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27화 (127/501)

# 127

디욘사의 세계적 기술자 (1)

(127)

구건호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인천 구월동 아파트로 갔다.

벌써 손님들이 많이 왔는지 현관에 신발들이 가득했다.

“건호 왔다!”

“건호 왔다!“

거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구건호가 허리를 깊숙이 굽혀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엄마와 아빠가 웃고 있는데 촌스럽게 한복을 입고 있었다.

“이 집 대장 왔네!”

구건호가 쳐다보니 고모였다. 고모는 전보다 늙어 보였다.

구건호는 친척들의 안내로 부모님께 술을 한잔 올리고 큰 절을 하였다.

“이 집이 아들 하나는 잘 뒀지.”

“장가가야지 이젠. 돈도 벌었겠다. 아쉬울 게 뭐 있어.”

구건호의 절이 끝나자 누나와 매형, 그리고 정아도 절을 했다. 정아는 몰라보게 예뻐졌다. 피아노 사준 삼촌이 왔다니까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았다.

“상 받았다며?”

“네.”

정아는 옛날처럼 촐랑대지도 않았다.

모인 사람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저씨뻘 되는 어른들이 구건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사귀는 사람은 있어?”

“네.”

구건호는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구건호는 교또의 마츠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리에이꼬를 생각했다.

“큰 사업한다며?”

“네, 아산에서 부품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너, 네 사촌동생 재춘이 알지?”

“재춘이 알지요.”

“걔가 지금 놀고 있는데 네 공장에 자리 하나 만들어 줘라.”

“예? 아 예.”

고모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오라버니. 오늘 같은 날 취직 이야기 하면 되요? 경사스러운 날.”

“경사스러운 날에 하지 언제 하냐? 넌 네 아들 재웅이가 공무원 됐다고 재냐?”

“제가 재긴 언제 재요? 술이나 드세요.”

집안 아저씨는 고모의 목소리가 더 큰지라 깨갱 하면서 술만 들었다.

구건호가 고모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재웅이는 잘 있지요? 노동청에 잘 다니지요?”

“잘 있지.”

고모는 이 말을 하면서 무슨 일로 심통이 사나운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옆에 있던 누나가 건호의 팔을 툭 치면서 말했다.

“지금 네 고모가 며느리하고 사이가 나빠 저런다.”

“재웅이 와이프 말입니까?”

“그래, 며느리하고 날마다 싸운다더라.”

구건호는 그럴 만 하다고 생각되었다. 고모는 우리 엄마와 달리 기가 세니까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 되었다.

“건호야, 너 빈손으로 오진 않았겠지?”

고모가 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예. 조그만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구건호가 크루즈 여행가는 표 두 장이 든 봉투를 아빠에게 드렸다.

“이게 뭐냐?”

아빠와 엄마는 봉투를 열어보았다.

“뭐야? 구두표냐?”

고모가 말했다.

“아닙니다. 크루즈 여행 티켓입니다.”

“크루즈 여행?”

술만 마시던 집안 아저씨가 궁금해서 말했다. 고모가 또 소리를 질렀다.

“아, 오라버니는 그것도 모르세요? 큰 배 타고 놀면서 여행가는 거예요! 모르면 가만히 술이나 드세요.”

고모는 뭐가 못마땅한지 입을 또 삐죽 내밀었다.

“어머, 크루즈 여행? 좋겠다.”

집안의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손뼉을 쳤다.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와 하고 웃으며 손뼉을 쳐 주었다.

“고맙다.”

엄마가 구건호의 손을 잡아주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의 맨션 중도금을 치루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최지영 사장의 차를 타고 분양업자를 만나 중도금을 주었다.

“우께도리(영수증)를 써드리죠.”

분양업자가 영수증을 써 주었다. 구건호는 분양업자가 영수증을 쓰는걸 보고 감탄했다. 내려 쓰는 글씨로 휙휙 갈겨쓰는데 글씨가 하나도 비틀어진 게 없었다.

최지영 사장이 전에 계약금 치룰 때 구건호가 써준 1천만 엔 차용증을 돌려주었다. 구건호가 웃으며 차용증을 찢어 버렸다.

“아쉽군요. 에이꼬가 교또 마쓰리에 가서.”

“괜찮습니다. 에이꼬가 오히려 발전한다니 더 좋습니다.”

“마마상 세가와준꼬 이야기를 들으니 에이꼬의 춤사위가 더욱 좋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후견인 덕분이라고 합니다.”

“하하, 본인의 노력이 더 있었겠지요.”

“아미엘의 사무실이 있는 니혼바시로 가시겠습니까?”

“그러지요.”

“통역은 있습니까?”

“우리 회사 영업상무의 조카가 일본 유학생입니다. 니혼바시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구건호는 니혼바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디욘사 퇴직 기술자 사카다 이쿠조씨를 만났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앙다문 입이 고집스럽게 생겼다. 과연 고집불통의 기술자처럼 생겼다. 그는 65세 정도로 보였고 몸에서 쇳가루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미엘이 이쿠조씨를 소개했다.

“구사장, 이분이 디욘사 최고 기술자였던 이쿠조씨네. 인사하게.”

“구건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쿠조입니다.”

“도면을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금형은 만들지 마세요. 제가 손으로 만들겠습니다.”

“손으로 만들어요? 요즘 금형은 전부 기계로 하잖습니까?”

“저는 손으로 만듭니다.”

“손으로 만들어요? 그러면 정밀하겠어요? 손으로 만드는 건 옛날 방식 아닙니까?”

“제가 지금도 손으로 깎은 것이 세계적 항공사 보잉사에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쿠조씨는 입을 앙다문 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한지 아미엘이 수다를 떨었다.

“이쿠조씨는 디욘사는 물론 보잉사도 인정해주는 기술자네. 동생도 동경대 세계적 물리학자고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네.”

“흠.”

구건호는 이쿠조씨가 유능한 기술자인 것 같은데 너무 옛날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선생님은 이 도면의 제품을 개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저는 만들 때 잇쇼겐메이(一生懸命)합니다.”

“잇쇼겐메이요?”

통역이 옆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잇쇼겐메이는 목숨을 건다는 뜻입니다. 즉, 제품 개발할 때 목숨을 걸고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목숨을 걸어?”

구건호는 감탄 했다. 자기도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할 때는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구건호는 크게 웃었다.

“핫핫핫. 역시 세계적 장인(匠人)다운 말씀이십니다. 좋습니다. 한국으로 정식 초빙합니다. 최고의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아카사카의 뉴오따니 호텔에서 묵었다. 내일은 돌아갈 날짜인데 한없이 모리에이꼬가 보고 싶어졌다. 구건호는 회사의 총무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 출장은 하루 더 연기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날 구건호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교또로 갔다. 교또는 옛날 일본 천황이 살았던 고도이다. 구건호는 축제가 있다는 오카자키 공원을 찾아갔다. 거리 곳곳에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포스터에는 예쁜 게이샤가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전통 종이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구건호는 그 포스터를 보고 크게 놀랐다. 포스터의 인물은 모리에이꼬였다.

“흠. 틀림없는 모리에이꼬네.”

구건호는 미소를 띠었다.

오카자키 공원에 있는 헤이안진구(平安神宮)는 축제가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신궁 앞에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그 뒤로 구경꾼들이 새카맣게 모여들었다. 구건호도 구경꾼들 틈에 섞였다.

북소리가 울리고 신관이 나와 축제가 있음을 방송하였다. 음악이 울리고 흰 복장을 한 무희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하였다. 예기(藝妓)들이었다.

“기레이(예쁘다)!”

“기레이(예쁘다)!”

사람들은 기레이를 연발하였다. 정 중앙에 있는 여자가 모리에이꼬였다.

“저 여자다!”

사진작가들이 모리에이꼬를 향해 집중적으로 카메라를 들이 대었다. 모리에이꼬는 요정에서 본 것과는 달리 짙은 게이샤 화장을 하고 나왔다. 사진작가들을 따라 일반 구경꾼들도 스마트폰을 들고 모리에꼬의 얼굴을 폰에 담았다. 구건호도 자기의 스마트폰에 모리에이꼬의 얼굴을 담았다.

이상한 악기의 음악이 울리고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모리에이꼬의 춤은 요정에서 보던 그것과는 달랐다. 정말 아름다운 무희의 춤이었다. 사람들은 또 모리에이꼬의 모습을 촬영하기 바빴다.

[아아, 저 여자가 처녀를 나에게 바친 여자란 말인가!”]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에게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축제의 흥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헤이안진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구건호가 한국에 돌아온 지 며칠 후 사카다 이쿠조씨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통역은 뽑아 놓았지요?”

“예,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데리고 와 보세요.”

총무부장이 젊은 사람 한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구건호보다 서너 살 아래로 보였다.

“통역할 사람입니다. 여기 이력서가 있습니다.”

“일본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셨군요. 기술자를 통역하는 것이니까 기술용어가 많이 나올 겁니다. 잘 부탁해요.”

구건호는 통역을 한 달만 채용하는 것이므로 길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총무부장님 김포공항에는 총무과장을 보냅시다. 보아하니 총무과장 차도 좋은 것 같던데.”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총무과장이 인물도 훤하고 말도 잘해 의전 담당으론 적격입니다.”

구건호는 총무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차가 K7인가요? 새 차 같던데.”

새 차는 아니고요 중고차 샀습니다. 나온 지는 2년밖에 안된 찹니다.“

“내가 총무부장님께 유류지원 넉넉히 하라고 할테니까 김포공항을 다녀오세요. 옆에 계신 통역하고요. 일본인 유명 기술자 한 분이 우리 회사 자문역으로 옵니다. 이름은 사카다 이쿠조씨입니다.”

“알겠습니다.”

“부장님은 이쿠조씨가 묵을 숙소로 온양관광호텔에 방 하나를 예약하시고요.”

“장기 투숙이겠네요.”

“계약은 한 달이지만 신제품 개발의 속도에 따라 연장이나 단축은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오후가 되어 사카다 이쿠조씨가 아산 공장으로 왔다. 구건호는 임원들을 사장실로 불렀다.

“오늘부터 우리회사 신제품 개발을 지도해 주실 사카다 이쿠조씨입니다. 미국 라이먼델 디욘사의 기술부장을 하시던 분입니다.”

임원들은 이쿠조씨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었다. 이쿠조씨는 퇴직을 해서 그런지 명함에 이름만 있었고 회사나 단체 이름 같은 것은 없었다.

구건호가 임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공장장님이 우리 공장을 안내해 주십시오.”

“그러지요.”

“공장 현장 안내가 끝나면 연구소도 보여주시고요. 연구소 안내는 연구소장님이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개발 작업을 공장 라인에서 직접 하실 건가, 아니면 연구소에서 하실 건가를 알려달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공장장은 이쿠조씨를 데리고 나가면서 대끔 일본말로 질문했다. 공장장은 일본어를 약간 아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몇이시오?’

이쿠조씨는 공장장 명함을 보면서 말했다,

“65세요.”

“나보다 3살 많네. 나는 62세요.”

둘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이쿠조씨는 생산 현장과 연구실을 두로 돌아보았다. 그는 제품 개발 현장을 역시 압출기가 있는 생산 현장으로 정했다.

이쿠조씨는 큰 가방 두 개를 가져왔다. 가방 하나에서 5키로 정도의 원재료가 든 비닐봉지 여러 개를 꺼내놓았다.

“여기 공무팀장이 있소?”

“여기 생산부장이 공무 일도 잘 합니다.”

공장장이 박종석을 소개했다.

이쿠조씨는 의외로 웃으면서 박종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금형을 깎을 수 있는 다이를 설치해 주시오.”

“다이를요? 알겠습니다.”

박종석이 뚝딱거리며 다이를 설치해 주었다.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일본인 기술자가 들어왔다며?”

“응, 왔어.”

“아미엘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 일본인 기술자가 신제품 개발을 완성했다면 성공보수를 주어야 한다고 하네.”

“성공보수?”

“자문료는 5천 달러지만 성공보수는 2만 달러라고 했어. 물론 개발품에 대한 지적 소유권은 주식회사 지에이치 모빌에 넘겨준다는 조건이야.”

"흠.“

“이걸 우리 로펌에서 공증해 달라고 하던데?”

“흠”

구건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변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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