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50화 (150/501)

# 150

라이먼델 디욘사 실사단 내한 (1)

(150)

연구소장이 이력서 한 장을 들고 구건호 방에 들어왔다.

“제가 추천했던 사람입니다. 이력서를 보내왔군요.”

구건호는 사진까지 붙은 새로 올 연구소장의 이력서를 보았다.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인천 출신이네요?”

‘하하, 사장님과 같은 동네네요.“

구건호는 이력서를 자세히 보았다.

“뮌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바로 BMW연구소를 들어갔군요. 한국의 G자동차에도 있었고. 경력은 훌륭합니다.”

“이력서 밑을 보세요. BMW에 있을 때 각종 개발업무에 참여한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흠.”

“무엇보다도 나이가 아직 젊으니 오게 되면 오랫동안 사장님을 잘 보필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시간 있으면 여기 한번 오라고 하세요. 면접은 봐야할 것 아닙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럼 연락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오전에 대충 결재를 마치면 사장실에 혼자 앉아 독서를 하였다. 주로 경영과 관련된 책을 읽었지만 인문학 소양을 쌓기 위해 역사책이나 정치, 사회, 철학 등 다양한 독서를 하였다. 다른 사람은 일을 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지만 이런 점에서는 사장이라는 자리가 유리했다. 자연히 구건호는 아는 것이 많아지고 사회현상을 꿰뚫어 볼줄 아는 지혜도 생겨났다.

“앞으로는 해외 나갈 일이 많이 생길 텐데 영어 하나는 확실히 해야 돼. 중국어 하나 가지고는 안 되겠어. 모리에이꼬와도 간단한 영어를 하니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잖아.”

구건호는 영어를 배우려고 사장실에 TV를 갖다 놓고 영어 방송과 드라마를 자주 보았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영어강사를 구해보세요. 아침마다 관리직은 한 시간씩 영어 회화 공부를 시키세요. 앞으로 디욘사와 합작을 하게 되면 영어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학습을 건의하려던 참입니다.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을 불렀다.

“금년도에 우리 회사가 교육훈련비를 얼마 썼는지 뽑아가지고 오세요.”

경리부장이 회계프로그램에서 금방 교육훈련비 현황을 뽑아가지고 왔다.

“이거밖에 안 돼요? 법정교육이외는 지출이 없네요. 소방안전교육, 품질관리교육, 성희롱예방교육, 4대 보험 관련교육, 전기 안전교육. 사출교육.... 최소 교육밖엔 안 되네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영어교육을 시작으로 교육비 지출을 늘리도록 해야겠군요. 당장 경리에서도 필요한 세무교육이 있으면 총무를 통해 신청하세요.”

“알겠습니다.”

총무부장이 점심때가 거의 되어서 사장실로 왔다.

“저, 영어 강사를 구했습니다.”

“그래요? 잘 됐네요.”

“호서대학에 있는 원어민 영어강사입니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우리 회사 교육실로 올 예정입니다.”

“교육비는 후하게 쳐 주세요. 당장 영어교육을 시작한다는 공문을 각 부서로 띄우세요. 아, 그리고 폴리텍 대학이나 다른 기술교육도 회사에서 지원한다는 공문을 만들어 각 부서로 보네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아침마다 실시하는 영어 교육엔 자기도 참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사장실로 올라온 구건호는 슬슬 졸음이 왔다. 잠간 눈을 붙이고 나서 TV로 영어 드라마를 보았다.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박종석 생각이 났다.

구건호는 사내 전화로 박종석 부장을 불렀다.

박종석 부장은 일을 하다가 왔는지 면장갑을 들고 왔다. 방금 벗은 모양이었다.

“지금 일해?”

“아니, 다 끝났어.”

“거기 앉아라.”

박종석이 회의용 테의블 의자에 앉았다.

“차 한 잔 할래? 커피 한잔 하자.”

구건호는 사내전화로 비서에게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박종석 부장은 구건호가 무슨 말을 하려고 불렀는가 슬슬 눈치를 보았다.

비서가 차를 가져왔다.

“마셔라.”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

“너, 요새 좋은 소문 들리더라.”

“무슨 소문?”

박종석 부장이 커피를 마시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연애한다며?”

박종석 부장이 커피 잔을 내려놓고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누가 또 그런 소리를.”

“야, 임마. 사장인 내가 모르면 되겠냐? 좋은 소식 있으면 형한테 먼저 알려야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닌 것 같아서.”

“여자가 천안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며?”

“응, 천안 4공단에 있는 전자회사야. 거기 실험실에 근무해.”

“실험실에 있으면 대학을 다녔을 텐데 폴리텍 대학을 다니네?”

“당진에 있는 한서대학을 졸업했어. 인문계 출신이라 회사에서 배려해 폴리텍 대학 직장인 반엘 다녀. 나처럼 말이야.”

“네가 나보다 장가를 먼저 가겠다.”

“형이 먼저 가야지.”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지만 결혼하는 건 순서가 없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먼저 결혼해라.”

“아직 거기까지는 발전 못했어.”

“여자도 너를 좋아하니?”

“그런 것 같기는 해.”

“그럼 빨리해 임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

“부모님은 이 고장 사람이냐?”

“응, 아빠는 부동산 중개사고 엄마는 헤어샵을 한다고 했어. 천안시 백석동 주공아파트에 살아.”

“아무튼 잘 됐다. 언제 기회 있으면 나도 제수씨 될 사람 얼굴 한번 보자.”

“헤헤, 알았어.”

박종석 부장은 순진한 웃음을 지었다.

라이먼델 디욘사에서 연락이 왔다. 실사단을 파견한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즉시 김영진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김변호사? 나야, 구건호. 라이먼델 디욘사에서 실사단이 온다고 통보왔어.”

“언제 온데?”

“오는 20일 온데. 해외담당 부사장인 브렌든 버크씨를 단장으로 하는 3명의 조사원을 파견한다고 했어.”

“오, 브렌든 버크씨가 직접 온다고? 잘됐다. 더구나 아산공장이 아닌 직산의 신공장으로 온다니 좋다. 깨끗한 신공장을 보고 이미지가 좋아서 돌아갈 거야.”

“그날 너도 와라.”

“첫날 인천공항엔 내가 나가지. 인사만하고 나는 마지막 날에 직산엘 내려갈게.”

“왜? 계속 여기 못 와?”

“다른 일들이 많아. 더구나 실사하는데 내가 기술용어는 모르잖아. 통역 구해봐.”

“알았어.”

구건호는 영어 통역을 누굴 구할까 생각했다.

“지에이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에게 전화해 볼까? 영어 원서 번역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 테니 말이야.”

구건호는 신정숙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예. 구사장님. 신정숙입니다.”

“별일 없지요?”

“예, 3/4분기 손익 보고는 제가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만...”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한건 아니고 영어 통역을 구할 수 있는 가 해서요.”

“영어 통역이요?”

“미국에 라이먼델 디욘사라는 다국적 케미칼 회사가 있습니다. 내가 이 회사와 쪼인트 컴페니를 만들까 하는데 한 3일간 통역이 필요해서요.”

“언제 필요하신데요?”

“실사단이 20일 인천공항으로 들어옵니다. 그때부터 3일간입니다. 오는 날 가는 날까지 합치면 4일간이 되겠네요.”

“할 사람 있습니다. 경영서적을 번역하시는 분인데 대기업 미국지사장을 오래 하신 분입니다. 미국 유학생 출신이고요. 현재 명예퇴직 후 경영서적 원서 번역하는 일을 합니다. 기업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으니 젊은 대학 강사들 보단 더 나을 겁니다.”

“미국 지사장을 했다고요? 좋습니다. 그분을 모시도록하지요. 20일 오전 11시 인천공항으로 나오면 우리 직원들이 픽업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임원회의 때 디욘사의 실사단이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드디어 오는군요.”

“공장장님은 생산부 직원들을 시켜서 생산동에 있는 기계들을 깨끗이 닦아놓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은 다시 도색을 하겠습니다.”

“연구실도 실험장비들을 점검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안 쓰던 장비들까지 점검해 보겠습니다.”

“윤이사님은 철거작업이 다 끝났다고 했지요?”

“예, 그렇습니다.”

“지난주 비가 왔을 때 움푹 패인 땅이 없는가 잘 살펴봐 주세요. 실사단이 그곳 부지를 보러 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로울러로 한번 밀겠습니다.”

구건호는 임원회의가 끝나고 총무부장을 불렀다.

“20일날 미국 디욘사의 실사단이 옵니다.”

“예, 방금 영업 상무님한테 들었습니다.”

“그날 인천공항 영접은 총무부장님이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통역도 공항으로 나온다고 하니 렌트카에 가셔서 승합차를 한 대 빌리세요. 깨끗한 신형으로 빌리세요.”

“알겠습니다.”

“공항에 영접 갈 때 비서 겸 문서 수발업무를 보는 박희정씨도 같이 가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운전은 제가 하는 겁니까?”

“하하, 그럴 수야 있나요? 부장님은 접대 업무를 해야 하는데. 렌트카 기사를 오라고 하지요.”

“그러지 말고 총무과장도 같이 가면 어떻겠습니까? 운전은 저와 번갈아가면서 해도 되니까요.”

“총무부 간부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도 되나요?”

“괜찮습니다. 중요업무는 전화로 해도 됩니다. 대리들도 있으니 몇 시간은 괜찮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총무과장이나 박희정씨가 모두 의전을 하기에는 적당한 인물들이니까요.”

“저도 인물은 좋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그럼, 렌트카 회사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총무부장이 인사를 꾸벅하고 나갔다.

디욘사의 실사단이 오는 날이다.

(주)지에이치 모빌의 총무부장은 총무과장과 비서를 데리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공항 대합실에서 미리 나와 있던 김영진 변호사와 대기업 해외 지사장 출신이라는 통역을 만났다. 핸드폰으로 불러서 만났다.

“김변호사님은 우리 공장 준공식 때 뵈었습니다.”

“그날 사회를 보셨던 분 아닌가요? 구건호 사장님은 잘 계시지요?”

“네, 잘 계십니다.”

“저는 공항에서 라이먼델 디욘사 실사단과 인사를 하고 바로 들어갈 겁니다. 실사 후 마지막 날에 직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구건호 사장님과 이야기가 다 된 부분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총무부장은 옆에 서있던 머리가 하얀 50대를 보았다.

“통역으로 오신 선생님이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님 추천으로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우리가 부탁을 드려야지요. 지에이치 모빌의 총무부장입니다.”

총무부장은 명함을 통역에게 주었다.

공항 입국자 출구에 시애틀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인들도 많았다.

라이먼델 디욘사의 부사장인 브렌든 버크씨의 얼굴을 아는 김영진 변호사가 손을 흔들었다.

총무부장과 총무과장, 비서 박희정씨가 브렌든 버크씨를 비롯한 실사단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통역도 인사를 하였다.

“여기서 저희 공장이 있는 천안 직산까지는 두 시간 반이 걸립니다. 저희 구건호 사장님께서는 오신 분들을 모시고 서울 관광을 하고 내려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경복궁과 남산타워를 들릴까 합니다.”

“노우.“

브렌든 버크씨는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관광은 실사가 끝난 후 돌아가는 날 하겠습니다.”

“회사에 돌아가면 구건호 사장님께 저희들이 혼납니다.”

“그러면 서울 시내 중심가를 한 바퀴 돌고 내려가는 걸로 합시다. 나는 서울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여기 두 분은 처음이니 그렇게 합시다.”

일행을 태운 스타렉스 승용차는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여의도를 거쳐 광화문에 도착하였다. 김영진 변호사는 광화문에서 내렸다.

“저것이 경복궁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에 임금님이 살던 곳이지요.”

“저 동상은 누구입니까?”

“이순신 장군 동상입니다. 400년전 한국과 일본이 전쟁할 때 일본군을 무찌른 영웅입니다.”

실사단 중 한명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스타렉스 승용차는 강남 테헤란로를 한 바퀴 돌고 고속도로를 탔다. 오후 4시가 훨씬 넘어 직산 공장에 도착했다. 회사 정문 입구에 라이먼델 디욘사 방문 환영이라는 영문으로 된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디욘사 실사단이 보았다.

공장 사무동 입구에서 임원들이 마중 나왔다.

“브렌든 버크 부사장님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우, 구건호 사장.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뜨겁게 악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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