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52화 (15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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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노팩 회장의 분노 (1)

(152)

밤과 낮의 기온차가 심해졌다. 사람들은 긴팔을 꺼내 입어야 했다.

(주)지에이치 모빌의 직원들은 새로운 춘추복을 입었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오민숙 팀장이 디자인한 산뜻한 제복이었다.

새로 지은 친환경적인 공장 건물에 산뜻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은 서서히 조직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변해가고 있었다. 구건호가 지시한 아침 영어화화반의 참석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의 일환이었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총무부장이 이마트와 농협의 추석선물 팜프렛을 들고 사장실로 들어왔다.

“종업원 추석선물을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에 물파산업 시절에도 매년 선물을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에는 보통 얼마짜리로 했나요?”

“3만 원선 정도에서 구매했습니다.”

“주로 무엇을 선물했나요?”

“사원, 대리급들 연석회의에서 정했습니다. 참치 통조림세트나 참기름세트, 주방용기 세트 같은걸 선물했습니다.”

“경영 정황이 조금 나아진다고 하니 물파시절 보다 두 배 인상한 6만 원선에서 하세요. 무엇을 선물 할까 하는 것은 종전대로 사원, 대리 연석회의서 정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무부장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갔다.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요즘은 채권자들이 조용하네요. 감사님 덕분으로 채무 상환에 대한 우선순위가 잘 조정이 되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소액 채권부터 정리를 했습니다. 금액이 많은 채권자들은 계속 거래에 대한 당근을 주면서 설득시켜 나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임금채권은 현재 없는 상태입니다. 임금채권자들의 회사 자산에 대한 가압류도 모두 취하한 상태입니다.”

“이제 열심히 일 하는 것만 남았네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제품을 납품받는 대기업들은 가끔 외상매출금이나 미지급금에 대한 합계잔액 시산표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자신 있게 뽑아다 줄 수 있습니다.”

“감사님이 계시니 저도 든든합니다.”

“별 말씀을.”

비서 박희정씨가 사내전화로 보고를 하였다.

“이지노팩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 바꾸어 달라고 하는데요?”

“이지노팩? 무슨 일이지?”

구건호가 전화를 받았다. 상냥한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저희 회장님 전화입니다.”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건호 사장이요?”

“그렇습니다.”

“당신 전에 우리 회사에 한번 들린 사람이지? 라이먼델 디욘사의 일본사장 리차드 아미엘 하고 말이요.”

“맞습니다. 한번 방문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 염탐하러 왔구먼. 지에이치 모빌이라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하면서 뭐? 부동산 임대업을 한다고? 당신 그때 나한테 준 명함은 지에이치 개발 아니었소?”

“맞습니다.”

“부동산 개발한다고 하고선 우리 회사 염탐하고 이렇게 뒤통수를 쳐? 우리가 디욘사하고 합작을 추진한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정보만 빼고 뒤에서 딴 짓거리를 해?”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그때는 제가 지에이치 모빌을 인수하기 전입니다.”

“인수고 나발이고 기업한다는 사람이 그런 장난이나 하고 다녀? 알고 보니 지에이치 모빌이 코딱지만한 회사이군 그래. 지에이치 개발이 얼마나 가는가 볼까? 손 좀 볼까? 건방진 자식들!”

이지노팩 사장은 고래고래 악을 썼다. 구건호는 두꺼비처럼 생긴 이지노팩 회장의 우락부락한 얼굴이 떠올랐다.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지나치긴 뭐가 지나쳐? 당신 몇 살 먹었어?”

구건호는 금수저 출신들의 사장이나 회장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자기도 사장이 되면서 여러 모임이나 단체에서 사장이나 회장을 만났었다. 사장이나 회장들은 안하무인인 면이 있었다. 창업주가 아닌 2세, 3세들은 더했다. 특히 사내에서 폭언이나 심지어 폭행을 해도 통하기 때문에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회장이나 사장들은 의외로 보통사람들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았다. 그들은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한없이 약했으며 외부의 충격에는 나약했다. 이지노팩 회장도 선친의 기업을 물려받은 금수저 출신이었다. 구건호는 이쯤에서 짱을 박아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어디 아프십니까?”

“뭐, 뭣이 어째?”

“이지노팩이 지금 정도 규모를 유지하시려면 조용히 계세요. 잘못하면 당신 대에 거덜 날수도 있습니다.”

“뭐? 당신?”

“나, 구건호는 공돌이부터 올라간 사람입니다. 거칠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괜히 나 건드렸다가 미친개한테 물리지 말고 조용히 계세요.”

구건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미친 자식! 사내에서나 갑질 하지 다른 곳에서도 통해?”

구건호는 미소를 지었다.

구건호는 자신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잡코리아에 나온 이지노팩 사원모집 광고를 보고 한없이 부러워했었지. 이렇게 큰 회사는 어떤 사람이 들어갈까 했었지. 요구하는 스팩도 어마어마했고 말이야. 경쟁률도 100대 1이 넘는 회사인데, 코스닥 상장회사인데, 내가 그 회사 오너 회장과 싸울 정도가 되었군. 킥킥킥.”

추석이 되었다.

구건호는 정관장 인삼과 영광 굴비 한 두릅을 사가지고 집엘 갔다. 조카 정아의 키가 커지고 아버지와 엄마의 키는 더 작아졌다. 주름도 더 늘었다. 구건호의 덕으로 잘 지내고 있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매형이 물었다.

“처남, 얼마 전에 지에이치 모빌과 미국 회사가 합작으로 케미칼 공장을 짓는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네. 공장을 짓나?”

“의향서만 체결하고 아직 본 계약은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거기 회사는 트럭 물류 외주 안주나?”

“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

“물류 외주 준다면 나한테 주지 그래.”

옆에서 누나가 타박을 주었다.

“건호한테 신세 진 것도 많은데 뭘 또 부탁하려고 그래요?”

“아니, 뭐 그런 자리가 있다면 한번 생각 해 보라는 거지. 내가 꼭 달라는 것도 아니야.”

“건호는 친인척 안 쓴데요. 기업하는 사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우리가 걸리적거리진 말아야지요.”

“그, 그건 그래.”

이번엔 엄마가 국을 드시다가 말했다.

“지에이치가 무슨 뜻이라고 그랬지?”

“제 영문이름 이니셜이라고 지난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그럼 건호상회나 건호물산 같은 것으로 하면 어때. 외우기도 좋잖아. 외우기도 힘든 지에이치가 뭐냐.”

이번에도 누나가 말해주었다.

“요즘 기업하려면 영문으로 해야 돼요. 수출하는 회사에서 영문으로 해야지 건호상회나 건호물산으로 하면 반대로 외국인들이 알기 힘들어요. 촌스럽기도 하고요.”

아버지가 술을 따라주었다.

“너도 한 잔 해라. 사위도 한잔 하고.”

“네, 네.”

구건호와 매형이 동시에 대답을 하였다.

구건호는 청주 한잔을 마셨다.

“어째 올해는 고모가 안 오셨네요. 고모가 와야 집안이 떠들썩한데.”

이번에도 누나가 대신 대답했다.

“지금 오게 생겼니? 지난번엔 며느리와 아주 몸싸움까지 했다더라. 중간에서 재웅이만 힘들지 뭐야.”

“재웅이는 공무원 생활 잘 하지요.”

“걔는 영낙없는 공무원이야. 사람이 너무 샌님 같아서 틀렸어. 자기 마누라 편을 들던가, 아니면 자기 엄마 편을 들던가, 확실한 모습을 보여야지. 맨 날 어정쩡하니까 두 여자가 그렇게 싸우지.”

아버지가 혼자 중얼거렸다.

“네 고모나 재웅이 처가 모두 대가 세. 네 엄마도 세긴 하지만 말이야.”

“뭐가 어째고 어째요?”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자 아버지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추석이 지나고 얼마 후 연구소장이 50대 초반의 어떤 남자를 데리고 왔다.

번쩍이는 금테 안경에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엘리트의 얼굴이었다.

연구소장이 사장실에 와서 비서에게 물었다.

“구사장님 안에 계시지?”

“예, 계세요. 영어 드라마 보고 계세요.”

연구소장은 같이 온 남자를 구건호에게 소개했다.

“일전에 말씀드린 뮌헨공대 제 후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원일이라고 합니다.”

구건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구건호입니다. 이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연구소장님께 많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구소장님이 이 선생님을 후임으로 적극 추천하셨습니다. 이력서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을 보지 않고 채용할 수도 없어서 보자고 한번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앉으십시오.”

구건호는 이원일이라는 사람한테 몇 가지를 물었다.. 이력서에 나와있는 기록의 사실 확인 수준이었다.

“지금 저희 연구소는 신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일부 직원을 일반부서로 전출시켰습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만약에 여기 오신다면 부족한 인원의 채용은 새로 오시는 분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실험장비는 대기업과 달라서 구색을 못 갖춘 부분이 많을 겁니다.”

“아까 대충 보았습니다. 물파 시절보단 환경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실험 장비들도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때보다는 연구원들의 실험장비 다루는 솜씨도 많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연구소장님이 퇴임하시는 연말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채용 여부는 우리 내부에서 검토해보고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 나가고 나서 한참 후 연구소장이 사장실로 다시 들어왔다.

“조금 전에 면접 본 사람 어떻습니까?”

“인상은 좋습니다. 사람도 솔직해 보이고요.”

“제가 추천해서 그런 게 아니고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연구 의욕도 강하고 실적도 있습니다. 나이 든 우리하고는 다릅니다.”

“실적이라면?”

“BMW는 물론이고 G자동차나 현재 판교의 연구소에서 연구한 것들 중 특허 출원이 된 것도 있습니다.”

“특허 출원이 상업화가 된 것도 있나요?”

“한두 가지가 있기도 하고 한국 산업기술 진흥원에 가서 기술 설명회를 가진 적도 있습니다. 촉망받는 연구원인데 지금 연구소가 너무 열악하다보니 자기 날개를 못 펴는군요.”

“알겠습니다. 연구소장님이 추천하시는 분이니까 긍정적 방향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아마 그 사람이 온다면 그냥 오지는 않을 겁니다. 연구원 두 세 명은 같이 올 겁니다. 연구라는 것이 혼자는 힘들고 팀 조직이 있어야 하니까요.”

“흠.”

“그런데 만약 그 사람들이 온다면 원룸이라도 잡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의 이메일이 들어왔다.

월간 판매 보고였다. 현재 발행된 책은 왕지엔이 쓴 ‘21세기 중국의 경제전망’과 일본의 자기계발서 3권, 미국 경영서적 한권이었다.

[왕지엔 교수의 책과 미국 경영 서적은 초판 1,500부가 다 나갔습니다. 재판을 찍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발매 속도로 보아 재판 이상은 찍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서적 3권중 두 권은 초판이 그대로 남아있어 재판은 중지합니다. 단 그중에 한권 ‘아침에 기상하는 인간’이란 책은 재판까지 소진되어 3판 인쇄에 들어갔으며 스터디 셀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법인통장 잔액은 1억 9천만원입니다..]

“왕지엔 교수의 책과 미국 경영서적은 이익은 없지만 까먹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군. 일본책은 2권은 손실, 하나가 이익 보고 있는 중이네. 위험한 사업이야. 출판은 벤처사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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