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비지니스 플렌 (1)
(139)
김영진 변호사가 사업계획서를 잘 보았다고 연락이 왔다.
“보긴 잘 보았는데 난 잘 모르겠어. 공장업무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야지.”
“너하고 디욘 본사를 찾아가는데 공부는 하고 가야지.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보내준 거야.”
“계획서는 잘 만든 것 같던데? 향후 계획이 계획대로 잘 굴러가는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미국은 언제 갈수 있나?”
“김앤정 로펌하고 주식회사 지에이치 모빌이 정식 법률자문 계약을 맺었으니까 가긴 가야지. 이번엔 놀러 가는 게 아니고 정식 업무로 가니까. 출장 형식으로 가면 돼.“
“디욘사의 담당자라고 하는 안젤리나 레인하고 방문 일정을 맞추어봐.”
“내가 금주엔 좀 어렵겠고 다음 주는 괜찮아. 다음 주 방문이 어때?”
“그렇게 하자. 그럼.”
구건호는 스마트폰에 있는 카렌다를 보았다.
“다음 주에 미국을 간다면 동창회 갔다가 일본을 한번 다녀와도 되겠구나.”
구건호는 스마트폰에 저장한 모리에이꼬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 보아도 귀엽구나. 너는!”
구건호는 스마트폰 화면에 입을 맞추었다.
구건호는 일본가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회사 총무팀에 항공권 예매를 지시하지 않고 개인 돈으로 직접 끊었다.
“이메일로 항공 예약권을 보내드렸습니다. 프린트하시고 출발 당일 공항에 나가셔서 예약권을 보여드리고 항공권을 받으시면 됩니다,.”
여행사 직원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구건호는 오전에 회사 일을 대충 끝내고 김포로 갔다. 공항 면세점에 들려 간단한 선물을 샀다.
“모리에이꼬에게 집은 사주었지만 그동안 선물다운 선물은 한 번도 안 해주었지?”
구건호는 화장품과 향수, 그리고 자기가 마실 양주 등을 샀다. 하네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바로 시부야 다이칸야마에 있는 맨션으로 직접 향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에게 미리 문자를 보냈다.
[하네다 공항에서 내려 시부야로 가고 있는 중임].
답신이 왔다.
[맨션 열쇠 비밀번호 바뀌었음. 오빠 전화번호로 바꾸었음.^^]
구건호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구건호는 맨션에 도착하여 현관문 열쇠 비밀번호를 눌렀다. 정말로 자기 전화번호를 누르니 바로 열렸다. 인기척을 위하여 벨을 눌렀다.
앞치마를 입고 음식 준비를 하던 모리에이꼬가 뛰어 나왔다. 전보다 볼이 좀 통통해진 것 같았다.
“오빠!”
“에이꼬!”
둘은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부등켜 앉은 채 입만 맞추었다. 갸날픈 그녀의 숨소리가 그대로 구건호에게 전해져 왔다. 구건호는 더욱 힘차게 모리에이꼬의 가는 허리를 껴안았다.
“오빠, 나 보고 싶었어?”
놀랍게도 모리에이꼬는 더듬거리며 한국말로 했다.
“그럼, 보고 싶었지.”
“얼마나 보고 싶었어?”
“하늘만큼.”
“에이 거짓말.”
“정말이야.”
구건호는 다시 격렬하게 모리에이꼬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혓바닥 끝이 구건호의 입술에 전해져 왔다.
“오빠, 나 스끼야끼 준비 중이야.”
“한국말 언제 그렇게 배웠냐?”
“학원 다녔어. 동영상 공부도 했어.”
“장하다. 우리 모리에이꼬”
구건호는 다시 모리에이꼬를 껴안았다.
“나, 스끼야끼 해야 돼.”
스끼야끼는 일본식 샤브샤브같은 요리였다.
“너, 스끼야끼 만들 줄 알아?”
“할머니한테 배웠어.”
“할머닌 여기 안 오셔?”
“삿뽀로에서 왔다 가셨어. 사쪼상 한번 만나보고 싶데.”
“왜 가셨어?”
“갑갑하데.”
“그랬구나. 참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 사왔다.”
“와, 사이고다와(최고다)!”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또 부부처럼 식탁에 마주 앉아 스끼야끼를 쩝쩝대며 먹었다.
구건호는 김민혁을 생각했다.
“한족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지? 김민혁도 그 여자와 마주 앉으면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일까?”
구건호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오빠 피곤해서 그래?”
“아냐, 괜찮아.”
“침대에 가서 누워. 자리옷 준비했어. 발은 내가 씻어줄게.”
구건호는 모리에이꼬가 발을 씻어주는 사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눈을 떠보니 모리에이꼬가 구건호느이 품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모리에이꼬는 구건호가 부모 같기도 했고 애인 같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의지하려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고겐닌(후견인)이란 용어 자체가 그런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구건호는 엷은 잠옷만 입은 모리에이꼬를 힘껏 안았다.
구건호는 꿈같은 동경의 밤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영진 변호사가 안젤리나 레인과 통화가 된 모양이었다.
“다음 주 목요일 오후2시에 디욘사 제2회의실에서 만나기로 했어. 레인이라는 여자와 디욘사의 해외사업담당 부사장이 나온다고 했어.”
“수고했다. 그럼 하루 전날 시애틀에 도착하는 것으로 할까?”
“혹시 모르니까 하루 전날 오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하자. 화요일 밤에 출발하면 다음날 오전에 도착해. 시애틀까지는 대한항공 직항편으로 가도 10시간 이상 걸리니까.”
“멀긴 멀군.”
해외사업팀장이 사장실에 들어왔다.
“H캐피탈에서 기계류 리스가 가능하답니다. 기계가 1억이었을 때 매월 리스료가 얼마인지 조견표까지 보내왔습니다.”
“잘됐군요.”
“H케피탈에서 담당 과장이 저희 공장을 방문하겠답니다. 대표이사 동의서를 받아야 한답니다. 그리고 법인 인감증명하고 법인등기부등본, 법인 인감도장 등을 준비해 달라고 합니다.”
“서류는 총무에 있을 테니 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관세사 사무실에서 수입은 가능하답니까?”
“가능합니다. 그런데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왜요?”
“찾아보니 한국에 대리점이 있습니다. 전화를 해보니 자기네 공장에 몇 대 들어와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직접 와서 봐도 좋다고 합니다. 사장님 한번 보시겠습니까?”
“생산팀 박부장 좀 들어오라고 하세요.”
박종석 부장이 들어왔다. 박부장은 해외사업팀장이 옆에 있어서 구건호에게 반말을 하지 못했다.
“부르셨습니까?”
“독일제 압출기는 한국 대리점에 들어온 것이 있다고 하니까 박부장이 한번 가보고 오시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갈 때는 해외사업팀장과 같이 가시고 가격이나 연식, 그리고 A/S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진공 압출기는 여기다 설치하지 말고 새로 지은 직산 공장에 설치하도록 하세요. 어차피 여기도 이사 가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박종석 부장과 해외사업팀장이 동시에 대답을 하였다.
강남역 근방의 ‘백화’라는 한정식 집에서 동창회가 열렸다. 21명이나 모였다.
사람이 많다보니 여기저기서 지방 방송이 들렸다. 회장인 조원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모인 것 같으니 부라보 한번 합시다. 제가 선창하면 따라서 해 주세요. 부라보!”
“부라보!”
술들이 한잔씩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은 멀리서 오신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중국 강소성에서 자동차 부품공장 사장으로 있는 김민혁 회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민혁입니다.”
김민혁이 일어나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인사했다.
“야, 김민혁이! 너, 이따 갈 때 명함 하나 주고가라. 나, 지금 청도에 있다!”
김민혁은 아예 명함을 한 묶음 들고 왔다. 자리를 돌아다니며 명함을 모두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 총경리? 총경리가 사장이냐?”
“어, 그래. 맞아.”
“지에이치면 구건호가 하는 회사냐?”
“응, 맞아.”
구건호가 벌떡 일어났다.
“김민혁은 독립채산제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스톡옵션을 받아. 일종의 동업인 셈이야.”
“그럼 둘이 동업이냐?”
“그렇다고 보면 돼.”
조원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에, 그리고 처음으로 모임에 나온 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예쁜 동창회 명부를 만들어 보내준 문재식 회원입니다. 지금 출판사 편집 주간으로 있습니다.”
문재식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저, 사기꾼 아닙니다.”
문재식의 이 말에 사람들이 와하하 하고 웃었다.
“문재식 회원은 이번에 문학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상금을 5천만 원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 술값은 문재식이 내나?”
“일차는 회비 걷은 돈에서 하고 2차는 김민혁 회원이 내기로 했습니다. 김민혁 회원이 중국에서 사업해 돈 좀 벌은 모양입니다.”
“그래? 김민혁이 정말 돈 좀 벌은 모양이네.”
사람들은 김민혁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럼 3차는 문재식이 낼 거냐?”
이 말에 문재식은 대답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조원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한분 더 소개하겠습니다. 그동안 사회활동으로 모임에 나오지 못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나왔습니다. 강민호 회원입니다.”
강민호가 일어서자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중간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야, 강민호! 너 큰집 갔다 왔다며?”
이 말에 사람들은 또 웃었다.
“그래, 잘 갔다 왔다.”
“그럼 오늘은 두부만 먹어라.”
조원철은 또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21명이나 모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지방 방송이 많아져 자기의 목소리가 먹혀 들어가질 않았다.
사람들은 구건호 주변으로만 모여들었다.
“야, 구건호. 한잔 받아라.”
"나는 조금만 할게. 술을 잘 못해.“
구건호는 주는 대로 받았지만 아주 조금씩만 받았다. 사람들은 구건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돈이 제일 많은 구건호는 동창들 사이에서 점점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회단체에서 일한다는 강민호가 구건호에게 술을 권했다.
“나는 조금만 할게.”
강민호는 다른 사람처럼 조금만 따르지 않고 잔이 넘치도록 따랐다.
“그만 해. 넘친다.”
“왜? 내 술은 술이 아니냐?”
“하하, 그게 아니고 내가 체질상 좀 술이 약해.”
“난 너 같은 자본가를 증오한다. 다 노동자를 착취해서 부를 쌓는 종족들 아닌가?”
“난 그런 적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난 흙수저 중에서도 상 흙수저 출신 아니냐?”
“지금은 아니겠지. 노동자들이 피땀을 흘리며 기계 밑에 들어가 일할 때 너는 뭘 했냐? 주색잡기나 했겠지?”
“야야, 오늘 분위기가 이상하다. 제 말려라. 강민호가 취한 모양이다.”
“나는 민중을 위해서 거리에서 싸울 때 너희들은 뭐했냐? 구건호? 김민혁? 너희들은 돈만 알지 역사의식이 없는 애들이야.”
김민혁이가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야, 너 왜 그래? 취했어?”
“취했다. 취하지 않고 이 좃 같은 세상을 어떻게 맑은 정신으로 보겠냐?”
“야, 헛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쳐먹어라.”
강민호가 이제는 문재식을 잡고 늘어졌다.
“문재식이 너! 소설 끄적인다고 했지? 무협지 같은 것 쓰지 말고 이 사회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명작을 쓰란 말이다!”
“난 무협지 안 써. 순수 문학이야.”
강민호가 횡설수설 하는 것을 보고 집이 먼 동창 몇 사람이 일어섰다.
“우리 먼저 갈게.”
“나도 먼저 일어설게.”
대여섯 명이 자리에서 빠져 나갔다.
구건호가 웃으면서 강민호를 달랬다.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넌 기업이나 장사보다는 정치를 해야겠다. 이 사회에는 너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그렇지? 구건호,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
“그래, 큰집 갔다 와서 몸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구나. 술은 이제 그만 먹어라.”
“넌 기업인이 됐냐? 너는 학교 다닐 때 찢어지게 가난했지? 그래서 반발 심리에서 노동자의 고혈을 짜는 기업인이 되었구나. 그만들 짜라. 대한민국은 삼성과 현대 같은 재벌들이 없어져야 행복한 나라가 된다.”
보다 못한 동창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씨발 놈아 현대나 삼성 같은 회사도 있어야 나라가 경쟁력이 있지. 이 골통아!”
“뭐? 골통?”
분위기 험악해지자 사람들은 강민호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구건호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강민호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구건호는 강민호를 골목 안으로 데리고 갔다.
“실은 나, 네 소식 듣고 놀랐다. 면회 한 번 못가 미안하다. 거기 갔다 오면 몸이 많이 쇠약해진다고 하는데 이거 몸보신하는데 써라.”
구건호는 봉투지 하나를 얼른 강민호의 안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게 뭐야, 씨팔.”
강민호는 봉투를 다시 꺼냈다. 강민호는 봉투에 돈이 수북이 있는 것을 보자 슬그머니 봉투를 도로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취한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거라. 내가 친구들한테는 민호가 취해서 먼저 갔다고 이야기 하겠다. 우리 동창들 중에서 그래도 의식 있는 친구는 너밖에 없다.”
구건호는 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 얼른 태웠다.
구건호가 강민호를 돌려보낸 건 설득력 있는 언어도 아니고, 강제적 폭력도 아니고, 오로지 돈의 힘이었다. 구건호는 힘이 아주 센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