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26화 (126/501)

# 126

최첨단 공장 신축 (3)

(126)

구건호는 깜깜한 밤에 문재식과 함께 경비실에서 맥주를 마셨다.

“넌 학교 다닐 때 문예반에서 날렸잖아. 교지도 만들고 그랬던 걸로 기억되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수도권 대학의 문창과를 다녔어.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걸 하니 무척 좋았지.”

“그래, 그 소식은 나도 들은 것 같다.”

“졸업 후 지방 신문의 신춘문예도 당선되고 그랬지. 하늘을 나는 것 같았어. 졸업 후는 신문사엘 들어가려고 했지만 안 되어 출판사엘 들어갔지.”

“전공을 살렸구나.”

“너도 알다시피 출판사는 이런 공장하고 틀려. 규모도 작고 아주 영세해. 직원 서너명 있는 출판산데 너무 어려웠어.”

“흠”

“그래도 히트작이 몇 권 있어서 월급은 적은대로 나왔지. 거기서 와이프도 만났는데.”

문재식의 말이 흔들렸다.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해.”

“그래.”

문재식이 깡통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부인도 출판사에 다녔나?”

“와이프는 시를 쓰는 여자였어. 생업으로 우리 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교정 교열하는 일을 맡았었어.”

“흠.”

“서로 눈이 맞아 결혼했지. 내가 그 출판사에 편집장을 할 때였어. 그런데 출판사는 불행하게도 후속타가 없었어. 책을 냈다 하면 500부도 안 팔리고 끝나는 게 많았지.”

“책 내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나?”

“우린 주로 외국서적을 출판했는데 번역료에서 부터 교정교열, 디자인, 인쇄까지 모든 단계를 거치면 1천만 원도 넘어가.”

“오, 그렇게 많이 들어가나?”

“결국 출판사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지. 재취업하려고 했지만 출판시장이 안 좋아 취업 못하고 교정 교열 일로 먹고 살았지. 그런데 내가 눈에 뭔가 씌었나 봐. 그거라도 하면 입에 풀칠을 하는데 융자를 받아 치킨집을 했어.”

“흠.”

“권리금까지 포함해서 1억이나 들어간 치킨집인데 이상하게 장사가 안 되었어. 더구나 와이프는 치킨집에 오는 노가다 손님들이 목소리도 크고 희롱을 자주 하니까 짜증만 냈지.”

“흠.”

“장사가 잘 되면 모든 게 잘 굴러갔을 텐데 장사도 안 되고 빚 독촉에 노가다 손님까지 스트레스를 받게 하니까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야. 더구나 시를 쓰는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하잖아?”

“와이프도 투자를 했나?”

“했지. 카드론 여기저기서 받아 2천만 원 집어넣었지. 나도 대출받은 돈 하고 카드론 받은 것 까지 해서 4천 정도 집어넣었지.”

“그럼 자기 자본은 3천 가지고 시작한 거네.”

“출판사 사장이 울면서 준 퇴직금 500하고 엄마가 빌려준 돈 1천만 원을 빼면 내 돈은 1천 500이었지.”

“자기 자본에 비해 부채가 너무 많았구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살고 있는 집 월세도 밀리니까 와이프는 결국 유산을 하고 이혼하자고 했지.”

“에효,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힘들었겠구나.”

“와이프는 지금 소식이 없어. 자기도 카드빚이 있으니까 지금 힘들 거야. 아마 교정 일 보면서 힘들게 살겠지.”

“흠.”

“치킨집 정리하니까 빚만 5천이 넘었어.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신용불량자가 됐어.”

“개인회생 신청하지 그랬냐?”

“했지. 회생 신청이란 게 법원에서 빚 탕감하고 남은 돈 나누어 갚으라는 취지인데 매월 법원에 내는 변제금을 몇 달 내다가 사고로 못 냈어.”

“사고?”

“출판사 교정 일감이 줄어들어 택배회사 취업을 했었어. 반년 일했었나? 빨리 택배 물건을 배달하려는 급한 마음에 불법 유턴을 하다가 마주 오는 차와 충돌했지. 내가 황색선을 넘어 회전했던 거야. 그날도 귀신에 씌었었나봐.”

“흠.”

“배운 게 출판일이라 몸으로 하는 노동시장에 적응이 잘 안되었었어. 더구나 신용불량자이니까 써주지도 않더라고. 박종석이 여기서 기계 다루는 일이나 용접 하는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난 그렇게 못하거든.”

“빚이 총 5천인가?”

“택배일 하면서 갚기도 했어. 3천 정도 남았을 거야. 참 여기서 총무부장 이야기 들으니까 월급을 160준다는데 월급 압류 당해도 기초생활비는 공제해 주니까 저축이 될 것 같아.”

“저축?”

“응, 여기서 방값하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한 10년 일하면 다 갚을 수 있겠어.”

‘그래, 없는 사람들은 늘 방값이 문제지. 없는 사람은 방값을 내야하고, 있는 사람들은 방값을 받는 구조니까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겠지. 그러나 10년이면 너무 오랜 세월이 걸리는구나.“

“늘어나는 것보다 줄어든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야. 하지만 걸리는 게 있어. 동창들한테 동창회 명부 만든다고 돈 걷은 일로 머리를 못 들겟어. 명부는 진짜 만들려고 했었는데.”

”요즘 명부 잘 안 만들잖아? 주소 공개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래서 주소는 이메일 주소로 대체하고 전화번호만 넣으려고 했었어. 우리가 나온 고등학교가 걸어온 길 하고, 동창회 소식과 주소록을 만들긴 만들었어. 원고도 지금 있긴 있어. 출판비용이 2, 3백 들어갈 텐데 그 비용을 걷어 집세 밀린 걸 주었어. 당장 집을 쫓겨나야 되니까 내가 동물처럼 되어 버렸어.

이 말을 하고 문재식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구건호는 착잡했다.

문재식의 극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조원철이나 경리단길에서 장사하는 이석호와 같은 중산층 출신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구건호 사장!

“응?”

“이제 네 이야기 해봐. 어떻게 이런 부를 이루게 되었는지 내 얕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

“내가 걸어온 길은 다음에 하자. 밤이 깊었구나.”

“종석이 이야기 들으니까 포천과 양주에서 같이 공돌이로 일했다며?”

“했지. 그것도 아주 뜨겁게.”

“너는 몸도 상당히 건강해진 것 같아. 경리단길 이석호한테 우산 뺏길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별걸 다 기억하는 구나.”

“네가 고등학교 때 네 우산 뺏기는 걸 옆에서 보았어. 이석호, 조원철, 황병철 같은 애들은 같이 어울려 다녔지만 너와 나는 외톨이였잖아. 집안도 가난했고.”

“하하, 그랬던 적이 있었지.”

“복도에서 네가 조원철이한테 터진 사건도 기억이 생생해.”

“그런 일이 있었나?”

“네가 조원철이를 뒤에서 욕했다고 맞았잖아. 그때 조원철이 너한테 한 이야기가 나한테도 비수로 남았어.”

“뭐라고 했었는데?”

“너 같은 놈은 공부면 공부대로, 싸움은 싸움대로 아무것으로도 나를 이길 수 없어! 하면서 맞았잖아. 그때 조원철이는 나를 쳐다보고도 말을 해 나도 오싹했던 적이 있어. 그때 집에 돌아가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었지.”

“철없는 10대 때의 이야기인데 무얼 그러냐? 나는 기억도 안 난다.”

“그래. 다 잊어야 하지만 조원철과 이석호는 지금도 날 인간 취급도 안 해 괴로워. 동창회 명부 기금 5만원 때문에 온갖 인간 멸시의 말을 들었으니 나도 내 자신에 화가 나.”

맥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 푸념 들어줘서 고맙다.”

“아니야.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보여서 좋아. 힘내라.”

구건호는 문재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동창들 중 너만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 같다. 구건호, 너는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어. 고마워.”

“이제 가봐야 하잖아?”

“아니, 됐어. 오늘따라 맥주 맛이 아주 좋다.”

“나도 좋았어. 내 이야기 하니까 시원하기도 하고.”

“너, 아까 내가 들어올 때 뭔가를 열심히 쓰더구나. 혹시 시를 쓴 것 아니야? 한번보자.”

“아니야, 이거.”

문재식은 종이를 얼른 서랍 속에 감추었다. 그리고 씩 웃었다. 구건호는 문재식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우리 이렇게 하자.”

“뭘?”

“너, 낮엔 집에서 쉬지? 동창회 명부는 만들어라. 원고가 있다고 하니 금방 만들 것 아니야? 비용은 내가 대주마. 찬조금 형식으로 주마. 예쁘게 만들어 봐. 그리고 동창들한테 우편으로 한부씩 보내.”

“그, 그건.”

“그러면 동창들이 다시는 널 가지고 뭐라고 안할 거다.”

“그, 그렇지만.”

“그리고 빚이 3천 남았다고 했지? 그걸 내가 갚아줄 테니 월급에서 매월 50만원씩 공제하겠다. 네 월급 160만원이면 50만원씩 떼도 먹고 자는 건 회사에서 해결한다니 될 것 아니냐? 사람이 신용불량자가 되면 사회적으로 걸리적 거리는 게 많다. 당장 급여 통장부터 문제가 되지 않냐?”

“그, 그건, 너무.”

“여러 말 할 것 없다. 그러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내일 부채 현황표나 뽑아봐라. 그럼 난 간다. 근무 잘 해라.”

“고, 고맙다. 이 은혜 잊지 않겠다.”

일본 아카사카의 최지영 사장으로부터 중도금 날짜가 사흘 후에 있다고 연락이 왔다.

“중도금은 미리 최사장님 통장에 입금시켜 드리지요.”

“어머나, 그렇게 빨리요? 그런데 이번에 오시면 모리에이꼬는 못 만날 것 같아요. 교또에 갔어요.”

“교또요?”

“거기 신사(神社) 앞에서 펼쳐지는 마츠리(축제)에 에이꼬가 기타노 오도리라는 춤을 추어요.”

“그래요?”

“요즘 에이꼬 인기가 대단합니다. 후견인 덕택에 요정에 나가는 횟수를 줄이고 야외무대에 나가는 횟수가 많아졌어요.”

“흠.”

“잔금 치룰 땐 만나볼 수 있겠네요. 호호호.”

“이번에 동경에 가면 디욘사의 아미엘 사장을 만날 일이 있어요. 에이꼬는 천천히 만나지요.”

구건호는 동경에 간 김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아미엘 사장이 추천하는 디욘사의 퇴직 기술자 사카다 이쿠죠씨를 만나볼 참이었다.

중국에 있는 김민혁이 오더를 하나 또 땄다고 연락이 왔다.

[이 녀석은 스톡옵션 준다니까 막 날라 다니네. 9급 공무원 시험 공부한다고 쭈그리고 앉았을 때가 어제 같은데 많이 변했네. 짜식.]

“그런데 이번에 딴 오더는 리스캉 부시장이 힘을 많이 써 줬어.”

“리스캉이?”

“이번에 우리가 품질인증과 환경인증을 받았잖아. 리스캉이 창호 회사에 품질 인증을 받은 업체 제품을 쓰라고 지시했데.“

“창호 회사? 아파트 창문 만드는 회사냐?”

“맞아.”

“우리 제품이 거기 들어갈 만한 것이 있나?”

“있어. 나도 몰랐는데 있더라고. 납품가격도 괜찮아. 제품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아 금형도 여기서 팠어.”

“시제품 출하했냐?”

“초도품 벌써 나갔어. 합격이야. 여기 종업원들 지금 신 났어.”

“그래, 좋은 일이구나. 나중에 연말 결산서는 중국 회계사에 의뢰해라.”

김민혁은 급여를 중국 돈으로 2만 위안을 받았다. 현지 생활비로 1만 위안을 쓰고 1만 위안은 저축했다. 한국 돈으로 180정도 되었다.

“잘 하면 금년에 영업이익 1천만 위안 되겠는데. 그러면 스톡옵션으로 50만 위안은 받을 수 있다.”

김민혁은 전자계산기를 꺼내 계산해 보았다.

“한국 돈으로 계산해보면 9천만원 정도 되겠다. 흐흐흐 9천만원이 생기는 구나. 월급 저축 외에 9천만원 생긴다면 9급 공무원 안하기 천만 다행이다.”

김민혁은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총무부장님 외근중이십니다.”

“지금 전화 받으신 분은 총무과장이요?”

“예, 그렇습니다.”

“내 방으로 와 보세요.”

총무과장이 왔다. 미남형으로 생긴 총무과장은 천안 단국대학교 출신으로 구건호와 동갑이었다.

“내가 사흘 후에 일본 출장 갑니다. 항공권 예약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총무과장은 나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저, 사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총무과장이 품에서 청첩장을 꺼냈다.

“다음 달에 제가 결혼합니다.”

“오, 그래요? 축하합니다.”

구건호는 벌떡 일어나 총무과장에게 악수를 신청하였다.

“우리 회사 간부직원들은 모두 참석하라고 내가 지시하지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총무과장이 깊숙이 허리 굽혀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는 총무과장이 나간 후에 달력을 다시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크! 아빠 칠순잔치가 내일이네.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 했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