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36화 (136/501)

# 136

신제품 출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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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건호와 이쿠조씨, 박종석은 거나하게 마셨다.

구건호는 장마담을 불렀다.

“가야금 준비를 부탁합니다.”

한복을 입은 여성 두 사람이 가야금을 들고 왔다. 가야금을 타기 시작하자 이쿠조씨는 눈을 반만 감은 채 음악을 들었다. 가야금 연주는 두곡을 더 연주하고 물러갔다.

구건호가 이쿠조씨에게 다시 술을 따라주었다.

“이쿠조 선생님. 개발하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S기업의 실험도 통과했고 원가계산서도 들어갔으니까 조만간 초도물품 오더가 떨어질 겁니다.”

“옆에서 박부장이 많이 도와준 덕택입니다.”

“선생님은 퇴직하셨으니 집에 돌아가셔도 당장 다른 일은 안하실거 아닙니까? 어때요? 우리 공장에서 한 6개월 더 있어주시지 않겠습니까?”

“6개월 연장이요?”

“그렇습니다. 여기 박종석 부장도 아직 선생님께 배우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더 가르쳐주시고 지도해 주십시오.”

“박부장은 공업적 두뇌가 우수합니다. 만들지 못하는 물건도 없습니다. 조이고 두드리거나 용접하는 것은 잘 하는데 섞거나 깎는 기술은 좀 떨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6개월 더 있어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배합표는 내일부터 박부장에게 하나씩 넘겨 드리겠습니다. 배합표는 박부장과 사장님만 보관하시고 다른 분들에게는 공개하지 마십시오.”

“회사의 기술자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쟁회사들은 항상 우리 기술을 알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배합표를 특허 출원하면 어떻겠습니까?”

“특허의 대상이 되는가는 모르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허를 신청할 서류 작성도 못하고 이론적 뒷받침도 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솜씨와 맵씨 뿐인데 솜씨와 맵씨는 특허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김치를 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같은 재료를 써도 맛은 제각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그런가요?”

“특허라면 내 동생에게 사십시오. 동경대 박사로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이쿠조 선생님. 선생님은 기술자이지만 나는 사업가입니다. 특허가 아무리 좋더라도 경제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야 그렇겠지요.”

“특허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요. 우선 이번 신제품 AM083 어셈블리를 뽑는 기술이라도 박부장에게 가르쳐주십시오.”

“그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돌아가면 누군가 뽑을 줄은 알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신제품에 알미늄 링을 끼우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납품업체에 용역을 주기로 했습니다. 와이에스테크란 회사인데 여기 기술자들은 몇 일 교육 시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해 드리지요.”

“술이 떨어졌네요. 한잔 더 하시지요.”

이쿠조씨는 술을 많이 마셔 횡설수설하였다. 나중에는 빠른 가야금 곡에 맞추어 일본 춤을 추기도 했다.

이 날은 박종석도 크게 취했다. 옆에서 한복을 입은 예쁜 여자가 주는 술을 모두 받아 마시다 보니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되었다. 구건호는 대리 운전자를 불러 자기 차로 박종석과 이쿠조씨를 타워팰리스로 데리고 갔다.

“형! 여기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우리 집이지.”

“뭔 놈의 집이 왜 이렇게 커?”

이쿠조씨는 옆방 침대에 쓰러져 세상모르고 코를 골았다.

아침이 되어 이쿠조씨는 깜짝 놀랐다.

“여기가 어딥니까?”

“우리 집입니다.”

구건호가 밝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오우, 집이 엄청 크네요.”

일본인들은 큰 집에서 살지 않는다. 대개 20평짜리에서 사는데 이렇게 큰 집은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큰 집은 처음 봅니다. 밖의 풍경도 대단합니다. 엄청 높은 집인 것 같습니다.”

박종석도 밖의 풍경을 보면서 말했다.

“형, 이집 얼마나 가?”

“야, 집타령 그만하고 해장국 먹으러 가자. 복어 해장국 잘하는 집이 있다.”

“복어? 난 순대 해장국이 좋은데.”

“네 입만 생각 하냐? 생선 좋아하는 일본사람이 옆에 계신 걸 모르냐?”

“아, 참 그렇지. 그럼 복어 집으로 가지.”

복어국이 이쿠조씨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이쿠조씨는 달게 먹었다. 구건호에게 고맙다는 말도 여러 번 하였다.

“고맙습니다. 사쪼상(사장님). 사쪼상 덕분에 요정에도 가보고 대궐 같은 사장님 아파트에서 잠도 잘 잤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데뽀지루(복어국)도 먹고 정말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이쿠조씨는 정말 감격한 듯 말했다.

아산으로 내려간 이쿠조씨는 다음날부터 열심히 박종석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온도를 높이고 압출기 헤드에 가는 망을 3장을 씌우고 냉각수는 1미터 정도 흘러간 뒤 담그고 ....”

박종석도 열심히 배웠다. 박종석이 뽑은 첫날의 제품은 모양이 심하게 일그러졌으나 사흘 째 부터는 모양이 제법 예쁘게 나왔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

이쿠조씨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닷새째 되는 날 S기업에서 실사가 나왔다. 구건호나 박종석 또래의 젊은 연구원들이 나왔다.

“원재료 성적서를 주십시오.”

박종석이 디욘아메리카의 성적서를 주었다. 경도와 인장강도 등 여러 측정 수치가 적힌 성적서였다. 이들은 직접 디욘아메리카 제품을 꺼내 사진 촬영도 하고 라이터 불로 태워보기도 하였다.

박종석이 이들 앞에서 제품 뽑는 것을 시연하였다. 온도를 높이는 스위치를 넣자 기계가 요란한 굉음을 내고 냉각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중 압출기를 사용한 출입구에서 선명한 색상의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제품은 1미터 정도 흐르다가 냉각수 속으로 곤두박질하며 들어갔다. 김이 뿜어져 나오며 치직하는 소리들을 냈다.

“와. 정말 예쁘게 나오네.”

실사 나온 연구원들이 사진촬영을 했다.

"호퍼에 들어간 원재료에 섞인 약품은 무엇 무엇이 들어갔습니까?"

구건호가 옆에 있다가 대신 답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우리들의 노하우입니다.”

“옆에 계신 일본인 기술자가 귀국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기술을 전수받은 우리 박부장이 직접 기계를 잡은 것 아닙니까? 지금 바로 보셨지 않습니까?”

“배합기술까지 전수 받았습니까?”

“우리 박부장은 지금 눈을 감고도 제품을 뽑습니다.”

연구원들은 열심히 메모했다. 구건호는 메모하는 연구원들의 손을 보았다. 하얀 선비의 손이었다. 구건호는 박종석의 손을 보았다. 칠팔년을 현장에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하는데 사용했던 손이었다. 투박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구건호는 박종석의 이런 손이 자랑스러웠다.

“종석아, 장하다. 훌륭하게 살아주어 고맙다.”

연구원들이 돌아가고 초도물량 5만개의 주문이 들어왔다. 영업상무가 들고 간 원가계산서는 그대로 통과되었다.

공장장이 자주 자리를 비웠다.

직산공장이 거의 완공단계에 이르러 전기공사 설치 때문이었다. 변압기를 설치하고 크레인을 달고 하는 문제는 건설 전문가인 윤이사가 다소 약했다. 공장장은 건설은 모르지만 기술 분야는 탁월하여 윤이사는 그의 자문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박종석 부장, 나 없는 동안 생산라인 잘 봐.”

“알겠습니다.”

“2호기 벨트가 좀 이상하니까 잘 보고, 5호기는 가끔 스크류가 말썽 피우니 잘 봐.”

“알겠습니다.”

“재단실 커팅기 좀 고쳐줘.”

“그건 공무팀에서 하라고 하세요.”

“걔들 잘 몰라. 박부장이 해줘.”

“아크 용접만 하면 되는데 그것 못해요?”

“하긴 하는데 어설퍼. 자네가 해줘.”

“에이 씨, 나도 존나 바쁜데.”

“미래의 공장장이 왜 이러실까?”

구건호가 박종석과 공장장이 대화하는 걸 들었다.

“종석아, 너 내방으로 좀 와봐.”

박종석이 사장실을 들어갔다.

“야, 넌 부장이나 되는 놈이 존나가 뭐냐. 존나가. 네 밑에 애들이 몇이나 되는지 알아?”

“미, 미안해 형.”

“너 야간에 대학을 다녀야겠다. 폴리텍 대학에.”

“대학에?”

“신창면에 폴리텍 대학이 있어. 우선 2년제 학위 과정에 들어가라. 교육비는 대줄게.”

“야간에도 할 일이 많은데.”

“까불지 말고 들어가. 거기 자동 설비학과가 있으니 거길 가라.”

“난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 못해도 돼. 가서 미국 놈하고 회화 하는 건 아니잖아.”

“글쎄.”

“너 거기 안가면 만년 부장이다. 정년퇴직 때 까지.”

“나는 책만 보면 졸려.”

“학교 다닐 때 하고는 틀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을 가르치기 때문에 쉬워.”

“생각 좀 해보고.”

“생각이고 뭐고 없다. 다음 학기에 입학해라.”

박종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갔다.

문재식에게 전화가 왔다.

“웬일이냐? 잘 있지?”

“잘 있어. 역삼동 고시텔도 좋고 사무실도 가까워서 좋아.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좋아. 그런데 신정숙 사장이 내 급여를 너무 많이 책정한 것 같아.”

구건호는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채 했다.

“그래? 얼만데?”

“250이나 돼.”

“네가 그만한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래도 많아.”

‘야, 김민혁이나 박종석이도 월급이 다 500이 넘어간다.“

“걔들 하고는 틀려. 걔들은 기술들이 있잖아.”

“너도 기술 있잖아. 원고 교정 기술.”

“그게 기술인가? 지에이치 미디어에 들어와서 월급도 많고 고시텔 방까지 배정 받으니 너무 좋아.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긴,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별소리 다한다.”

“지금은 한가해. 신사장이 에이전시와 계약 맺은 책들이 번역에 들어갔어. 신사장은 우리들 보고 번역 끝날 때 까지 시장 조사나 하라고 했어.”

“시장 조사도 필요하겠지.”

“그래서 지금 영풍문고에 나와 있어.”

“그래. 열심히 해라.”

“번역이 나오는 다음 달 부터는 바빠질 것 같아. 우리가 만든 책들이 대박 났으면 좋겠다.”

“대박 날거다. 열심히 해라.”

와이에스 테크의 박영식 사장이 전화를 했다.

“신제품 초도물량 주문 받았다며?”

“그렇습니다.”

“오매, 그럼 알미늄 링 빨리 만들어야 쓰것네.”

“시간이 급합니다.”

“한번 만들긴 만들었는데 규격이 안 맞아서 다시 만드네.”

“손잡이에 끼워는 보았습니까?”

“끼웠는데 잘 안 들어가. 그래서 링을 다시 만드네. 지금도 만드는 녀석들 내가 쪼인트 좀 까고 왔네.”

“제가 점심 먹고 일본인 기술자 이쿠조씨하고 그리로 넘어가겠습니다.”

“참말로 그래 줄랑가? 그럼 우린 좋제.”

“기술자들 대기 하라고 하세요.“

“알았네. 퍼떡 오소.”

구건호는 오후에 이쿠조씨와 통역을 데리고 와이에스테크로 갔다.

구건호는 와이에스테크의 건물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옛날에 내가 이 공장 면접을 보러 왔을 때가 엊그제 같네. 그땐 이 공장이 참 크고 넓어 보였지.”

구건호는 사무실로 올라와 박영식 사장에게 이쿠조씨를 소개했다.

이쿠조씨가 링을 살폈다.

“다이캐스팅 금형 쿨러에 문제가 있군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냉각수를 잘 살피세요. 온도 좀 내리고 냉각수에 넣는 속도 좀 빨리 해보세요.”

기술자들이 냉각수 온도 조절장치를 살폈다

“온도 좀 내리시고 순간적으로 냉각 시켜야 합니다. 자, 이렇게 다시 해 보세요. 이런! 인터록 신호 송신기가 이상이 있네요.“

이쿠조씨가 말한 대로 인터록 송신기를 고치고 냉각수 온도를 조정하자 알미늄 링의 모양은 원상태가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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