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54화 (154/501)

# 154

이지노팩 회장의 분노 (3)

(154)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2,300억이 있어서 신사동 빌딩을 인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채를 안고 인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임감사가 의심에 찬 눈으로 구건호를 보았다.

“그래도 자기 밑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은행 지점장 출신의 상임감사는 구건호의 능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젊은 사람은 돈이 얼마나 있나? 언제 그 많은 부를 이루었는가?]

상임감사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구건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내일 모래 서울로 올라가시면 신사동 리버스타 빌딩의 18층으로 가세요. 거기 가셔서 하성산업의 박회장님한테 인사를 드리세요. 그 빌딩의 주인입니다. 지에이치 모빌의 구건호 사장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하면 잘 알겁니다.

“전화는 미리 말씀드릴 거지요?”

“당연히 해 놓겠습니다.”

“저희가 가서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먼저 감사님은 그 빌딩의 근저당 설정관계, 보증금 현황, 임차료, 감가상각과 수선충당금 현황, 세금 체납 여부를 체크해 주십시오. 필요하시면 경리부 직원 한사람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거기 가시면 박회장 보다는 경리부장을 만나세요. 30년 경리일을 했다는 5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알겠습니다.”

“윤이사님은 거기 가셔서 유상무라는 사람을 만나십시오.“

“유상무요? 알겠습니다.”

“건물의 설계도면을 확인하시고 건물의 하자보수관계, 균열 등을 점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박종석 부장은 건물의 배관이나 보일러, 엘리베이터, 전기와 배수 시설 등을 점검하세요. 기계식 주차장의 작동 여부도 체크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사 일은 대충 끝내시고 모래 아침 출발하도록 하세요.”

“차는 누구 차로 갑니까?”

“차는 여러 대 가지고 가지 마시고 박종석 부장 차 한 대만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박부장은 경리에 가서 업무가불 좀 해 가지고 가세요. 통행료도 들어가고 식대도 들어가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알겠다고 하면서 사장실을 나가자 바로 영업상무가 들어왔다.

“거래처인 만동전장에서 사장님을 들어오시라고 하는데요.”

“만동전장에서요? 무슨 일로요?”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 전무이사가 직접 보자는 데요.”

만동전장은 대기업 코스피 회사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회사로 계열사도 많은 거대기업이었다.

“거기 우리 납품액이 얼마지요?”

“S기업 다음으로 많습니다. 월간 10억쯤 됩니다.”

“상무님이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화까지 내면서 안 된답니다.”

“지금 그 회사에 우리가 크레임 걸린 것 없지요?”

“없습니다.”

“무슨 일일까? 오후에 영업상무님이랑 같이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오후에 영업상무와 함께 평택 포승 국가산업 단지에 있는 만동전장을 찾아갔다.

대기업이라 여기서도 신분증을 맡기고 방명록에 서명을 한 후 공장엘 들어갈 수 있었다.

“가전제품을 많이 만드는 회사라 수출을 많이 하겠군요.”

“그래서 평택항이 가까운 곳에 있지 않습니까? 제2공장도 마산항이 가까운 창원공단에 있고요.”

영업상무는 싱글벙글 웃었다.

“전무이사가 평택에 있는 사람이라 좋습니다. 창원에서 불렀다 하면 가는 데만 반나절 걸립니다.”

대기실에서 한참 기다리자 전무이사가 구매담당 부장과 함께 들어왔다.

“구사장님은 지난번 협력사 회의 때 한번 보았지요?”

“만동전장 회장님 주최의 골프 친선대회 때 한번 뵈었었지요.”

“아, 그랬던가요?”

전무이사는 의자를 끌어당기며 구건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혹시 이지노팩 회장님을 잘 아십니까?”

“압니다.”

영업상무는 이지노팩이란 회사 이름이 나오자 눈을 껌벅거렸다.

“이지노팩은 우리와 거래가 없는데요.”

“상무님은 가만히 계세요.”

갑 회사의 전무이사가 한마디 하자 을 회사의 영업상무는 깨갱 하면서 고개를 움츠렸다.

구건호가 실실 웃었다.

아무리 갑 회사의 전무이사지만 너는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이 구건호의 뇌리에 있었다.

“무슨 말이 있습니까?”

“이지노팩 회장님과 우리 회장님은 친분이 있습니다. 이지노팩 회장이 우리 회장님에게 지에이치 모빌과 거래를 하지 말라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구건호 사장이 인성이 불량한 사람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치사하신 회장님이군요.”

“뭐, 뭐요?”

영업상무는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가 궁금했다. 모두 처음 듣는 소리들이었다.

구건호가 차분하게 말했다.

“전무님은 미국의 라이먼델 디욘사를 아시지요?”

“알지요. 세계적 케미칼 회사 아닙니까?”

“원래 이지노팩은 디욘사와 합작 공장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흠, 그런 사실이 있었던가요?”

“무리하게 합작 조건을 51:49로 하자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습니다.”

“흠.”

전무이사는 팔짱을 끼고 흥미 있다는 듯이 구건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라이먼델 디욘사는 합작파트너로 우리와 손을 잡았습니다.”

“뭐, 뭐요? 지에이치 모빌과 말이요?”

“그렇습니다. 전에 있었던 아산공장 부지 위에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지요. 합작 조건은 대등한 50대 50입니다.”

“국제적 합작조건은 그래야 되겠지요.”

“이지노팩 회장은 합작을 못하게 되니까 화가 난겁니다. 전화로 나를 불러 건방진 놈이라고 욕을 하며 악을 씁니다. 따질 것은 디욘사에게 가서 따지지 왜 저한테 욕을 하고 그럽니까? 먼저 욕을 하신 분은 이지노팩 회장님인데 저보고 인성이 나쁘다고 하시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정말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이지노팩과 지에이치 모빌 종업원들을 불러 은밀히 조사해 보십시오. 어떤 사장이 더 인성이 고약한가를 말입니다. 이지노팩 사장님은 성추행 소문도 있습니다.”

“성추행이요?”

“온양관광호텔에서 충남 기업인 모임이 있을 때 들은 소리입니다. 거기 여비서하고 그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구사장님 이야기를 간추려서 내가 우리 회장님께 보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디욘사하고 정말 합작하는 겁니까? 지에이치 모빌하고요?”

“본 계약은 체결하지 않았고 현재 의향서만 체결돤 상태입니다. 실사단도 다녀갔고요.“

“실사단도 다녀갔다? 부지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조만간 계약이 되겠군요. 그러나 저러나 지에이치 모빌도 대단합니다. 작은 회사가 어떻게 그런 세계적 기업과 합작을 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디욘사가 우리와 합작한다는 것은 경제신문에도 보도가 된 사실입니다.”

“그랬던가요? 신문을 안 봐서 몰랐네요. 아무튼 축하드리고 이 사실도 회장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만도전장과 지에이치 모빌의 전신인 물파산업은 수십 년 간의 협력사로 공생을 해왔습니다. 전무님께서 마무리를 잘 지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민혁이 창호회사를 하나 더 뚫었다고 하였다.

“이번에도 리스캉이 소개해 주었나?”

“아니야, 이번엔 금계건설 사장 선칭꿔가 소개했어. 지난번에 구사장이 화장품 세트 선물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야.”

“하하, 설마 그렇겠어?”

“그래서 이번에 우리 엄마하고 아버지가 중국 들어오는데 화장품 세트 좀 들고 오라고 했어.”

“부모님이 관광오시나?”

“신부될 사람 부모님하고 상해에서 상견례를 하기로 했어.”

“그래? 잘됐구나.”

“우리 엄마하고 아빠는 요즘 지역 학습 센터에서 하는 중국어 교육 받느라고 정신없어.”

“하하, 그래?”

“참, 창고는 잔금 다 주었다. 물건 쌓아둔 것이 없어서 경비원은 아직 채용 안했어.”

“알겠다. 수고해라.”

상임감사와 윤이사, 그리고 박종석은 서울 출장을 갔다가 돌아왔다.

먼저 상임감사가 구건호에게 보고하였다.

“리버스타 빌딩의 박회장님도 만나 뵈었고 경리부장도 만났습니다. 경리부장이 부채현황과 보증금, 임대료 현황 등을 액셀에 잘 정리해 놓았더군요. 우리가 올줄 알고 정리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얼마에 인수하면 타산이 있겠습니까?”

“2000억 이하에 매수한다면 승산이 있겠습니다. 그러면 자기자본 400억으로도 인수 가능하겠습니다. 임대보증금이 있으니까요.”

“그 정도 선에서 매입했다고 하면 이후 운영에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금융이자와 인건비와 운영비, 감가상각과 수선금 충당금까지 합치면 빌딩 주인은 월 8천에서 1억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400억 투자한다면 겨우 은행이자 정도 나오는 셈입니다. 정기예금 이자보다는 약간 높겠습니다.”

“400억짜리 공장 운영보다 훨씬 못하겠네요.”

“하지만 빌딩은 지가 상승이 있습니다. 해가 지나면 나중에 임대료도 올려서 받을 수 있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빌딩을 매각한 주인은 얼마를 가져갈 수 있습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그 정도 규모의 빌딩이라면 주인은 빌딩 매각 대금을 2100억은 달라고 할겁니다. 그래야 100억은 떨어질 테니까요.”

“그렇게 못 준다면요?”

“안 팔겠지요. 지금 크게 남는 것이 없어서 그렇지, 손실 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흠.”

“저도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윤이사가 메모한 종이를 들고 말했다.

“말씀하세요.”

“유상무라는 사람을 만나 도면은 확인했습니다. 아직 매매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도면은 넘겨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테지요.”

“균열된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인수하면 보수를 해야 될 입장이고 4층 비상구 난간은 교체해야 합니다. 지하실 물새는 곳이 있어서 방수 공사를 해야 됩니다. 다른 곳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도 보고를 하겠습니다.”

박종석도 메모를 들고 말했다.

“보일러실은 이상이 없었고요. 전기시설 중 비상벨 작동은 일부 고장 난 상태입니다. 지하주차장 기계가 고장나있고 엘리베이터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최근 고친 흔적이 있습니다.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구건호는 출장 갔던 세 사람을 보내놓고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400억 털어놓고 인수를 해?”

구건호는 전자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은행 강남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사동 2천 억 짜리 빌딩 인수하는데 65% 지원해 줄 수 있겠습니까?”

“본점과 상의해야 합니다.”

“상의를 해 보십시오.”

구건호는 빌딩주인 박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수가격은 감정가의 90%를 제시합니다.”

“그렇게는 안합니다. 나도 손에 쥐는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니요?”

“저도 자금이 딸려 그 이상은 어렵겠습니다.”

“그러면 이 거래는 끝난 겁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었다.

이후 구건호는 박회장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박회장 역시 구건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은행 강남 지점장한테 전화가 왔다.

“본점과 상의를 했습니다. 감정가격의 60%만 우리가 융자해 드립니다.”

“그럼 인수는 어렵겠습니다. 허허.”

“대신 5%는 우리은행 계열인 강남 케피탈에서 지원해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구사장님이 요구한 65%가 되는 것입니다.”

“캐피탈은 이자가 비쌀 텐데.”

“우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청담동 이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박회장은 만나보았나?”

“감정가의 90%를 제시하니까 안 판다고 하네요.”

“90%면 됐지. 뭘 더 달라고 해? 그 영감이 죽을 때 그 빌딩을 짊어지고 가려는가?”

“남는 것이 없답니다.”

“흠, 그래? 내가 한번 이야기 해보지.”

이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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