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35화 (135/501)

# 135

(주) 지에이치 미디어 설립 (3)

(135)

구건호가 들어서자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사들 하시지요. 같이 일하게 될 신정숙 사장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민숙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뵙던 분 같네요.”

“전에 킴북스의 일감도 좀 맡아서 했었습니다.”

“오, 그래서 낯이 익군요. 반갑습니다. 신정숙입니다.”

오민숙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 사람은 같이 디자인 하는 친구고요, 저쪽은 총무 일을 보았습니다.“

“오, 그래요? 출판 전산 프로그램을 다루어 보셨나요?”

“그건, 아직.”

“앞으로 여긴 출판 프로그램을 깔 거예요. 교보문고나 예스24등 날마다 주문 들어오는 것 하고 배송회사 배송의뢰는 다 전산으로 할겁니다.”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이야기들 나누십시오. 나는 아산에서 중요 회의가 있어서 먼저 나가야겠습니다.”

신정숙 사장이 종이 한 장을 얼른 꺼내 구건호에게 주었다.

“이게 뭡니까?”

“에이전시와 협의한 출간할 책들입니다.”

“하하, 그건 사장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강부장님은 법인 통장과 법인 카드를 신사장님께 인계하시지요.”

“알겠습니다.”

강부장이 통장과 카드를 신정숙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구건호는 미디어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 구체적 업무 협의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것이다.

미디어 사무실 사람들이 다 쫓아 나와 구건호를 배웅하였다.

“오늘은 첫날이니 미디어 식구들끼리 점심이라도 같이 하세요. 어서 들어가 일들 보십시오.”

구건호는 미련 없이 아산으로 내려왔다.

구건호는 아침에 임원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공장장이 갑자기 문재식 이야기를 꺼냈다.

“야간 경비하는 사람은 그만 두었네요? 사장님 지인이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이번에 지에이치 미디어란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편집 주간을 맡도록 했습니다.”

“편집주간이요?”

“그 친구 원래 출판사에 다녔습니다. 이번에 문학상 공모에 대상으로 당선되었고요. 상금도 5천만원이나 된답니다.“

“호, 그래요? 그 친구가 그런 재주가 있었군. 하긴 날마다 경비실에 앉아서 뭔가를 끄적거리긴 했지요. 이제 보니 글을 쓴 모양이네요.”

모인사람들이 하하 하고 웃었다.

“잘 갔습니다. 사실 바른 말이지 그 친구 공장에서 근무는 잘 안 맞는 듯 했습니다. 일하는게 많이 서툴러 사장님께 보고할까 많이 망설였지요. 제길 찾아 갔네요.”

구건호는 문재식이 책상에 앉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만든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임원들과 아침 미팅이 끝나고 구건호는 자기의 이메일을 확인했다. 신정숙 사장이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일상적인 것은 보고하지 않더라도 신규로 내는 책과 직원들 급여 조정한 내용은 보고해야 될 것 같아 메일 드립니다. 신규로 낼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정숙 사장은 6가지 신규로 낼 책 제목을 보내왔다. 구건호가 읽어보니 왕지엔 교수가 쓴 ‘21세기 중국의 경제 동향’이란 책을 제외 하고는 가벼운 자기 개발 서적들이었다. 일본인이 쓴 책이 3가지였고 2가지는 국내 저명 칼럼니스트가 쓴 책이었다.

“제목들이 꽤 자극적인 책들이군.”

구건호는 급여 책정표를 보았다.

[신정숙사장 350, 문재식 주간 250, 오민숙 220, 보조 디자이너 및 총무 담당 190.]

“신정숙 사장은 500 준다고 했는데 남들이 보는 눈이 있으니까 350으로 정했군. 하지만 책이 나오고 팔리면 조정해 달라고 하겠지. 의외로 돈에 민감한 여자니까 말이야.”

구건호가 경제신문을 보고 있는데 영업상무가 들어왔다.

“S기업에 가지고 갈 원가계산서입니다.”

“개당 얼마나 나왔습니까?”

“4800원 나왔습니다.”

“노무비가 860원 나왔네요.”

“네,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압출기 잡는 사람, 배합하는 사람 시간당 인건비를 계산했습니다. 두 번째는 커팅 작업자 노무비를 계산했고 세 번째는 검사, 포장반 작업요원의 노무비를 계산했습니다.”

“내년도 임금 기준입니까?”

“아닙니다. 금년도 기준입니다. 금년도 발주물품은 금년도 기준이어야 합니다.”

“제조경비 단가가 꽤 높네요. 무엇 무엇이 들어갔지요?”

“전기료하고 공장 임대료가 들어갔습니다.”

“임대료요?”

“우리 자가 공장이어도 임대료로 환산하여 집어넣었습니다. 각종 소모품비와 감가상각도 반영했습니다.”

“제조경비만 3500원이 넘어가네요.”

“포장비와 운송비도 제조경비에 반영했습니다.”

“판매관리비는 얼마 잡으셨습니까?”

“제조원가의 15%입니다.”

“S기업에서 뭐라고 시비 걸지 않겠지요?”

“깎으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잘 설득시켜 우리 것을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종 승인 란에 싸인해 주십시오. 모든 원가계산표가 밖으로 나갈 때는 사장님 싸인이 필요합니다.”

구건호는 결재란에 시원스럽게 싸인을 하였다.

구건호는 싸인을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초도 물량이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저도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5만개 정도는 보내라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5만개라... 2억 4천이네요.”

영업상무는 자기가 계산하기도 전에 구건호가 암산으로 얼른 계산해 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계수감각 하나 만큼은 끝내주는 사람이군. 저러니 젊은 나이에 사장이 됐지.]

“5만개 뽑을 만한 원재료는 디욘아메리카에서 다 들어 왔는가요?”

“오늘 3톤 들어 왔습니다. 지금 지게차로 내리고 있습니다.”

“원가표 들고 내일 S기업에 들어가실 건가요?”

“원가표를 계산한 담당 과장과 함께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영업상무가 구건호에게 인사를 정중히 하고 나가다가 다시 돌아섰다.

“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뭡니까?”

“이번에 연구실 해체하면 저희 부서로 두 명만 보내줄 수 없겠습니까?”

“한명은 보내드리지요.”

“두 명이 필요합니다. 영업력 강화를 위해서는 인원보강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의논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구건호는 초도물량이 5만개 발주가 들어오면 사카다 이쿠조씨에게 성공보수로 2만불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참, 이쿠조씨는 지금 뭐하나 가볼까? 사무실에만 있으니 운동이 적어서 안 되겠어. 현장이나 한 바퀴 돌자.”

구건호가 현장 실험실을 들렸다. 이쿠조씨가 뭔가를 실험하고 있었다. 통역은 고개를 옆으로 꺾고 졸고 앉았다. 구건호가 들어서자 통역이 황급히 일어났다.

“개발이 다 끝났다는데 또 뭘 하십니까?”

“티피유(TPU)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티피유요?”

“서모 플라스틱 폴리 우레탄이지요. 이번 개발품의 주재료입니다.”

“그런데 무슨 실험을?”

“우레탄은 1년 정도 지나면 색이 변하는 단점이 잇습니다. 이것을 잡아보려고 합니다.”

“한시도 놀지를 않으시는군요. 제가 한 3일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유급 휴가입니다.”

유급 휴가 소리에 이쿠조씨 보다 통역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박종석 부장을 불렀다.

박부장이 달려왔다.

“박부장이 이쿠조씨하고 서울에 한번 다녀와. 초도물량 주문 들어오고 이상 없음이 확인될 때까지는 이쿠조씨가 한국엔 있어야 할 거야. 하지만 여기 와서 관광한번 못해보고 귀국하시면 되겠나? 서울에 가서 경복궁도 구경하고 남산타워도 구경시켜드려.”

“내일 가지 뭐. 어차피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쉬는 날 아니야?”

“내일이 토요일인가?”

“형은 날짜 가는 줄도 모르는가봐.”

박종석이 이쿠조씨와 함께 경복궁을 갔다. 이쿠조씨는 경복궁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특히 건축 양식에 대하여 유별난 관심을 보였다. 박종석이 남산타워 관광도중 구건호의 전화를 받았다.

“너, 지금 어디야?”

“남산 타워야.”

“저녁 식사는 언제 할거냐?”

“6시쯤 명동가서 하기로 했어.”

“저녁 먹고 8시쯤 한남동으로 와라. 나 지금 서울 올라가고 있다.”

“한남동은 왜?”

“거기 내가 잘 아는 술집이 있어. 한잔 살게.”

“이쿠조씨 한테 사겠다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사겠다는 거야?”

“둘 다.”

“알았어. 한남동 어디로 가면 돼?”

“순천향 대학 병원 앞으로 와라.”

“알았어. 사준다니 고마워.”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한남동 요정 장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머, 구사장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어요?”

“8시쯤 세 사람이 갈 겁니다. 일본인이 한사람 있으니 일본어 할 줄 아는 도우미 한사람을 붙여주세요.”

“그거야 문제없지요. 우리 애들은 영어 아니면 일본어 하나씩은 할 줄 아니까요.”

박종석은 투덜거렸다.

“한남동서 가까운 이태원 술집도 많은데 왜 이런 델 와? 병원 정문 앞에서 기다리면 데리러 온다고? 골목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면 있는 선술집인가?”

박종석은 이쿠조씨에게 미안했다. 더구나 통역도 먼저 들어가 버려 말도 안 통하는 처지였다.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은 깍두기들이 다가왔다.

“깡패들인가?”

박종석은 두 주먹을 쥐고 긴장했다.

“저 박종석 선생님 되십니까?”

박종석은 깜짝 놀랐다.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깍두기들은 한술 더 떴다.

“저 선생님이 일본인 이쿠조씨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댁들은 누구요?”

“두 분을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따라 오시죠.”

“모셔?”

박종석은 달아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이 많은 이쿠조씨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박종석과 이쿠조씨는 깍두기들이 안내하는 어느 양옥집으로 갔다.

“집이 제법 좋은 집인데. 가정집인가?”

양옥집 안쪽으로 또 문이 있었다. 잘 다듬은 소나무 정원수가 있는 양옥집 한 채가 더 있었다. 양옥집 앞에는 운치 있게 돌로 만든 장명등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한복을 곱게 입은 중년 여성이 박종석을 맞았다. 장마담이었다. 박종석은 흠칫 놀랐다.

“여기가 어딜까? 건호 형하고 만날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는 데.”

“구사장님이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구사장?”

박종석은 의아한 생각을 가지며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중년여성은 이쿠조씨를 상냥한 웃음으로 안내했다.

“고찌라에 도오저(이쪽으로 오시지요).”

중년 여성은 일본어를 아는 것 같았다.

“오, 기레이네(아름답군요).”

이쿠조씨는 집안을 보고 또 중년여성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빳빳한 한지를 바른 격자문의 문이 열리고 큰 방이 나타났다. 방에는 자수병풍이 펴져있었고 가운데에 와이셔츠만 입은 구건호가 술상을 받아놓고 앉아 있었다.

“뭐해? 앉아!”

“어? 형!”

장마담이 방석을 가져왔다. 학이 수놓아져 있는 방석이었다.

“앉으시지요. 일본 선생님도 않으세요. 이곳은 히미쯔 료데이(비밀 요정)입니다.”

“오, 소오데스까(그렇습니까).?”

갈비찜과 신선로가 들어오고 술이 들어왔다.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 세 명이 들어왔다. 박종석은 이들을 보고 뽕 가버렸다. 어쩔 줄 몰라 했다. 거칠게 살아오고 단란주점도 많이 다녀 보았지만 이런 요정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여성 중 한명은 일본어가 유창했다. 이쿠조씨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구건호가 술병을 들었다.

“이쿠조 선생님을 한번 모시고 싶었습니다.”

이쿠조씨는 황송해서 술을 두 손으로 받았다.

“편히 앉으셔서 받으세요. 한국의 예법은 나이 많은 분은 한손으로 술을 받습니다.“

옆의 여성이 유창하게 일본어로 통역을 해 주었다.

구건호가 일본어를 잘 하는 여성 도우미에게 말했다.

“잘 모셔라. 옆에 계신 일본 선생님은 세계적 기술자이시다.”

구건호는 이제 요정에 와서 반말을 찍찍 할 줄도 알았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고 돈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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