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47화 (147/501)

# 147

강남 리버스타 빌딩 (3)

(147)

지에이치 미디어의 편집주간으로 있는 문재식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왕지엔 교수가 쓴 ‘21세기 중국 경제의 동향’의 번역 원고였다. 편집까지 완성한 파일을 보내왔다. 중국어를 한글로 번역하면 페이지 수가 늘어나 400페이지나 되었다.

문재식은 제목을 ‘21세기 중국 경제의 동향’에서 ‘21세기 중국 경제의 전망’으로 바꾸었다. 번역도 중국어를 전공한 번역자가 번역하여 온 것을 자기가 맛깔스런 문장으로 일부분 고쳤다고 하였다.

“이거 진짜 문재식이 한 건가? 편집 실력이 대단하네. 짜식, 이런 재주가 있었구나.”

구건호는 편집까지 된 원고를 읽어보았다.

“어휴, 이거 언제 다 읽어봐. 눈도 어리어리하네.”

구건호는 10페이지도 못 읽고 원고 읽기를 끝마쳤다. 답신을 주었다.

“잘 보았다. 그대로 출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쑤저우(소주시)에 있는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의 김민혁 사장이 창고가 될 만한 자리를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건물은 300평인데 토지가 넓어. 1천평이나 돼. 마당이 넓으니까 큰 차 돌리기도 쉬워.”

“나중에 건물은 한동 더 지을 수 있겠네.”

“그럼, 장소가 널널하니까 얼마든지 더 지을 수 있지.”

“땅을 판대?”

“팔겠다고 했어. 이 토지는 후아파(劃發) 토지가 아니고 쫜랑(轉讓) 토지라고 했어. 양도 가능한 쫜랑 말이야.”

구건호는 중국 부동산에 대하여 다소의 지식이 있었다.

“쫜랑? 지금 전량 토지를 말하는가?”

“맞아. 전량은 토지 사용권 이전이 가능하고 담보 제공도 가능하잖아? 후아파, 다시 말해서 획발 토지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빌려주었던 토지라 타인에 대한 양도나 임대, 저당 설정이 안 되지.”

“그 자식들 말은 그래도 나중에 보면 전량이 아닌 수가 있어. 중국 나와 있는 한국 기업이 많이 당하는 대목이지. 토지 팔겠다는 사람이 개인인가?”

“개인은 아니고 전선 피복을 만드는 회사야.”

“위치는 어때?”

“위치도 괜찮아. 우리 공장하고 가깝고 쑤저우 공업원구(工業園區)하고도 가까워.”

쑤저우의 공업원구는 중국 정부와 싱가포르 정부가 합작하여 만든 국가 산업단지다. 우리나라의 삼성그룹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뭐, 전량 토지가 아니더라도 공업원구와 가깝다니 구미는 당긴다.”

“출장 한번 와. 직접 보면 더 좋잖아?”

“그래, 쑤저우는 공업원구 뿐만 아니고 현대나 포스코도 나와 있고 볼보나 마쓰다, 닛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나와 있는 동네지. 창고는 거기다가 해야 되겠다. 전량 토지면 더욱 좋고.”

“참, 나 여기서 우리 국민대학 동창회 총무가 됐다.”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끼리?”

“응, 알고 보니 나와 있는 사람들이 꽤 되더라고. 상해에서 동창회를 했는데 20여명이나 나왔어. 대개 기업체 중국 지사 근무 직원들이야. 우리 나이되니까 대부분 대리급이고 과장급도 몇 명 있었어.”

“그래? 너 영업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그렇지 않아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혹시 동창들 만나 술이라도 한잔 하면 회사에서 접대비로 정리해라.”

“개나 소나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우리와 거래가 가능한 회사에 근무하는 애들은 그렇게 하지.”

“너 상해 국제학교 영어선생님하고는 계속 잘 사귀고 있지?”

“내년 봄쯤 결혼하려고 해. 결혼식을 두 번하게 생겼어.”

“왜?”

“한족 여자라 중국에서 한번 하고, 한국서도 한번 하게 생겼어.”

“하하, 두 번 장가가는 구나.”

“우리 엄마가 어디 가서 사주를 보았는데 내가 두 번 장가갈 팔자래.”

“그래서 그런 모양이구나.”

“이렇게 해서 액땜은 되려나 모르겠다. 하하.”

“창고는 내가 다음 주에 시간을 한번 내어 보러 가겠다. 수고해라.”

구건호와 강남에 있는 은행 지점장이 서로 만났다.

“여기 이런 부동산이 있습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에 있는 빌딩으로 대지 370평에 연건평 4천 2백평짜리 19층 빌딩이지요.”

“꽤 나가겠는데요?”

“싯가 2천 억 짜리라고 합니다.”

“헉, 많이 나가네요.”

“이거 내가 끌어당긴다면 얼마나 지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사장님 원하는 대로 해 줄수 있지만 법인이 아니고 개인 명의라면 총 부채상환 비율인 DTI([Debt To Income) 적용을 받겠지요. 더구나 신사동 같으면 투기억제지역이라서 많은 대출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개발회사 명의로 한다면요?”

“법인의 사업목적으로 한다면야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이 물건은 덩치가 커서 본점과 협의해야 합니다.”

“최소한 내 돈은 얼마가지고 있어야 빵꾸가 안 나겠습니까?”

“40%이상은 가지고 덤벼야겠지요. 아니, 임대보증금이 있으니 그 이하도 가능은 하겠습니다. 구사장님은 얼마가지고 작업하시려고 그럽니까?”

“20%요.”

“20%만 해도 400인데 그런 돈 있어요?”

“있으니까 지점장님하고 상의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요? 400억이 있어요? 와-, 구사장님 이제 보니 어마어마한 큰손이시네.”

지점장이 놀라는 소리를 듣고 밖에 있던 은행차장이 지점장 파티션 안쪽을 쳐다보았다.

“그 빌딩을 사던 안 사던 400억을 우리 은행에 예치하시지요.”

“증권계좌에 있습니다.”

“우리도 증권투자를 합니다. 수익률도 좋으니 우리 지점으로 옮겨 주세요.”

지점장의 이 말에 구건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점장은 무안한지 구건호가 가져온 서류를 자세히 보았다.

“이 빌딩 주인도 대출이 많네요. 우리 은행 것도 있네요. 이것은 승계 받으시면 되겠네요.”

“빌딩주인 한번 건드려 볼까요?”

“그 정도 빌딩주인 같으면 돈도 많으신 분일 텐데 왜 판다고 합니까?”

“자식들이 배다른 형제들이 있어서 골치 아프답니다.”

지점장이 씩 웃었다.

“그럴 테지요. 빌딩주인이 죽으면 상속은 전실 자식들 보다는 실질적 배우자인 후처에게 많이 돌아가겠지요. 전실 자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전실이 살아있다면요?”

“입장이 또 반대가 되겠지요. 호적상 배우자가 누구로 되어 있는가가 중요하겠지요.”

“지점장님도 여자 조심하십시오.”

“하하, 저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재산도 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구사장님이야 말로 미투에 용케 살아남으셨네요.”

“나는 그런 짓 안합니다.”

하기야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란 미인이 옆에 있으니 쓸데없는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구사장님이 가져오신 서류는 저를 주고 가십시오. 저도 한번 분석을 하겠습니다. 구사장님과 또 한 번 좋은 인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식이 책을 보내왔다.

“흠, 왕지엔 교수가 쓴 책이 나왔군. 책이 두꺼운데?”

구건호가 책을 열어보았다. 겉표지 안쪽에 왕지엔 교수의 약력이 나와 있었다. 예일대 박사출신이며 예일대 교수를 지내고 현재는 절강대 상경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번역한 사람의 약력도 두어줄 나왔다. 외국어대학 강사였다.

첫 장을 넘기자 이번엔 출판사 이름, 발행인 등이 나왔다. 출판사는 지에이치 미디어로 되어 있었고 발행인은 신정숙으로 되어 있었다. 편집주간 문재식, 디자인 팀장 오민숙의 이름도 있었고 책은 두꺼워서 그런지 책값이 15,000원이나 되었다.

“신문사 서평이 있나 한번 볼까?”

구건호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조중동은 물론 지방지 까지 책을 크게 다루었다. 지은이가 예일대 교수출신에 중국 종합대학 교수라고 하니까 비중 있게 다루어준 것 같았다. 또 중국의 21세기 경제 전망은 우리와 많이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 같았다.

“잘 팔렸으면 좋겠다.”

구건호는 이렇게 맣하면서 책을 펼쳐보았다. 각종 도표 같은 것이 많아 소설과 달리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우리 회사의 대리급 이상 간부사원들이 몇 명이나 되지요?

“62명입니다.”

“그럼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62권 구매하여 한권씩 나누어 주세요.”

“21세기 중국의 경제전망 이라는 책이네요.”

“한 번씩 읽고 독후감 써내라고 하세요. 우수작은 상금도 준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총무부장은 구건호 앞에서 책의 이름과 출판사 등을 메모했다.“

“지에이치 미디어? 우리 계열사네요.”

총무부장이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구건호는 중국 출장을 갔다. 왕지엔 교수가 쓴 한글판 책을 몇 권 들고 갔다. 책이 나오면 출판사측에서 원작자나 상대방 출판사에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하지만 구건호가 우선 들고 간 것이다.

구건호는 김민혁이 있는 소주(쑤저우)로 가지 않고 왕지엔이 있는 항주(항쪼우)로 갔다.

구건호는 왕지엔을 호텔로 불러낼까 하다가 절강대 교수 연구실로 직접 찾아갔다.

“왕교수? 나야. 구건호. 지금 공항에서 내려 네 연구실로 가고 있는 중이야.”

“지금 온다고? 어서 와. 지금 나 연구실에서 혼자 논문 쓰고 있어.”

구건호는 왕지엔을 만나 포옹을 하였다.

“얼굴본지 오래다.”

“이거 한국에서 나온 네 책이야.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네 책을 우편으로 보내주겠지만 우선 두 권을 들고 왔어.”

“우편으로 보내줘도 되는데 무겁게 이건 왜 들고 오나?”

왕지엔은 그렇게 말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였다.

“한글이 참 아름답네. 소리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부럽다.”

“중국 한자는 심오한 뜻이 있잖아.”

“한자는 인터넷 시대에 사용하기 어렵고 외국어 표기도 어려워. 오마바나 트럼프 등 외국인 이름을 쓸 때는 항상 한자로 만들어야 되는 어려움이 있어.”

“한글은 스물 넉자야.”

“그러니 부럽지. 인민들이 바로 배우고 쓸 수 있으니 말이야. 구사장, 중국 인민들이 평생 모르고 사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뭔지 아나?”

“뭔데?”

“첫째 중국 인민들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넓어 평생 다 못가보고 죽는다네.”

“말 되네.”

“두번 째는 뭔지 아는가? 지방마다 음식이 달라 중국음식 다 못 먹어보고 죽는다는 말이 있어.”

“그런가. 하하.”

“세 번째가 뭔지 아는가?”

“글쎄.”

“중국 인민들은 중국 한자를 다 모르고 죽는다는 거야. 지금 나도 잘 안쓰는 한자가 나오면 잘 모르는 경우도 있어.”

“흠. 그건 좀 안타깝네.”

“친구가 먼 곳에서 왔으니 한잔 해야지. 오늘은 내가 사지. 나, 지에이치 미디어에서 선인세 받은 것이 있잖아.”

“그거 받은 지가 몇 달 되었는데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책을 한국에서도 출판하게 힘써준 구건호 사장에게도 한잔 사야 도리가 아니겠어? 가자. 소흥주 한잔 하자.”

왕지엔 교수는 구건호를 호빈로(湖濱路)에 있는 허름한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퇴근길에 가끔 오는 곳이야. 혼자 와서 혼술을 즐기기도 하지. 여기서 소흥주 한 병에 가지 무침이나 미나리 무침 한 접시면 안주론 제격이야.”

“가지무침과 미나리 무침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 맛이 비슷하다. 맛있는데?”

구건호는 나물 무침이 맛이 있어 의외로 많이 먹었다. 기름을 넣고 살짝 볶아서인지 맛이 아주 훌륭했다. 돼지고기 한 접시도 나왔다.

“돼지고기는 친구가 와서 특별히 주문한 거야. 돼지고기도 괜찮지?”

“응, 좋군.”

돼지고기는 가늘게 썰어 양파와 함께 볶아서 나온 요리였다.

왕지엔 같이 가난한 학자들이 올만한 술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이집에서 술 한잔하면서 쓴 글이 있어. 저녁신문에 기고한 글인데 ‘친구를 생각하며’란 글이야.”

왕지엔이 자기의 가방에서 약간 오래된 신문을 꺼냈다. ‘친구를 생각하며’란 왕지엔 교수가 쓴 글이 실렸다.

구건호가 신문을 읽어보았다. 왕지엔 교수의 글에는 한국인 친구 구건호가 들어가 있었다. 구건호를 알게 된 경위와 그가 사업가로 성장하고 한국의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베픈 친절, 그리고 한국인의 질서의식과 청결함에 대하여 썼다.

“고맙워. 이렇게 생각을 해주니.”

“그 글은 내 진심이야.”

구건호는 왕지엔이 고마웠다.

“우리 우정 변치 말자.”

“그래, 죽을 때까지 변치말자.”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구건호는 소주로 가서 김민혁을 만났다. 김민혁은 전보다 살이 더 쪄진 것 같았다.

“살쪘구나. 중국서 기름기 있는 음식 먹어서 그런 모양이다.”

“영업한다고 술만 먹는데 안주를 많이 먹어서 그런 모양이야. 그렇지 않아도 어제 상해에 있는 내 애인한테 잔소리 좀 듣고 왔다.”

“무슨 잔소린데?”

“살 빼라고 하더라. 약까지 주었어.”

김민혁은 감비(減肥)라고 쓴 중국 살 빠지는 약을 흔들어 보였다.

중국 공장은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민혁이 간략하게 구건호에게 손익현황을 말해주었다. 김민혁은 스톡옵션을 받기위해 열심히 뛴 흔적이 보였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구나.”

“실은 내가 돈이 필요해서 연말에 스톡옵션 배당 좀 받으려고 이를 악물었어.”

“결혼 때문에 그런가?”

“살집은 있어야 되잖아. 임대료 부담이 커서 집을 소주 시내에 사려고 해. 내년 봄 결혼과 동시에 살 집을 말이야.”

“배당은 많이 받을 것 같은가?”

“지금 속도라면 경상이익이 한국 돈으로 20억은 나올 것 같아. 그럼 스톡옵션이 5%니까 1억 배당은 받잖아. 소주 시내에 취원화원(翠苑花園)이란 아파트가 있는데 공장도 가깝고 좋아. 25평 짜리가 한국 돈 1억 5천만 원 하는데 융자받고 사면 가능할 것도 같아.”

“전망이 좋은 지역이야?”

“그럼. 앞으로 집값도 올라갈 것 같아.”

“결혼할 사람도 와서 보았나?”

“아직 보진 않았어. 결혼할 사람은 이름이 딩딩(丁丁)인데 결혼 때문에 상해 국제학교는 그만 둘 예정이야?”

“딩딩? 상해 국제학교는 아까운 직장 아니야?”

“미국 유학생 출신이라 이곳에서도 자리는 있어. 소주 국제학교에서도 오라고 하는 모양이야.”

“그래? 그거 잘됐구나.”

구건호는 김민혁이 정말 잘 되어 나가는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