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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큰손 이야기-170화 (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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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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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건호는 S기업 전 부사장 송장환씨와 함께 간장 게장 잘하는 식당엘 갔다. 이 집은 송부사장이 골프를 치러 다닐 때 자주 들렸었다고 하는 집이었다. 충북 진천군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식당으로 한가해서 좋았다. 간장 게장 뿐만 아니고 여러 가지 밑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이었다.

“부사장님은 회사 출근하는 것이 아니니 동동주 한잔 하세요.”

“그럴까? 허허. 나는 금방 얼굴이 빨개져서...”

“송 부사장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동동주까지 한잔 했다.

식사 때의 이야기는 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들만 오고 갔다. 간장 게장을 먹다보니 자연히 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연평도의 꽃게에서부터 임진강의 민물게까지 이야기 하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온 이야기는 골프 이야기였다. 송부사장은 해외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해외 유명 골프장도 잘 알고 있었다.

식사 후 식당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송부사장이 커피를 뽑아 마시려고 하였다.

“커피는 여기보다도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하시지요.”

구건호는 송부사장을 천안 단국대학이 바라다 보이는 천호 저수지로 안내하였다. 호수의 주변에 카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구건호가 물었다.

“S기업에 납품하는 여러 회사 중 이지노팩 처럼 대기업 형태를 갖춘 곳이 20군데가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들 회사 중에서 부사장님을 러브콜한 회사도 있었을 법 한 데요.“

“한두 군데 있었지만 그만 두었어요. 나한테 사장 자리는 안주고 부사장 자리를 줄 텐데 작은 회사 부사장으로 가기가 싫었지요. 더구나 협력사에 가게 되면 전 직장인 S기업에 납품 량이나 늘려달라고 할 텐데 그것도 싫었지요.”

“부사장님 실력으론 늘려줄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불량 없이 제품도 잘 만들어야 하고 적기에 공급도 잘 해야 되요.”

“불량이 많으면 안 되겠지요.”

“구사장도 잘 알다시피 제조업은 불량과의 싸움입니다. 불량 나오는 회사가 로비로 해결한다고 하면 S기업 같은 큰 회사에선 먹혀들어가지가 않습니다.”

“흠.”

“구사장이 있는 지에이치 모빌도 불량률이 좀 나오는 편입니다. 사장의 귀에까지는 안 들어가겠지만 실무진에선 작은 리콜들은 많았을 겁니다.”

“부사장님은 주로 상장회사의 경력이 많습니다. 상장이 아닌 곳에서도 근무하다가 상장을 시킨 적도 있습니까?”

“있지요. 애써 상장시켜 놓으니까 상은 못줄망정 팽을 시키더군요.”

“누가요?”

“누구긴 누구겠소. 오너 가족들이 그랬지.”

“나쁜 사람들이군요.”

“대기업 오너들은, 특히 2세, 3세들은 우리와 다른 특이한 의식 구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식구조 말입니까?”

“일종의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옛날의 양반과 하인과 같은 구조 말입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운동권에서 놀다가 S기업에 입사한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송 부사장은 커피를 마시며 아련한 눈으로 호수 위를 바라다보았다.

“S기업에 들어간 지가 벌써 24년이나 되었군요.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으니 그 회사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부사장님, 지에이치 모빌로 오실 생각 없습니까?”

송부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나를 잘 봐주어서 고맙군요. 나도 구사장에 대한 인상은 참 좋습니다. 처음에 누가 공돌이부터 시작한 사람이라고 해서 설마 했는데 정말이더군요. 살아온 과정이 쉽지만은 아니었을 텐데 젊은 나이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관심도 갖고 지켜보기도 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헌데 내가 지에이치에 가서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그냥 오셔서 자리만 지켜주셔도 됩니다. 지난번 우리가 신제품 AM083 어셈블리를 개발한 것은 모두 부사장님 덕이 아닙니까?”

“그건 지에이치 모빌의 기술력과 시스템이 작동해서 그렇게 된 거지 내 힘이 아닙니다.”

“전에 제가 부사장님을 형님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형님, 오셔서 도와 주십시오.”

“글쎄. 자신이 없네요. 가면 밥값은 해야 되는데 말이요.”

“오셔서 지에이치 모빌을 상장시켜주십시오.”

송 부사장은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정색을 하며 물었다.

“상장을 시켜 준다면 나에게 뭘 주겠습니까?”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구건호는 당황했다.

“인간적으로 구사장과 내가 서로 좋아해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입니다. 상장 후 다시는 팽을 당하는 전철은 밟고 싶지 않습니다.”

구건호도 정색을 하고 물었다.

“무엇을 원합니까?”

밖이 어두워지고 남녀 대학생들이 몇몇 카페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송 부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코스닥에 상장하면 열배 스무배 주식 값이 튑니다. 그런 건 알고 있지요?”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신 발명품이 있는 제약이나 IT쪽도 아니고 전통 굴뚝 산업인 제조업이라 그렇게는 튀지 못해도 5배 이상은 튑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답은 나와 있습니다.”

구건호가 웃었다.

“주식을 일부 달라는 말씀이군요.”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지에이치 모빌의 재무제표를 잠깐 보았습니다. 상장 여건을 갖추려면 갈 길이 멀고도 멉니다. 지에이치 모빌을 3년 안에 코스닥 상장 시켜드리지요. 주식을 주십시오. 현재 시점에서 구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주식 3%의 증여를 원합니다.”

“3%라...”

“지속적 경영 참여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나이도 있어 오랫동안 할 여건도 아닙니다. 유능한 후배가 나타나면 물려주어야지요.”

“좋습니다. 3%드리지요. 큰 회사에 계신분이 부사장으로 오는 것도 남 보기 안 좋으니 지에이치 모빌의 공동대표이사 자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송부사장이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도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은 힘찬 악수를 하였다.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단국대학교 여대생들이 쳐다보고 웃었다. 저 아저씨들이 갑자기 왜 저럴까 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김민혁의 결혼식 날자가 다가왔다.

구건호는 김민혁이 중국에서 결혼식을 한다면, 신랑 친구가 아무도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편집장으로 있는 문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재식? 나야, 구건호.”

“오, 구사장.”

“김민혁의 결혼 소식 들었지?”

“들었어. 16일날 상해에서 한다며?”

“내가 결혼식 참석하려고 중국 가는데 너도 같이 가야겠다.”

“나도?”

“신랑 친구들이 아무도 없다면 보기 안 좋잖아. 너하고 나하고 가서 축하해 주자. 여행 경비는 내가 다 부담할게.”

“그렇다면 좋아. 난 중국 여행 한 번도 안 해보았어.”

“중국서 결혼식하고 여기서도 결혼식 또 한다고 했으니 축의금은 많이 할 필요 없다.”

“하하, 팔자 좋네. 두 번이나 결혼 하니.”

“그러고 보니 민혁이도 장가 가고, 너도 갔었고, 나만 못 갔구나.”

“나도 결혼은 했지만 식은 못 올렸어.”

“왜?”

“경제적 사정이 그랬어. 그냥 동거했던 거지. 혼인 신고는 했지만 말이야.”

“참, 요즘 헤어졌다는 여자는 다시 만나냐?”

“내가 지에이치 미디어에 들어와 안정적인 삶을 사니까 다시 만나기는 해.”

“그럼 같이 살아라.”

“그러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살면 사는 거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

“우리들만의 사정이 있어. 그 이야기 그만 하고 딴 이야기 하자.”

“그래? 그럼 그 이야기는 그만 하지. 참 동창회 내일 모래니까 동창회 참석하고 중국 가야되겠구나.”

“동창회 너도 참석할거지? 모두 나보고 구사장 참석하느냐고 묻데. 다들 너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별 일 없으면 참석 할게.”

김동찬 전무가 디욘코리아의 부사장으로 부임하는 애덤 캐슬러의 아파트 임차 문제를 보고하였다.

“좋은 아파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푸르지오 아파트를 알아보았는데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이면 25평짜리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할 가요?”

“그런데 도배도 새로 해야 하고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집기를 구입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제 생각인데 투룸 빌라를 얻어주면 어떨까 합니다.”

“빌라요?”

“마침 우리 공장에서 가까운 4거리 부근에 좋은 빌라가 나왔습니다. 신축이라 깨끗합니다. 냉장고나 세탁기등 모든 옵션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별도로 돈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공장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지역이고요.”

“시내가 아니라서 불만 없을까요?”

“제가 카투샤 출신이라 잘 아는데 미국 애들은 오히려 아파트보다도 전원 단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긴 얼마나 합니까?”

“5백 보증금에 월세 45만원입니다. 부가세 별도입니다.”

“일단 애덤 캐슬러씨가 부임하면 하루 이틀 호텔이나 모텔에서 자도록 하고 빌라와 아파트를 같이 보여주지요. 월세나 옵션 같은 것도 설명하고요.”

“알겠습니다.”

“참, 전무님은 영문과 출신에다가 카투샤 출신이라 애덤 캐슬러와 친해지겠는데요?"

“아이고 카투샤 갔다 온지가 25년이 넘었습니다. 다 잊었지요. 영어를 사용하는 무역회사 같은데 근무했으면 안 잊었을 텐데 말입니다.”

“정말 미군들이 전원주택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제가 동두천 2사단 캠프 케이지에서 근무했는데 미군 애들 보면 그런 경향이 많습니다. 서부 개척을 했던 사람들의 자손들 아닙니까?”

구건호가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강남역으로 간 것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술을 마실 것 같아 차를 타워팰리스 아피트에 두고 가느라고 늦었다.

구건호가 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이미 술들을 마시고 있었다.

“건호 왔다.”

”건호 왔다.“

“많이 바빴던 모양이지? 이리와 앉아라.”

조원철이 일어나서 자기 옆자리를 비워주었다.

조원철 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났다. 이제 구건호를 돈좀 벌었다고 빈정대는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건호의 그늘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들뿐이었다.

“서향회가 다 모였나?”

“서향회 회원 정기 모임은 아니고 얼굴 본지도 오래되어 모였어. 또 김민혁이 장가간다는 것도 의논하고 있었어.”

“김민혁이는 이번 상해 결혼식은 참가할 필요는 없어. 한 번 더 한국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니 그때 모두 오면 될 거야.”

“그렇지 않아도 문재식이가 상해를 간다고 해서 축의금을 모아서 전달할까 의논 중이었어.”

“친불친으로 하는 것이야 말리지 않겠지만 한국서 결혼식 할 때 축의금 줘.”

“그럴까?”

“참, 잔 받아라. 차 안가지고 왔지?”

“집에 두고 왔어. 반가운 사람들 만났으니 한잔 해야지.”

“그래, 건호 왔으니 한 병 더 시키자.”

“다시 룸 안이 시끄러워졌다.”

“조원철이는 지금 뭘 맡고 있나.”

“나? 총무 맡고 있어. 총무과장이야.”

“황병철이는 지금 책임 연구원인가?”

“아니, 선임 연구원이야. 너희 회사도 연구소가 있다고 했지?”

“응, 있어. 학교때 네가 공부로는 전교 일등이었는데 책임 연구원 정도는 되어야지. 내년엔 될 것 같다.”

“너희 회사 연구소장은 어느 대학 출신이냐.”

“독일 뮌헨공대 박사 출신이야. 참, 너도 알지 모르겠다. 판교 연구소에 근무했다고 하니까.”

“나이가 몇 살쯤 되는데?”

“50대 초반이야.”

“알 것도 같은데. 혹시 성이 오씨 아니냐?”

“맞아. 오준수씨야.”

황병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사람 건너편에 있던 강민호가 말했다. 강민호는 사회단체에 근무하는 동창이었다.

“너희 회사 연구소장이면 직급이 뭐냐? 무슨 연구원이냐?”

“무슨 연구원 호칭은 없고 그냥 연구소장이야. 상무이사 대우야.”

“그래도 다들 구건호 밑에 있는 사람들 아니야?”

구건호는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야, 구건호 참 대단하다. 정말 우리학교의 자랑이다. 한잔 받아라.”

삐딱한 소리를 잘 하는 강민호도 구건호에게는 함부로 시비를 걸지 않았다.

동창들은 지난번 보다 많이 안 나왔다. 삶이 고달픈 사람들은 아예 동창회에도 못 나왔다.

구건호는 강민호가 준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오늘은 내가 늦게 와서 그 벌로 술값은 내가 내겠다. 마음껏 마셔라.”

“구건호는 앞으로 동창회하면 10분씩 늦게 와라. 그 벌로 술 사고 말이야.”

강민호의 말에 모두 박수를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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