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동경 구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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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에이치 개발은 신사동의 리버스타 빌딩 인수로 돈이 가장 많이 투자된 회사였다.
자본금이 무려 400억이나 되었다. 은행 부채도 1650억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사람보다는 부동산이 돈을 벌어다 주는 회사이므로 크게 벌 것도, 망할 것도 없는 회사였다.
“임대료 받아서 은행 이자주고, 직원들 급여주면 딱 맞겠지.”
강남 대로변의 큰 빌딩 인수로 남들 앞에서 재력가로 행세할 수 있고 추후 세월이 가면 지가(地價) 상승이나 기대해 볼 수 있는 정도의 회사였다.
두 번째 지에이치 미디어는 자본금 3억의 작은 출판사였다. 아마존의 만화 역사책 시리즈 30권을 출간하겠다고 해서 3억이 추가 투자되었지만 돈 많은 구건호의 입장에서는 망해도 크게 깨질 것이 없는 회사였다. 혹시 나중에 중국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라도 하려면 이와 관련된 회사를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급히 차린 회사였다.
구건호가 신경 쓰는 회사는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코리아였다.
지에이치 모빌은 물파산업을 인수한 후 회사이름을 바꾼 회사로 구건호가 투자한 돈은 70억 정도 되었다. 물파의 오세영 회장에게 20억에 인수하면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M&A를 했었다. 그 후 악성 부채를 갚기 위해 구건호는 30억을 추가 투자했고 이어서 직산공장 건물을 짓느라고 20억을 더 투자 했다.
회계처리는 추가 투자 30억은 법인이 구건호에게 빌리는 단기 차입금 형태로 처리했고, 나중에 집어넣은 20억은 구건호의 대표이사 가수금으로 처리했다. 회사가 잘 되면 50억 원은 구건호가 도로 뽑아갈 돈이었다.
디욘코리아는 지에이치 모빌이 투자하는 식으로 되어있다.
납입자본금이 1,000만 달러나 되었지만 현금 출자는 100만 달러고 나머지는 현물 출자다. 즉, 아산에 지금 짓고 있는 공장을 현물출자하면 되었다. 미국에 있는 디욘사 역시 현금 출자는 100만 달러의 절반인 50만 달러만 송금하고 나머지는 원재료나 디욘사에서 쓰던 낡은 기계를 수리하여 현물 출자하는 방식이었다. 디욘사의 입장에서도 큰 투자는 아니었다. 이럴 경우 낡은 기계는 통상 부풀려 계산을 하기도 하였다.
동경 구상의 첫 번째 목표는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코리아의 코스닥 상장이다.
구건호는 자기의 지분이 줄어들더라도 코스닥 상장만이 돌파구라고 여겼다. 물론 구건호는 증권사에 1,700억 가량의 돈이 있고 서울 강남은행의 예금 잔고도 40억이 넘는다. 그러나 기업을 인수하면서 느낀 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난다고 해도 자기 재산을 올인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구건호는 언제가 이런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만약에 강도가 칼을 들고 와서 증권사에 예치된 1,700억을 내 놓겠느냐, 아니면 목숨을 내 놓겠느냐 하면 나는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하리라.]
구건호는 이렇게 하늘에다 대고 외친 적이 있었다.
[누가 나에게 돈이 중하냐, 사람이 중하냐 하면 돈이 중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 누가 명예가 중하냐 돈이 중하냐 하면 돈이 중하다고 말할 것이다.]
구건호는 또 하늘에 이렇게 외친적도 있었다.
[돈을 죽을 때 관속에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한다면 나는 당당히 죽을 때 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구건호는 청담동의 현자 이회장이 말했던 소리가 생각났다. 포천 낚시터에 오면서 족발을 사왔을 때의 이야기였다.
“족발이 먹음직스럽게 생겼네.”
“오다가 포천시내에서 샀어요. 작은 가게지만 위치도 좋고 앞에 평상도 있고 배달 오토바이나 자동차 주차하기도 좋아 잘되게 생겼어요. 이런 가게는 아무 한테 안 물려주고 자기 자식한테만 물려주게 생겼어요.”
이회장이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네 답은 틀렸네.”
“네?”
“이런 가게는 자식한테도 안 물려 준다가 답이네.”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했지만 이 말은 오랫동안 구건호의 머릿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호랑이가 제 말하면 온다던가? 전화가 왔는데 청담동 이회장의 전화였다.
“구사장? 지금 서울인가? 직산인가?”
“서울에 올라와 있습니다.”
“지금 자네가 있는 지에이치 빌딩 앞을 지나고 있네. 성모 병원을 가다가 빌딩을 보니 자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네.”
“성모 병원이요? 어디 아프십니까?”
“아니, 내가 아픈 게 아니라 괴산에 내려간 박도사가 입원해 보러가는 길이네.”
“박도사님이요?”
“위암 초기라네. 위암 정도야 요즘은 병도 아니지.”
“저도 한번 가봐야겠네요.”
“오긴 뭘, 친한 사이도 아닌데. 사업은 잘 되지?”
“예, 사업은 잘 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그럼 수고하시게.”
이회장은 전화를 끊었다.
구건호는 다시 동경 구상의 실천 방법에 대하여 생각했다.
“코스닥에 상장하려면 상장하려는 기업에 대한 요건이 있겠지. 말하자면 부채비율이나 매출액 같은 것 말이야. 내가 경리는 조금 해 보았지만 상장 업무는 해보지 않았단 말이야.”
구건호는 관리인으로 있다가 지에이치 모빌의 상임감사로 눌러 앉은 고희석 감사를 떠올려 보았다.
“그 양반은 법정 기업의 관리인도 해 보고 은행 지점장도 해보곤 했지만 코스닥 상장업무를 해 보았을까? 그건 안 해 보았을 거야. 이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을 영입할까?”
영입 소리가 나오자 구건호는 흠칫하며 지난번에 만나기로 한 S기업 부사장을 떠올렸다.
"그 분도 해 보았을까? 대기업 부사장과 중견기업 사장은 해본 걸로 아는데. 식사를 하면서 넌지시 물어나 보자.
어느덧 밖이 어두워지며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아, 참 내가 공항에서 오느라고 차를 안가지고 왔지. 갈 때 강이사한테 차 좀 태워달라고 해야겠네. 강이사 집이 봉천동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타워팰스까지 태워달라고 하면 너무 돌아가는 건 아닌가?”
구건호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스마트폰을 들고 권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권부장은 청담동 이회장을 모시고 다니는 수행원이었다.
“잘 계셨어요? 부장님.”
“오, 구사장, 웬일이요?”
“회장님하고 성모병원에 오셨지요? 박도사님이 입원한 병실이 몇 호실이에요?”
“별관 5동 902호요.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성모병원이요. 여의도에 있는 성모병원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왜? 오시게?”
“봐서요.”
구건호는 강이사를 불렀다.
“퇴근 안하십니까?”
“저는 조금 늦습니다. 사장님 먼저 퇴근하시지요.”
“내가 공항에서 오느라고 차를 안 가져 왔네요. 내 차는 천안에 있어요.”
“제 차를 이용하시지요. 차는 좀 오래되었지만 타실만 합니다.”
“그럼 신세 좀 지지요. 강남 성모병원까지 부탁할까요?”
“누가 입원하셨습니까?”
“아는 사람이요.”
“저희 집이 봉천동이니까 그 앞으로 가면 됩니다. 비가 오고 퇴근시간이라 차가 좀 밀릴 겁니다. 지금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특히 터미널 앞이 많이 밀립니다.”
“가지요, 그럼.”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건호와 강이사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섰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강이사를 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건호는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인사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B1에서 섰다. 강이사 차는 주차장 제일 좋은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 정수남 반장이 강이사를 보고 쫓아왔다가 구건호를 보고 놀랐다.
“사, 사장님 아니십니까?”
“잘 있었어요?”
구건호가 손을 내밀자 정 반장은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구건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구건호가 강이사의 차를 타려고 하자 정반장이 문을 열어주었다.
차가 서서히 지에이치 빌딩 주차장 출구를 빠져 나왔다.
“차, 바꾼 것 같네요. 전에는 소나타였던 것 같은데 그랜저네요.”
“소나타 타이밍 기어가 나가서 팔아버리고 할부로 이 차를 샀습니다. 6만키로밖에 안 뛴 차입니다.”
“새 차 같은데요?‘
“큰 빌딩 관리책임자인데 그랜저 정도 타야할 것 같아서 큰맘 먹고 샀습니다. 요즘은 중고차도 할부가 되니까요.”
“잘 하셨습니다.”
“사장님 아까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 보셨지요? 우리 빌딩 입주회사의 젊은 직원들도 외제차 타는 사람 많습니다. 임대료는 밀려도 좋은차 타는 사람들 많습니다.”
“허허, 그래요?”
차는 진짜 터미널 앞에서 많이 밀렸다. 가다 서다를 반복 했다. 구건호가 어느덧 졸고 있는 사이에 성모병원에 도착했다.
“사장님! 다 도착했습니다.”
구건호는 성모병원 구내매점에서 음료수와 과일이 든 바구니를 사들고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은 일등실이었다. 병실 안에는 청담동 이회장이 있었고 신사동 빌딩을 판 박회장도 와 있었다.
“비 오는데 왜왔소.”
이회장이 이렇게 말하면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오, 왔소?”
박회장도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침대에 환자복을 입은 박도사는 반쯤 일어나 앉아있는 상태였다. 연배가 비슷한 분들끼리 앉아서 옛날이야기라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썩은 돈 냄새 풍기는 사람이 한사람 더 왔네.”
박도사의 말에 이회장이 핀잔을 주었다.
“이 사람아, 비 오는데 이렇게 과일 바구니 들고 온 사람한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너무 돈 자랑을 해서 그러네.”
“그럼 돈 없는 게 자랑인가?‘
옆에서 박회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애국자인거여. 아, 있는 여기 구사장 봐, 법인세 내고 있지. 여러 종업원들 먹여 살리고 있지. 얼마나 애국자인가?”
이회장이 다시 박도사에게 핀잔을 주었다.
“자네도 엉터리 사주 봐주고 돈 좀 모았으니까 이런 일등실이라도 입원한 것 아닌가? 구사장은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거네.”
“흥! 양전만경(良田萬傾)이 일식이승(日食二升)이네, 이 사람들아.”
“만경이나 되는 좋은 밭이 있어도 하루 두끼밖에 못 먹는다? 요즘 어디 밥만 먹고 사나? 나는 성취 욕구를 위해 돈을 버네. 이 사람아. 기업보국 모르는가?”
“그러니 부생(浮生)이 괜히 바쁘기만 하지.”
이 회장이 구건호를 돌아보았다.
“구사장 왜 안가? 내일 아침에 또 출근할 텐데.”
“하하, 여기 계신 세분 말씀 하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요.”
“저 늙은이 말 들을 필요 없네.”
“내가 어째서. 어휴, 이 중생들을 어이 할꼬.”
“젊은 사람이 왔으니 덕담이라도 해줘야지, 부생이니 뭐니 그런 헛소리 하면 되겠는가?‘
“덕담? 해주지. 책 많이 읽으시게.”
“경영서적은 좀 읽고 있습니다.”
“독서는 기가지본(起家之本)이네.”
“박도사가 몰골은 흉악하지만 언제나 문자 속은 기특하지.”
“예끼, 이사람!”
구건호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많이 늦은 것 같았다.
“하하, 저는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세분 재미있는 말씀 많이 나누세요.”
박도사가 한마디 했다.
“구건호군, 열심히 하시게.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앉아있는 세 사람에게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 밖을 나오니 그새 비가 그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