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77화 (177/501)

# 177

공장장 박종석 이사 (3)

(177)

아침이 되면 경리부장이 시제 현황표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왔다. 상임감사 싸인이 들어간 시제 현황표는 주로 전일 발생한 입출금 내역과 전자어음과 B2B 내역들이었다.

“송장환 사장에게도 시제 현황표를 보여주세요.”

“안 보시겠답니다. 영업과 생산에만 신경 쓰시겠답니다.”

“흠, 그래요?”

송장환 사장은 구건호가 사장 자리를 주긴 했지만 너무 설쳐대는 인상을 주긴 싫었던 모양이었다. 조심성이 많은 사람 같았다.

경리부장이 나가자 영업부 서창훈 차장이 들어왔다. 서창훈 차장은 총무과장을 하다가 이번에 승진을 한 사람이다.

“김동찬 전무에게서 업무 인계는 다 받았지요?”

“대부분 받았습니다. 간혹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전화로 묻기도 합니다.”

“잘 배워두세요. 영업은 중요한 것이니까요. 회사의 운명은 영업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주식회사 성창에서 씰링 5만개 주문을 받았습니다. 매월 나가는 물건이 아니고 일회성이라 회사에 크게 도움은 못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박종석 이사가 4라인 쪽이 요즘 일감이 없어 기계 잡아놓고 있다고 하면서 만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 주문 받다보면 큰 것 주문 받는 수가 있으니 잘 만들어 납품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보고는 없습니까?”

“이거....”

“상원공업 사장님 아들이 결혼을 한답니다. 축의금은 얼마를 보내야 할지 몰라서요.”

“상원공업이면 우리가 월 2억은 납품하는 데가 아닙니까? 결혼식장이 어딥니까?”

“서울 힐튼 호텔이랍니다. 다음 주 토요일입니다.”

“상원공업이라면 내가 직접 참석하지요. 중요거래처인데 무시할 순 없지요. 총무과에 말해서 결혼 당일 내 이름으로 화환도 하나 보내주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청첩장 여기에 놓고 가겠습니다.”

서창환 차장이 청첩장을 놓고 나가는 것을 구건호가 다시 불러 세웠다.

“참, 서차장님 결혼식 땐 내가 일본에 가있을 때라 참석 못해 미안했었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이 과분하게 축의금도 보내주시고 전체 임원들에게 결혼식 참석을 지시하셔서 회사 사람들 관리직은 거의 오다시피 했습니다.”

“지금 신혼살림은 어디서 하세요?”

“천안 쌍룡동입니다.”

구건호가 아침 결재를 마치고 아산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공사 현장 입구에는 콘테이너 박스 3개가 나란히 있었다. 하나는 윤상무가 쓰고 하나는 애덤 캐슬러와 김동찬 전무가 쓰고 있었다. 작은 책상을 하나 더 갖다놓아 통역 이선생이 쓰고 있어 상당히 비좁았다. 나머지 하나는 공사를 하러온 협력업체 직원들 휴게실로 썼다. 화장실도 현장에 간이 화장실 하나밖에 없어 불편했지만 이들은 옆에 거대한 첨단 빌딩이 거의 완공단계에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빨리 공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

“고생들 하십니다.”

구건호가 들어오자 김전무와 통역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애덤 캐슬러도 일어나 굳모닝을 외쳤다.

구건호가 통역 이선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애덤 캐슬러에게 불편한 것이 없냐고 물어봐 주세요.”

통역이 뭐라고 하자 애덤 캐슬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노우, 프로브럼”

현장에 있던 윤상무도 작업자중 누군가가 사장님 오셨다고 하니까 달려왔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수고하십니다.”

“건물 공사는 다 끝났고 전기 배선공사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커피 한잔 뽑아올 가요? 협력사 직원 휴게실에 커피 자판기가 있습니다.”

“하하, 됐습니다. 마시고 왔습니다.”

구건호는 윤상무가 쓰는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갔다. 그쪽 컨테이너 박스에는 원형테이블을 갖다 놓아 옹색하지만 서너 명이 회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김동찬 전무가 따라 들어왔다.

“준공식 날짜를 잡아야겠네요.”

“직산공장 준공식 때 처럼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이 공장은 지난번 온양관광호텔 폭행사고 때 지역신문에 보도가 되어 아산시의 관심이 클 겁니다. 총무담당 최이사 한테 이야기해서 준공식 초청장은 아산시 관내 기관장들에게 다 보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전무님은 지난번 디욘코리아 소속 직원 한사람 뽑는다는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사람을 선발했는데 최종적으로 누굴 뽑을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두 사람 영어는 다 잘 합니까?‘

“잘 합니다. 이력서 보시겠습니까?”

“아니, 됐습니다. 욕심나면 두 사람 다 채용해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한번 해 보겠습니다.”

김전무가 좋아서 활짝 웃었다.

구건호가 오전에 아산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다시 직산으로 온 것은 오전 11시 30분 경이었다. 박종석 이사가 사장실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

“이거...”

“조퇴 신청서? 너 병원 가냐? 어디 아프냐?”

“부모님이 오셔서 나가봐야 돼.”

“부모님이? 천안에 오셨단 말이야?”

“응.”

“오, 그래? 무슨 일로 오셨는데?”

“오늘 여자 친구 부모님이랑 상견례가 있어.”

“그래? 그래서 니가 이발까지 했구나.”

“헤헤.”

“어디서 상견례 하냐?”

“백석동 승지원.”

“부모님이 지금은 어디 계시나?”

“고속버스 터미널에 곧 도착할거야. 지금 나가면 딱 맞을 거야.”

“같이 가자.”

“형이?”

“여기까지 오셨는데 가서 인사라도 드려야지.”

“그럴 필요 없어.”

“옛날 내가 배고플 때 따듯한 설렁탕 주신 분들 아니냐? 가자.”

“그럴 필요 없대도 그러네!”

“따라와, 나 먼저 간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나자.”

구건호가 천안 신부동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주변에 사람도 많고 주차장을 못 찾아 헤매다가 약간 늦게 도착했다.

구건호가 터미널 지하에 있는 대합실에 들어가니 박종석이 서 있고 나이 많은 두 부부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구건호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박종석이 아직 부모님께 구건호가 온다고 이야기를 안한 모양이었다. 박종석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종석을 쳐다보았다.

“누구?”

“우리 회사 사장님으로 있는 건호 형이에요.”

“건호? 구건호란 말인가?”

“예, 맞아요.”

“아이고, 시상에!”

건호 엄마는 일어나서 구건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렇게 의젓하게 신사가 됐네. 옛날 모습하곤 전혀 달라져 몰라보았네. 그러고 보니 눈매하고 코만 옛날하고 똑 같네. 시상에, 시상에.”

박종석 엄마는 여장부였다. 설렁탕집을 하면서 호랑이 아줌마로 통했는데 오늘 보니 구건호가 생각했던 거와는 영 딴판이었다. 키도 작아지고 얼굴도 주름이 많아져 있었다.

“우리 종석이가 속 많이 썩이지?”

“아닙니다. 종석이 도움을 오히려 제가 많이 받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인천에 계신가?”

“예, 그렇습니다. 구월동에 사십니다.

“건강들은 하시지?”

“예, 건강하십니다. 오늘 상견례 한다니 기쁘시겠습니다.”

“뭘, 신부가 마음엔 드는데 안경을 써서 그게 걸려.”

“엄마는 또 그 소리!”

옆에서 박종석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제수씨 될 사람 보았는데 예쁘고 얌전해 보이던데요.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요.”

“건호는 아이가 몇이야?”

“저도 아직 미혼입니다. 사귀는 사람은 있습니다.”

구건호는 어른들을 만나면 대개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면 중매 선다고 귀찮게 할까봐 그랬다.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사귀는 사람 있으면 빨리 하는 게 좋아. 결혼 늦으면 늙어서 후회하게 돼.”

“하하, 알겠습니다. 상견례 하는 곳으로 이동하실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저도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구건호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를 쏜살같이 종석이 엄마의 코트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응? 이게 뭐야! 이러면 안 돼.”

“건강들 하세요!”

구건호는 손을 흔들며 주차장 쪽으로 달아났다.

구건호는 밖에 나온 김에 두정동 쪽에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단국대학교 앞 천호지 주변을 걷다가 오후 2시쯤 되어 직산 공장엘 갔다. 구건호의 차가 공장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정문 차단기를 올리며 꼿꼿하게 서서 거수경례를 붙였다.

사장실에 들어가자 바로 비서 박희정씨가 커피를 가지고 왔다.

“나한테 전화 온 것 없었지요?”

“상공회의소 지부장님하고 충남 경제인협의회 회장님 전화가 있었습니다.”

“흠, 그래요?”

비서가 나가고 얼마 있다가 연구소장이 들어왔다. 연구소장은 평상시 구건호의 방을 잘 안들어 오던 사람이었다.

“신입사원 선발이 다 끝나고 오늘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입니다. 먼저 사장님께 인사를 시키려고 합니다.”

“몇 명 뽑았지요?”

“7명입니다. 사장님께서 2명 더 뽑으라고 해서 7명입니다.”

“아산쪽 공장 준공식에 맞추어 미국 갔다 온 두 명은 디욘 코리아로 전출 발령 냅니다.”

“충원 되었으니 이제 보내셔도 됩니다.”

“지금 7명이 다 왔습니까?”

“네, 지금 사장님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들 들어오라고 하세요.”

신입사원 7명은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구건호 방을 들어왔다. 모두 명찰을 앞에 단채 두손을 앞으로 모으고 긴장한 채 서 있었다.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요.”

신입사원들이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앉았다.

“입사를 축하합니다. 연구소장님 말씀이 이번에 5명만 뽑으려고 하다가 너무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 2명을 더 뽑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모두 영리하고 일들을 잘하시게 생긴 분들만 들어온 것 같습니다.”

비서 박희정씨가 종이컵에 녹차를 가지고 와 한사람씩 나누어 주었다.

“우리 회사는 전에 물파산업이었는데 내가 부임하면서 상호를 지에이치 모빌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에이치 모빌의 공채 1기생이나 다름없습니다.”

구건호가 말을 하면서 신입사원들을 보니 대개가 30대였다. 구건호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두어 명 있었지만 나머지는 구건호보다 어려 보였다.

“여기 옆에 계신 연구소장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뮌헨공대에서 공부하신 분입니다. 뮌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뮌헨에 있는 BMW의 연구소에 오랫동안 계셨던 분입니다. 여러분들은 연구소장님과 함께 지에이치 모빌의 미래를 책임져줄 분들입니다. 오랫동안 지에이치 모빌과 함께 하기를 부탁드립니다.”

구건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사람씩 악수를 하였다. 신입사원들은 사장이 손을 내밀자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잡고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신입사원들은 구건호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다.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벌써 구건호와는 신분적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건호는 연구소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좋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왔으니 연구소장님께서 오늘 환영회라도 멋지게 베풀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신입사원들이 방에서 나가자 비서 박희정씨가 종이컵을 치우기 위해서 다시 사장실로 들어왔다.

“박희정씨!”

“예?”

구건호가 부르자 빈 종이컵을 쟁반에 담던 박희정씨가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이번에 연구실에 들어온 사람들 보니 인재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런 것 같아요.”

“박희정씨도 배우자감을 멀리서 찾지 말고 사내에서 찾으면 어떨까요?”

“몰라요, 사장님.”

박희정 비서가 얼굴이 빨개진 채 종종걸음으로 사장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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