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38화 (138/501)

# 138

신제품 출하 (3)

(138)

왕지엔 교수가 연락을 해 왔다.

“구사장? 내가 보내준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며?”

“어, 그랬지.”

“젊은 사람이 전화가 왔는데 중국어가 아주 유창했어. 내가 승인해 주면 자기가 출판사에서 번역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했어.”

“잘 됐네.”

“그런데 출판사 사장은 따로 있지만 실질적 주인은 구사장이라고 하는데 참말이야?”

“촐판사 이름을 한번 봐라.”

“지에이치 미디어? 앗 그렇지! 네 회사구나!”

“출간 승인은 했나?”

“했지. 인세 7%에 3천 달러를 선인세로 보낸다고 하는데 당장 했지. 요즘 돈도 궁한 판에 말이야. 더구나 돈도 돈이지만 한국서 내 책이 출간된다는데 영광이지 뭐야. 고맙다.”

“고맙긴, 우리가 고맙지. 좋은 책 출간을 허락해 주어서.”

“그런데 걱정되는 게 있어.”

“뭔데?”

“재미있게 쓴 책이 아니고 학술서적 비슷해서 책이 팔릴라나 모르겠어.”

“팔리겠지. 천하의 왕지엔 교수님께서 쓰신 책인데.”

“너까지 왜 이래?”

“리스캉은 잘 있지?”

“상해로 가서 지금 바빠. 새로운 자리로 갔으니까 업무 파악이 될 때까지는 눈코 뜰 새가 없을 거야.”

“그렇겠지.”

“참, 리스캉이 언론이나 출판 같은걸 관리 감독하는 부서니까 잘 아는 중국 출판사 소개하라고 할까?”

“소개는 왜?”

“너희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중국 시장에 내 놓을 수가 있잖아.”

“우리도 외서 번역 출판이야. 국내 작가 책을 낸다면 한번 말해 볼게.”

“출판도 너와 합작하면 좋은데. 중국은 출판만큼은 개방을 안 한단 말이야.”

“그래?”

“인민들 사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런 모양이야.”

“우리 출판사도 신설된 지 얼마 안 돼. 나는 간섭도 안 해. 거기 여성 한분을 사장으로 초빙했는데 그분이 다해.”

“출판은 여성이 잘 할 수가 있지. 섬세하고 감성도 풍부하니까.”

“독자들도 여성이 더 많다는 소리를 들었어.”

“출판계 합동서(合同書: 계약서)는 내가 팩스로 이미 보냈다. 원본은 따로 EMS로 보내주기로 했고.”

“대박 났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좋고 너도 인세 많이 받아서 좋고, 이름도 알리고.”

“하하. 희망을 가져보자.”

무어 인베스트먼트에서 사업계획서를 가져왔다. 영문판과 한글판 두 부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만드시느라고.”

구건호는 한글판을 집어 들었다.

“계획서가 꽤 두텁네요.”

“50페이지입니다.”

“이것도 그런가?”

구건호는 조인트 스톡 캄페니의 비즈니스 플랜이라는 영문판을 보았다.

“영문판도 비슷합니다.”

구건호는 다시 한글판을 펼쳤다.

“사업개요, 사업품목, 수요예측, 판매 및 생산계획, 투자계획......”

“원부자재 수급계획과 추정 손익계산서, 추정 대차대조표도 잘 살펴 봐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놓고 가시면 내가 읽어보고 연락을 드리지요.”

“공장배치도는 공장장님이나 연구소장님 의견을 참고했습니다.”

“그런가요?”

“마지막 종합결론에도 나와 있지만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다면 지금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지에이치 모빌보다도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신설 합자사가요?”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 결론에 이거 하나 집어넣읍시다.”

“말씀하십시오.”

무어 인베스트먼트의 직원 두 사람은 얼른 필기도구를 준비했다.

하얀 와이셔츠 밑으로 나온 그들의 손목에는 고가의 손목시계가 차여져 있었다.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다면 합자사의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하십시오. 디욘코리아 보다는 지에이치 케미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업계획서는 몇 부 더 만든 것이 있지요?”

“물론입니다. 저희들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비즈니스 플랜은 여러 부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면 서울로 올라가시는 김에 김앤정 로펌에 들려 김영진 변호사에게도 한글판과 영문판도 한부씩 갖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민혁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와야겠어.”

“그래? 그럼 한국에 나오면 아산에 한번 와라. 그리고 귀국은 일요일 날 해라. 토요일 강남역 근방에서 동창회 모임이 있으니까 애들 만나보고 가.”

“난, 그 자식들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왜?”

“내가 중소기업 다닐 때나 9급 공무원 시험 공부할 때 잘난 척을 되게 하던 놈들이야. 특히 조원철이나 이석호 같은 놈들은 날 사람으로 보지도 않았어.”

“와라. 와서 2차는 네가 한번 쏘고 가라. 그래도 네 결혼식 때 모두 와줄 친구들 아니냐?”

“집에 가면 우리 엄마 또 선보라고 난리일 텐데 걱정되네.”

“보면 좋지. 너나 나나 사실은 결혼이 늦었다.”

“나, 너한테만 이야기 할게. 사귀는 사람이 있어.”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누구냐? 내가 아는 사람이냐?”

“상해 국제학교에서 영어 가르치는 강사야.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야, 잘됐다. 축하할일이다. 부럽다!”

“축하는 뭘.”

“너 대학 후배냐?”

“아니야. 중국여자야.”

“중국여자?”

“중국 한족인데 미국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야.”

“그으래? 중국여성과 결혼하고 중국서 완전히 뿌리 내려도 좋겠다. 잘했다.”

“글쎄. 나 잘한건 지, 못한건 지 모르겠어.”

“아니야, 잘했어. 요즘 국제화 시대니까 국제결혼도 좋아. 정말 잘했다.”

구건호는 나도 일본 여자를 지금 사귀고 있다고 말 하고 싶었다.

구건호는 김민혁과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만 결혼이 늦는 것 같은데?”

구건호는 또 모리에이꼬가 보고 싶었다. 모리에이꼬가 화사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것만 같았다.

“모리에이꼬는 지금 뭘 할까? 지방 공연을 다닐까? 아니면 아카사카의 요정에 나가고 있을까?”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차피 말은 잘 안 통하므로 영문 문자 메세지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모리에이꼬. 사랑해. 지금도 모리에이꼬가 보고 싶어.]

모리에이꼬로부터 바로 답신이 왔다.

[사랑해요. 사쪼상. 저도 보고 싶어요. 지금 긴끼 지방의 나라(奈良)에 와 있어요. 요시키엔에서 행사가 있어요. 다음 주에는 동경에 있을 거예요.]

구건호는 문재식에게 강남역 근방의 좋은 음식점을 예약하라고 했다.

“몇 명이 올 건데?”

“열댓 명 될 거다. 지난번 경리단길에서 모였을 때도 그랬으니까.”

“누가 오는데?”

“너한테 사기꾼이라고 욕했던 친구들이 온다.”

“동창들?”

“그래.”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들인데.”

“너도 김민혁이와 똑같은 소리 하는구나.”

“김민혁이도 오나?”

“이번엔 김민혁이도 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왔다가 동창들 모임에 간다고 했어.”

“민혁이가 온다면 나도 당연히 참석해야지.”

“그래, 조용한 집으로 예약해라.”

“봐둔 장소가 있어. 예약할게.”

이번엔 대기업 과장으로 있는 조원철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제길, 요즘 동창들 풍년이네.”

“구건호? 나야. 조원철. 이석호한테 이야기 들었지? 동창들 모임 갖는다고.”

“들었어.”

“강남역에서 모일 건데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너 잘 아는데 있으면 추천해라.”

“그렇지 않아도 문재식이가 장소 알아보기로 했어.”

“문재식이? 문재식이가 어디에 있는데?”

“걔 출판사 다녀. 편집 주간이야.”

“그래? 걔 사기꾼 아니야?”

“걔가 왜 사기꾼이냐? 돈 떼먹은 것도 아니고 동창회 명부 만들어서 다 보내주었는데.”

“그건 그렇지만 소문이 있어서.”

“소문은 무슨 소문. 개 편집주간하면서 지난번엔 문학상 공모전에 당선되어 대상을 받기도 했어.”

“그으래?”

“이번 모임에 문재식이 올 거야. 중국에 있는 김민혁이도 오고.”

“김민혁이도? 그럼 이번에 많이 모이겠는데. 강민호도 온다고 그랬는데.”

“강민호?”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 놈 말이야.”

“걔는 지금 뭘 하는데?”

“큰집 갔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놀아.”

“큰집?”

“여주교도소에서 엊그제 나왔어. 집시법 위반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빵에 갔다가 나온 거지.”

“그으래? 걔가 사회활동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김민혁이가 아산 공장을 방문했다.

“야, 공장 크다. 중국공장 몇 배는 되겠는데.”

박종석이가 달려왔다.

“어, 형 왔어?”

김민혁과 박종석은 둘이 서로 포옹을 했다.

“종석이 너는 지난번에 중국 왔을 때보다도 살 좀 빠진 것 같다.”

“말마. 요즘 업무 보랴, 신제품 개발하랴, 폴리텍 대학 다니랴 정신이 없어서 그래.”

“폴리텍 대학에 들어갔다고? 잘했다. 나도 중국에서 여유가 되면 MBA과정에 다니려고 그래. 구건호 사장만큼 계수에 밝은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폴리텍 대학도 건호 형 등쌀에 다니는 거야.”

“야, 임마, 배우면 좋지 뭘 그래?”

구건호는 김민혁을 데리고 다니면서 중요 간부들 인사 소개를 시켜주었다.

“중국 공장에 나가있는 김민혁 사장입니다. 인사하시지요.”

공장장이 환하게 웃으며 김민혁과 악수를 했다.

“반갑습니다.

“내가 이번에 정년퇴직합니다. 구사장님은 나보고 중국 공장에 가서 1년간 자문역을 맡으라고 합니다. 김민혁사장님이 잘 좀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은 저도 들었습니다. 빨리 오십시요. 지금 중국 공장은 불량이 많아 자주 클레임이 걸립니다. 아주 불량과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빨리 오시기 바랍니다. 대환영입니다.”

김민혁은 영업상무와 연구소장, 그리고 직산에 잇는 윤이사와 총무부장과도 인사를 하였다.

“제 명함입니다.”

김민혁은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주었다. 명함의 로고는 아산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의 것과 똑 같았다.

구건호의 지시에 따라 박종석은 김민혁을 신제품 생산라인으로 안내했다.

“형, 이게 이번에 나온 신제품이야. 저기 앉아서 뭔가를 깎고 있는 일본인 기술자 사카다 이쿠조씨가 만든 거지.”

“흠, 잘 만들었네. 이중 압출 형태인 것 같은데? 재질도 우레탄 계열 같고.”

“형도 많이 아는걸 보니 이젠 공장 밥 많이 먹은 사람처럼 보이는군.”

“야, 박 부장, 이 샘플 나 하나 줘라. 중국 가져갈게.”

“왜? 중국서 한번 만들어보려고?”

“중국서 이걸 무슨 실력으로 만드냐? 거래처 방문할 때 우리 본사에서 만든 거라고 자랑 좀 하려고 그래.”

“그럼 하나만 가지고 가지 말고 한 100개 가지고 가.”

“그래, 갈 때 가방에 좀 담아다오.”

구건호와 김민혁, 박종석, 이렇게 세 사람은 아산만으로 향했다. 바다가 보이는 포구에서 생선회와 소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김민혁의 요청으로 그렇게 했다.

“나는 말이야, 중국에서 회를 먹고 싶어 환장하겠더라.”

“사먹지 그래. 중국엔 회가 없나?”

“있긴 있지. 그런데 찜찜해. 워낙 날것을 안 먹고 익혀만 먹는 고장이라 위생에 괜찮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어.”

“그래서 잘 못 먹었겠군.”

“한국 나오면 회나 실컷 먹자 이런 생각을 했지.“

“그럼 오늘 많이 먹어. 배 터지도록.”

세 사람은 해변가 식당으로 왔다.

“종석아. 네가 많이 시켜라. 돈은 내가 낼게. 내가 급여가 2만 위안이다.”

“2만 위안이면 한국 돈 얼마야? 360만원? 형, 미안하지만 월급은 내가 더 받네. 난 500이 넘어. 부장급 아니야. 양주 공장에 있을 땐 300조금 못됐는데 여기 와서 팍 튀었어. 다 건호형 덕분이지.”

“야, 임마 그래도 오늘은 내가 낸다. 난 스톡옵션도 받는 몸이다.”

“스톡옵션? 그거 경영을 잘해야 받는 거지. 실적 나쁘면 말짱 허당 아니야?”

“두고 봐, 올해 실적 나올 거다.”

“그래, 실적 많이 내서 받아봐. 그리고 나한테 술도 좀 사주고.”

박종석은 광어회와 도다리 회를 시키고 해삼과 멍게도 시켰다. 세 사람은 해변가에 앉아서 달빛 아래 술을 마셨다. 옛날 인천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낄낄대며 밤늦도록 마셨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