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강남 리버스타 빌딩 (1)
(145)
총무부장은 오민숙 팀장을 공장 근처의 매실농장으로 안내했다. 놀랍게도 매실농장 안에는 동화속의 그림같은 음식점이 있었다.
“와, 이런 농장 안에 음식점이 있네요.”
오만숙 팀장은 서울 강남에서도 보지 못한 농장안의 음식점을 보고 감탄했다. 더구나 식당 앞에 연못과 각종 꽃들이 활짝 피어 있어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여기는 한정식이 전문입니다.”
한정식은 반찬 가지 수가 20가지가 넘었다. 오민숙 팀장은 너무 대접을 잘 받는다고 생각했다.
총무부장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주)지에이치 미디어는 전액 구건호 사장님이 출자한 회사인가요?”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업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얼마 안 돼요. 편집 일 보는 문재식 주간님과 디자인하는 두 사람과 서무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위에 출판계의 마이더스 손이란 신정숙 사장님이 계시고요.”
“강남에 있다고 했지요?”
“예, 강남역 근방에 있습니다.”
“매출은 얼마나 됩니까?”
“신설 회사라 매출은 없습니다. 지에이치 개발은 매출이 있습니다만.”
“지에이치 개발요?”
“모르셨어요? 지에이치 개발이라고 부동산 임대업이에요. 우리 사무실 옆에 있어요.”
“그래요?”
“구건호 사장님이 처음 사업하실 때 부동산 임대업부터 하셨어요. 고시텔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시텔이요?”
“거기에 강부장님과 경리보는 정지영이라는 제 친구가 있어요. 언젠가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데 구건호 사장님이 강남 큰손이란 소문이 있데요.”
“강남 큰손이요?”
“저는 강남에 가서 살아만 봐도 원이 없겠는데 거기서도 큰손이라니 돈이 얼마나 많겠어요. 거래하는 은행 직원들한테 들은 이야기라고 하네요.”
“흠. 그래요?”
총무부장은 구건호란 인물이 불가사의하게 보였다. 소문에 듣기로는 협력업체인 와이에스테크에서 잠깐 경리 일도 보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기업을 인수하고 강남 큰손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업무 처리 스타일은 확실히 노련미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 그렇게 부를 이루었을까?]
총무부장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밥을 먹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을이 되었다.
구건호는 오전에 회사 업무를 끝내고 서울 도곡동의 타워 팰리스 집으로 갔다.
“오늘 한남동 장마담 집에 가는 날이지? 오후 7시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집에서 낮잠이나 자다가자.”
구건호는 달게 낮잠을 자고 오후 5시경 일어났다.
“배가 고프네. 뭘 좀 먹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았다.
“5시네. 2시간 후면 한남동 요정에 가서 잘 먹을 텐데 배고픈 건 참자.”
구건호는 가벼운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콜택시를 불렀다. 렌드로버 자기 차는 집에 놓고 한남동엘 가기로 했다.
도곡동에서 한남동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날은 어두워졌지만 아직 퇴근시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차가 많이 밀렸다. 그래도 일찍 출발한 덕에 7시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구건호가 바로 요정 ‘솔’로 들어섰다. 문에 들어서자 검은 양복을 입은 깍두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 몇몇은 구건호를 알아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깍두기들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어, 수고들 해요.”
구건호는 이제 깍두기들의 등을 두드릴 줄도 알았다.
“장마담 계시오?”
“예, 안에 계십니다. 저희들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구사장님. 호호호.”
장마담이 간드러진 웃음을 지었다.
“더 젊어지셨네요.”
“어머머, 구사장님이 이제 농담도 하시고 여유가 만만해 지셨어. 국제 연애하는 사람은 달라도 뭐가 달라.”
“국제 연애라니 남들이 들으면 오해 하겠어요.”
“오해는 무슨 오해.”
장마담은 구건호의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오셨나요?”
“아직 안 오셨어요. 상은 준비해 놓았으니 먼저 들어가 계세요.”
구건호는 자수 병풍이 쳐진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큰 상이 펼쳐져 있는데 아직 본격적인 음식은 없지만 간단한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구건호는 상석은 비워둔 채 윗목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장마담의 목소리도 들렸다.
“회장님, 어서 오세요.”
“오셨나?”
“그럼요. 벌써 왔지요. 젊은 분이 먼저 와서 기다려야지요. 호호호.”
“박도사도 왔나?”
“박도사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오시겠지요 뭐.”
이회장이 방으로 들어오자 구건호가 벌떡 일어났다.
“앉아. 앉아. 그냥 앉아요.”
구건호가 이회장을 상석으로 안내했다. 병풍을 등지고 앉게 했다. 장마담이 와서 얼른 이회장의 웃 저고리를 받아 벽에 걸었다.
“장사 잘 되나?”
“그럭저럭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 이년들이 내가 왔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이네.”
여자들 목소리도 들렸다.
“어째서 너희들 새끼 마담만 있냐? 장마담 어디 갔어?”
“호호호, 저 여기 있어요.”
장마담이 얼른 나가서 박도사를 모셨다. 박도사의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있었다.
“너는 재벌들만 사람으로 보이냐? 썩을 년!”
이회장이 빙그레 웃었다.
“저 친구 입은 여전하구먼. 이리와 앉아. 이 사람아!”
구건호가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흥! 신왕재왕 사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왔네.“
박도사가 장마담이 깔아주는 방석에 앉았다. 이회장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시골은 언제 내려갈 건가?”
“내일이라도 가야겠어. 어찌나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귀찮아 죽겠어.”
장마담이 옆에서 참견을 하였다.
“그게 다 돈이잖아요.”
“썩을 년이 돈밖에 모르네.”
“박도사님 내려가시면 박도사님이 그동안 몰아준 손님들은 다 잃게 생겼어요.”
“이제 우리 시대는 다 갔어. 앞으로는 여기 옆에 앉아있는 신왕재왕 선생이 손님들 몰아줄 거야.”
“구사장님이요? 구사장님은 우리집 딱 두세 번 밖에 안 왔어요.”
“앞으론 밀어줄 거다. 걱정 말아라.”
이회장이 장마담에게 술상을 주문했다.
“한상 들여오게. 술은 장마담이 담갔다는 산삼주도 좋네.”
“알겠습니다.”
장마담이 일어서서 히프를 요염하게 흔들며 나갔다.
이회장이 술잔을 박도사에게 주었다.
“청학정사는 다 지었나?”
“다 됐어. 내가 서울 강남에 와서 번 돈은 다 그 암자 하나 짓는데 들어갔네.”
“거기 가면 외롭지 않겠는가? 나도 없는데.”
“달빛도 있고 술도 있는 고장인데 외로울 게 뭐 있나. 자네와 나는 같은 강남 한 복판에 살면서도 언제 자주 만났었나?”
"하긴 그래.“
“자주 놀러와. 괴산이 요즘은 길이 좋아 금방 오잖아.”
“그래, 한번 가지.”
“그러나 저러나 자네는 억울하겠네.”
“왜?”
“나는 청학정사에서 놀다가 청학을 타고 신선이 되겠지만 자네는 돈놀이를 지독하게 해서 지옥에 갈 텐데 억울해서 어쩌나?”
“요즈음은 지옥이 더 좋다더라. 하하하.”
구건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노인들의 대화자리이므로 끼워들기도 어려웠다.
“참, 내가 구건호 사장이 온다고 해서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네.”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왕재왕 사주의 이름을 모르면 되겠는가?”
박도사는 가방에서 붓글씨를 쓴 한지를 꺼냈다.
구건호가 박도사가 건네준 붓글씨를 받았다. 한문으로 휘갈겨 쓴 글씨라 무슨 자인지 모르겠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글귀지.”
옆에서 이회장이 글씨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회장은 뜻을 아는 모양이었다. 박도사는 정색을 하고 구건호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제 돈을 못 버네.”
“예? 돈을 못 벌어요?”
“자네가 돈을 버는 운은 다 지나갔네.”
“억울합니다. 아직 상장회사 하나 갖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염려 말게. 지금 자네는 천석꾼이가 되었지만 곧 만석꾼이가 되네. 천금을 희롱하네.”
“돈을 못 번다면서요?”
“자네는 못 벌어도 자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벌어줄 거네.”
“예?”
“자네가 버는 시절은 가고 자네 부하들이 벌어주는 시절이 온다는 이야기네.”
“아, 예.”
“그럼 이제부터 자네가 할 일은 무엇인지 아는가?”
“무엇입니까?”
“사람 관리네. 사람만 잘 골라 쓰면 되네.”
“예....”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나 냉장고를 만들 줄 모르고 현대의 회장이 자동차 윈도우 브러쉬 하나 만들지 못하네. 하지만 그들은 유능한 사람들을 밑에 두어 사람을 부릴 줄 아네. 돈은 그 사람들이 다 벌어다 주지.”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서 이 글씨를 자네에게 주네. 글씨 내용은 의인막용(疑人莫用), 용인물의(用人勿疑)네.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 벽에 붙어있던 글씨지.”
“의인막용, 용인물의? 무슨 뜻입니까?”
“의인막용,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라는 소리네. 용인물의, 이것은 사람을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소리네.”
“아, 예...”
구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한국 제일 재벌 창업자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장래를 끝까지 책임져준 삼성은 제일 재벌로 성장했지만 종업원을 머슴으로 생각한 한보의 정태수 회장은 몰락하고 만 것이다.
[맞는 말이야. 내가 박종석을 의심하고, 김민혁을 의심하고, 문재식을 의심한다면 그들도 나를 의심하겠지. 일단 내 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믿자.]
구건호는 박도사가 준 붓글씨를 고이 접어 벗어둔 양복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만석꾼이한테 술 받아 마시니 나도 기분이 좋네. 핫핫핫.”
“오늘 같은 날 풍악이 없으면 안 되겠지?”
이회장이 장마담을 불렀다.
“거문고를 준비해다오.”
거문고를 들고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들어왔다.
거문고 소리에 몸을 흔들며 이회장과 박도사, 구건호는 오랫동안 술을 마셨다. 노소간 나이의 차이를 뛰어 넘어 같이 취하고 같이 흥을 돋우었다. 이 날 이회장과 박도사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춤까지 추었다. 박도사는 장마담을 불러 같이 추었다. 구건호는 장마담의 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의 춤사위는 프로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구건호는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으려고 신사동 빌딩에 대하여 묻지를 못했다. 요정을 나올 때 겨우 물었다.
“회장님, 신사동 빌딩 구경 한 번 가도 되겠습니까?”
“신사동 빌딩? 매물로 나온 박회장 빌딩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우리 사무실로 오게. 아직 직산에 안내려 갈 거지?”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은 술 때문에 정신이 어지러워 이야기 못하겠네. 내일 아침에 해장으로 복어국이나 같이 먹세.”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사무실로 찾아뵙겠습니다.”
구건호는 장마담에게 콜택시를 불러줄걸 요청했다.
“사장님이 콜택시 타시면 되겠어요? 우리 애들보고 좋은 차 준비하라고 할게요.”
구건호가 이회장과 박도사가 가는 것을 배웅하였다. 이회장이 탄 차가 골목 밖을 미끄러져 나가자 BMW X5 한 대가 구건호 앞으로 왔다. 깍두기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타십시오. 사장님.”
장마담은 콜택시가 아니고 자가용 BMW X5를 배정 했다.
“장마담 차요?”
“운전대를 잡은 깍두기가 말했다.
“아닙니다. 의전용으로 준비해둔 차입니다.”
“이 집에 이런 차도 있었나?”
구건호가 차에 올라타자 깍두기가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모실가요?”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갑시다.”
깍두기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구건호가 탄 차가 제3한강교를 넘어가고 있었다. 깍두기가 룸미러로 뒤에 탄 구건호를 보며 말했다.
“저희들은 사장님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나에게 관심이? 왜요?”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중 가장 젊으셔서 누구일까 하며 우리 팀원들이 곧장 화재로 이야기 합니다.”
“팀원?”
“손님 중 재벌 2세도 있지만 사장님은 자수성가하신 분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재벌 2세들은 매너가 나쁩니다. 우리 팀원 중 따귀를 맞은 사람도 있고 매실 음료수를 뿌려 얼굴에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헌데 사장님은 언제나 조용하시잖아요.”
“허허, 그래요?”
“사장님은 젊으셔서 형님 같기도 합니다.”
“지금 나이가 몇이요?”
“서른 한 살 입니다.”
“흠, 나보다 네 살 어리군.”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무렇게나 하시오.”
운전대를 잡은 깍두기가 명함을 꺼내어 구건호에게 주었다.
“저희들은 장마담이 운영하는 요정 ‘솔’의 직원이 아니고 경비업체의 직원들입니다. 주로 요인 보호를 위주로 하지요. 요정 ‘솔’에 파견 나와 일한지는 3년이 넘었습니다. 장마담이 큰누님 같고, 엄마 같아서 잘 대해줘 오랫동안 있습니다.”
‘호, 그랬군요.“
구건호가 깍두기가 준 명함을 보았다.
명함에는 경비지도사 임태영 이라고 되어있었다.
“경비지도사?”
“그렇습니다. 제가 파견 나온 직원 중 팀장입니다. 자격증 소지자도 저 하나 뿐이고요. 하지만 우리 팀원들 모두 무술 유단자들입니다.”
“그러면 임태영씨도 운동 좀 하셨겠네?”
“예, 태권도가 4단이고 유도가 4단입니다. 합기도도 조금 했습니다. 형님.”
구건호는 깍두기한테 형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싸움도 조금 하겠네?”
“싸움은 안합니다. 하지만 강남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싸움으로는 제가 전교 짱이었습니다. 일진회도 제가 잡고 있었습니다.”
“허허, 그래?”
“형님, 명함 있으면 하나 주십시오.”
“내 명함을?”
구건호는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명함을 주었다. 명함이 없다고 할까 하다가 너무 빼는 것 같아 그냥 한 장 주었다.
“제조업 하시는 모양이지요? 언제 기회 있으면 저희들 한번 키워주십시오.”
말 하고 있는 사이에 벌써 차가 타워팰리스에 도착했다. 구건호는 봉투 하나를 꺼내 깍두기에게 주었다. 깍두기는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며 구건호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였다.
“형님, 살펴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