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부사장 애덤 캐슬러 (3)
(174)
구건호가 부모님이 살고 있는 구월동 힐스테이트 아파트의 현관문 비밀 키를 눌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지 누가 나와 보는 사람도 없었다. 거실에서 엄마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엄마는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다.
“도둑이 들어와도 모르겠네.”
구건호가 손으로 엄마의 입을 닫으려고 하자 엄마가 깜짝 놀라 깨었다.
“잉? 누구야? 건호왔네!”
“집에 아무도 없어?”
“다 나가고 없어. 네 아버지 동네사람들하고 술 마시러 가고, 정아 학교가고, 정아 아빠와 엄마는 일 하러 갔지.”
평화가 따로 없었다.
“바쁜데 어떻게 왔냐?”
“길병원 들렸다 오는 길이에요.”
“길병원? 고모 만났니?”
“만났어요. 허리가 아파 화장실도 못간데요.”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세하더니 금방 그렇게 됐네.”
“음료수 좀 사다 드렸어요.”
“잘했다. 밥은 먹었니?”
“예, 먹었어요. 집안은 별고 없지요?”
“네 아빠 술 자꾸 먹어서 탈이다.”
“아빠는 요즘도 종로3가 가세요?”
“요즘 안가. 다른데 다녀. 오이도도 가고 연안부두에 가서 친구들이랑 섬에도 가고 그래.”
“아빠 중형차라도 한 대 사 드릴까요?”
“차? 그런 소리 입도 벙긋 하지마라. 술 마시는 분이 무슨 일 나려고 그래? 너희 아빠도 이젠 나이 들어 운전하기 싫다고 면허증도 반납 했다더라.”
“그래요?”
“나이 들면 걸어 다니는 게 최고야.”
“이거 엄마 아빠 드리려고 사왔어요. 굴비에요.”
“어머나. 이 비싼걸. 우리 두 내외가 아들 덕분에 늙어 호강한다.”
“이건 정관장 인삼세트에요.”
“인삼까지, 고맙다.”
“그리고 이건 엄마아빠 관광이라도 가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돈? 돈은 집에도 있는데....”
“그냥 놔두었다 필요할 때 쓰세요.”
“우리 계모임에서 중국 장가계 가자고 하는데 거기나 갈까?”
“그러세요. 다녀오세요.”
구건호는 천안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신사동의 지에이치 빌딩으로 갔다. 자주 가지 않으면 아무래도 관리의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강이사가 전화로 누구와 싸우고 있었다.
비서 오연수씨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 구건호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섰다.
“차 좀 부탁할까요?”
“녹차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 커피요.”
비서가 커피를 가지고 오고 한참 있다가 강이사가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누구랑 다투는 것 같던데요?.”
“명진 종합시스템 사장하고 좀 그랬습니다.”
“명진 종합?”
“우리가 용역준 회사 말입니다. 전문성이 덜한 주차나 미화, 경비는 우리가 직접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용역을 주지 않았습니까? 기계실과 전기실 말입니다.”
“흠, 그랬지요.”
“그런데 인건비가 올랐다고 기계실과 전기실 상주인원 급여를 올려달라고 해서 싸웠습니다. 그쪽에서는 다음 달부터 올려달라고 하고 저는 내년부터 올리자고 하는 중입니다.”
“흠,”
“용역업체는 많이 있습니다. 정 우기면 용역업체 바꿀까도 생각중입니다.”
경리과장이 들어왔다.
“사장님 오셨으니 월간 손익보고 할까요?”
“아니, 내가 오늘은 피곤하니 이메일로 보내줘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강이사와 같이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그냥 지나쳐 볼 때는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터지거나 얼룩이 진 곳도 많았다.
“내가 아산에 있는 윤상무 보낼 테니 같이 점검표를 작성해보세요. 수선충당금 적립액이 많지 않으니 급한 것만 처리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나중에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직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사장실로 들어가자마자 공동대표로 있는 송장환 사장과 새로 들어온 연구소장 오준수 상무가 들어왔다. 구건호는 운전을 많이 해서 사장실에서 쉬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구건호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예, 앉으세요.”
구건호가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사장이 도면 뭉치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지에이치 모빌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전에 있던 S기업 공장들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S기업 공장은 전국에 모두 4군데인가요?”
“울산공장까지 하면 5군데입니다.”
“아, 그런가요?”
“S기업 공장에 있던 임원들이 그래도 전에 모셨던 상사라고 저를 전관예우 해주네요. 몇 개 오더를 받아왔습니다. 여기 있는 도면들이 그것입니다.”
“하하, 그래요? 수고하셨네요.”
”이 도면대로 잘 만들어 납품하면 월 10억정도 매출 증대에 기여할 것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도면의 물건을 만들려면 몇 번 실험을 해야 합니다. 전에 연구소의 축소로 연구실 인원이 많이 다른 부서로 옮겨 갔습니다. 이미 다른 부서로 간 사람들을 다시 부르긴 곤란하고 또 나이들도 많습니다.”
“연구소 직원들을 다시 뽑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젊고 참신한 인물을 한번 추려보겠습니다.”
“몇 명이나 뽑으려고 하십니까?”
이번엔 새로 온 연구소장이 말했다.
“우선 5명 뽑고 매출액 증가에 따라 늘려갈 예정입니다.”
“새로 받은 오더 때문에 라인 증설까지는 안 되겠지요?”
“우선은 기존 생산시설에서 야간작업으로 제품 뽑고 증설 문제는 추후 검토하겠습니다.”
“연구소 직원 새로 뽑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저는 앞으로 임원 인사만 관여하고 그밖의 인사에 대하여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새로 뽑는 연구소 직원 1차, 2차 면접 모두 두 분이 알아서 뽑아주세요.”
“그래도....”
구건호가 빙그레 웃었다.
“괜찮습니다. 두 분이 알아서 하세요. 두 분이 저보다 훨씬 전문가이시니까요.”
“고맙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송사장은 전에 S기업 부사장으로 있을 때는 구건호를 동생 대하듯이 하였다. 구건호도 형님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에이치 모빌에 들어와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오너인 구건호 앞에서 함부로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송사장은 구건호 앞에서 상당히 고분고분해졌다. 은행의 지점장과 캐피털 회사의 부사장을 지낸 상임감사가 고분고분한 것처럼 송사장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구건호는 사장실에서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머리 위에 양손을 잡고 스트레칭을 했다.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듯 했다.
[송사장이 와서 정말 지에이치 모빌의 매출을 팍팍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매출이 올라간 것 만큼 비용도 따라서 올라가겠지만 그래도 볼륨이 커야 먹을 것이 있지 않겠어?]
구건호는 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지에이치 모빌이나 디욘코리아가 돈을 많이 벌면 서울에 있는 지에이치 빌딩을 인수하게 해야겠어. 지에이치 빌딩은 융자가 너무 많아. 돈 잘 번 법인이 인수하게 하면 빌딩 살 때 들어간 내돈 400억 원도 뺄 수 있을 거야. 지에이치 개발이나 디욘코리아가 인수하면 결국 내 것이나 다름없잖아? 인사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말이야.]
구건호는 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가만있자. 디욘코리아가 인수하게 되면 거긴 라이먼델 디욘사의 본사 지분이 50%니까 빌딩 같은 것 산다면 반대할거야. 산다 해도 50% 지분을 갖고 있으니까 모든 걸 상의해야 하고 간섭이 심하겠지? 디욘코리아 인수는 제외하자. 그렇다면 지에이치 미디어? 거긴 코딱지 만한 회사니까 불가능 할 것이고. 에이, 그럼 지에이치 모빌 밖에 빌딩을 인수할 회사가 없네. 지에이치 모빌도 송장환 사장이 3%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면 3%의 목소리를 낼 것이 아닌가. 3% 정도는 무시해도 되겠지. 내 지분이 97%니까 말이야.]
.
구건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중국에서 전화가 왔다. 왕지엔 교수였다.
“구사장? 나야. 왕지엔.”
“오, 왕지엔!”
“나, 다음 주 서울 간다.”
“그래? 뭐 좋은 일 있는 모양이네.”
“서울대학교에서 국제 심포지움이 있어 내가 발표자로 나가. 너도 한번 와라. 참, 너는 지방 도시에 있다고 그랬지?”
“몇 일간 있을 건데? 호텔 잡아줄까?”
“안 잡아줘도 돼. 3박 4일 있을 건데 숙소는 서울대학 측에서 잡아준다고 했어. 서울대학교 후문 쪽에 교수 기숙사가 있다고 그러네.”
“그래? 잘 됐구나.”
“중간에 하루 비는 날이 있는데 김영진 변호사와 골프나 한번 같이 치자.”
“그래, 날짜만 알려줘. 부킹은 내가 할게.”
“김변호사 말로는 너 있는 천안 쪽에도 골프장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 이쪽으로 와. 우리 공장 구경도 하고.”
“그럴까?”
구건호의 국제 전화가 끝나자 김동찬 전무가 들어왔다.
“보고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전화로 보고해도 되는데 아산서 직산까지 오셨네요.”
“저희들 이사는 다 했고요. 콘테이너 박스에 사무실도 그럴듯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수고 하셨네요.”
“애덤 캐슬러 부사장에게 투룸을 보여주었더니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멕시코에 있을 때 보다도 오히려 환경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그리고 사장님께서 지시한 디욘코리아 운영위원회는 아주 잘 만든 것 같습니다.”
“내가 우리 임원회의를 본 따서 만들라고 했던 건데 잘 운영된다니 다행입니다.”
“지금 운영위원은 5명 아닙니까? 저와 애덤 캐슬러, 그리고 지에이치 모빌의 총무이사와 경리부장, 그리고 윤상무,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다들 자기 업무에는 익숙해 애덤 캐슬러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운영위원 회의는 일주일에 한번 인가요?”
“그렇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면 좋습니다. 자기 고유 업무에 방해도 주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해외업무를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경리부장 들어온 건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경리부장이 여성이라 그런지 아주 꼼꼼합니다. 특히 디욘사와 우리 측에서 초기 운영자금으로 각자 5만 달러씩을 낸 것에 대한 지출 내역을 꼼꼼히 기록하고 발표합니다.”
“흠.”
“경리부장이 발표하는 지출 내역은 주로 애덤 캐슬러가 쓴 돈이 많습니다. 호텔비용, 렌트카, 식대 등등인데 애덤 캐슬러는 보고 내용을 듣고 자기가 솔선해서 투름으로 방을 옮기자고 했습니다. 건설경비 이외는 모두 합작사 경비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애덤 캐슬러가 돈을 많이 써도 안되지만 너무 쪼이지는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제가 경리 부장한테 주간 지출내역을 정리해서 사장님께 보고 하라고 하겠습니다.”
“전무님이 보고 받고 끝내세요. 저한테 까지 올라올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신경 쓸 것도 많습니다. 그렇게 처리 하세요.”
“알겠습니다.”
“지난번에 사원 모집한다는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총무이사하고 저하고 1차 면접을 보았습니다. 내일 2차 면접을 보는데 내일은 저하고 애덤 캐슬러가 보기로 했습니다. 콘테이너 박스에서 면접시험 보기가 좀 그래서 여기 소회의실을 쓰기로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통역으로 온 이선생 말입니다.”
“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나이가 53세라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러긴 하지요.”
“회사 생활도 풍부하고 해외 지사장 경력도 많으니 합자사에서 같이 일할 기회를 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물론 본인하고 의논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순전히 저희 개인 생각으로 말씀드립니다.”
“흠.”
“합자사에서 나온 제품이 중국과 동남아로 팔려 나간다면 중국은 김민혁 사장이 있지만 동남아 쪽은 그 사람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쎄....하긴 영어도 잘하고 해외지사 운영 경력이 있긴 한데....”
“통역을 하면서 합자사 운영시스템도 파악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건 아는데, 회사에서 한번 나간 사람은 재입사하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내가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 문제는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과 의논해 보겠습니다. 신사장이 추천한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나도 그 사람을 좋게 보고는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지요.‘
“알겠습니다.”
김동찬 전무가 인사를 꾸벅하고 구건호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