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53화 (153/501)

# 153

이지노팩 회장의 분노 (2)

(153)

구건호는 철거 현장에 있었던 윤이사를 불렀다.

“새로운 공장을 지을 건축설계를 의뢰하십시오. 혹시 미국 쪽에서 일하는 건축 설계사 아는 분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LA에서 활동하는 후배도 있고 또 전에 거래하던 설계회사도 있습니다.”

“그럼 미국 쪽에다 의뢰하십시오.”

“공장 설계라면 우리나라에도 실력 있는 설계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오, 미국 쪽에다 의뢰하세요. 단 설계 들어가기 전에 시애틀에 있는 라이먼델 디욘사를 방문하고 설계 하라고 하세요.”

“지난번에 실사 나왔던 회사 아닙니까?”

“큰 회사들은 일반 방문객 공장 견학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설계사들 보고 한번 디욘사를 벤치마킹 해 보라고 하세요. 생산라인의 길이나 넓이를 고려한 건물을 설계하라고 하세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LA쪽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단, 공장의 인허가나 관청 관련일은 윤이사님이 여기서 지원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지요.”

구건호는 청담동 이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회장님.”

“오, 구사장. 사업 잘 된다며?”

“강남 박도사님은 고향인 괴산으로 가셨나요?”

“갔지. 요즘 청학정사에 틀어박혀 책만 보고 있다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강남 아줌마들이 거기까지 가서 박도사를 괴롭히는 모양이야. 요즘 세상은 교통이 발달해서 어디 숨을 곳도 없네.”

“하하, 그렇군요.”

“왜 전화했나?”

“강남 신사동 리버스타 빌딩의 박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박회장을?”

“그렇습니다.”

“꼭 인수하고 싶은가?”

“박회장님이 꼭 판다면 덤벼볼 생각입니다.”

“왜 그렇게 빌딩에 집착하는가? 수익률도 별로인데.”

“제가 서울에 가면 앉아있을 자리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푸핫핫핫.”

“왜 웃으십니까?”

“어쩌면 그렇게 내 젊은 날과 똑 같은가!”

“예?”

자네 아산이나 직산공장 사장은 다른 사람을 앉히려고 그러지?”

“이회장님 혜안을 누가 감히 속이겠습니까? 아직은 모르지만 그럴 것도 같습니다.”

“좋아, 소개해 주지. 박회장은 노회한 구두쇠니 조심하게.”

“감사합니다.”

찬바람이 제법 불었다.

10월도 가고 11월이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자동차의 윈도우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윤이사가 보고를 하러 사장실로 들어왔다.

“LA에 있는 후배가 이곳 아산 공장의 설계도면을 만들고 싶답니다.“

“라이먼델 디욘사의 공장을 가보았다고 합니까?”

“세세한 구석까지 다 보고 왔답니다. 디욘사 공장을 지을 때 설계를 맡았던 시애틀의 건축회사도 알아내 자문도 받았답니다.”

“그래요?”

“설계사가 우리 공장을 보러 다음 주에 옵니다.”

“오게 되면 윤이사님이 잘 안내해 주세요.”

“해외 설계의뢰는 법인 대표자의 의뢰서와 법인 등기부등본 등의 번역 공증서가 들어가야 합니다. 또 설계의뢰는 사장님의 서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윤이사가 나가고 얼마 있다가 청담동 이회장한테 전화가 왔다.

“일전에 신사동 리버스타 빌딩 박회장을 소개해 달라고 했었지?”

“네, 그랬습니다.”

“내가 깜박 잊고 있었네. 조금 전에 통화를 했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박회장을 잡아먹을 젊은 귀신이 하나 나타났다고 그랬지.”

“예?”

“그랬더니 그 친구가 뭐라고 말하는지 아는가?”

“뭐라고 하셨는데요?”

“이제 잡혀먹을 나이도 됐지. 그러더군. 옛날에 펄펄 날던 영감인데 자기나 나나 늙으니까 별수가 없는 모양이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그럼 언제 찾아뵐까요?”

“내일이라도 찾아보게. 그 영감 죽을지도 모르니.”

“하하, 별 말씀을. 내일이라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증권사 지점장에 전화를 했다.

“돈을 일부분 빼야겠는데요.”

“얼마나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400억이요?”

“예? 400억이요?”

“내일 서울 강남은행에 이체해야 되니까 준비해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구사장님을 찾아 뵈려든 참이었습니다. 제가 좋은 상품을 하나 소개해 드리지요.”

“부동산 매입용입니다. 액수가 커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구사장님. 그러지 마시고 저도 한번 밀어주십시오.”

“지점장님은 다음 기회에 밀어드리지요.”

구건호는 박회장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비서인 듯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박회장님을 바꿔주십시오.”

“어디십니까?”

“충남 천안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의 사장 구건호라고 합니다.”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한참 후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를 찾습니까?“

“지에이치 모빌의 사장 구건호입니다.”

“청담동 이회장이 말하던 사람이요?”

“그렇습니다. 내일 찾아뵈려고 하는데요.”

“내일 2시 넘어서 오세요. 오전에는 내가 침 맞으러 한방병원에 가요.”

“알겠습니다.”

“여기 위치가 어딘 줄 아시오?”

“위치는 대강 압니다.”

“18층으로 오세요. 하성산업이라는 간판이 있는 사무실이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하성 산업? 리버스타 빌딩이라 한문으로 하성(河星)이라고 하는 건가.”

구건호는 신사동 빌딩 주인 박회장을 만나기 위해 직산을 출발했다. 북천안 인터체인지에서 신사동 까지는 신호도 없이 고속도로를 똑바로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양재동에서 부터 반포인터체인지까지는 차가 엄청 밀릴지도 모른다. 좀 일찍 출발하자.”

구건호는 점심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때웠다.

리버스타 빌딩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위에 있는 입주기업 간판들을 쳐다보았다. 경비원이 다가왔다.

“어딜 찾으십니까?”

“하성산업 박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박회장이란 말에 경비원이 화들짝 놀랐다.

“18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경비원은 엘리베이터 문까지 열어주었다.

하성산업은 직원들도 없었다. 빌딩을 관리하는 사무실은 다른데 있는 듯 했다. 50세가 가까운 여자가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다가 일어섰다.

“박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저, 지에이치 모빌의 구건호 사장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구건호가 여자의 안내에 따라 화성산업 회장실을 들어갔다. 방은 의외로 넓었다. 회색빛 카피트까지 깔려 있었다. 벽에는 한문 글씨의 액자가 걸려있었고 엄청 큰 장수 거북이의 박제가 벽에 붙어 있었다.

“지에이치 모빌의 구건호라고 합니다.”

구건호가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였다.

쇼파에 앉아있던 이회장은 일어서지도 않고 쇼퍼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였다.

“등기서류는 보셨소?”

“보았습니다. 토지, 건물 다 보았습니다.”

“이 건물이 중심 상업지구지만 건폐율 90%를 적용하지 않아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비상구와 지하에는 낙후된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거야 손보면 될 것이고 인수할 자금은 있는 거요? 청담동 이회장은 믿을만한 분이라고 하지만 워낙 젊은 선생님이라 그게 걸리는 구료.”

“믿으셔도 됩니다.”

“청담동 이회장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요? 아들 친구요?”

“낚시터에서 만났습니다. 알고 지낸지는 5년이나 되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중 한분입니다.”

“존경? 돈 놀이 하던 사람을 뭐 하러 존경해. 악질 중에 상 악질이었는데. 지금은 늙으니까 사람이 되긴 되었지만 말이야.”

들어올 때 안내하였던 여자가 녹차를 가져왔다.

박회장은 여자를 보고 말했다.

“김부장, 우리 지난달 임대료 수입현황하고 작년도 결산서 가져와 봐요.”

“알겠습니다.”

여자가 나가자 구건호가 물었다.

“비서가 아니고 경리 담당이십니까?”

“두 가지 다 해요. 여상을 갓 졸업하고 하성산업에 들어온 지가 30년이 넘은 사람이요.”

“30년요?”

구건호는 30년이란 소리를 듣고 벽에 걸린 장수 거북이의 세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결산서와 임대료 수입현황을 가져왔다.

“이 표를 보시면 알겠지만 임대료는 월 9억원 정도 들어와요.”

“공실율은 얼마나 되는지요?”

박회장은 대답하지 않고 사내 전화로 누굴 불렀다.

“유상무? 나요. 이리 와 봐요.”

잠시 후 50대 후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사무실엔 분명히 없던 남자인데 다른데서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우리 공실율이 얼마요?‘

“여기는 강남 한복판이라 공실율 제로로 보시면 됩니다.”

박회장이 빙긋 웃으며 구건호를 돌아보았다.

“들었지요?”

유상무라는 사람이 나가지 않고 머뭇거리자 박회장이 나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부채 총액이 얼마나 됩니까?”

“감정가격의 60%요.”

“감정가가 얼마였습니까?”

“토지, 건물 합쳐서 2300억이요.”

“언제 받으셨습니까?‘

“작년에 받았소. 한국 감정원에서.”

“복사 한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그럴 줄 알고 한부 복사해 놓았소.”

“토지, 건물 다 하셨지요?”

“물론이지. 가서 잘 분석해 보시오.”

감정서에는 건물 외관은 물론 출입구와 지하 차고지등의 사진도 붙어 있었다.

“한 달 이자만 4억이상 나가겠군요.”

“대단하군.”

“뭐가요?”

“암산을 잘 하는군. 청담동 이회장 말이 맞았군.”

“예?”

“나 잡아먹는 젊은 귀신이 온다고 했었지.”

박회장의 이상한 말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구건호가 녹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했다.

“9억 임대료 받아서 이자 4억 나가고 나머지 돈으로 인건비와 경비도 쓰고 감가상각 충당금도 설정해야 하는데 많이 남습니까?“

“남으니까 버티고 있지.”

“판다면 얼마 받으실려고 하십니까?”

“매수 주체가 법인이요? 개인이요?”

“법인입니다.”

“감정가의 90%는 받아야겠소.”

“2070억이네요.”

“역시 귀신이군. 청담동 노랭이 이회장 수제자가 될 만도 하네.”

“예?”

“아니, 나 혼자 이야기요. 계속하시오.”

“임대보증금 총액이 얼마입니까?”

“400억쯤 될까?” .

박회장은 사내 전화로 또 누군가를 부르려고 했다.

“아니, 됐습니다. 큰 윤곽은 대충 파악이 되었습니다.”

“어째, 의향이 있소?”

“내일 모레 우리 직원들을 보내겠습니다. 밖에 있는 경리부장과 유상무란 분을 대기시켜 주십시오. 실무적인 부분은 실무자들끼리 의논해야 하니까요.”

“직원들 동요도 있으니 조용히 진행합시다.”

“알겠습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박회장에게 자기의 명함을 주었다. 나가면서 경리부장에게도 자기의 명함을 주었다.

구건호는 직산 공장에 돌아와서 윤이사를 불렀다.

“미국 설계사들 한테서 연락이 왔습니까?”

“다음 주 월요일 여기를 온다고 했습니다.”

“그럼 됐군.”

“뭐가 말씀입니까?”

“내일 모래 서울 좀 다녀오셔야겠습니다.”

“예? 서울요?”

“설명을 드리지요. 참 상임감사와 박종석 부장도 불러야 하겠네요.”

구건호는 사내 전화로 비서를 불렀다.

“상임감사와 생산부 박부장을 내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임감사와 박종석 부장이 사장실로 왔다.

“세분 모두 앉으십시오.”

세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회의용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구건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리버스타란 이름의 빌딩이 있습니다. 가로수길 초입의 대로변에 있는 빌딩이지요. 토지 270평에 연건평 4200평의 19층 건물입니다. 감정가격만 2300억짜리 빌딩인데 이 빌딩을 제가 인수하려고 합니다.

“예? 2300억짜리 빌딩을요?”

세 사람은 놀라 입을 벌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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