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비지니스 플렌 (2)
(140)
구건호는 동창회가 끝난 다음날 아침 김민혁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어제 잘 들어갔지?”
“말마. 다 집으로 돌아가고 일곱 명이 남아서 2차, 3차까지 갔었어.”
“나는 강민호가 횡설수설해서 데리고 나왔다가 그냥 들어갔어. 강민호 택시 태워서 보내고 나서 나도 택시 타고 들어왔지. 너무 취해서 2차는 못가겠더라.”
“강민호 그 자식 왜 그러지? 내가 손 좀 한번 볼까?”
“쓸데없는 소리! 걔도 취해서 그러니 맑은 정신으론 후회할거야.”
“애들도 강민호 손 좀 봐야겠다고 하던데?”
“어제 2차, 3차는 누구누구 갔었니?”
“이석호, 조원철, 황병철, 문재식 다 있었어. 2차는 내가 내고 3차는 문재식이 냈어.”
“잘했다.”
“난 내일 아침에 돌아갈게. 중국도 오래 자리 비워두면 안 되니까.”
“아, 그리고 곤산시 합자사 철수 하면서 받은 15억은 지금 얼마나 남았나?”
“그 돈 가지고 5억은 설비 증설하는데 썼었어. 기계가 오래 세워두어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었고, 밀린 임금과 공장 임대료 밀린 것 일부 정산하기도 했었지.”
“그것 빼고 얼마나 남았나?”
“공장 가동 후 매출이 늘어나 일부는 회수하여 네 통장에 넣어 두었어. 지금 13억쯤 남아 있을 거야.”
“그러면 말이야, 창고 하나 사보도록 해라.”
“창고? 지금 우리 공장이 넓어 창고를 새로 살 필요는 없는데.”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의 용도가 아니고 앞으로 디욘 합작사에서 필요해서 그러는 거야.”
“아, 디욘코리아 생산제품 중국 시장에 팔려면 물건 쌓아둘 장소가 필요하겠구나.”
“그렇지.”
“그럼 몇 평 정도가 좋을까?”
“평수는 300평 내지 1,000평이면 돼. 공장이 아니고 창고니까 전력시설은 많지 않아도 돼.”
“한번 일아 볼게.”
“단지 알아 볼땐 토지를 우리 명의로 할 수 있는가를 알아봐야 돼.”
“토지를 사면 소유권은 당연히 우리에게 있겠지.”
“너도 잘 알겠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아. 등기가 가능한 토지가 있고 땅주인이 사서 임대하면서 소유권 등기도 가능하다고 사기 치는 놈들이 많아.”
“음, 잘 알아봐야겠구나.”
“기왕이면 교통이 편하고 장차 지가가 올라갈 수 있는 지역인가도 살펴봐.”
“창고 목적도 있고 부동산 투자 목적도 있겠구나.”
“그렇지. 또 그래야 필요할 때 은행에서 돈도 빌릴 수 있지 않겠어?”
아침마다 기온이 제법 내려가 긴팔을 입어야할 초가을이 되었다.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와 함께 시애틀을 가기 위해 인천 공항에서 만났다.
“너도 긴팔 입었구나. 나도 입었다.”
“무슨 가방이 이렇게 크냐? 미국 가서 금발 미녀라도 담아가지고 오겠다.”
“빈 거야, 빈 거. 옷 몇 가지하고 책 만 들었어.”
“책은 나도 가져왔어. 10시간 이상 비행하니까 읽을거리가 있으면 좋지.”
“손에 무슨 책을 들었는데? 무슨 책이냐?”
“이거? 그냥 심심해서.”
“제목이 뭐냐? 비지니스 모델 디자인 콤파스(Business Model Design Compass)? 미국 책인가?”
“하하, 다 읽고 내용 알려줄게.”
“나는 잡지만 가져왔어.”
“잡지도 좋아.”
“항공권은 대한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다.”
“이코노미 클래스도 좋은데. 이코노미 클래스로 하지.”
“장시간 가려면 다리는 뻗고 가야지.”
구건호와 김영진 변호사는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도착했다.
시애틀은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있는 도시로 항공사로 유명한 보잉사가 여기에 있고 스타벅스 1호점과 아마존 서점이 창업된 도시로 유명하다. 구건호가 찾아가려는 라이먼델 디욘사도 이곳에 있었다.
“공항 렌터카 빌려도 되지만 경전철로 이동하자. 경전철도 다운타운까지는 가니까.”
“난, 아무거나 좋아.”
구건호와 김영진 변호사는 저녁 어스름 무렵 다운타운의 쉐라톤 호텔에 도착하였다.
“구사장, 내일 아침에 이동해야 하니까 오늘은 그냥 푹 자고 시내 관광은 내일 하자.”
“그래. 나도 기내식을 잘못 먹었는가 설사가 있는 것 같아.”
“약 사줄까?”
“아니야. 설사약, 감기약, 상처 바르는 연고 등은 가져왔어. 난 여행할 땐 항상 이런 것들을 준비해.”
“철저하구나. 이런 것은 구건호 사장을 본받아야겠다.”
“내일은 렌트카로 이동하나? 디욘사까지 말이야.”
“여기 호텔에서 준비해 준다고 했어. 시애틀까지 온 김에 보잉사 견학을 하고 가면 좋은데. 시간도 그렇고 신청도 안한 상태라 좀 애매하다.”
“보잉사는 견학은 나중에 하자. 공장이 하도 넓어 구경하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린다더라.”
“그럴까? 그래도 저녁밥은 먹어야 되지 않겠어?”
“그래, 그럼 짐 풀고 로비에서 만나자.”
구건호와 김영진은 호텔 옆에 붙어있는 레스토랑에서 가벼운 식사를 하였다. 김영진 변호사는 와인을 주문했지만 구건호는 설사 때문에 먹지 않았다.
“그래도 먹으니 든든하지?”
“응, 든든해. 호텔이 호화스럽진 않아도 다운타운에 있어서 좋다. 시내 구경하는 딱 좋다.”
“배도 아프다고 하니 오늘은 올라가서 쉬어라.”
“아냐, 나 혼자 그냥 다운타운을 걸어볼게. 그래야 배도 꺼질 것 같아.”
“그것도 좋지. 비행기 안에서 장시간 앉아만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구건호는 시애틀의 다운타운을 걸었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영문간판은 확실히 이국적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도시군.”
다운타운의 로드샵을 구경하며 걷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었다.
“치킨벨리? 치킨 한 조각에 맥주라도 한잔하고 싶은데. 아이고, 설사 또 나올라.”
구건호는 미국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귓가에 들으며 거리를 걸었다.
“옆에서 떠드는 미국사람들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나이든 중년 아줌마가 다가와 구건호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길을 묻는 것 같았다.
“아이 돈 스피크 잉글리쉬.”
구건호는 이 말을 던지고 달아났다.
얼마를 걸었을까?
구건호는 배가 편안해짐을 느꼈다.
“역시 운동에는 걷는 게 최고야.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은 것도 다 소화가 되는 것 같네.”
구건호는 호텔로 돌아와 한국에서 가져온 정로환 세알을 먹고 잠이 들었다.
디욘사의 담당자 안젤리나 레인은 상당히 뚱뚱한 40대 후반의 여자였다.
“호호호, 이름만 듣고는 금발의 미녀로 생각했지요? 극동의 먼 나라에서 오시느라 수고 했어요. 앉으세요.”
레인은 상당히 낙천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다른 직원들하고 이야기 할 때도 벙긋벙긋하며 잘 웃었다. 직급도 높은지 다른 사람들이 이 여자를 대할 때 공손했다.
“미스타 구, 미스타 킴, 반가워요. 해외담당 부사장인 브렌든 버크씨와는 오후에 미팅 시간을 잡았어요. 그동안 현장 라인을 보여주라는 버크씨의 지시가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특히 두 분은 디욘제펜의 리차드 아미엘이 최선을 다해 모셔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브렌든 버크씨와 리차드 아미엘씨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안젤리나 레인은 전화로 누군가를 불렀다.
안젤리나 레인은 전화로 부른 사람이 오기 전에 몇 가지를 물었다.
“한국의 인구는 얼마나 되요?”
“오천만 좀 넘습니다.”
“한국은 국민소득이 얼마나 되지요?”
“3만 달러 정도 됩니다.”
안젤리나 레인은 사람을 불러놓고 방문자들이 지루해 할까봐 가벼운 질문들을 했다. 안경 넘어로 생글거리며 웃는 그녀의 눈동자가 맑아 보였다.
제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약간 흑인인 듯한 사람이었다.
“이 두 분은 한국에서 온 사업가들입니다. 우리와 조인트 컴페니를 할지도 모를 분들입니다. 라인을 구경시켜주세요. 라인은 5, 6라인만 보여주시고 사진 촬영은 허가하지 않습니다.”
“예스, 치프!”
구건호와 김영진은 현장으로 갔다.
현장은 2층으로 연결되어 있고 2층에 난간 통로가 있었다. 생산현장은 접근할 수가 없었고 2층 통로를 따라 다니며 아래층 작업현장을 볼 수 있었다.
“와, 엄청나게 크네!”
김영진 변호사가 놀랐다.
“나는 이런 공장 처음 봐. 굉장하네. 노량진 수산시장 보는 것 같네.”
“하하, 나도 그 생각 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 공부 할 때 수산시장을 가끔 구경 갔었지. 노량진 전철역에서 다리를 건너 수산시장을 내려다 본 것 같다.”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벨트에 담겨져 나가다가 자동으로 바스켓에 담겨지네.”
“흠, 모든 게 자동시스템이야.”
“역시 세계적 기업이라 할만하다.”
“나도 이런 공장 갖고 싶어.”
김영진은 미소를 띠며 구건호를 돌아보았다.
“프레이 훠 썩세스 (성공하길 빈다).”
김영진 변호사는 구건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오후에 해외담당 부사장 브렌든 버크씨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소회의실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테이블 위에 작은 성조기와 태극기가 놓여 있었다.
“반갑습니다. 내가 라이먼델 디욘사의 부사장 브렌든 버크입니다.”
브랜든 버크는 키가 상당히 큰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이었다. 미남형이었다.
“한국의 지에이치 모빌의 사장 구건호입니다.”
“한국의 김앤정 로펌의 변호사 김영진입니다.”
구건호와 김영진은 명함을 버크씨에게 주었다.
디욘사측에서는 세사람이 나왔다. 부사장 버크씨와 담당자인 안젤리나 레인, 그리고 기록을 담당하는 듯한 안경낀 젊은 흑인여자가 한사람 들어와 앉아있었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버크씨의 책상 위에는 구건호가 보낸 서류와 사업계획서가 놓여 있었다. 방금 준 명함 까지도 테이블 위의 서류 옆에 놓아두고 있었다.
“지에이치 모빌의 재무제표는 잘 보았습니다. 우리가 정한 기준에 많이 미흡했습니다. 부채비율이 너무 높았습니다. 부채를 줄일 특단의 계획이 있는지요?”
옆에 있던 안젤리나 레인이 버크씨의 말을 거들었다.
“이를테면 캐피탈 인크리스 같은걸 말합니다.”
김영진 변호사가 구건호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증자(增資)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어.”
구건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증자계획은 없습니다. 단, 이번에 신제품 개발로 매출이 15%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규로 발생하는 매출이익으로 부채를 감소시킬 계획입니다.”
구건호는 가방에서 이번에 사카다 이쿠조씨가 만든 AM083 어셈블리를 꺼냈다.
“이번에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이중 압출 형태입니다.”
버크씨와 레인은 눈을 크게 뜨고 구건호가 준 제품을 만져보았다.
“이걸 정말 한국의 지에이치 모빌에서 만든 겁니까?‘
“그렇습니다.”
버끄씨는 구건호가준 신제품을 계속 만져보고 구겨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다.
“이걸 만들 때 원재료는 어느 회사 제품을 썼습니까?”
“디욘아메리카입니다.”
버크씨의 입술에서 옅은 미소가 번졌다.
“좋습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지에이치 모빌의 신용도는 'B-'입니다. 이 부분도 우리가 심히 꺼리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A+'를 원하진 않더라도 'A-'이상은 원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각종 부채를 서울 강남에 있는 제1금융권 은행으로 집중시켰습니다. 한국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채무도 이번에 없앴습니다. 이 부분은 아직 재무제표에 반영이 안 된 부분입니다. 12월말 결산서에는 이것이 모두 반영이 되어 'A-'까지는 무난히 회복되리라 봅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옆에서 우리 기록원이 모두 메모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 로펌에서 온 변호사도 입회하고 있어 구사장님의 말씀에 신뢰는 갑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번 사장님께서 제출하신 서류를 보고 평가한 항목 중에서 가장 점수를 많이 딴 부분입니다. 사장님은 중국 절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HSK 6급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중국에 구사장님이 투자한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설립연도가 5년 전이고 최근에 인수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물파산업 중국공장을 내가 인수한 겁니다.”
“중국내에서 파이넨스를 일으킨건 없었습니다. 회사 규모는 작더라도 이 부분은 높이 평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업계획서를 보니 중국내 인맥을 이용하고 중국에 나와 있는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을 공략해 월간 300톤 이상 판매가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는 자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인터뷰한 내용은 우리 회사의 해외투자 심의 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할 것입니다. 논의 결과는 안젤리나 레인 부장을 통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우리 회사의 스텝들이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의 지에이치 모빌을 방문 하겠습니다.”
“환영합니다.”
브랜든 버크 부사장은 벌떡 일어나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는 그의 손이 참 따스하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