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라이먼델 디욘사 실사단 내한 (2)
(151)
구건호는 통역을 하러 온 사람과도 인사를 하였다.
통역은 구건호를 보고 놀랐다. 사장이 무척 젊은 사람이라 그랬다. 옆에 있는 공장장과 연구소장은 정년퇴직이 다된 사람들인데 구건호는 북한의 김정은 또래밖에 안 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모양이군.”
통역은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구건호는 통역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님으로부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통역 선생님은 대기업 해외 지사장 출신이고 유창한 영어 실력자라고 신사장님이 이야기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정숙 사장님과는 몇 년간 함께 일했습니다. 공장이 무척 크고 아름답습니다.”
브렌든 버크씨 일행은 공장장을 따라 생산라인 현장을 둘러보았다. 깨끗한 시설과 잡티 하나 없이 번쩍거리는 기계에 브렌든 버크씨는 감동을 받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을 보았을 때 낡은 건물이었는데 실제 와 보니 공장이 크고 질서 정연합니다.”
구건호가 제출한 사진은 아산공장 사진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호텔에서 주무시고 실사는 내일부터 하시지요. 여기서 가까운 아산시 온양관광호텔에 방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통역 선생님 방도 같은 호텔에 숙소를 배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가 브렌든 버크씨를 향하여 말했다.
“여기는 지방도시라 호텔이 크고 웅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온천지역입니다. 숙소로 배정한 온양 관광호텔은 라듐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니 온천욕을 꼭 즐기고 가시기 바랍니다.
“오우, 핫 스프링?”
온천이라는 소리에 브렌든 버크씨는 좋아하였다.
“오늘은 첫날이니 우리 회사 임원들과 상견례 겸 환영식을 베풀어 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브렌든 버크씨 일행을 천안시 백석동에 있는 승지원으로 안내하였다. 승지원은 지금도 있는 한정식 집이었다.
회사의 임원 중 영업상무는 집안에 상을 당하여 미리 퇴근하고 상임감사, 공장장, 연구소장, 윤이사가 참석하였다. 미국서 온 실사단 3명과 통역 및 총무부 직원들을 합쳐 12명이 승지원의 넓은 테이블에 앉았다.
브렌든 버크씨는 벙긋거리며 승지원의 안을 둘러보았다.
한정식 스페샬 코스가 나왔다. 브렌든 버크씨는 한정식을 조금씩 맛보면서 ‘굳’을 외쳤다.
실사단의 조사는 까다로웠다.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공장 안을 휘젓고 다녔다.
기계의 대당 효율성을 따지고 초당 생산량을 따졌다. 인건비를 따지고 1인당 생산량을 따졌다. 독일에서 들여온 신형 압출기의 감가상각을 따지고 금형대장을 열람하였다. 심지어는 폐수 교체시기의 날짜가 지난 것을 몰랐다고 체크하기도 하였다. 공장장과 박종석 부장이 땀을 질질 흘리며 따라 다녔다.
“이 라인 담당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생산계장인 제가 하고 있습니다.”
“지금 쏟아져 나오는 압출기의 금형은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나요.”
“그것 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고 공장장님이 아십니다.”
“공장장님이 안계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건...”
“마이너스 벌점 하나 드리겠습니다.”
다른 조사원은 박종석 부장을 불렀다.
“ISO140001 환경 경영 내부감사 결과 보고서에 지적사항이 있군요. 여기 서명자가 박부장님 싸인 맞지요.”
“맞습니다.”
“시정 조치사항을 보여주십시오.”
“그, 그건...”
“마이너스 벌점 하나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은 대부분 코가 빠져 침울 했다.
“KW당 전기료는 얼마입니까?”
“수도는 1리터당 얼마입니까?”
“소화기 충전일자가 모두 지났네요.”
실사단은 전기 안전관리자와 소방 안전관리자를 곤혹스럽게도 했다.
실사단의 조사내용을 중간에 보고받은 구건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실사는 한번 받을 만 하군. 직원들의 경각심을 위해서 말이야.“
실사단은 현장뿐만 아니고 관리부분도 실사를 했다. 경리와 총무, 기획, 영업, 연구소까지 돌아다니며 체크했다. 심지어는 사장실에 들어와 경영관리 시스템을 확인하기도 했다.
구건호는 실사단 조사원들에게 아산에 있는 철거된 공장 부지를 보여주었다.
“만약에 합자사를 하게 된다면 이 부지 위에 직산 공장과 같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겠습니다.”
철거된 부지는 롤러로 밀어 깨끗했다. 윤이사는 부지의 가장 자리에 붉은 깃발을 꽃아 경계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 부지는 첫째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어 각종 원재료나 배합 화공약품을 구하는데 최적의 장소입니다. 둘째는 이 공장 주위에 아산시와 천안시가 있어 우수한 양질의 인력을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각종 대학들이 있어 산학협동체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브렌든 버크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로는 이 공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평택 국제항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동남아 각국과 수출하는데 전진기지로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항구가 있다고요? 여기서 얼마나 걸립니까?”
“20분이면 갑니다.”
“예? 20분이요?”
구건호는 브렌든 버크씨 일행을 평택항으로 안내했다.
“저기 있는 전망대에 가시면 항구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마린센터라고 부릅니다.”
구건호는 브렌든 버크씨 일행을 마린센터 위로 안내하였다. 마침 날이 좋아서 항구 전체가 보였고 엄청 큰 배에 수많은 수출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 많은 자동차가 이 항구를 통해서 전 세계로 판매되어 나갑니다. 만약에 라이먼델 디욘사와 우리가 합작을 한다면 합자사에서 생산된 제품은 이 항구를 통하여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으로 실려 나갈 것입니다.”
브렌든 버크씨는 같이 온 일행에게 평택항의 영문 팜프렛을 챙기게 했고 항구의 전경을 사진 촬영하기도 했다.
구건호가 브렌든 버크씨를 잡고 이야기 했다.
“어제 체크한 공장 실사는 우리가 차츰 고쳐나가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국제항을 20분 거리에 둔 힙작 공장을 세운다면 디욘사와 지에이치 모빌이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공장 부지를 감정 평가한 서류가 있다고 했지요?”
“한국 감정원 감정평가서입니다. 영문으로 번역한 공증서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중국 쑤저우시 공업원구에 있는 창고 사진과 도면도 함께 첨부해 드립니다.”
마지막 날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가 내려왔다. 김변호사는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브렌든 버크씨에게 물었다.
“실사는 다 끝났지요? 어때요? 할 만 하지요? 공장입지 좋고, 구사장 자금력 좋고, 우수한 기술 인력들이 있으니 여기처럼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겠어요? 아주 오늘 가시기 전에 의향서라도 체결하고 가세요.”
브렌든 버크씨가 웃었다.
“의향서요? 너무 앞서가시는 발언입니다.”
구건호가 말을 받았다.
“의향서는 말 그대로 의향서지 본 계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업체에서 달려들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는 있습니다. 합작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버크씨와 제가 있으니 못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빠른 것 같네요.”
“점심 드시고 오후 3시에 서울 올라가시기 전에 의향서 서명을 하지요. 그 안에 지역 신문기자라도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끼리 토론할 시간을 주십시오.”
구건호는 버크씨 일행을 소회의실로 안내하였다. 자기들 끼리 토론하게 하였다.
격렬한 토론을 하고 난 버크씨 일행들이 소회의실을 나왔다. 김영진 변호사가 웃으며 다가갔다.
“결정했지요?‘
“그게... 아직.”
“무슨 뜸을 그렇게 들입니까?”
“합작의향을 표시한 이지노팩하고 너무 비교가 되어서....”
구건호가 말을 받았다.
“물론 진위면에 있는 이지노팩은 종업원도 3천명이 넘는 코스닥 상장회사입니다. 연구소 인력도 100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합작 비율을 51:49로 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긴 했습니다만.”
“합작은 대등한 평등 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51:49라는 것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지노팩 사장보다 개인적 자금력은 나 구건호가 더 튼튼할 수 있습니다.”
버크씨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김영진 변호사가 다시 재촉하였다.
“오후에 의향서에 서명합시다. 그래야 이지노팩이 물러섭니다.”
통역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대기업인 M모비스에서 퇴사한 사람입니다. 뉴욕 지사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와 이지노팩이 거래했는데 이지노팩 사장의 인성이 아주 나빴습니다. 가족들의 갑질도 상상을 초월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추행 소문도 있습니다.”
“성추행요?‘
버크씨가 눈을 찌푸렸다.
김영진 변호사가 큰소리로 구건호에게 말했다.
“합자회사의 자본금은 얼마로 할 건가?”
“어서라이즈드 캐피탈(수권 자본금) 2천만 달러!”
버크씨가 벌떡 일어섰다.
“좋소, 합시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지방지 기자하고 서울의 조중동과 경제신문 천안 지국장들을 부르세요. 오후 3시에 다국적 기업인 미국 라이먼델 디욘사하고 천안 직산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이 합자회사를 세우는 의향서를 체결한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오면 촌지라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찾아온 사람들 교통비는 주세요. 그게 예의이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연락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의향서 초안을 작성하여 통역에게 번역하라고 하였다. 통역은 회사에 다닐 때 이런 일을 많이 해 보았는지 그 자리에서 10분도 안되어 번역을 했다. 구건호는 번역 서류를 비서에게 주어 타이핑하게 하였다.
오후 3시가 되었다. 지방지 기자 한사람하고 신문사 지국장 한사람이 왔다. 구건호는 총무과장에게 카메라 준비를 시켰다.
구건호는 영문으로 돤 의향서 초안을 버크씨에게 보여주었다. 버크씨는 의향서 초안을 보고 씩 웃었다.
“의향서는 언제든지 변경돨 수 있는 것이니까.”
구건호는 브렌든 버크씨와 의향서에 서명을 하였다. 형식을 갖추기 위해 지에이치 모빌의 임원들과 디욘사의 실사단으로 따라온 사람들을 뒤에 서게 하고 서명식을 가졌다. 지방지 기자가 와서 사진을 찍었고 총무과장이 사진을 찍었다. 일간지 지국장은 카메라도 가져오지 않았다.
일간지 지국장은 총무과장에게 사진 자료를 어디로 보내주라는 전화번호만 알려주었다.
구건호는 서명식 사진을 전 언론사에 팩스로 보내게 하였다.
다음날 경제신문과 일간신문 두 군데에 합작관련 기사가 나왔다. 천안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과 다국적 기업인 미국 라이먼델 디욘사가 합작을 하여 충남 아산에 콤파운드용 케미칼 공장을 세운다는 보도가 나갔다. 공장은 아직 짓지도 않았는데 현재 지에이치 모빌 직산공장 전경이 합자사인 것처럼 둔갑하여 사진과 함께 보도 되었다.
신문을 본 이지노팩 사장이 펄펄 뛰었다.
“지에이치 모빌이 어떤 회사야? 구건호 사장이란 놈이 어떤 자식이야?”
이지노팩 사장은 화가 나서 물 컵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디욘사 이 자식들은 우리하고 합작회사를 할듯하더니 살짝 다른 놈하고 해? 이런 개자식들이 있어. 어디 두고 보자. 지에이치 모빌이라고 그랬지?”
구건호는 총무과장을 불렀다.
“디욘사에서 온 실사단 일행을 서울까지 잘 모셔드려요. 서울 강남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로 모시고 과장님은 내일 다시 그분들을 경복궁과 남산타워 관광을 시켜주세요. 점심도 좋은 데로 모시도록 하세요. 저녁 비행기니까 관광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겁니다. 경리부장한테 법인카드 달라고 하세요. 내가 지시해 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