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골프장 그늘집 대화 (1)
(178)
한국에 나온 왕지엔교수는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와 함께 직산 공장으로 왔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리지 않고 바로 왔다.
“공장 예쁘게 잘 지었는데?”
이들은 공장 마당을 두리번거리다가 2층에 있는 사장실로 올라갔다. 구건호가 반가워했다.
“여, 왕지엔!”
“구건호! 반갑다.”
”김변호사도 오래간만이다. 앉아라.“
세 사람은 서로 뜨겁게 악수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서울대 심포지움은 다 끝났나?”
“다 끝났어. 끝나고 바로 이쪽으로 온 거야.”
“김변호사는 준공식 때 와봤고, 왕지엔은 여기 처음인 것 같네.”
“들어오면서 보니까 건물이 아주 좋던데? 준공식 때 하고는 느낌이 또 달라.”
“생산 현장에는 안 들어가 봤지?”
“안 들어가 봤어.”
“골프장엔 좀 천천히 가도 돼. 현장 한번 보고 가라.”
구건호는 사내전화로 박종석을 불렀다.
제복을 입은 박종석이 사장실로 왔다.
“우리 회사 공장장이야.”
“오우, 창장(廠長: 공장장)!”
왕지엔이 박종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분은 전에 한번 본 것 같은데?”
“봤을 거야. 나하고 친형제처럼 지내는 사람이니까.”
“종석아, 이 두 분 현장 안내 좀 해 드려라.”
박종석이 두 사람을 데리고 현장을 안내했다.
박종석이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을 현장으로 안내하자 사람들은 협력사 실사단이 온 것으로 알았다. 흐트러진 반제품들을 정리하고 불량품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기 바빴다.
압출기나 사출기에서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걸 보고 왕지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가 대단해.”
마이머신 운동으로 기계가 새것처럼 청소가 되어있고 질서 정연한 모습에 왕지엔이 감탄하였다.
“생산 현장도 이렇게 깨끗하네. 우리 중국 같으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을 텐데 말이야.”
박종석이 생산 시스템에 대하여 설명하면 김영진 변호사가 영어로 왕지엔에게 설명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을 보고 생산부 작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실사단은 아닌 모양이네. 영어를 쓰는걸 보니 미국 교포들인가?”
“글쎄, 그런 모양이야.”
작업자들은 이런 말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왕지엔이 생산 현장을 사진 촬영하려고 하자 박종석이 제지했다.
“현장 사진 촬영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꼭 하시려면 구사장님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왕지엔 교수는 들었던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들은 현장 라인을 구경하고 다시 구건호가 있는 2층 사장실로 올라갔다.
“잘 봤냐?”
“야, 현장이 엄청 깨끗하다. 중국 기업들 여기 견학 보내야겠다.”
“견학은 무슨, 다 똑같지.”
“아니야. 감동했어. 이런 건 중국도 배워야 해.”
“이제 슬슬 골프장으로 가자.”
“그럴까?”
구건호는 왕지엔과 김영진을 직산 공장에서 가까운 상록 골프장으로 안내했다.
“이게 한국의 국민연금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이란 말이지?”
김영진 변호사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 왕지엔! 너는 어째 나보다도 더 잘 아냐?”
“잘 알긴. 구건호가 그렇게 말해서 알았지.”
구건호와 김영진은 자기 골프채를 가지고 왔다. 골프채가 없는 왕지엔은 플세트 골프채와 골프화를 대여 받았다. 구건호는 카트료와 캐디료가 포함된 이용료를 결재했다.
“구건호 오늘 돈 쓰네.”
“괜찮아. 법인카드가 있잖아.”
구건호가 법인 카드를 흔들어 보였다.
“기업인은 역시 좋아. 교수들은 찌질이들이 많아.”
이들은 코스에 따라 서서히 골프를 치며 나갔다. 주중이라 골프장이 비교적 한산했다.
김영진 변호사는 골프를 역시 잘 쳤다. 구건호와 왕지엔은 실수가 잦았다. 오버파(Over Par)..가 많았다.
“아이고, 오래간만에 치니까 힘들다. 저기 그늘집에서 좀 쉬자.”
“그럴까?”
숲속의 그늘집은 코스의 잔디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풍광이 아주 좋았다. 이들은 골프장 그늘집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김변호사는 매일 골프만 치는 모양이야.”
“하하,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아버지 따라 다니면서 배웠어.”
“에구, 돈 있는 자식은 이런 운동도 잘 하는구나.”
“네가 왜 돈이 없냐? 중국에서도 돈이 있으니까 예일대까지 유학 간 것 아니야?”
“없어. 우리 아버지도 나 같은 교수라 돈 없어. 내가 유학 간 건 절강성 정부 장학금으로 간 거야. 돈이라면 여기 옆에 있는 구건호가 제일 많지. 재신(財神)이 구건호의 몸에만 달라붙은 모양이야.”
구건호는 음료수를 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놈들아. 내가 사주팔자가 신왕재왕한 몸이다.]
“언제 리스캉도 같이 와서 라운딩 한번 하면 좋겠다.”
“참, 리스캉이 한국 나가면 너한테 안부좀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래?”
“그리고 너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어.”
“나를? 왜?”
“리스캉이 문화, 언론 담당 아니냐. 이번에 상해 도서전 관장을 하는데 해외 출판사들이 많이 참석하면 본인의 실적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야. 구사장이 지에이치 미디어란 출판사도 갖고 있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야. 그래서 참가해 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어.”
“우린 미국이나 일본책 번역이 많아. 우리 것을 상해 도서전에 내놓을 만한 책은 없어.”
“그럼 중국책 판권 수입은 어때?”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은 중국책이 인기 없어 손 안 댄다고 했어.”
“하긴 그럴 거야. 내 책도 재판 찍고 중단했다며? 중국 책은 내가 봐도 재미없어. 그래도 리스캉에게 힘을 실어주면 좋겠는데....”
구건호는 리스캉이 중국의 김민혁에게 창호 회사를 소개해준 것이 생각났다. 창호 회사 거래로 매출이 늘었는데 모처럼 만의 청을 박정하게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판권 수입은 없더라도 참관은 하지.”
“참관만 해 주어도 리스캉이 좋아할 거야.”
갑자기 그늘집 안이 시끄러워졌다. 다른 팀이 들어왔는데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그늘집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핫핫핫, 오늘은 보기(Bogey) 잡은 김사장이 술을 사야겠어.”
“어제 그년 때문에 내가 기운을 뺏겨 오늘 성적이 안 좋은 모양이야.”
“핫핫핫”
안하무인격인 이들을 보고 왕지엔과 김영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모자를 쓴 한사람은 전화를 받는데 목소리가 더 컸다.
“야, 오늘 병태가 죽었다더라. 병태가 누구냐고? 아, 그 서울대학 경제과 나온 놈 말이야. 그래 그래 그놈 말이야..”
누군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 서울대 경제과는 따라다니는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세 사람은 시끄러운 그늘집에서 나왔다.
왕지엔이 물었다.
“무슨 전화인데 그렇게 목소리가 컸어?”
“서울대 경제과 나온 사람이 나이 들어 죽었데.“
“죽은 것 하고 그거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러게 말이야.”
“저런 걸 동질화 현상이라고 그래.”
“동질화?”
“어떤 인물이나 사물이 자기와 함께 존재한다는 심리지. 그 인물이나 사물을 평가 절상하고 동시에 자기도 우월해지려는 심리를 말해.”
“너는 역시 교수라 아는 것도 많다.”
“저런 심리는 대개 내면화된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열등의식이 자기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야. 두고 봐. 인민들이 저런 심리가 있는 한 학력 지상주의는 중국이나 한국은 없어지지 않을 테니.”
“흠...”
구건호는 왕지엔의 말이 알듯 말듯하였다.
“서울대를 나온 사람을 친하지도 않은데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니는 것은 동질화 현상인데 이런 것은 선거에도 볼 수 있어. 중국 보다는 한국이 선거를 많이 치루는 민주주의 국가라 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할 거야.”
“무슨 말인데? 말해봐.”
“국회의원에 미남 연예인이 출마해봐. 정치적 식견이 형편없어도 된장녀나 된장남은 그 미남 출마자를 찍으려고 할 거야. 동질화 현상이지.”
“젠장, 못생긴 놈은 국회의원도 못해먹겠다. 네 말 들으니까>”
세 사람은 그린 위를 걸어가며 계속 이야기 했다.
“동질화 현상으로 너도 재미 보았잖아?”
“내가 무슨 재미를 봐?”
“너 중국 항주의 부자들이 산다는 서호의 아파트를 사서 재미 보았잖아. 그것도 동질화 현상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김영진 변호사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구건호가 중국에서 부동산 투자 했었나?”
왕지엔 교수는 김영진 변호사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그린 위를 걸어가며 말했다.
“요즘 서울의 강남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며? 같은 현상이야. 항주의 시민들은 중국 서호의 부촌에서 살고 싶어 하고, 한국의 서울 시민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강남에 살고 싶어 하지. 그리고 과시하지. 나도 부자들과 함께 한다는 자기 동질화를 표출하는 것이지.”
“야, 진짜 너는 아는 것이 많다.”
“천만에! 일찍부터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이걸 먼저 파악하지. 나느 책을 통해서 늦게 알았지만 부자들은 이걸 동물적으로 인식하고 실천에 옮기지.”
구건호는 왕지엔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청담동 이회장을 생각했다. 일찍부터 강남 압구정동 아파트를 샀다 팔았다 하며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왕지엔 교수는 뒤를 돌아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부자들을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현자(賢者)라고 하네. 서울대 교수가 현자가 아니네. 그들은 기고만장하지만 학삐리에 지나지 않아. 현자는 따로 있네.”
구건호는 청담동 이회장이 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구건호는 골프장 라운딩이 끝나고 한우 갈비집으로 세 사람을 데리고 갔다. 중국인들은 고기 종류를 좋아해서 일부러 갈비집을 갔다. 세 사람은 갈비에 맥주까지 마시고 온천욕까지 하였다.
“내가 좋은 친구를 두어 골프 접대에 갈비 접대까지 받고 온천욕까지 즐겼다. 진짜 고맙다.”
왕지엔은 구건호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나야 말로 좋은 친구를 두었어. 왕지엔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는 사업하는 나에게도 아주 도움이 되었어. 사람은 관계 속에 발전한다는 말도 있잖아. 정말 고마워.”
구건호도 잡은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김영진 변호사도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래간만에 구건호 덕분에 몸 한번 잘 풀었다. 고맙다.”
김영진 변호사도 구건호의 손을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구건호는 왕지엔과 김영진 변호사를 서울로 올려 보내고 불당동 아파트로 돌아왔다. 샤워를 한 후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맥주와 마른안주가 있었다. 자주 외식을 하는 구건호는 냉장고에 금방 상하는 음식은 두지 않았다. 맥주와 마른안주 같은 것은 언제나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난후의 맥주 맛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맥주를 마시다가 박종석 생각이 났다.
“이 녀석 상견례 한 것은 어떻게 됐지?”
구건호는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석이냐? 집에 들어왔냐?”
“들어왔어.”
“뭐해?”
“책봐.”
“책을 봐? 웬일이야? 니가 책을 다 보고.”
“폴리텍 대학 졸업은 해야 하잖아.”
“허, 장가 갈 때가 되니 정신 차린 모양이구나. 부모님은 올라 가셨냐?”
“올라가셨어. 그런데 웬 돈을 그렇게 많이 줬어.”
“야, 너희 엄마는 우리 엄마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리고 어렸을 때 먹은 설렁탕 값은 돈으로도 환산하기 어려운 값 아니냐.”
“그래도 너무 많았어.”
“어때 상견례는 잘 끝났어? 아침에 물어보려다가 왕지엔 교수가 오느라고 못 물어 보았다.”
“잘 끝났어.”
“뭐래?”
“이야기 하다보니까 은숙이 아버지하고 우리 아버지 고향이 같았어.”
“은숙이? 너 여자친구 이름이 은숙이냐?‘
“응, 방은숙이야.”
“이름이 이쁘다. 은숙씨 아버지 고향도 인천이야?‘
“아니야. 우리 아버지 고향은 인천이 아니야. 충청도 당진이야. 엄마도 그렇고.”
“그래? 당진에서 올라와 인천에서 사셨구나.”
“고향이 같으니까 서로 옛날이야기들 하고 그러더라고. 분위기는 좋았어.”
“그래? 축하한다. 이제 날짜만 잡으면 되겠구나.”
“은숙이 어버지가 우리 아버지 보고 천안 와서 살라고 했어.”
“그래? 왜 그러지?”
“우리 집도 아들 하나고, 그 집도 딸이 하나니 내가 결혼 후 천안에서 살면 외로울 거라고 했어.”
“그래? 너희 아빠 엄마는 뭐라고 하셨어?‘
“웃기만 했는데 내심 솔깃한가봐.”
“그래라. 내 생각도 너희 부모님 고향이 당진이면 인천보다 천안이 낫겠다. 이제 음식점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아, 참 그리고 형, 나 집샀어.”
“집을 사? 어디다가?”
“두정역 바로 옆에 있는 푸르지오 샀어.”
“그래? 거긴 얼만데?”
“32평짜리 2억3천만원에 샀어.”
“융자 받았니?”
“아니, 그동안 내가 공장생활 7년 하면서 모아둔돈 8천만원하고 부모님이 1억 5천만원 대줬어.”
“그래?”
“부모님이 나 장가갈 때 줄려고 모아둔 돈이 있었나봐. 빚은 없어.”
박종석의 부모는 부자는 아니지만 식당을 열심히 해서 약간의 돈은 모은 모양이었다. 더구나 아들이 하나라 박종석이라고 하면 끔찍이 생각을 하였다. 박종석은 형제가 없다보니 구건호를 정말 친형처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