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강남 리버스타 빌딩 (2)
(146)
구건호는 아침이 되어 청담동으로 이회장을 만나러 갔다.
“기다리고 있었네.”
이회장은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얼굴이 까칠했다.
“내가 잘 아는 복어국 집을 소개하지. 잘하는 집이네.”
청담동 대로변에 있는 복집은 아침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홀도 넓고 사람도 많았다.
복어 지리탕은 맛이 없게 생겼는데 막상 먹으니 국물 맛이 좋았다.
“이집 자주 오십니까?”
“가끔 오지. 어때? 맛이?”
“좋습니다.”
“이집 복어는 언제나 좋아.”
옆에서 이회장을 수행하는 권부장도 후루룩대며 먹었다.
“신사동 빌딩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
“뭐, 그냥, 그런 것은 얼마나 하는지 호기심에서요.”
“대지 270평에 연건평 4,200평의 19층짜리 건물이네. 아직 새 건물이지.”
“위치는 어떤가요?”
“왜? 가보게? 약도를 그려주지. 대로변에 있어 찾기도 쉽네. 아래층에 은행이 입점해 있고 대형 브랜드 커피숍도 있는 알짜배기 건물이지.”
“차고도 있겠네요.”
“물론이지. 지하 4층까지 있는데.”
“그런 건물 인수하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융자 받기 나름이겠지. 2천억 한다니까 80% 융자 받으면 400억은 있어야 하겠지.”
구건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복어탕을 먹고 있던 권부장이 놀랐다.
“어이쿠, 400억요?”
“개인이 400억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 기업도 큰 회사는 있겠지만 말이야. 큰 기업은 사옥도 아닌 빌딩 같은걸 함부로 사면 안 되지. 비업무용을 샀다고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을 수도 있어. 세무당국도 곱게 보지 않을 테고.”
“한번 구경이나 가보지요.”
“자네 400억 있나? 400억 정도는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그동안 많이 벌었네.”
옆에서 권부장이 입을 벌리고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돈 없습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긁어모아도 그렇게 될까?”
“그 빌딩 주인 박회장 소개시켜 줄까? 아주 지독한 구두쇠지."
“아, 아닙니다. 저, 그런 것 살 실력 없습니다. 먼 미래에는 살 수 있을 지 몰라도 말입니다.”
“자, 약도 그렸으니 찾아가 봐. 엘리베이터도 두 대나 되니 1층에서 18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와 봐. 그 빌딩에 입주한 기업체만 해도 50군데는 될 것 같네.”
“대충 보고 천안 직산에 내려가겠습니다. 공장 일에 열심히 해야지요.”
“암, 건물 새로 짓고 했으니 열심히 해야지.”
구건호는 신사동의 빌딩을 찾아갔다.
“흠, 외관은 아주 훌륭해. 리모델링 한지가 얼마 안 되나?”
구건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앞에 수위가 앉아 있고 엘리베이터 입구에 입주회사 명패가 천정 끝까지 적혀 있었다.
“별의별 회사가 다 들어와 있네. 건설회사도 있고, 여행사도 있고, 연예 기획사도 있고, 회계사 사무실도 있고,....”
구건호는 건물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대충 구경했다. 지하로 내려가 차고도 구경했다.
구건호는 다시 직산 공장으로 내려왔다.
“서울은 역시 복잡해.”
구건호는 공장 2층의 넒은 사장실에 앉아서 기지개를 폈다.
총무부장이 들어왔다.
지난번 생산직 결원은 전원 20대, 30대로 뽑았습니다. 연령에 꼭 제한을 둔건 아니지만 응모자 자체가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흠. 그래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우리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우선하여 뽑았습니다. 더구나 우리 공장이 있는 직산은 지하철이 연결되므로 평택이나 오산, 수원지역의 사람들도 응모를 했습니다.”
“배치도 다 끝났습니까?”
“생산 파트별 배치도 끝났습니다. 오늘 소집일이라 전원 강당에 모입니다. 근무에 대한 안내와 제복지급, 그리고 근무할 작업현장에 대한 안내가 있을 예정입니다.”
“음.”
“사장님과의 미팅은 내일 아침 9시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첫날이라 어수선하고 제복도 안 입어 질서가 없는 듯합니다. 내일 9시에 다시 모여 입사식을 하고 사장님을 비롯한 간부와의 상면시간을 갖도록 함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
“아산 공장에서 이곳이 멀다고 따라오지 않은 주부사원들이 지금은 후회한답니다.”
“왜요?”
“재취업이 잘 안되고 여기 공장을 와서 보고 최신식 시설에 반해버린 모양입니다. 아산까지는 지하철이 연결되고 우리가 또 직산역에서 공장까지 통근버스를 운행하니까 오고 싶어 합니다.”
“한번 결정한 걸 뒤엎으면 안 되겠지요. 오히려 회사의 권위가 없어집니다.”
“저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사람을 다시 모집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생산직 정년은 언제지요?”
“58세입니다. 사무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사규정은 꼭 지키도록 하세요. 그래서 규정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우리가 구조조정으로 정년 안에 내 보내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그래야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을 하는 것이지요. 애사심도 그 속에서 생기고요.”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이 나가고 나서 전자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신사동 빌딩은 건물이 연건평 5천평이라고 했지? 평당 임대료가 얼마나 될까? 우선 대충 수익률을 투자액의 6%로 잡아볼까? 대로변이니까 그 정도 되겠지.]
[2천억 투자에 6%면 일년에 120억이다. 만약에 80% 융자를 받는다면 400억만 투자하고 1600억에 대한 이자가 얼마나 될까? 3.5%를 잡는다면 56억이네. 그러면 120억에서 56억 빼고 64억이 떨어지네]
[64억에서 경비와 각종세금, 인건비를 빼야겠지? 거긴 빌딩이 커서 사람을 많이 써야 할 거야. 경비원도 필요하고 보일러나 전기 기술자도 필요하고 청소원도 여러 명 쓴다면 10명은 있어야 할거야. 그러면 얼마가 빠질까? 20억? 30억? 그래도 남는 장사네. 아니야 400억 자본금도 이자율은 반영해 주어야지. 공짜는 아니니까. 그래도 이익이 나겠는데?]
[아하, 이런 바보, 건물에 대한 감가상각이 있지? 건물은 전체가격의 절반만 잡으면 얼마야? 20년 상각 기준 한다면 오히려 손해인데?“]
구건호는 이리 계산해 보고 저리 계산해 보았다. 이것도 크게 남는 사업은 아닌 것 같았다.
[역시 자기 돈이 있어야 돼. 융자 많이 받아보았자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는 거야. 융자를 80%가 아닌 50%나 30%만 빌려봐. 답이 나오지.]
구건호는 머리가 복잡하여 계산한 종이를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산 스파비스에 가서 온천물에 몸이나 담그고 오자.”
구건호는 차를 몰고 아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새로 모집한 생산직 30명이 정식으로 첫 출근하는 날이다. 주로 30대의 사람들이 산뜻한 새 제복을 입고 명찰까지 목에 걸은 채 강당으로 모였다. 생산부 박종석 부장을 비롯한 간부들도 대부분 참석했다.
강당의 벽에는 큼직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주)지에이치 모빌 20xx년도 생산직 신입사원 입사식.]
사회는 총무부장이 아닌 총무과장이 보았다.
국민의례가 있은 후 대표이사 구건호의 환영사가 있었다.
“저희 회사는 아산에 공장이 있다가 이번에 직산으로 이전했습니다. 직산의 공장은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새 건물에 새로운 식구를 맞아들여 저도 한없이 기쁩니다.”
“여러분이 회사일에 열심히 몰입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면 그 성과에 대한 보답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구건호는 가급적 인사말을 짧게 했다. 이어서 신입사원 대표로 30세쯤 되는 젊은이가 나와 구건호 앞에서 선서도 하였다.
선서가 끝나자 간부사원들 인사가 있었다. 간부사원 인사가 끝난 후 구건호는 한 사람 한 사람씩 30명 전원과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30명 신입 사원 중에는 여성도 6명 끼어 있었다.
신입사원 30명이 각 라인에 배치되자 현장의 칼라가 달라졌다. 젊은 사람들이라 몸이 빠르니 현장이 역동성 있게 보였다. 아산 공장에서 넘어온 나이 많은 사원들도 몸과 손이 더 빨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선 본 선생님 말이야. 들리는 말에 의하면 너한테 호감을 가진 모양이더라. 한 번 더 만나보지 않을래?”
“안 만나.”
“그러지 말고 만나봐라. 여자가 아깝다.”
“나는 아깝지 않고?”
“하긴 네가 더 아깝지.”
“나 지금 회의 중이야. 바쁘니 전화 끊어.”
“알았다. 마음 변화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공장은 새 건물로 이사 온 후 규율이 더 강화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구건호가 공장을 인수할 당시는 전체 종업원 숫자가 250명이었으나 지금은 약간 줄어 240명 정도 되었다. 새로 생산직 직원 30명을 뽑았어도 240명 선을 유지하였다. 더구나 신제품 물량이 늘어났어도 사람을 늘리지 않아 전체 매출액에서 인건비 비중은 많이 떨어졌다.
“이번 달 인건비 현황입니다.”
총무부장이 표를 들고 와 보고를 하였다.
“전체 매출액에서 인건비 비중이 25%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흠.”
총무부장은 1인당 매출액과 노동생산성 등을 산출하여 표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 물론 이것은 총무부장이 만든 것이 아니고 총무과 직원들이 만든 것을 부서장인 총무부장이 들고 온 것이었다.
“지표가 좋아지고 있기는 한데 더 노력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구건호는 상임감사와 함께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직원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지만 총무부장의 안내로 구건호와 상임감사는 바로 식판을 들고 배식구에 가서 밥과 반찬을 타와 식사를 하였다.
“사장님 여기 오셨네요.”
늦게 온 공장장도 식판을 들고 구건호가 있는 자리에 와서 앉았다. 직원들은 식판을 들고 왔다가 구건호가 있는 것을 보고 피해서 멀리 떨어져 밥을 먹었다.
구건호는 식당의 식대를 계산해 보았다.
[하루에 240명이 여기서 식사를 하고 야간 작업이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300명은 넘게 식사하겠군. 한사람당 식대를 4천원 잡으면 하루에 120만원, 임대료는 없으니까 용역을 주면 누군가 밥은 먹겠군. 누나하고 매형하고 내려오라 하고 식당 용역을 줘? 관두자. 친인척이 회사내에 많으면 좋을 것도 없지. 직영 체계로 그냥 가자.]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직원 한사람이 물컵에 물을 떠와 구건호와 상임감사, 공장장 등 세 사람의 배식판 옆에 올려 놓았다. 이 바람에 구건호의 생각은 흩어지고 말았다.
구건호가 자기 방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주거래 은행인 강남 지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사장님 골프치십니까?”
“요즘 잘 안치는데 왜요?”
“저희 은행 본사에서 티켓이 나와서요. 지점의 주요 기업고객 사장님들과 골프시합이라도 한번 하라는 지시가 있어 구사장님을 모시고 싶은데요.”
“지점장님도 잘 알다싶이 요즘 공장 이전으로 바빠 골프 못칩니다. 대신 한번 조용히 뵙고 싶은데요.”
“무슨 일 있습니까?”
“부동산 관련 일인데 언제 한가하십니까?”
“아무때고 오십시오. 저희야 항상 자리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구건호는 사장실에서 혼자 앉아 컴퓨터 엑셀 작업을 하였다,
강남 리버스타 빌딩 현황표를 만들었다. 토지와 건물 면적, 그리고 근저당 현황 등을 보기 좋게 표로 만들었다.
구건호는 현황표에다 인테넷에서 발급받은 강남 리버스타 빌딩의 토지와 건물 등기부등본, 토지 및 건물 대장 등을 첨부시켰다. 그리고 핸드폰에 담아두었던 강남 스타빌딩의 외관 전경 사진과 일부 내부 사진을 프린트하여 이것도 첨부 시켰다.
“지점장 만나러 가면 그냥 입만 가지고 가는 것 보다 이런 표라도 들고 가야 되겠지?”
구건호는 서류에 호치키스를 찍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