가지고 왔다. 중국말로 된 협의서였다. 리스캉과 이현만이 서로 서명을 하였다.

리스캉이 직원을 다시 불렀다.

“한국 BM엔터테인먼트에서 신청한 공연 허가서 가지고 와봐.”

직원이 서류를 가지고 왔다. 리스캉은 허가 서류에 힘차게 싸인을 하였다.

이현만이 리국장에게 말했다.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약속이 있습니다.”

“그럼 구사장님, 같이 식사하러 가시지요.”

“저도 약속이 있군요.”

“오, 두 분 다 약속이 있으시군요. 그럼 나중에 혹 기회가 되면 만나 뵙지요.”

이현만이 다시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였다. 도도하게 선그라스를 끼고 있던 설빙도 헤어지는 마당에서는 웃으며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는 설빙의 손이 참 따듯하다고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설빙의 말에 구건호가 설빙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아닙니다. 유명하신 분을 만나 오히려 내가 더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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