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37화 (13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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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출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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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기술자 이쿠조씨는 이틀간 (주)와이에스테크에 가서 알미늄 링 끼우는 기술을 가르쳤다. 원래 사흘간 기술 지도를 하기로 하였으나 단순작업이라 이틀정도 되니까 더 이상 지도할 것이 없었다.

와이에스테크는 조립 작업한 링 5만개를 지에이치 모빌에 납품을 하였다. 구건호는 와이에스 테크의 박영식 사장을 찾았다.

“링 작업 원가계산서를 640원에 하셨더군요. 조정을 할까요? 제가 형님하고 친한 건 친한 거고 업무는 또 업무 아닙니까?”

“하하, 너무 깎지는 마소. 우리도 묵고 살아야제.”

“형님이 보내주신 원가표를 보니까 인건비와 제조경비에 거품이 많더군요.”

“실은 내가 자네 돈을 갚으려고 쪼깐 부풀리긴 했지만 그냥 놔 둘순 읍겠는가?”

“원가표는 저 말고도 우리 회사 실무진에서 분석합니다. 영업팀 직원들이 분석 안하겠습니까?”

“그러긴 하지만 자네 돈을 은제 갚을거나. 마음이 심난허네.”

“돈은 어떻게 갚으려고 하셨습니까?”

“5만개 납품하면 월 3200만원 아닌가? 그러면 내가 매월 천만 원은 자네 개인 통장에 입금하려고 했네. 그냥 통과 시켜줄 수 읍겠는가?”

“이렇게 하시지요. 저도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요. 640원을 600원에 하지요. 조금 깎아야 내가 영업팀에 그대로 통과시키라고 지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600원씩만 하더라고 월 납품액은 3천만 원입니다. 천만 원은 저에게 보내줄 수 있는 여력이 될 겁니다.”

“빠듯하긴 하네만 그렇게 합세. 요로케 해서라도 자네 돈을 갚제 은제 갚겄는가?”

“20개월만 참으면 다 갚아집니다.”

“고맙네. 자네는 참말로 내 은인이나 다름없네.”

박영식 사장이 두품한 손을 구건호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해서 구건호는 박영식 사장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 구건호에게 공짜는 없었다. 구건호는 빌려준 돈을 상대방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서 받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주)지에이치 모빌에서 만든 AM803어셈블리는 와이에스테크에서 만든 알리늄 링을 끼워 대기업인 S기업에 납품되었다. S기업의 평가는 좋았다. 이 제품을 사용하니 성능이 좋아졌는지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는 것이었다. 주문량이 월 10만개로 늘어났다.

“단가 4800원 제품이 10만개면 4억 8천만원이군. 일년이면 57억 6천만원의 매출이 늘어나는 셈이네.”

박종석이 구건호 사장을 찾았다.

“형, 독일제 압출기 한 대 더 들여와야겠는데.”

“케파가 부족하냐?”

“야간작업해도 주문량을 못 맞추겠어.”

“알았다. 지금 발주해도 들어오는 시간이 있으니까 빨리 해야겠다. 내가 해외사업팀에 지시해서 가져오라고 할게.”

“돈 많이 들어가지?”

“돈 걱정은 네가 하지 마라. 아주 두 대를 더 들여오도록 하지.”

“두 대나? 돈 많이 들어갈 텐데.”

박종석 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갔다.

구건호가 박종석 부장을 다시 불렀다.

“어이, 박부장!”

박종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 폴리텍 대학 잘 다니고 있지?”

“응, 잘 다녀. 나는 배합만하고 작업하는 것은 생산팀 직원들이 하니까.”

“잘 배워라. 거기 2년제 나오면 4년제 편입도 해야 하니까.”

“꼭 그렇게 해야 하나?”

“많은 직원들 다루려면 공부는 젊었을 때 하는 게 좋아. 지금 공장장도 봐라. 옛날에 인하공대를 졸업한 사람 아니냐?”

“하긴 학교 가니까 배우는 것도 있긴 있어.”

“짜식! 잘 할 놈이 그러네.”

구건호는 박종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박종석이 나가고 구건호는 해외사업팀장을 불렀다. 사실 이 회사의 해외사업팀은 해외시장을 개척하거나 수출입을 직접 하는 부서는 아니었다. 대개는 납품을 받는 대기업들이 해외 공장이 있어 해외에 물건을 보내는 정도의 일만 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없었다.

“찾으셨습니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압출기는 독일제입니다. 맞지요?”

“그, 그렇습니다.”

“이 모델과 똑같은 것으로 2대만 독일에 주문해 주세요.”

“독일 어디에 있는 회사인지 알 수 있습니까?”

“공장장한테 팜프렛 가지고 있는가 물어보시고 거기서 주소 확인하세요.”

“알겠습니다.”

“우리가 거래하는 관세사 사무실 있지요?”

“예, 있습니다.”

“통관업무 뿐만 아니라 수입대행도 하지요?”

“예, 합니다.”

“그리고 H캐피탈에 전화하셔서 그 기계 들여오는데 리스가 가능한가 물어보세요.”

“옛? 리스요?“

“압출기의 소유자는 H케피탈이 되고 우린 리스해 쓰는 거지요. 목돈 들일 필요 없지 않습니까? 아직 부채도 많은 회사에서.”

“알겠습니다.”

“리스로 쓰다가 나중에 감가상각이 많이 되면 우리가 잔존가격으로 인수하면 됩니다.”

“예?”

해외사업팀장은 금융 업무는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이해를 잘 못하는 듯 했다.

“잔존가격 인수문제는 나중 일이고, 우선은 상담이나 해봐요.”

“아,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돈이 있어도 자기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핸드폰에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이 전화한 것이 찍혀 있었다.

“무슨 일인가?”

구건호는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전화하셨습니까?”

“예, 다름이 아니라 왕지엔 교수가 쓴 ‘21세기 중국 경제의 동향’이란 책 출간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번역 아직 안 들어갔나요?”

“출판 계약을 해야 하는데 절강대 출판부와 해야 되는지, 아니면 왕지엔 교수 개인과 직접 해야 되는지를 몰라서요.”

“음, 나는 그런 것 잘 모르겠는데요? 어디로 하는 게 좋겠습니까?”

“출판사와 하면 수수료를 떼겠지요. 하지만 왕교수와 직접 하게 되면 왕교수 입장에서는 더 났겠지요. 출판사 수수료가 없으니까요.”

“그, 그럼 그렇게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왕교수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중국어 번역 잘하는 분이 옆에 와 계서서 이분에게 시키겠습니다.”

“번역한다는 분이 중국어 잘 하는 사람입니까?”

“중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잘합니다.”

“한국어?”

“중국 유학 출신에다가 한국의 신춘문예에도 당선 되신 분입니다. 현재 대학에서 중국어를 강의하는 분입니다. 번역은 중국어도 잘 해야 되지만 한국어도 잘 해야 하니까요.”

“흠, 그렇군요. 다른 책들은 에이전시 통하니까 번역 들어갔겠네요.”

“그렇습니다. 에이전시를 통하는 건 일이 빠릅니다. 모든 걸 그쪽에서 대행해 주지만 왕교수의 경우는 선인세 송금도 중국은행에 가서 우리가 직접 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에이전시 통한 일본책은 내용도 가볍고 페이지 수도 작아 번역이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왕교수 것은 오래 걸리나요?”

“아무래도 학술서적 형태니까 시간이 걸립니다.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출판 일은 내가 잘 모르니 신사장님이 알아서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사장실에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해 보았다.

[문재식도 있고 디자인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얼떨결에 지에이치 미디어를 만들었는데 잘 굴러갈까? 3억원을 자본금으로 했는데 얼마 안가서 바닥 나는 건 아닌가? 리스캉이 언론, 출판을 장악하는 문화 광파영시 국장이니 그쪽과 연계시켜 뭐 작품 하나 만들 일 없을까?]

구건호는 여러 가지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아직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마이더스 손이란 별명을 가진 신정숙 사장을 믿어보는 수 밖에.”

이렇게 생각하면서 구건호는 픽 하고 웃었다.

“마이더스의 손? 진짜 마이더스의 손은 나 구건호 같은데.”

구건호은 디욘사와의 합작문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아산공장을 직산으로 옮기고 이 공장을 현물 출자해서 디욘코리아를 만든다? 별도 법인으로 하면 돈이 또 투자되겠는데. 300만 달러면 될까? 디욘아메리카도 낡은 기계를 비싼 값으로 책정하여 현물 출자 형태로 하겠지.]

구건호는 커피를 마시며 또 생각을 했다.

[상호를 디욘코리아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해야지. 해외 시장을 목표로 하는 합자사인데 물건 사가는 놈들이 디욘차이아, 디욘인도네시아, 디욘타이완 같은 것을 만들면 곤란하잖아? (주)지에이치 케미칼로 하자고 해야겠어. 어차피 원재료는 합성수지 계열이니까 케미칼로 이름을 붙여야 하겠지. 미국놈 들이 들어줄까?]

구건호는 머리가 아팠다.

기분전환으로 사우나나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건호는 차를 타고 천안 두정동 쪽으로 갔다. 롯데마트 뒤쪽에 있는 골목에서 황제마사지를 하는 업소가 있어 들어갔다.

“좋군. 마사지 받으니 몸이 다 풀리는 것 같네.”

구건호는 맛사지를 끝내자 직산공장 건설 현장에 있는 윤이사를 불러냈다.

“식사나 같이 하지요.”

두 사람은 경복궁이란 갈비집에 가서 갈비를 뜯었다.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좋은 음식에 황제 마사지를 받고 황제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경리단길 이석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쁘지?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신혼생활은 어때? 이제 곧 아이도 생기겠네.”

“그래서 말인데, 나 이번에 가게를 늘리기로 했어.”

“늘려? 어디다가?”

“이태원 쪽에 좋은 물건이 나와서 그래.”

“응, 그래? 넌 수완이 있으니까 잘 하겠지.”

“그런데 자금이 좀 부족해. 너 한 2억 정도 투자할 생각 없냐?”

“하하, 난 투자 같은 것 안한다. 더구나 친구 사이에선 안 해. 잘되면 좋은데 잘못되면 돈 잃고 친구 잃으니까 말이야.”

“그,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또, 난 현금은 안 만져. 다 회사 경리에서 알아서 하고 있어.”

“회사 돈 말고 개인 돈으로 좀 할 수 없나?”

“개인 돈은 없어. 있는 것 전부 공장 사는데 밀어 넣고 지금 회사에서 월급 타는 형식으로 있어.”

“그래? 너라면 투자할 줄 알았는데.“

“힘들게 꺼낸 이야기일 텐데 못 들어주어 미안하다. 언제 술이나 한잔 하자.”

“그렇지 않아도 조원철이가 모임 한번 갖자고 전화 왔어.”

“좋아, 한번 모이자. 만난 지도 오래 되었으니까.”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혼자 다짐하는 말을 했다.

[지금 나는 증권계좌에 2천억이 넘는 현금이 있다. 그러나 개인 간 돈 거래는 절대 안한다. 미안하지만 누가 아파서 죽어간다고 해도 내 돈은 절대 안 내놓는다. 내가 공돌이 할 때 나는 단돈 10만원을 빌려보지 못했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런 돈도 융통 못하느냐고 세상은 핀잔만 주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돈은 안 내놓는다.]

구건호는 하늘을 쳐다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돈은 절대 안 내놓는다. 10원짜리 하나도 안 내놓는다!”

전화를 끊고 얼마 후에 경리단길 이석호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구건호? 조원철이 하고 통화했다. 다음 주 토요일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강남역?”

“응, 이태원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교통 나쁘다고 하는 놈들이 있는 모양이야. 강남역이나 이태원이나 거기서 거긴데 말이야.”

“오, 강남역이면 잘 되었다. 문재식이 다니는 출판사가 그 근방에 있으니까 좋은 장소 잡아 보라고 할게.”

“문재식이 출판사에 다녀?”

“응, 최근에 신설된 출판사야. 거기 편집주간으로 취임했어.”

“그래? 그 자식은 동창회 명부 만들어 보내준걸 보니 사기꾼은 아닌 모양이더라.”

“아냐, 걔 성실한 놈이야.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구건호는 동창들이 이지매(약한 사람을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괴롭힘)할 대상이 없어져 좀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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