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최첨단 공장 신축 (1)
(124)
구건호의 지시에 따라 관리담당 윤이사는 직산 공장의 철거를 시작했다.
구건호가 현장 시찰을 했다. 임시 사무실로 쓰고 있는 콘테이너 박스에서 윤이사가 뛰어 나왔다.
“철거 때는 여기 안 오셔도 됩니다. 먼지가 너무 납니다.”
그래도 구건호는 직산 공장 일이 궁금했다. 며칠 후 또 갔다.
“어? 공장이 다 없어졌네?”
공장 건물이 싹없어지고 마른 땅만 있었다.
“설계도면이 나왔습니다. 공장은 세 개동으로 합니다. 두개 동은 생산라인이 깔릴 것입니다. 높이는 5미터 이상으로 합니다.
“흠”
“사무동은 2층으로 합니다.” 사무동 아래층에 식당이 들어섭니다.
“흠.”
“사무동 앞에 소나무를 심어 조경을 살리도록 했습니다. 변압기는 사무동 위로 올라가고요 쓰레기 처리장은 생산동 뒤에 설치합니다.”
“흠”
“생산동 마지막 후문 뒤에 연못을 팠습니다. 연못은 자연석으로 조경하고 수초도 심어놓을 계획입니다.”
“아니, 연못을 사무동 앞에 해야지 왜 안 보이는 생산동 뒤 한구석에 합니까?”
“하하, 이 연못은 수질환경 인증용입니다.”
“인증용요?”
“우리 공장이 폐수를 정화시켜 맨 마지막에 연못으로 흘러들어가게 합니다. 연못에 물고기를 길러 누가 와서 보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폐수를 정화시킨다고 보여주려고 합니다.”
“흠”
“마음에 드시면 설계용지 겉장에 있는 결재란에 승인 싸인을 해 주시면 바로 공사에 들어가겠습니다.”
구건호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힘차게 승인 싸인을 하였다.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업하느라고 바쁘지? 다음 주 토요일이 아빠 칠순이야. 내가 음식 솜씨는 없지만 친척들 몇 분을 모시기로 했어.”
“어, 그래? 나는 칠순인지도 몰랐네. 고마워, 누나가 그런 걸 챙겨주니.”
“토요일은 인천에 와라. 얼굴 잊어버리겠다.”
“토요일은 나도 출근 안 해. 올라갈게. 참, 엄마아빠 여행 경비라도 드려야겠네.”
”그러면 좋지.“
구건호는 서울에 있는 지에이치개발의 정지영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사장님!”
“잘 있었어요? 별일 없지요?”
“네. 요즘 강부장님이 블로그에 고시텔 광고를 올려 공실율을 많이 떨어트렸어요.”
“그래요? 하하.”
“사장님 언제 올라오세요? 보고 싶어요.”
“오늘 전화한건 다름이 아니라 다다음주 토요일 지나서 유럽 크루즈 여행하는 것 좀 알아봐 주세요. 우리 아버지가 칠순이라 부부 동반해서 여행을 가시라고 할 계획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출발시간하고 가격 같은 것을 알아보지요.”
강부장이나 정지영씨는 업무량이 많지 않아 구건호가 일을 시키면 굉장히 좋아했다. 통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총알같이 정지영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발 날짜하고 가격 알아봤어요.”
정지영씨가 출발 날자와 가격을 불러주었다.
“표 두 장만 끊어 놓으세요. 회사에 돈 있지요?”
“네, 수금한 것 그동안 쌓여 있어요.”
“표는 이곳 아산으로 붙여주세요. 우체국 등기 속달로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온양 관광호텔에서 지역 기업체 사장단 회의가 있었다. 시청의 지역경제과 주관으로 있는 행사였다.
“공장 클린룸 설치를 위해 공사를 하는 업체가 있으면 중소기업 진훙공단의 지원이 있습니다. 또 기술 혁신을 위해 국제 인증을 받는 활동이나 특허를 받을 업체가 있으면 저희가 지원 서비스를 해드립니다.”
구건호는 호텔에서 반은 졸면서 시에서 나온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낯모르는 전화가 왔다. 광고 전화인가 하고 받지 않았다.
휴식 시간이 되어 구건호가 화장실을 가는데 또 전화가 왔다.
“핸드폰 전화인데? 어딘가?”
구건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약간 뜸을 들이다가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구건호? 나, 문재식이야.”
동창회 명부 만든다고 돈 10만원을 떼어먹은 친구였다. 구건호는 동창회 명부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오, 문재식이, 웬일이냐?”
“나, 사람 노릇을 못해 미안하다.”
“무슨 말이야?”
문재식은 한숨부터 쉬었다.
“동창들 사이에서 나 때문에 말이 많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동창회 명부는 못 만들었어. 사실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어렵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해해라.”
“그래? 그럼 됐지 뭐.”
문재식은 또 한숨을 쉬었다.
“왜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이냐? 너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서 날렸잖아.”
“실은 내가 신용불량자이다보니 취업이 안 되어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전화했다. 네가 고시텔을 많이 갖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총무자리 하나 얻을 수 없겠냐?”
“총무?”
“응, 기거할 곳만 있으면 돼. 동창회 명부 사건도 있는데 염치가 없구나. 동창들 사이에서 네가 제일 잘되었다는 소문이 있어 망설이다가 전화했다.”
“너, 공무원 시험 공부하냐?”
“그건 아니고 당장 갈 곳이 없어서 그래.”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구건호도 심정이 착잡했다.
“너, 택배회사 다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맞아. 거기서 일하다가 사고를 냈고 장사 좀 하다가 망해서 빚이 많았어. 그 바람에 이혼도 했고.”
문재식은 감정 때문에 또 울먹이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인천에 계시냐?”
“계셔. 아버지도 하는 일마다 안되 신용불량자야.”
“흠.”
구건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문재식이 먼저 말을 했다.
“미안하다. 말이 없는걸 보니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한 모양이다. 다들 내 목소리 듣자마자 전화 끊는데 너는 내 말이라도 들어주어 고맙다. 그럼 수고해라.”
문재식은 전화를 끊으려고 하였다.
“아, 잠깐!”
구건호는 문재식이 전화 끊으려는 것을 급히 막았다.
“아산으로 내려와라. 아니 천안 직산으로 와라.”
“직산?”
“응, 천안시 직산읍.”
“휴, 차비도 없다. 그런데 거긴 왜?”
“직산은 지하철 타고와도 돼. 직산에 오면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둬, 안 될거야. 신용불량자라 써주지도 않을 거고 써 준다 하더라도 월급 압류를 당해.”
“나, 믿고 무조건 내려와라.”
“거기도 고시텔 갖고 있는 게 있어?”
“무조건 내려오라니까!. 내일 12시까지 직산역에서 만나자.”
“알겠다.... 고맙다.”
구건호는 아침에 출근하여 경리부장을 불렀다.
“신용불량자는 무조건 월급을 압류당합니까?”
“그건 아니고요, 기초생활비는 놔두고 나머지 금액을 모두 압류합니다.”
“기초생활비는 얼마입니까?”
“100만원인지, 120만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럼 200만원 월급을 받는 사람이 기초생활비가 120만원이라면 80만원은 압류한다는 이야기 이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흠.”
“저희 회사도 생산직 주부사원 중 그런 분이 한분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 주부사원은 급여 수령자를 자기 어머니 앞으로 해 달라고 했는데 회사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불법이거든요.”
“흠.”
“할 수없이 그 주부사원은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아침에 결재서류를 대강 보고 직산으로 넘어갔다. 공사 현장에 들렸다. 헬멧을 쓰고 안전화를 신은 윤이사가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땅이 많이 파져있네요.”
“철근을 박을 겁니다. 토목공사를 해야 합니다.”
“저기 일하는 인부들은 월급제인가요?”
“월급제도 있지만 용역회사에서 대부분 일당제로 많이 합니다.”
“흠”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직산역에서 구건호는 문재식을 만났다.
구건호는 문재식을 못 알아 볼 뻔하였다. 그것은 문재식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식은 초라한 행색에 겉늙어 보여 나이 40은 되어보였다. 더구나 덩치도 상당히 왜소해 보였다.
문재식도 구건호를 못 알아 볼 뻔하였다. 구건호가 학교 다닐 때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디에 끼질 못했었다. 체격도 비루먹은 말 같았으나 지금 보니 큰 회사 사장 같고 모든 것이 눈부시게 달라져 놀랐다.
“너무 오래간만에 만나 못 알아 볼 뻔했다.”
문재식은 구건호를 보고 쓸쓸히 웃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못 알아 볼 뻔했어.”
“고시텔 사업은 잘되지?”
“응, 잘돼. 너 공장에 취업할 생각 없냐?”
“공장? 누가 안 써줘. 급여도 압류 당하고.”
“내가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급여 압류문제는 어떻게 조정해보도록 할게.”
“정말?”
문재식은 귀가 번쩍하는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문재식을 자기 승용차에 태우고 직산에 있는 동서울 대학 근처의 설렁탕 집으로 갔다.
“밥이나 먹고 우리 공장에 가자.”
문재식은 설렁탕을 아주 달게 먹었다.
“나, 공기밥 하나 더 시켜도 되지?”
“그럼, 많이 먹어라. 나는 공기밥 하나면 된다.”
구건호가 밥을 먹고 있는 문재식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낡은 잠바에 구두도 많이 헤진 것 같았다. 그의 삶이 신산스러운 것을 느꼈다.
[아아, 이 친구가 옛날에 문예반에서 날리던 문재식이란 친구였던가.]
구건호는 문재식을 태우고 아산으로 향했다.
문재식은 말이 없었다. 구건호도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는 이 골치 덩어리를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식은 공장을 보고 크게 놀랐다. 사람도 많고 엄청난 기계가 돌아가는 걸 보고 두리번거렸다. 구건호는 문재식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일단 소회의실로 안내했다. 구건호는 생산부장 박종석을 불렀다.
“너, 문재식 알지? 인사해라. 문재식이다. 세탁소 아랫집 파란 대문 집에 살던 문재식이다.”
“글쎄, 한번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
박종석은 문재식을 잘 못 알아보았다. 박종석은 경리단길에서 장사하는 이석호 같은 애들을 잘 따라다녔지 밖에 출입을 잘 안하는 문재식 같은 애들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혹시 부평식당집 아들 아닌지?”
문재식은 박종석을 알아보았다.
구건호가 박종석을 향해 물었다.
‘너희 생산팀에서 문재식이 일할 만한 자리가 있나?“
“일자리야 많지. 그런데 이 형님이 일할 수 있는가가 문제네.”
“흠.”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여기 계신 분은 내가 잘 아는 분인데 우리 공장에 일하고 싶어 합니다. 적당한 자리 있을 가요?”
총무부장이 문재식에게 질문을 했다.
“특별한 기술 자격증 가지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운전면허증은 있지요?”
“사고로 정지 중에 있습니다.”
총무부장이 구건호에게 보고 하였다.
“야간 경비원이 결원이 생겨 모집 중에 있습니다. 다른 건 어렵지만 그건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총무부장이 이분에게 필요한 서류 말씀해 주시고, 종석이 너는 문재식이 방을 하나 잡아줘라. 고시텔도 좋다.”
“알겠습니다.”
총무부장과 박종석이 동시에 대답했다.
문재식은 방을 잡아주라는 구건호의 말에 금방 얼굴 화색이 돌았다.
문재식은 총무부장을 따라 나갔다.
구건호가 문재식을 보내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스마트 폰에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 찍혀 있었다.
구건호가 김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전화를 못 받았네.”
“바쁜 모양이지? 전화도 안 받고.”
“아, 이젠 괜찮아.”
“동경에서 아미엘로부터 전화가 왔었어.”
“그래?”
“너, 지난번에 가져왔던 신제품 도면 AM083 어셈블리는 개발했냐고 묻더라.”
“개발하긴. 디욘사에서 실험 생산할 기회도 안주는데 어떻게 개발 하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주겠데.”
“추천? 누군데?”
“일본인인데 미국 디욘사에서 기술자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사람이래. 디욘사 최고의 기술자였다고 하더라.”
“오, 그래?”
“필요하다면 그 사람한테 자문을 한번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묻던데?”
“나야 좋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데.”
“그럼, 내가 아미엘에게 말할게. 그 기술자 필요하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