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43화 (143/501)

# 143

신축 공장 이전 (2)

(143)

구건호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조카 정아가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누나가 적극적으로 나서 중매가 이루어졌다.

누나는 그동안 복지사 2급을 따고 이어서 1급을 땄다. 매형도 지입차주라 월 500씩은 벌었다. 누나는 소나타 차까지 사서 끌고 다니고 정아가 다니는 학교 학부형회에서도 감투를 쓴 모양이었다. 더구나 정아가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해 인기가 있었다.

“학교서는 정아보고 반장을 하라고 하는 모양이야. 걔가 공부도 잘 하고 5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부자라는 소문이 났어. 그래서 인기가 좋다더라.”

언젠가 엄마가 말하는 이런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특히 정아는 부모의 보살핌 받았지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주안에서 낡은 연립주택 세들어 살 땐 만날 맞고 다니더니 지금은 대장노릇 한다더라.”

엄마는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났다.

구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주안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맞기만 하지 않았던가? 왕따라는 왕따는 다 당하고 비 오는 날 자기 우산도 뺏겼다. 예쁜 여학생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했고 집안이 가난하다보니 제대로 된 대학도 못가 낭만적 캠퍼스 생활도 못했다. 지금의 정아가 누리는 모든 것은 결국 물질의 토대가 뒷받침 되어서 그런 것이었다.

“인간은 탐욕스러워. 아이들 때도 빈부를 알아 서열을 메기고 집단 따돌림을 하기도 하지.”

아파트나 타고 다니는 자동차등 외향적인 것으로만 평가하려는 의식은 교사들의 세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혼자인 정아의 담임은 후배 교사에게 적극적으로 선을 보라고 권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반 학부형 동생인데 큰 회사 사장이래. 학교는 중국서 대학을 나오고 그의 부모들도 구월동에서 5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아. 선 한번 봐라. 신랑 인물도 괜찮다고 하더라.”

“중국서 무슨 대학을 다녔는데?”

정아의 담임 선생은 정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랑 될 사람이 중국서 무슨 대학을 다녔다고 했지요?”

“절강대학 경영학과요.”

구건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누나까지, 아니 누나 친구인 보험 하는 누나까지 정신없이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화까지 냈다.

“너, 이놈아.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죽기 전에 친손자 한번 안아봐야지.”

“정아 있잖아요.”

“조개 달린 년들은 다 소용없다. 제사 지낼 아들이 있어야지!”

“요즘 누가 그런 걸 따져요. 또 제가 장가간다고 해도 아들 낳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엄마도 수시로 전화했다.

“자식도 자식이지만 집안에는 여자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정아 에미가 말하는 색시는 초등학교 교사라니 얼마나 좋으냐. 경인 교대를 나왔다니 너보다 공부도 훨씬 잘했을 거고, 또 말년에 연금도 많으니 얼마나 좋으냐. 너 조금 지나면 그런 혼처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알았어요. 지금 공장 이사를 해야 되니 다음 주에 연락을 드리지요.”

구건호는 가족이 때로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이 이사하는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도 잠바를 입고 회사를 나가 보았다. 회사에는 벌써 용역업체의 대형트럭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게차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공장장은 뒤에서 팔짱만 끼고 있었는데 박종석이 혼자 악을 쓰고 돌아다녔다.

“그건 그렇게 실지 마. 우든 박스에 담아 이 개새끼야!”

“야, 3호 트럭 뒤로 좀 더 빼!”

“야, 이 병신아 크레인을 왼쪽으로 옮겨 걸어야지!”

구건호는 박종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일본인 기술자 사카다 이쿠조씨도 플라스틱 박스에 정신없이 자기 물건들을 담았다.

직원들의 고생이 심했다.

가정집의 이사 짐 옮기는 것도 힘든데 공장의 대형 기계들을 옮기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수백 톤, 수천 톤짜리 기계장비를 운반 대형트럭에 상하차 하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특히 안전사고에 조심해야 했다. 어떤 것은 철거할 때 용접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부장님 이거 잘 안 떨어져요. 한번 와보세요.”

“이 병신아, 용접을 그렇게 하면 돼? 이리 줘봐!”

박종석이 용접 헬멧을 쓰고 불꽃을 튀겼다. 잠시 후 기계는 떨어지고 지게차가 달려들어 기계를 들어올렸다.

지게차는 못 보던 대형 지게차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 빌린 모양이었다.

새벽부터 전쟁을 방불케 하는 소동 끝에 오전 12시가 되어서 기계들을 겨우 직산 공장으로 옮겼다. 하차 또한 쉽지 않았다. 마당에 임시로 쌓여 논 기계들은 각 생산동으로 정확히 위치를 찾아 들어가야 했다. 공장장은 위치가 잡혀진 기계들을 시운전 해보고 있었다.

총무부장이 구건호에게 다가왔다.

“사장님은 들어가시지요. 현장이 너무 소란스럽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다들 고생하는데.”

“사무실 집기하고 컴퓨터 연결은 내일 작업합니다. 월요일은 다들 이쪽으로 출근하여 업무를 봐야 하니까요.”

“전화국엔 다 연락이 되었지요?”

“그럼요. KT 기사들도 지금 대기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회사에서도 나와 있고 전기기술자들도 다 나와 있습니다.”

“흠.”

“사장님께서 식당부터 가동하라고 했는데 주방 아줌마들도 다 나와 있습니다. 이사 하는 날이라 특별식을 준비 했답니다.”

“잘 하셨습니다.”

이사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거의 끝났다. 기계들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벨트가 돌고 콤프레샤가 소리를 내고 냉각수가 순환이 되었다.

박종석 부장은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다녔는지 목소리까지 쉬었다.

“고생했다. 목소리까지 쉬었구나.”

“형, 나중에 나 맥주 한잔 사줄 거지?”

“암, 그래야지. 이사는 너 혼자 다한 것 같다.”

박종석 부장도 땀투성이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

구건호는 일요일도 회사를 나갔다.

직산공장에는 벌써 사무직 직원들이 나와 컴퓨터를 점검하고 있었다. 연구실 직원들도 아직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어 실험 장비들을 닦고 조이고 하였다.

“사장님실 정리는 다 됐습니다.”

총무부장이 와서 보고하였다.

“그래요?“

구건호는 넓은 자기 방에 들어갔다.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고 채광이 좋았다. 책장에 있는 책들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으나 모든 집기들이 전에 있던 사장실과 똑같이 재현되어 있었다. 책상과 의자, 쇼파, 회의용 테이블과 의자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누가 청소를 했는지 먼지 하나 없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오, 난초 화분 냄새네.”

벌써 납품업체 사장들이 ‘축 이전’이라고 쓴 난초 화분을 10여개나 보냈다. 구건호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화분 두 개를 골랐다. 하나는 자기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른 하나는 회의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월요일이 되었다.

직원들은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사무실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우중충한 건물이 있었던 아산공장보다는 생산라인의 정리 정돈도 한결 나아졌다.

새로운 신축공장에서 첫 번째 임원회의가 열렸다.

“이쪽으로 이전하면서 거리 문제로 빠져나간 직원들이 얼마나 되지요?”

“사무직들은 전원 같이 따라왔고 생산직 주부사원들이 퇴사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두 30명 정도가 이곳으로 못 온 것 같습니다.”

“생산라인의 작업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즉시 모집 광고를 내십시오. 젊은 사람 위주로 채용할 수 있도록 복지 부분도 함께 공개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중식제공, 통근차 운행, 상여 400%, 자녀 학자금지원, 등을 모집 광고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윤이사님은 공장 건설 일이 끝났으니 다음은 아산공장 철거를 시작해 주십시오.”

“아산 공장을요?”

“그렇습니다.”

“아산 공장은 노후화가 되긴 했지만 철거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아직은 아깝습니다. 리모델링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그냥 철거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아산 공장은 라이먼델 디욘사와의 합작문제가 해결되면 이 신축공장과 똑 같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합작이라고 하셨습니까?”

“아직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의견을 디욘사의 미국 본부에서 현재 검토 중에 있습니다.”

임원회의가 끝나자 또 가족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토요일 선을 보기로 정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한술 더 떴다.

“올해는 너 장가보내는 해로 정했다.”

이번에는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장소까지도 정해가지고 전화를 했다.

“토요일 오후 2시까지 무조건 인천 라마다 송도 호텔 커피숍으로 와. 그 선생님이 그리로 나오기로 했어.”

구건호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호기심도 들었다.

“또 누가 알아? 내가 그리던 이상형의 여자일지?”

구건호는 선을 안본다고 하면 가족들이 또 난리일 것 같아 알았다고 대답했다. 청담동 이회장을 만나는 것은 선을 보고나서 한가해지면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정숙 사장이 일본인이 쓴 자기계발서 2권을 발행하여 보내주었다.

250페이지 전후로 얇은 책이었다.

“이런 책을 누가 볼까?”

구건호는 여성인 경리부장을 불렀다.

“이 책을 지에이치 미디어에서 보내주었는데 누가 사 볼까요?”

경리부장이 책을 펼쳐보았다.

“어머, 새로 나온 책이네요. 따끈따끈한 책이네요.”

경리부장은 킁킁거리며 책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요즈음은 이렇게 얇고 가벼운 책들이 잘 나가요. 두꺼우면 질려서 잘 안 봐요.”

“그래요?”

“제가 먼저 읽어 보아도 돼요?”

“그렇게 하세요.”

경리부장은 좋아하면서 책을 들고 나갔다.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인천 라마다 송도호텔로 갔다. 호텔 커피숍에는 여자들 셋이 앉아 있었다.

“어머, 왔네.”

누나 외에 여성 두 명은 40대 중반과 30세 전후의 여자였다. 구건호는 직감적으로 40대는 정아의 담임이고 30세는 오늘 선을 보러나온 여자임을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차 많이 밀렸지? 이리 앉아. 얘가 내가 말하던 동생입니다.”

40대 여성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참 잘생기셨네. 나는 웬 미남이 들어오나 했더니 바로 오늘 주인공이시네.”

누나는 오늘따라 머리도 새로 하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장에 다니면서 찌든 얼굴을 하고 다녔던 아줌마는 아니었다. 돈 많은 귀부인 같이 보였다. 돈이 좋긴 좋았다.

30새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구건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앉은 키가 큰 구건호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오종종하게 보이는 것이 여간 탐탁스럽지가 않았다.

“인사드려라. 이분은 정아 담임선생님이시고, 이분은 오늘 주인공이시다. 경인 교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오시고 학교에서 아주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시다.”

“안녕하십니까.”

구건호가 덤덤히 인사했다.

정아 담임선생이 말했다.

“동생 분은 누나하고 안 닮았네요. 나는 연예인 인줄 알았네. 지금 사업하신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무슨 사업이지요? 누나한테 이야기는 들었는데.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이라고 했지요?”

누나가 담임선생의 말을 막았다.

“아이고 이제 그만 물어요. 본인들끼리 이야기 하라고 하고 우리는 자리를 비켜줘야지요.”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신랑이 너무 좋다 보니까 내가 이것저것 묻게 되네.”

담임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누나도 일어섰다.

“그럼 두 분들 잘 해봐요.”

두 사람이 나가고 구건호와 30세 여성만 남았다. 구건호는 할 말도 없었다.

“차 드세요.”

“네.”

여자도 할 말이 없는지 커피 잔만 만지작거렸다.

“저, 전공이 중국어세요?”

“아닙니다. 경영학입니다.”

“중국서 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건너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긋힐긋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건호는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구건호도 말없이 커피 잔만 만지작거렸다.

구건호는 아무 말도 안하면 결례일 것 같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원래 고향이 인천이신가요?”

“아닙니다. 수원입니다.”

“그럼 수원서 인천까지 출퇴근 하십니까?”

“원룸생활 합니다. 주말에만 수원엘 갑니다.”

“아, 예. 그렇군요.”

구건호는 또 할 말이 없었다. 구건호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아아, 모리에이꼬가 저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구건호는 화사하게 웃는 모리에이꼬가 생각났다.

구건호는 또 무슨 말인가를 여자에게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사 생활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5년차예요.”

“이젠 많이 익숙해지셨겠네요.”

여자가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웃었다. 구건호는 결혼상대자가 너무 인물이 좋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앞에 있는 여자는 너무도 마음에 안 들었다, 여자도 구건호가 자기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그만 일어설까요?”

“네 , 그러지요.”

구건호가 일어서고 여자가 일어섰다. 여자는 의외로 키가 작았다. 모리에이꼬도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지금 여자는 모리에이꼬 보다도 키가 목 하나는 작은 것 같았다.

“아이들 가르치느라고 많이 힘드시지요?”

“아니요. 할 만합니다.”

여자는 구건호의 키를 보고 다소 우울해 하는 듯 했다. 구건호가 여자의 팔을 잡으며 저녁식사라도 하고 가자거나, 거리를 같이 걷자 라는 말이 나와야할 상황인데 구건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구건호는 속으로 너무 모리에이꼬만 생각하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생 년한테 빠져서 좋은 사람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구건호는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물이 어느 정도 받쳐주고 키가 보통만 되었어도 좋았을 텐데. 이것 참.”

구건호는 여자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건가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요. 부평역 쪽으로 가봐야 해요.”

“아, 그러십니까? 저도 서울에서 친구들 모임이 있네요.”

구건호가 여자를 보고 웃었다. 여자도 웃으며 구건호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이렇게 하여 구건호의 첫 번째 맞선은 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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