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62화 (162/501)

# 162

린치 (2)

(162회)

구건호와 김영진 변호사는 담당자인 안젤리나 레인 여사의 안내로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부사장 브렌든 버크가 구건호와 마주 앉았고 안젤리나 레인과 김영진 변호사가 마주 앉았다.

브렌든 버크가 구건호를 쳐다보며 먼저 말했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좋은 파트너를 만나 우리도 기쁩니다.”

“저도 디욘사와 같은 세계적 기업과 함께 일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합자를 위한 초보적 이야기들은 그동안 많이 오고갔기 때문에 별도 협의를 해야 될 사항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류는 이렇게 작성되어 있지만 주요 내용은 여기 메모와 같습니다.”

부사장 브렌든 버크는 계약서 외에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메모한 종이를 구건호에게 보여주었다.

<주요 내용>

1. 합자사의 수권자본금(authorized capital)은 2천만 달러로 하고 납입자본금은 1천만 달러로 한다. 현물 출자할 수 있다.

2. 초기 설립 운영자금은 100만 달러로 하며 본계약 체결 후 각각 5만 달러씩을 1주 이내 현금으로 납입한다.

3. 합자 기간은 20년으로 하며 이후 라이선스 계약이 가능하다.

4. 이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대표이사는 상호 번갈아 가면서 할 수 있다.

5. 기타의 중요 안건은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구건호는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선 디욘 코리아보다는 지에이치 케미칼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디욘사 측에서 동의하지 않았다. 전에는 이 문제에 대하여 전향적 자세를 보이더니 오늘은 완강했다. 따라서 본계약 부칙으로 상호는 디욘코리아로 한다고 했다. 이후 합작기간이 끝나고 라이선스 계약을 하면 그때 가서 상호 변경은 가능하다고 하였다.

구건호도 생각을 바꾸었다.

[디욘코리아도 좋겠지. 아무래도 판매는 지에이치 케미칼 보다는 이름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진 디욘을 넣는 게 좋겠지. 디욘코리아 좋아.]

“상호는 디욘 코리아로 하는데 동의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동의하지요. 하지만 합작기간 동안 동아시아 지역에서 디욘과 다른 국가는 합작하지 않는다 라는 문구를 부칙에 삽입했으면 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합작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 보다는 양사가 사전 상호 협의 한다로 하면 어떨지?”

구건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하지요.”

김영진 변호사가 놀라 구건호의 발을 치며 한국말로 물었다.

“이봐, 구건호, 그거 안 되는 거 아니야?”

“염려 말아. 동아시아 지역 합작은 추후 합작의 필요성이 있으면 디욘과 지에이치 모빌이 동반 진출하는 것으로 보면 돼.”

“아, 그거 였구나... 역시 장사꾼들은 우리와 마인드가 틀려. 대단한 사람들이네.”

구건호가 타이핑 된 부칙을 또 읽어 보았다.

“부칙에는 본계약 체결 후 10일 이내에 한국인 기술자 3명을 선발하여 1개월간 기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군요.”.

“기술자들은 한 달 교육으로는 화학제품 배합을 다 배울 수는 없습니다. 1개월 후 디욘의 기술자들을 3개월간 파견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브렌든 버크 부사장은 디욘사의 이사로 자기와 안젤리나 레인을 추천했다. 구건호도 자기와 영업상무 이름을 이사로 한다고 올렸다. 영업상무에게는 아직 통보도 하지 않고 그렇게 했다.

[신설 합자사는 기술도 좋지만 앞으로 영업도 잘 해야 하므로 영업상무를 이쪽으로 전보 발령을 내야지.]

디욘사의 해외사업부와 공장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합자사 설립 계약 서명식을 가졌다. 구건호와 브렌든 버크가 탁상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에 넣고 서명을 하였다. 뒤에는 김영진 변호사를 비롯하여 안젤리나 레인과 공장 간부 세 사람이 더 와서 서명식에 입회했다. 김영진 변호사는 서명식 사진을 받아서 김앤정 로펌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김앤정 로펌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미국에 나와 있는 김영진 변호사입니다. 우리 로펌의 클라이언트인 지에이치 모빌과 미국 시애틀에 있는 라이먼델 디욘사가 합자사 설립 본계약을 체결 했습니다. 서명식 사진을 방금 보냈으니 각 언론사에 뿌려주시기 바랍니다.”

구건호와 김영진은 이날 저녁 브렌든 버크씨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브렌든 버크씨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눈썹 짙은 남자를 소개했다.

“디욘사의 멕시코 합자사 부사장으로 있던 애덤 케슬러씨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디욘코리아가 생기면 부사장으로 갈 사람입니다.”

“오, 그래요? 반갑습니다.”

구건호가 웃으며 악수했다. 김영진 변호사도 웃으며 악수했다. 구건호도 이제 간단한 영어 인사말을 잘 했다. 그동안 사내에서 호서대학 원어민 강사를 모셔다가 교육을 받아 실력이 많이 늘었었다.

구건호가 명함을 주고 레슬러씨도 명함을 주었다.

큰 일을 치루고 나서 그런지 디욘사측이나 구건호 일행도 술을 많이 마셨다. 안젤리나 레인은 아름다운 소프라노 음성으로 노래까지 불렀다.

구건호와 김영진 변호사는 호텔로 돌아왔다. 만찬장이 다운타운에 있는 쉐라톤 호텔과 멀지 않아 구건호와 김영진은 술도 깰겸 걸어서 호텔로 왔다.

“술 좀 깨냐? 인제?”

“좀 걸으니까 낫네.”

“차 한 잔 하고 갈까?”

“좋지. 너 이마빡 까진 이야기도 듣고.”

구건호와 김영진은 호텔 내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홍차를 시켰다.

구건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김영진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후가 있을 것 같군. 밝혀내지 못하면 제2의 테러가 있을 것도 같은데?”

“나도 그 생각이야. 우선은 이쪽 일이 급해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돌아가서 재조사 의뢰를 하려고 해.”

“흠.”

“더구나 본계약을 하러 시애틀에 오는데 맞 고소가 시작되어 조사한다고 자꾸 부르면 성가시잖아. 더구나 박종석 부장에게 맞은 사람은 더 많은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일이커지면 귀찮기도 하겠지. 물론 호텔내에 CCTV가 있으니 사건이야 밝혀지겠지만 말이야.”

“놀랍군.”

“뭐가?”

“흥분하지 않는 구사장의 인내력에 말이야.”

“헛소리는!”

“아니야. 우리와 거래하는 클라이언트 중에는 부자가 몇 사람 있어.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는가? 바로 너와 같은 자제력이야. 이들은 발끈하지 않아. 말도 천천히 해.”

“자꾸 헛소리 하지 말고 이 사건만 이야기해!”

“이 사건은 변호사도 필요 없는 사건이야. 변호사라는 것은 다툼이 있을 때 필요하지만 이 사건은 확실한 형사사건 아니야? 축하한다. 너는 마빡에 네 바늘 꿰매고 많은걸 얻겠구나. 부자는 역시 달라도 뭔가 달라.”

”나는 조무래기들한테 몇 대 맞은 것 보다는 배후를 밝히고 싶어.“

“지금쯤 저들이 승리했다고 방심할 때 급습을 한다 이거지?”

“그래서 너한테 부탁할 것이 있다.”

“뭘?”

“일단은 내가 아산 경찰서에 가서 재조사 의뢰를 하겠다. 그리고 너한테 전화를 하지.”

“재조사하면 밝혀질 텐데 무슨 전화를 해.”

“경찰 조직에 대하여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나는 시간 끌기가 싫어서 그래. 경찰은 민중에 충성하는 집단이 아니네. 상사에 충성하는 집단이네.”

“호, 구건호가 역시 대단해. 운이 좋아 돈을 번 사내로 알았는데 내공이 역시 대단해. 나보고 경찰 고위층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 이거군.”

“배후가 실력자라면 경찰에도 손을 쓰겠지. 그래서 나는 전방위 압박을 하려고 해.”

“어떻게?”

“손쓸 틈을 주지 않고 나한테 무릎을 꿇게 해야지.”

“흠.”

“깍두기 몇 놈 집어넣는 것 보다는 사업상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이지노팩을 의심하는 구나.”

구건호는 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역시 사업하는 사람들은 명분 보다는 실리야.”

구건호가 홍차를 마시고 네프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김앤정 로펌에 경찰 출신이 있지?”

“있지. 고문으로 영입한 경찰청장 출신도 있어.”

“내가 사건 재조사 의뢰하면 바로 그분에게 아산 경찰서 서장에게 전화 한통 해달라고 해라.”

“뭐라고 하면서 전화할까?”

“그냥 사실만 제대로 밝혀달라고 하면 되지 뭐. 가해자나 피해자중 어느 편에 서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어.”

“그러면 되는 거야?”

“이후 언론 플레이는 내가 하지.”

구건호는 시애틀에서 돌아와 계약서를 임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울 신사동의 지에이치 빌딩으로 보내 비서 오연수씨에게 번역을 시켰다.

새로 채용한 비서가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번역 후 이메일로 보내드리면 됩니까?”

“아니, 출력해서 5부를 만들어 등기 속달로 부쳐줘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건설 담당 윤이사를 불렀다.

“계약서 작성했으니 토목공사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업체 선정은 다 해 두었습니다. 바로 공사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만 하시고 공사 시작 시기는 약간 조정을 하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그런 게 있습니다.”

구건호는 아산 경찰서에 들어가 사건 재조사 의뢰를 하였다. 박종석의 진단서와 자신의 상해진단서를 첨부 시켰다. 진단서는 4바늘 꿰매나 15바늘 꿰매나 2주 진단이었다. 상처가 낫는 시기는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구건호는 2주 진단의 상해진단서를 제출했다. 단, 박종석은 다른 부위 상처도 있어 가까스로 3주 진단서를 발급 받아 제출했다.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사건 재조사 의뢰했다.”

“알았다. 우리 고문 변호사에게 바로 연락할게.”

“고맙다.”

“그런데 경찰서는 수사 진전이 있나?”

“아직 움직임이 없어. 담당 형사가 한번 전화는 했더군. 재조사 의뢰 사실이 있느냐고 말이야.”

“하하, 알았다. 형사들 엉덩이에 불 좀 부쳐 주라고 하지.”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지난번에 준공식 때 지역 기자들 몇 명 왔었지요?”

“예, 왔었지요.”

“지난번 준공식 때 와줘 고맙다고 하고 내가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한다고 하십시오. 그때 못 왔던 다른 신문사 기자들도 더 오라고 하세요.”

기자들 네 명이 왔다. 기자들은 기업인들이 부르면 좋아했다. 준공식 때 왔던 경제지 기자가 아는 채를 했다.

“사장님은 미국의 유명회사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며칠 전 우리 신문에 나왔던데요?”

경제신문은 김앤정 로펌에서 제공한 기사자료를 게재한 적이 있었다.

다른 기자도 말했다.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우리 지역의 자랑입니다.”

구건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충남 북부 지역에 합작 공장을 세울까 했는데 지금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왜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

“치안 부재가 심각합니다. 번화한 호텔 광장에서 이유도 없는 묻지마 집단 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 기업인 라이먼델 디욘사도 치안 부재의 지방 투자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장을 경기도 지역으로 옮길까 심각하게 검토 중에 있습니다.”

“경찰들은 뭐 하는 거야?”

기자들이 언성을 높였다.

“이런 것은 기사화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치안에 대한 각성을 할 것 아닙니까?”

“맞아, 사실이 그렇다면 문제 있어.”

“어이, 박기자 한줄 긁어. 나도 돌아가면 한줄 긁어 본사에 전송할 테니까?”

경찰서장은 자기의 대선배격인 전임 경찰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담당 형사를 불렀다.

“어이, 김형사. 이틀 전에 재조사 접수된 집단 폭행사건 있지? 온양 관광호텔 폭행사건 말이야.”

“예, 있습니다.”

“그거 어떻게 됐나?‘

“지금 재조사 하고 있습니다.”

“그거 빨리해. 높은데서 관심 갖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CCTV 분석 중에 있습니다.”

아산지역이 치안 부재로 외국인 투자 유치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문 보도가 나가자 지역 기관장들이 들고 일어났다.

“합자사 투자 유치도 힘든데 이미 계약한 것도 다른 지역으로 뺐겨? 경찰은 뭐하고 있는 거야!”

서장실로 전화가 빗발쳤다.

“나 상공회의소 충남지역 회장이요. 서장님은 신문 보셨소? 경제를 살려야 할 판에 죽일 셈이요?”

“신문 보았습니다. 지금 재조사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장이요? 나 중소기업 협의회 회장이요. 신문 보셨소?”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모두 잡아들이겠습니다.”

서장은 화가 났다.

“수사과장, 수사반장, 담당형사 모두 내방으로 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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