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주) 지에이치 케미칼 설립 (1)
(130)
구건호의 증권사 계좌에는 현재 2천억 원이 들어있다. 구건호와 하늘만 아는 돈이다. 원래는 주식 판돈 2천 1백억이 있었으나 1백억 원은 회사 인수하고 일본 인기 게이샤 모리에이꼬 후견인 노릇 하느라고 일부를 썼다. 구건호는 이 2천억 원을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해보았다.
“급할 것은 없다. 기업 운영에 내 재산 몰빵하지는 않는다. 몰빵했다가 거덜 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건호는 부동산을 생각했다.
“부동산은 규제가 많아. 세금도 많고. 또 환금성도 별로야. 부동산은 확실한 것 아니면 안 건드린다.”
마지막으로 구건호는 주식투자를 생각했다.
“주식은 치고 빠져야 하는데 돈이 많으면 그게 힘들어. 사는 것도 시간 걸리고 파는 것도 시간 많이 잡아먹어. 오른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고. 청담동 이회장은 이렇게 말했었지? 주식은 상대방 패를 알 수 없으니 하지 말라고. 애써 벌어 놓은 돈 한방에 날릴 수 있어. 조심해야지.”
구건호는 갑자기 청담동 이회장이 보고 싶어졌다.
“그 양반 요즘 낚시 혼자 다니겠네. 외롭겠는데. 종석이와 일요일 날 낚시나 갈까? 그런데 서울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산에서 포천까지는 너무 멀어. 갈 때도 힘들지만 올 때도 힘들고.”
구건호는 이회장에게 안부나 전해야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개인 전화로 하지 않고 회사 전화로 했다,
“여보세요? 청담동이지요? 이회장님 계십니까?”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건호도 알고 있는 비서인 모양이었다.
“지에이치 모빌의 구건호 사장이라고 합니다.”
“어머,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니 고맙군요.”
“왜 기억 못해요? 전에 곶감 사 오셔서 잘 먹었는데요.”
“하하, 그랬었던가요? 회장님 계시지요?”
“예, 바꿔드리겠습니다.”
한참 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회장님이세요? 접니다. 구건호입니다.”
“오, 구사장. 오래간만이네.”
“건강하시지요? 포천 낚시는 계속 다니시지요?”
“그럼, 다니지. 내 별장이 있는 곳인데.”
구건호는 언듯 오륜서를 읽고 있는 일본인 기술자 사카다 이쿠조씨와 낚시터의 수심을 바라보고 있는 이회장의 얼굴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한번 가 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바쁘면 못 오는 거지. 참 아산에 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회사는 잘돼?”
“그럭저럭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신제품 개발하는데 성공하면 매출액이 늘어날 겁니다.”
“지금은 얼마나 하는데?”
“년간 700억 합니다. 종업원은 250명이고요.”
“그 정도면 됐네. 잘 키워서 상장시켜보게.”
“고맙습니다.”
“구사장은 다다끼 아가리 출신이라 잘 할 거야.”
“다다끼 아가리요?”
“학벌이나 배경 없이 밑에서부터 올라간 사람을 말하지.”
“그리고 제가 공장을 옮기려고 직산에 새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직산? 천안 직산을 말하는가?“
“예, 그렇습니다.”
“흠, 고생하네. 열심히 살고 있군.”
“공장이 완공되면 준공식 때 테이프 끊으러 한번 오십시오.”
“날짜 잡히면 연락해요. 온양 온천에도 가볼 겸 한번 내려갈 테니.”
“고맙습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S기업 부사장한테 연락이 왓다.
“구사장 축하해요. 우리 연구소 실험 결과는 합격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원재료는 반드시 디욘사 제품을 써야 합니다.”
“저, 부사장님. 디욘제펜은 물량이 달려 안 되고 디욘아메리카 제품을 들여와야 합니다.”
“일단은 원가계산표를 보내주세요. 디욘아메리카 제품을 쓴다고 가정하고 운송비를 반영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원가계산표는 즉시 뽑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원가계산표는 이메일로 담당자한테 보내주면 되고요. 승인 떨어지면 초도물량은 우리 회사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힘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 개발해줘서 내가 고맙지.”
구건호는 영업상무를 불렀다.
“신제품 들어간 것 실험결과 합격이랍니다.”
“아, 그렇습니까? 잘 됐네요.”
영업상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원가 계산표 뽑아서 보내 달라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즉시 뽑아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원재료는?”
“원재료는 디욘제팬은 안되니까 디욘아메리카 것을 쓰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럼 운송비가 많이 들 텐데요.”
“그래도 할 수 없지요. 원재료 변경은 안 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디욘아메리카 제품은 잘 구할 수 있나요?”
“미국 시애틀에 있는 라이먼델 디욘사의 아메리카 공장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 세계에 공급하니까 공급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운송비가 걱정이긴 합니다.”
“운송비를 원가에 반영하라고 하는데요?‘
“알겠습니다. 수입은 CIF(Cost Insurance Freight: 운임, 보험료 포함) 가격으로 반영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노무비는 금년도 최저 임금기준이 아닌 내년도 예정 임금을 반영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일단 원가표는 작성 후 사장님 결재를 맡으러 오겠습니다.”
“제조 경비는 공장장도 한번 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공장 경비로 있는 문재식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밤중에 경비를 하면서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 당선이 된 것이다. 본명이 아닌 예명을 써서 당선되어 아무도 그 소식을 몰랐다.
박종석이 갑자기 사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형, 큰일 났어요.”
“뭐가 큰일이냐?”
“재식이 형이!”
“재식이가 왜?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사장실 문 좀 닫고 이야기해라.”
“재식이 형이 공모전에 당선됐데.”
“그래? 허허. 그 친구 그런 재주가 있었구나!”
“상금이 자그마치 5천만 원이래.”
“5천만 원? 허허. 대단하네.”
“재식이는 출근 했냐?‘
“아직 안 했어. 전화만 왔어.”
“재식이가 언제 쉬는 날이지?”
“일요일이야.”
“너, 일요일 인천 안가지?”
“안가. 지금 일본인 기술자 이쿠조씨도 아직 여기 있는데 가긴 어딜 가.”
“재식이 한테 전해라. 내가 일요일 날 삼겹살 파티라도 열어주겠다고 말이야.”
“야, 형한테 그런 소리 최근에 처음 듣는다.”
“서운했냐?”
“사장되었다고 우리한테 거리감만 생기는 것 같았어.”
“짜식! 내가 언제 거리감 두었냐? 바쁘니까 그렇지.”
“그런데 삼겹살은 공모전에 당첨된 사람이 사는 것 아니야?”
“내가 사지. 그래도 사장인 내가 사야지.”
구건호와 문재식, 그리고 박종석 세 사람은 아산 시내에 있는 어느 삼겹살 집에서 만났다.
“야. 이 집은 시골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써서 오히려 운치 있다.”
“그래, 나는 이런 시골집이 더 좋아.”
“종석아, 너 차 안 가져 왔지?”
“오늘 마음껏 먹으려고 안 가져 왔어.
“잘 했다.”
“삼겹살 오래간만에 먹어본다.”
소주가 한잔씩 돌아갔다.
“재식아 축하한다.”
세 사람은 잔을 부딪치고 한잔씩 마셨다.
“너, 공모전 당선되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서울로 갈 거냐?”
“무슨 소리. 여기 회사에 그냥 다닐 거야.”
박종석이 문재식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형, 공모전 당선 되었으면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나?”
“그런 것 없어. 상금은 타지만 세금 제하고 그것 가지고 서울 살림 힘들어.”
“하긴 그래. 서울은 방값만 해도 장난 아니잖아.”
“여기는 방값 공짜지. 먹는 것 회사에서 해결하지. 월급 제 날짜에 정확히 들어오지. 얼마나 좋냐? 서울 가봐라. 방값 몇 십만 원 나가지. 밥값 나가지. 교정 일 같은 것 해 봤자 몇푼 되지도 않지. 돈 들어오는 것 들쑥날쑥하지. 진짜 영양가 없는 곳이 그곳이야.”
“맞아. 서울 가면 또 거기엔 박종석도 없지. 건호 형도 없지. 삭막하겠네.”
“그래서 난, 여기가 좋다. 그리고 건호는 물론 종석이 너한테도 미안하고 고맙다.”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마워?”
“옆에 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내가 다른 사람하고 싸우면 네가 와서 최소한 말려는 줄 것 아니냐?”
“나, 외면하고 갈 건데?”
“이 자식이!”
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밤이 깊도록 주거니 잣거니 했다. 취하도록 마셨다.
“형, 이 집 마당에 큰 나무가 있으니 운치 있지?”
“그렇구나. 무슨 나무지?”
“이렇게 마당이 있는 곳에서 세 사람이 술을 마시니 우리가 삼국지에 나오는 사람 같아. 도원결의를 하는 것 같아.”
“그럼 네가 나이가 제일 어리니 장비가 되겠구나. 넌 하는 짓거리도 장비와 비슷하다.”
이 말에 세 사람은 또 와 하고 웃었다.
“맞아. 나는 장비고 건호형은 유비고, 재식이 형은 관우가 되겠네. 수염 없는 관우 말이야.”
“그럼 중국에 있는 김민혁이는 뭘 시키지?”
“제갈량으로 할까? 조자룡으로 할까?”
“글쎄 뭘 시키지?”
“역시 인사는 힘들어. 건호 형이 인사문제로 힘든지 알겠다.”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와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불렀다. 온양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연구소가 있는 제2공장이 40억원에 팔렸다.
구건호는 이 돈으로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돈을 갚았다. 개인 연대보증을 해 주었는데 찜찜하던 차에 잘되었다. 구건호는 (주)지에이치 모빌의 부채비율이 확 낮아짐을 느꼈다.
구건호는 경리 부장을 불렀다.
“우리 반기 결산서가 언제 나오지요?”
“다음 주에는 나올 겁니다. 반기 결산이기 때문에 책자로는 만들지 않고 프린트 물만 가져옵니다.”
“여러 부 가져와야 하겠네요. 주거래 은행에도 갖다 주어야 하고, 금감원도 보내야 하고, 주 거래처도 달라고 할 겁니다.”
“원래 20부 정도 만들어 가져 옵니다. 더 필요하면 여기서 복사해 쓰면 됩니다.”
“회계사 사무실에 이야기 해서 반기 결산서는 영문으로 된 것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영문이요?”
“내가 일본 디욘제펜에 가져가야 하니까 준비해 달라고 하세요.”
“디욘제펜이요?”
“그런 줄만 아시고 준비나 해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국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 전화번호 알지요?“
“예, 압니다.”
“거기 김민혁 사장한테 말해서 반기 결산 영문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아니, 내가 이야기 하지요.”
구건호는 바로 김민혁에게 전화를 하였다.
“별일 없지?”
“응, 잘 돌아가고 있어.”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의 반기 결산서가 이번에 나오지?”
“그렇지 않아도 내가 구사장에게 보내려고 회계사한테 이야기 해 놓았어.”
“그거 나오면 말이야. 영문으로 된 것도 한부 만들어 달라고 해봐.”
“알았어. 그렇게 할게. 또 무슨 좋은 일이 있나보지?”
“아직은 말할 단계는 아니고 구체적 윤곽이 나오면 알려줄게.”
연구소가 있는 2공장 부지가 팔렸다는 소문을 듣고 직원들이 술렁거렸다.
연구소장이 구건호를 찾았다.
“직원들이 부지가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렁거리는데요.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지금 연구소 인원이 몇 명이지요?”
“30명입니다.”
“전원 소회의실로 집합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연구실 직원들이 소회의실로 모여들었다. 사장이 집합시켰다고 하니까 모두 긴장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