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28화 (128/501)

# 128

디욘사의 세계적 기술자 (2)

(128)

공장장이 구건호가 있는 사장실에 들어와 보고를 하였다.

“동화전기에 들어가는 제품이 오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산중단을 해야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놔두지 왜 그럽니까? 매출이 약간이라도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데 그 라인에 있는 압출기 한 대를 잡아야겠습니다.”

“일본인 기술자 이쿠조씨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압출기 여분이 없으니까 이쿠조씨가 야간 실험만 하고 보조자들도 피곤해 합니다.”

“보조는 박종석 부장이 한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박종석 부장 외에 막 일을 하는 생산 근로자 두 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세 명이 붙어있는 셈이네요.”

“온종일 붙어 있는 건 아니고 이쿠조씨의 개발 스케쥴에 따라 자기 일들을 하면서 보조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쿠조씨는 의외로 박종석 부장을 좋아하더군요. 박종석 부장이 몸이 재빠르고 공무 일에 대하여는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박부장이 공무 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산 쪽은 서툴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기술이 좋은 사람들은 다른 쪽에 가서도 잘 합니다. 박부장은 대인관계도 좋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허허, 그래요?”

“빈 압출기 찾아다니는 것보다 아예 압출기 하나를 이쿠조씨에게 배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럼 야간작업은 안 해도 되겠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개발은 속도가 붙으면 중단 없이 밤을 새워서라도 끝을 봐야하기 때문에 야간작업도 많습니다.”

“현장 일은 제가 잘 모릅니다. 공장장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장장이 나가고 나서 구건호는 박종석을 생각해 보았다. 후배지만 오랫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동지나 다름이 없었다.

“종석이가 다른 건 다 좋은데 가방끈 짧은 게 문제란 말이야.”

구건호는 이쿠조씨가 하고 있는 신제품 개발이 끝나면 박종석을 야간대학이라도 보내주려고 맘먹었다.

“폴리텍 대학에 야간이 있나?”

구건호는 인터넷에 들어가 폴리텍 대학 야간반이 있는가를 검색해 보았다.

이쿠조씨는 온양 관광호텔에 묵으면서 출퇴근은 박종석이 차로 했다. 출근시간은 일정했지만 퇴근시간은 항상 일정하지가 않았다. 밤을 새우고 실험을 한 적도 있었다. 통역도 마찬가지였다. 통역은 공장 주변의 원룸을 잡아주어 출퇴근 차는 제공하지 않았다.

공장장이 박종석을 불렀다.

“박부장. 오늘부터는 생산 쪽 일이나 공무 쪽 일은 하지 말고 이쿠조씨 일만 거들어 줘요.”

“생산이나 공무 쪽도 일이 많을 텐데요.”

“이쿠조씨가 박부장을 원해. 그렇게 해.”

“쳇, 내가 지 꼬붕인가?”

“생산이나 공무 쪽은 과장, 계장, 반장 등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요. 세계적 기술자 꼬붕 하는 것도 괜찮지 뭘 그래.”

“거참, 이상해요. 그 양반 왜 나만 부려 먹을라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박부장이 잘하니까 그런 거야.”

“난, 관리직이라 야간 수당도 없고 이게 뭐야? 이쿠조씨는 자문료에다 개발하면 성공보수까지 챙긴다면서요?”

“그래도 개발만 되면 회사로서는 엄청 이득이지. 넌 사장님하고 가까우면서도 회사 생각 안하냐?”

“누가 회사 생각 안합니까? 이쿠조씨 금형 깎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렇지요.”

“왜?”

“한마디로 엉성해 보여요.”

“그래도 그 사람이 만든 것 보잉사에도 들어간다더라.”

“그것참.”

이쿠조씨가 박종석을 불렀다.

“이 연장은 손잡이 부분을 용접해 줘요. 이음새 부분은 고무 박킹으로 막고.”

“예, 알겠습니다.”

“내가 만든 금형을 압출기에 끼울 테니 온도 좀 올려줘요. 이 원료 호퍼에다 넣고 까만색 안료는 5그람, 카본 가루는 4그람, 가황 촉진제는 1그람......”

“제기랄, 호퍼에다 쑤셔 넣는 것도 많네. 어? 통역 양반! 그것 만지지 마세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통역이 호기심에서 무얼 구경하다가 만져본 모양이었다. 갑자기 기계소리가 크게 울리고 압력계 바늘이 올라갔다. 통역이 화들짝 놀라 뛰어 나왔다.

박종석이 달려가 몇 개의 스위치를 조작하니까 기계 소리가 멈추었다.

“죄, 죄송합니다.”

통역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냥 저 쪽바리 양반 통역이나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쿠조씨가 박종석을 불렀다.

“씨팔! 10분마다 한 번씩 부르는 것 같네. 지금 내가 한 말은 통역하지 마세요.”

통역이 빙그레 웃었다.

이쿠조씨가 이상하게 생긴 쇳조각을 박종석에게 주었다.

“이것, 내가 새로 깍은 건데 표면이 거칠어요. 사포질을 해야 하는데 평면이 되게끔 문질러 봐요.”

“알겠시다.”

박종석이 투덜거리며 이쿠조씨가 준 쇳조각을 사포로 문질렀다. 통역이 궁금해서 박종석이 가는 모습을 가깝게 와서 쳐다보았다.

“통역은 저리 가세요. 이거 문지를 때 미세한 가루가 날려요.”

오후가 되어 이쿠조씨는 실험용 시제품을 뽑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자기가 깎고 다듬고 갈은 금형을 끼우고 박종석을 시켜 배합한 원재료를 가지고 기계를 돌렸다.

“온도점검, 냉각수 점검, 압출속도 조정, 다이 팽창여부 체크하세요. 박종석 부장 이외에는 기계나 배합 원재료에 손대지 마세요.”

시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흰색과 노란색이 이중으로 나오며 노란색 부분은 딱딱했다.

“시제품이 나온다!”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연구소장도 오고 공장장도 왔다.

“거, 금형은 엉성한데 시제품은 정말 예쁘게 나오네.”

“이것 봐, 한쪽은 딱딱하고 날개 접힌 부분은 물렁물렁해. 사람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나오는 물건을 쳐다보았다.

“물건 만지지 마세요. 아직 안 굳었어요.”

플라스틱 계열의 물건은 아직 굳지 않을 때는 물렁했다.

이쿠조씨가 나온 제품이 어느 정도 굳자 경도계로 경도 측정과 인장강도 측정을 하였다.

이쿠조씨가 박종석에게 소리쳤다.

“박부장, 기계 멈춰요!”

이쿠조씨는 한숨을 쉬었다.

“투명도가 문제가 있다. 탄산 마그네슘 배합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멀쩡한데.”

모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소레데와 나이(그게 아니요)!“

“이건 측정기보다 내가 먹어봐야 압니다.”

“먹어?”

이쿠조씨는 아직 굳지 않은 시제품을 가위로 싹뚝 자르더니 조각을 떼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 어. 정말 입으로 씹네. 저러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어떡해? 인체에 해로운 플라스틱인데.”

이쿠조씨는 눈을 감고 계속 씹었다. 마치 초밥 한 덩어리를 입에 넣고 감상하는 것 같았다. 이쿠조씨는 한참 후에 프라스틱 조각을 뱉으며 말했다.

“탄산마그네슘 배합을 더 하고 오일을 줄입니다. 지금까지 시제품 나온 것은 다 버리세요!”

“어휴, 이 많은걸 다 버려요? 아까운데.”

“다 버려요!”

이쿠조씨는 기운이 빠지는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튼 날 이쿠조씨는 더 이상 실험을 하지 않았다.

“실험은 이틀 후에 합니다. 영감을 다시 얻은 후에 합니다.”

이쿠조씨는 부처님처럼 앉아서 책만 보았다. 무슨 책인가 하고 박종석이 넘겨다보았지만 일본어와 한문으로 된 책이라 무슨 책인지 몰랐다.

공장장이 박종석을 불렀다.

“어이, 실험 안 해?”

“이쿠조씨는 지금 책만 보는데요?”

“무슨 책?”

“무슨 영감을 얻는다고 하네요.”

“영감?”

“네, 영감이요. 영어로 하면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 말입니다.”

“참, 별짓 다 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쪽발이들은 이상해요.”

“어디, 내가 가서 무슨 책을 보나 확인해 보지.”

공장장이 이쿠조씨 책상 앞으로 왔다.

“무슨 재미있는 책을 보십니까?”

“아, 아니요. 그저. 안 풀리는 것들이 있어서.”

공장장은 한문을 아는 모양 이었다 책 표지를 보고 말했다.

“오륜서(五輪書)?”

“예, 오륜서입니다.”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데.”

공장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구소장한테 왔다.

“당신 오륜서에 대해 아시오?”

“글쎄. 나도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데. 무협지 아닐까?”

“그 작자가 뭔가 잘 안 풀리니까 무협지 보는 모양이네요.”

이쿠조씨는 책을 보다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이 끝나면 또 책을 들었다.

박종석이 보기에 이쿠조씨의 행동이 희한했다.

“저 책은 불경이 아닐까?‘

박종석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도 이쿠조씨는 책만 보았다. 밤늦게 까지 보았다.

“씨팔, 퇴근도 못하게 만드네. 저 사람 숙소인 온양관광호텔까지 내가 태워다 주어야 하는데 퇴근도 못하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역도 볼멘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집이라도 가깝지. 난 이게 뭐야. 씨팔.”

야간 경비를 하는 문재식이 투덜거리는 박종석을 보았다.

“왜 그래?”

“저 꼰데 안 들어가서 그래. 책만 봐.”

“그래?”

문재식이 플래시를 들고 사무실 각방을 돌아다녔다. 소등 여부를 체크하러 다녔다. 문재식이 이쿠조씨 있는 곳으로 왔다. 통역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스마트폰 게임만 했다.

“책을 보시는 군요. 오, 오륜서이군요.”

이쿠조씨가 경비 제복을 입은 문재식을 쳐다보았다.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가 쓴 오륜서 이군요.”

통역이 자기 이마를 세게 때렸다.

“맞아! 오륜서는 미야모도 무사시가 쓴 책이지! 이제 생각나네!”

이쿠조씨가 고개를 들고 다시 문재식을 쳐다보았다.

“미야모도 무사시를 아시오?”

“알지요. 일본 제일의 검객 아니었습니까? 60여 차례나 싸워 한 번도 져본 일이 없다는 전설의 사무라이 아닙니까?”

“흠, 아시는군.”

“오륜서는 미야모도 무사시가 말년에 지은 책이지요.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경영서적으로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 아닙니까? 니텐이치류(二天一流) 검법의 달인 미야모도 무사시를 저도 좋아합니다.”

“호.”

이쿠조씨는 문재식의 아래 위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경비원을 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군.”

이쿠조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중얼거렸다.

구건호는 직산 건설 현장을 찾았다. 현장을 지휘하던 윤이사가 뛰어 나왔다.

“호, 건물이 많이 올라갔네요.”

“건물은 금방 올라갑니다. 마무리 공사는 약간 시간이 걸립니다. 내부 인테리어 말입니다.”

“그래요?”

“이쪽이 생산동입니다. A동과 B동이 있고 이쪽이 사무동입니다. 이쪽이 강당이고요, 이쪽은 식당과 휴게실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계단에 난간을 아직 설치 안했으니 주의해서 올라오십시오.”

구건호는 양복 차림에 윤이사가 준 안전모를 쓰고 올라갔다.

“여기가 사무실, 이쪽이 사장님실입니다. 소회의실과 손님 접대실이 있고 이쪽이 화장실입니다.”

구건호는 공장 건물 이곳저곳을 살폈다. 공장 건물 앞에 조경으로 소나무까지 심는다니 모두 완공되면 근사한 공장이 될 것 같았다.

“신제품 개발만 계속 된다면 공장은 1천명 수용도 가능하겠지요?”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저쪽에 빈 공터도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새 건물을 또 지을 수 있습니다.”

“전기와 수도는 충분하지요?”

“전기는 충분합니다. 원래 기존 용량이 컸던 공장이니까요. 수도도 상수도를 끌어들이지만 지하수도 활용할 계획입니다.”

“지하수요?”

“여기 지하수 물 잘 나옵니다. 그래서 냉각시설 물은 지하수 물을 활용할 계획입니다.”

“흠.”

구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은 시멘트로 하실 겁니까?‘

“들어오는 입구와 공장 마당은 아스팔트로 합니다.”

구건호가 직산 현장을 둘러보고 아산 공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비서 겸 문서 수발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을 불렀다.

“일본인 기술자 사카다 이쿠조씨를 내 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쿠조씨가 구건호 방으로 왔다.

“개발 하시느라고 수고 많지요? 차나 한잔 하자고 불렀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무슨 책을 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오륜서라는 옛날 일본 무사가 쓴 책입니다. 요즘 경영서로 각광 받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요?”

“오륜서는 화이브 링스(Five Rings)라고 번역되어 아마존 서점에 나왔는데 구사장님도 한 번 읽어보십시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일본어로 되어 있어 드릴수가 없군요.”

“나중에 한번 보겠습니다.”

“저는 거기서 영감을 얻습니다. 무사시가 60여 차례나 싸워 한 번도 패하지 않았듯이 저도 신제품을 60여 차례나 개발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되는군요.”

“이제껏 얼마나 개발해 보셨습니까?”

“20여 차례 됩니다. 무사시에게는 어림도 없군요.”

“하하, 정신이 좋으시군요.”

“책은 다 보았고 새로운 영감도 얻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2차 도전을 하겠습니다. 반듯이 성공하여 구사장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네?”

“사장님 곁에는 든든하신 두 분이 계시더군요.”

“공장장과 연구소장 말입니까? 아니면 영업상무를 말하십니까?”

“아닙니다. 생산부 박종석 부장과 경비원 문재식씨입니다.”

“예? 그 사람들이요?”

“두 사람의 경영 마인드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철저한 장인(匠人) 정신이 있습니다. 사장님을 훌륭하게 보필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요?”

구건호는 자기 코를 쓰다듬으며 뭔가를 한참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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