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지에이치 개발 신규 채용 (1)
(158)
성일 폴리머 사장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지노팩에서 월 3억 납품 받는 것을 월 4억으로 늘려주어 고맙긴 한데 지에이치 모빌을 잃게 되었으니 문제네.”
성일 폴리머 사장은 이지노팩 회장을 찾아갔다.
“지에이치 모빌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약속대로 월 5억으로 납품을 늘려주십시오.”
“알겠소. 늘려주지. 한데 법원에서 지급 명령서를 받으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저는 회장님을 도우려다 지에이치 모빌이라는 거래처를 잃게 되었습니다.”
“걱정 마시오. 그까짓 작은 회사 납품 해봤자 1억 정도 아니오? 우리가 다 커버해 주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그런데 지에이치 모빌 사장 구건호라는 사람이 우리와 거래를 끊으면서 나쁜 소문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무슨 소문?”
“우리와 거래 안하게 된 것이 우리 제품이 나쁘고 불순물이 나온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또 납품 단가가 너무 세다고 여기 저기 떠들고 다닙니다.”
“역시 악랄한 놈이군.”
이지노팩 사장은 사내 변호사를 불렀다. 이지노팩은 규모가 큰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 내에 법무 팀도 있고 사내 변호사도 있었다. 사내 변호사가 법무 팀의 팀장도 맡고 있었다.
“내가 성일 폴리머 사장에게 법원의 지급명령서만 받아오면 바로 알려 달라고 하였소.”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건호란 놈이 지급명령 나오자마자 3억을 갚으면 어쩌지요? 그놈은 강남 빌딩까지 매입하는 것으로 보아 돈이 좀 있는 놈 같은데 말이요.”
“구건호 사장이 돈을 갚으면 성일 폴리머 사장이 받았다고 자랑하고 다녀야 됩니다.”
“자랑을?”
“예, 그렇습니다. 자랑하고 다녀야 합니다.”
“무슨 이유로? 옳아. 다른 채권자들 귀에 들어가라고 해야 되겠군.”
“그렇습니다. 지에이치 모빌은 아직도 다른 채권자들이 많습니다. 성일 폴리머가 돈을 일시불로 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지에이치 모빌로 달려갈 겁니다.”
“역시 로스쿨 출신들은 머리가 좋아. 당신처럼 말이요.”
“법원의 지급 명령서가 나왔는데도 제 날짜에 못 갚으면 바로 집달리 부쳐 강제 집행해야 합니다.”
“거기 있는 기계류나 자동차 같을 걸 압류한다는 말이겠군.”
“그것보다는 지에이치 모빌의 주요 거래처인 S기업 같은데 매출채권을 압류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에이치 모빌이 나쁜 소문도 나고 S기업도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S기업이 지에이치 모빌에 대하여 갖는 이미지 말입니다.”
“그럼 거래를 축소시킬 수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지에이치 모빌의 재무구조가 나쁜 것으로 알고 거래를 축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 당신 로스쿨 들어갈 때 리트점수가 130점이었다고 했지?”
“140점이었습니다.”
“그랬던가? 허허.”
“그런데 지에이치 모빌도 대응작전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그쪽도 우수한 인력들이 있고 구건호 사장 또한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피고 측 답변서 복사한 것을 보니 지연작전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끙.”
“아마도 이 사건을 고등법원까지 끌고 갈 것 같은 예상이 듭니다.”
이지노팩 회장은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다.
“알겠소. 나가 보시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로스쿨 출신 사내 변호사는 회장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이지노팩 회장이 구건호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이지노팩 캘리포니아 공장 사장으로 있는 아들이었다.
“아직도 지에이치 모빌에 구건호인지 하는 애가 속을 썩입니까?”
“내가 다 만들어 놓은 디욘사와의 합작 건을 어디서 그런 개뼉다구 같은 놈이 끼어들어서 속을 썩이는가 모르겠다.”
“지난번에 제가 한국에 갔을 때 성일 폴리머인가 뭔가 하는 회사에게 소송하라고 한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도 날짜를 오래 끌 것 같아.”
“제가 한국에 들어가서 손 좀 보아야겠군요.”
“나도 마음 같아선 구건호란 놈 배아지를 걷어차고 싶은데 그럴 수야 있나.”
“걱정 마세요. 제가 비록 이곳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USC) 대학을 다녔지만 지금도 서울 강남에 가면 아는 동생들이 많습니다.”
“물리적 행사는 안 된다. 잘못하면 시끄러워질 수도 있어.”
“걱정 마시라니까요.”
“나 봐라. 야구 방망이 한번 잘못 들었다가 개망신당하지 않았느냐? 네가 룸싸롱에서 봉변당했을 때 내가 야구 방망이 들고 가 몇 대 쥐어박은 사건 말이다.”
“그때는 제가 어려서 그랬지요. 지금은 걔들 꽉 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걔들이 제 발바닥이라도 핥으라면 핥습니다.”
“어쨌든 직접적 물리적 행사는 하지마라. 다른 방법으로 연구해 보자.”
“제가 다음 주에 한국 들어갑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구건호는 일주일에 두 번은 서울 신사동에 있는 지에이치 빌딩의 19층으로 출근했다. 나머지 3일은 천안 직산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직산 공장에 출근하여 결재서류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데 지에이치 개발의 강부장한테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저... 경리와 비서 모집 서류 접수는 다 했는데요. 인원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네요.”
“몇 명이나 지원했는데 그래요?”
“워크넷에 광고했는데 채용 정보 사이트나 시험 정보 사이트에서도 자기들 멋대로 광고를 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비서는 지원자가 750명이고 경리사원도 경력사원 위주로 모집했는데 320명의 지원서가 도착했습니다.”
“지에이치 개발로 모집광고를 냈는데 그렇습니까?”
“그게... 저...”
“혹시 지에이치 모빌이나 지에이치 미디어 이름을 같이 넣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사장님 뜻을 잘 몰라 모집광고를 3개회사 이름을 모두 넣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모집 광고의 문구는 이랬었다.
[당사의 사세 확장에 따라 아래와 같이 사원을 모집합니다.
비서 ---- 0명
(4년제 대학 졸업자로 영어에 능숙한 분 우대)
경리 ---- 0명
(4년제 대학 상경계 출신으로 경력 5년이상인 분.)
제출서류 --- 이력서, 자기소개서, 졸업증명서, 어학자격 증명서(비서직
에 한함), 회계 관련 자격 증명서(경리직에 한함).
제출처 --- 서울 강남구 신사동 지에이치 빌딩 19층 지에이치 개발
총무과 (담당: 정지영)
(주) 지에이치 개발
(주) 지에이치 모빌
(주) 지에이치 미디어
(주) 지에이치 중국 강소성 기차 배건 유한공사 ]
구건호는 약간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심사를 안할수도 없었다.
“나는 그 서류들 볼 시간이 없습니다. 지에이치 모빌의 총무부장을 보낼 테니까 강부장님하고 두 분이 서류 심사해서 면접 볼 3사람을 뽑아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내일 모래 서울 출장 좀 가셔야겠습니다.”
“네? 어디로요?”
“강남 신사동에 가면 지에이치 빌딩이 있습니다. 거기 19층에 가면 지에이치 개발이란 사무실이 있습니다. 거기 강성일 부장을 찾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가서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지에이치 개발의 비서와 경리를 모집하는데 엉뚱하게 중국회사까지 4개 회사 이름으로 모집 광고를 낸 모양입니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그런데 가서 두 분이 서류 심사도 하시고 1차 면접도 보세요.”
“지원자가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비서직 750명, 경리직 320명입니다.”
“많긴 많네요. 그럼 저희들이 서류 심사에서 20명 정도 뽑아 면접을 보고 5명씩을 선발하겠습니다. 최종 면접은 사장님이 보시면 되겠습니다.”
“5명도 많아요. 최종 면접은 3명으로 줄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었다.
지역 단체나 각종 경제단체의 사장단 모임에서는 자주 친선 골프대회를 가졌다. 그러나 구건호는 사양을 하였다. 다른 업체의 사장들과는 무언가 잘 맞지 않는 듯 했다. 우선 그들은 시끄러웠다. 목소리도 크고 얼굴도 두꺼운 것 같았고 성추행의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자수성가형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업을 물려받은 금수저들이 많았다.
“구사장처럼 젊은 사장들이 와야 자리가 빛날 텐데.”
“아휴, 저는 골프를 잘 못 칩니다.”
“아, 이런 사장단 모임에도 자주 나와야 거래처도 확장되고 정보도 얻고 운동도 하고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긴 하지만 약속이 있어서요...”
“구사장은 다른 좋은 모임들이 많은 모양이야. 참 구사장 공장 건물은 지나가다 보았는데 멋있더군.”
구건호는 가끔 온양 관광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고 사우나를 즐겼다. 공장이 직산으로 옮긴 이후로 이쪽이 멀었으나 그래도 자주 찾았다.
구건호는 이날도 온양 관광호텔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점심이나 먹을까 하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내부 보다는 다른 곳에 가서 식사를 할까? 영인산 쪽에 가서 산채 비빔밥이나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주차장 쪽에 서서 대화를 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발견하였다.
“어? 너, 박종석 아니냐?”
“어, 형!”
“너, 일요일이면 인천에 자주 갔잖아. 이번 주에는 못 갔구나.”
이렇게 말하면서 구건호는 박종석 옆에 서 있는 여자를 슬며시 보았다.
“어, 참. 인사해. 우리 회사 사장님이셔.”
“안녕하세요.”
여자는 흰 피부에 안경을 낀 여자였다. 참하게 생겼다. 웃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누구? 혹시 같이 폴리텍 대학에 다닌다는...”
“하하, 맞아.”
“오, 그렇구나. 둘이 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우연히 만나니 반갑다.”
여자는 지갑을 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약간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구건호는 여자가 천생 여자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박종석에게 딱 알맞은 사람이야.]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가자! 밥은 내가 살게.”
“아니, 저, 저.”
“따라와, 임마!”
구건호는 이들을 데리고 호텔 안에 있는 한정식 집으로 갔다.
구건호는 이것저것 많이 시켰다. 맥주도 시켰다.
“어, 형! 뭘 이렇게 정신없이 시켜?”
“내가 정신없게 안 생겼냐? 미래의 제수씨 될 분이 앞에 앉았는데.”
제수씨라는 소리에 여자는 화들짝 놀라는 눈치였다. 박종석은 헤헤 거리며 멋 적은 웃음을 지었다.
여자는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접시에 덜어 구건호 앞에 가져다 놓았다.
“아니, 아니,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옆에 분만 챙겨주면 됩니다.”
박종석이 고기를 씹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 사장님 좋지?”
“네, 그런데 박종석씨는 어떻게 사장님께 가끔 반말을 하세요?”
이 말에 구건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박부장과 저는 친 형제간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렸을 때도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포천에서 공...”
박종석이 테이블 밑에서 왼발로 구건호의 다리를 찼다. ‘포천에서 공돌이 생활할 때도’ 란 말을 못하게 막는 것 같았다.
“저는 사장님이 너무 젊으셔서 놀랐어요. 우리 회사 사장님은 60대이셔요.”
“아, 제 4공단에 있는 공장이라고 했지요? 회사는 잘 되지요?”
“네, 잘돼요.”
“연구실에서 근무합니까?”
“네, 품질관리팀에 있다가 연구실로 갔는데 인문계 출신이라 어려움이 많습니다.”
여자가 또 맑게 웃었다.
구건호는 앞의 두 사람을 보았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쌍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