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41화 (141/501)

# 141

비지니스 플렌 (3)

(141)

구건호는 라이먼델 디욘사 방문을 마치고 시애틀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피곤하지?”

김영진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제 배 아프다고 한건 어때?”

“속이 많이 편해졌어. 어제 다운타운을 걸으며 로드샵 구경한 게 도움이 된 모양이야.”

“다행이다.”

“여긴 좋은 데가 어디 있나?”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 구경하고 내일 귀국하자.”

“그럴까?”

구건호가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에서 시애틀 시내 전경을 열심히 구경하였다.

“넌 시내 구경 안하냐? 어째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나?”

“여기 온 김에 연락할 사람이 있어.”

김영진 변호사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말로 전화를 하는걸 보니 한국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한국이냐?”

“아니야. 여기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의 교수로 있는 친구야.”

“친구?”

“예일대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지. 참 똑똑한 애야. 쉐라톤 호텔로 온다고 했어.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안 만나고가면 서운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

“그런 친구가 있었구나.”

시내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서 구건호가 김영진에게 말했다.

“친구가 이곳으로 온다고 했지? 친구 만나면 식사나 해라. 나는 배도 아프고 하니 저녁은 햄버거로 간단히 끝내겠다.”

“무슨 소리. 같이 만나. 친구의 친구는 또한 친구가 아닌가?”

“그렇지만 내가 있으면 곤란하잖아?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렇지 않아. 꽤 서글서글하고 재미있는 친구야. 먼저 올라가서 쉬고 있어라. 저녁 7시쯤 온다고 했으니 오면 내가 연락할게.”

“알았다. 올라가 있을게.”

구건호는 자기 룸으로 돌아와 손만 씻고 침대에 누웠다. 시내 관광 때문에 많이 걸어서인지 온 몸이 노곤했다.

침대 위에서 깜박 잠이 든 사이에 전화 벨이 울렸다.

“구사장? 나야. 김영진. 친구가 왔으니 로비로 내려와.”

구건호는 얼굴을 대충 물수건으로 문지른 후 로비로 내려갔다. 도수 높은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웃고 있었다.

“친구야. 인사해라. 워싱톤 대학의 한수영 교수야.”

“구건호입니다.”

“한수영입니다. 사장님 말씀은 친구 김영진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장사꾼에 불과합니다.”

“저, 역시 학삐리에 불과합니다.”

김영진 변호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야, 장사꾼과 학삐리가 잘 만났다.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

“좋지. 내가 잘 가는 싸고 맛있는 집이 있지.”

“어딘데?”

“여기서 가까워. 걸어서 가도 돼. 씨푸드 전문점이야.”

김영진과 한수영은 오래간만에 만나서 그런지 온갖 수다를 떨면서 걸어갔다. 그 뒤를 구건호는 말없이 따라갔다.

씨푸드점은 홀도 넓었지만 사람들로 꽉 찼다.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인 것 같았다.

“이 집 장사 좀 되겠는데.”

김영진의 말에 한수영 교수가 말을 받았다.

“장사에 관한 건 옆에 계신 구사장님께 물어봐야지. 장사꾼 전문이신데.”

한수영 교수가 킹크랩과 와인을 시켰다.

“킹크랩? 비싸겠는데?”

구건호의 말에 한수영 교수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비싸지 않아요. 킹크랩은 한국서 잘 안 나오지만 여긴 잘 잡혀요. 한국의 갈비 집 가는 돈 이면 실컷 먹어요.”

“그렇습니까?”

“우리 학삐리는 돈이 없으니까 저녁 값은 이따가 장사꾼 선생님이 내 주세요.”

“야, 넌 대한민국 국무총리 아들이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냐.”

“아버지가 국무총리였지 나도 국무총리인가? 국무총리도 퇴직하니까 별 볼일 없더라.”

“벌어 놓은 것 많이 있으실 것 아닌가?”

“없어. 그 양반 그런 재주나 있으면 좋게? 고지식해서 돈도 못 모았어. 내가 이곳에 사는 아파트가 바퀴벌레도 많이 나오고 좁아터져 지원 좀 해달라고 하니까 고개를 돌려버리더라.”

한수영 교수는 잘 마시고 잘 떠들었다.

한수영 교수 덕분에 구건호도 킹크렙과 와인을 제법 마셨다.

“사업이 많이 힘들지요? 미국이 FTA 다시 하자고 하던데.”

“우린 업종이 무역이 아닌 제조라 FTA 바람은 덜 탑니다.”

한수영 교수는 이번엔 김영진 변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앞으론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가관일거야. 오죽하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도 ‘두 그룹의 전략’이란 책이다.“

“두 그룹은 미국과 중국을 말하는 건가?”

“물론이지.”

한수영 교수는 책을 가방에서 꺼내 김영진 변호사에게 주었다.

“재미있나?”

“재미있어. 시카고 대학 교수가 쓴 건데 상해 복단대 교환교수를 하다가 와서 그런지 아주 리얼해.”

“나도 한번 읽어봐야 겠구나.”

“나도 한번 보자.”

구건호가 김영진 교수로부터 책을 넘겨받아 펼쳐보았다.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 구건호의 실력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구건호는 책의 표지를 사진 찍었다.

“그건 왜 찍나?”

“내가 출판사 가지고 있잖아.”

“아 참, 그렇지. 역시 장사꾼은 촉이 달라.”

한수영 교수는 와인을 한잔 마시고 ‘좋다’라는 소리를 연발했다.

“크, 좋다. 친구 좋고 안주 좋으니 좋다. 영진아 너도 많이 먹어라. 한국서 킹크랩 먹기 쉽지 않으니 여기서 실컷 먹어라.”

“네가 보여준 책을 보니까 절강대에 있는 왕지엔 교수가 생각난다.”

“중국 애들도 장기를 잘 두어. 미국이 장 받아라 하면 중국은 바로 멍군 받아라 한단 말이야.”

“중국이라고 멍청한 사람들만 있겠어? 당장 왕지엔 같은 애들이 있는데.”

“크크크, 왕지엔, 똑똑하지. 지금 거기서 성 정부의 금융 개혁위원회 위원과 재정경제 위원회 위원인가 뭔가를 한다고 했지? 우리도 정신 차려야지.”

“너 귀국해라. 너도 한국에 와서 금융개혁 위원도 하고 재정경제 위원도 해라.”

“크크크, 누가 나를 불러 주겠냐? 당장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꾼들이 설쳐댈 텐데.”

구건호는 갑자기 시민단체 출신의 강민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와 함께 미국 방문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구건호는 천안시 직산읍에 있는 공장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 마침 윤이사와 함께 박종석도 현장에 와 있었다.

“종석아, 너 여기 있었냐?”

“독일에서 들여온 압출기 여기서 시험 가동 중이야. 신제품 AM083 어셈블리는 지금 여기서 뽑고 있어.”

“그래, 기계 성능 어떠냐?”

“역시 좋아. 나오는 속도도 빨라. 이쿠조씨가 와서 타임을 조절하기도 했어.”

윤이사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공장 완공은 다 되었습니다. 준공식 날짜를 잡아주시면 행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산 공장 이전은 준공식 끝나고 언제든지 하면 좋습니다. 공장장님은 손 없는 날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손 없는 날?”

“이사짐 센터 같은데서 믿는 손 없는 날 있지 않습니까? 삼재가 없는 날이라고 하던가?”

“윤이사님처럼 서울대 나오신 분들도 그런 미신을 믿습니까?”

“하하, 믿지는 않지만 그걸 따지는 분들도 있어서요.”

“알겠어요. 내가 날자 잡아서 알려드리지요. 준공식 날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손 없는 날을 따진 모양입니다.”

(주)지에이치 모빌의 임원회의가 열렸다.

임원회의는 통상 월요일 아침에 열리므로 구건호가 임원들 모이라고 따로 연락할 필요는 없었다.

“직산공장 준공식을 언제 하는 게 좋겠습니까?”

“준공식은 사장님께서 손 없는 날로 정하십시오. 단 공장 이전은 토요일 했으면 합니다.”

“토요일이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생산 현장의 라인이 멈추니까 이때를 이용하면 됩니다.”

“토요일, 일요일 잔업 수당을 주어야 하겠군요.”

“많은 종업원이 필요한건 아니고 핵심 요원만 출근하면 됩니다. 요즘은 공장 이전도 이전만 전문으로 용역을 맡아 해주는 업체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핵심 요원들은 다 출근해야 합니다. 기계 설치후 시험 가동을 해야 되니까요.”

“준공식은 누굴 불러야 하나요.”

“우선은 초청장을 만들어 보내십시오. 우리의 주요 거래처와 지역 기관장, 그리고 사장님이 아시는 분들로 하시면 됩니다.”

임원회의가 끝나고 구건호는 준공식 날짜를 잡기위해 카렌다를 쳐다보았다.

“손 없는 날로 해? 제기랄, 내가 손 없는 날이 언제인줄 알아야지. 그냥 수요일이나 목요일로 할까?”

구건호는 수요일과 목요일로 정하기로 했다가 다시 취소했다.

“그냥 정하기가 찜찜한데. 아, 그렇지. 청담동 이회장님께 물어보자.”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청담동 이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접니다. 구건호입니다.”

“오, 구사장.”

“건강하시지요?”

“건강하네. 아산 공장 운영은 잘 되지요?”

“네, 잘 됩니다. 그리고 제가 짓고 잇는 직산 공장이 건물이 다 올라갔습니다. 다음 주에 준공식을 하려고 하는데 이회장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어, 벌써 다 되었나? 전에 내가 준공식 때 온양 온천에도 들릴 겸 한번 간다고 했으니 들려야지. 가만있자. 다음 주는 언제가 좋을까? 기왕이면 손 없는 날로 하지.”

“손 없는 날이 언제입니까?‘

“수요일이 손 없는 날인데 확실한건 강남 박도사에게 물어보지. 구사장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지요?”

구건호는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생년월일을 이회장에게 불러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30분쯤 후에 이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도사에게 물어보니 수요일 오전 11시가 좋다는구먼. 구사장이 화토 용신인데 수요일 일간이 병술일이고 손 없는 날이라 최고로 좋다고 하네”

“화토 용신이요?”

구건호는 이것이 또 무슨 소린가 했다.

“그 날은 나도 바쁜 일 없으니 내려가지.”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직산공장 준공식을 합니다. 관내 기관장들에게 보낼 초청장 준비를 하시고 윤이사와 함께 행사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행사 당일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다과 준비도 하세요. 아, 다과 준비는 행사장 다과를 준비해 주는 용역업체가 있더군요. 거길 한번 찾아보세요.”

“알고 있는 업체가 있습니다. 요리사를 파견하여 뷔페식으로 준비해 주는 업체가 있습니다.”

“초청장은 관내 기관장들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거래하는 중요 업체에도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사내전화로 공장장에게도 연락했다.

“준공식 날자는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1시로 했습니다. 준공식 끝나고 공장 이전을 바로 해야 하니 준비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장 천정이 새고 냉각 라인이 말썽을 피우는데 빨리 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주 미국에 출장 갔을 때 워싱턴 대학의 한수영 교수가 재미있게 보던 책이 있어 소개합니다.

<두 그룹의 전략>이란 미국 출판사 발행 서적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의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가 읽고 있던 <비지니스 모델 디자인 콤파스>란 책입니다.

두 책을 번역 출간하면 어떨까 신 사장님께 문의 드려봅니다. 책의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으나 표지는 사진 찍어둔 것이 있어 첨부 파일로 보냅니다.

또한 (주)지에이치 모빌의 직산 공장이 완공되어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준공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신정숙 사장님을 초청하니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행사 당일 직산역에 오시면 회사 직원이 픽업을 해드립니다.]

신정숙 사장에게서 바로 답신이 왔다.

[사장님이 추천하신 외국서적은 준공식 당일 참석하여 검토 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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