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23화 (123/501)

# 123

기업 구조조정 (5)

(123)

구건호는 뉴오따니 호텔에서 모리에이꼬를 만났다.

“에이꼬”

“샤쪼상(사장님).”

모리에이꼬는 이번에도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춤추는 일을 하고 나와서 그런지 얼굴의 짙은 화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모리에이꼬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급하게 와서 그런지 땀 냄새가 났다. 땀 냄새까지 싱그러워보였다.

“힘들지?”

“괜찮아요.”

모리에이코가 긴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미소를 지었다.

“저녁은 먹었나?”

“신쥬꾸에서 먹었어요.”

구건호는 호텔 바에서 간단한 맥주를 마셨다. 모리에이꼬가 피곤한지 자꾸 하품을 하였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피곤하면 자고 가.”

모리에이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도 앙증맞아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와락 껴안았다.

“피곤하면 자고 가라니까.”

구건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모리에이꼬의 입술을 덮쳤다. 모리에이꼬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그대로 구건호에게 전달되었다.

“보고 싶었어.”

모리에이꼬는 눈을 감은 채 온 몸을 그대로 구건호에게 맡겼다.

“오늘 맨션 계약했어.”

“마마상한테 들었어요. 은혜 잊지 않겠어요.”

‘평생 지켜줄게.“

“고마워요.”

모리에이꼬가 팔을 뻗어 구건호의 목을 감았다.

구건호는 결국 이날 모리에이꼬와 함께 두 번째의 밤을 보냈다.

구건호는 아산 공장에 출근하자마자 일본 최지영 사장의 통장으로 1억원을 송금했다. 모리에이꼬 맨션의 계약금이었다.

“계약금 돈 보냈습니다.”

“벌써요?”

“환전 수수료는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하지요.”

“호호, 그렇게 하세요. 차용증 쓰신 건 다음번 일본에 오시면 돌려드리지요.”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일본에 갔다 와서 그런지 몸이 피곤했다. 넓은 사장실에 혼자 앉아서 비몽사몽간에 졸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상임감사가 들어왔다.

“전에 말씀드린 관리담당 임원할 사람이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

“네, 그러세요.”

상임감사가 다시 나갔다가 50대 남성 한명을 데리고 왔다.

“안녕하십니까. 윤형식이라고 합니다.”

“앉으시지요. 감사님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상임감사가 테이블 위에 서류 하나를 올려놓았다

“제가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요?”

구건호가 이력서를 훑어보았다. 경력이 화려했다. 해외 공사경력도 많고 특히 이전의 회사에서는 관리상무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먼저 있던 회사에서는 관리업무란 주로 무엇이었습니까?”

“총무와 법무 업무, 시설관리, 영선, 종업원 근태관리 등 다른 부서에 속하지 않는 모든 일은 다 했습니다.”

여직원이 차를 가지고 왔다.

“차, 드시면서 말씀 나누지요.”

“예, 알겠습니다.”

윤형식이라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집어 들었다. 서울공대를 나오고 대기업 해외법인장과 중소기업 임원을 한 사람이 구건호 앞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었다. 구건호는 한결 여유스 러웠다. 다리를 꼬고 앉아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차를 마셨다. 35세의 공돌이 출신이 엘리트 출신의 50대를 앞에 놓고 한껏 무게를 잡았다.

강남의 역술인 박도사가 생각났다.

“35살 이전에 만석꾼이가 되어 천금을 희롱한다니까! 두고 봐, 스카이대학 나온 놈들 밑에 두고 회장소릴 들을 테니까.”

구건호가 차를 마시고 나서 꼬은 다리를 풀면서 말했다.

“우리 회사는 이제 제가 인수한지가 얼마 안 되어 어수선 합니다. 급여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됩니다.”

“채용이 된다면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옆에 계신 상임감사님이 놓치기 아까운 인재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윤형식씨가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렸다.

“여기 오셔서 총무부, 시설관리부, 관재부, 업무부, 법무팀, 등 5개 부서를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직급은 관리이사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시는 것 보아서 승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감사님이 새로 오신 윤 이사님을 간부 직원들에게 소개시켜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상임감사가 웃으면서 윤이사의 팔을 잡고 나갔다.

서울 강남의 은행지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점 승인 결정이 났습니다. 기존 대출은 모두 정리하고 우리 지점 한군데로 대출을 몰았습니다. 다음 달 부터 이자지출은 팍 줄어들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지점으로서도 한 회사에 대한 대출금액이 너무 높습니다. 변동 상황을 저희도 본점에 수시 보고해야 됩니다. 분기별로 회사의 재무제표를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본점에서 실사를 한번 나갈 겁니다. 요령 있게 잘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신용보증기금 건은 우리가 정리 못했습니다. 그것까지 하면 대출금이 부동산 감정평가액을 넘어버립니다.”

“흠.”

“사장님 개인 연대보증이라 찝찝하시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창고와 기숙사를 파셨기 때문에 새로 경매 받은 직산 공장이 담보 들어갔습니다. 등기부등본 확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산이나 천안에서 라운딩할 기회를 주시면 저도 한번 아산에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러지요,“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서울 강남 은행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대출 승인이 났답니다. 한곳으로 몰은 것 말입니다.”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상임감사가 활짝 웃었다.

“이제 금융비용도 떨어지니까 경상이익이 날겁니다. 소폭이지만 말입니다.”

“뭐, 사업이란 것이 손해 안보면 되겠지요. 감사님 역할이 컸습니다.”

“아휴, 저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기분도 좋은데 임원들 모두 점심이나 같이 하지요. 윤이사도 새로 왔으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임원들한테 전달하겠습니다.”

주식회사 지에이치 모빌의 임원 5명이 전부 모여 아산 시내의 한우 갈비집으로 갔다.

구건호를 비롯하여 연구소장, 공장장, 상임감사, 영업상무, 관리이사 등 6명이 갈비를 뜯었다. 구건호만 30대고 전부 50대, 60대였다.

“소주도 한잔씩 하시지요.”

“얼굴 빨개질 텐데요.”

‘식사하시고 아산만에 가셔서 바닷바람 쏘이고 공장 들어가시면 깰 겁니다.“

“사장님 승인하셨으니 마음껏 드시지요.”

술은 영업상무가 제일 셌다. 영업활동을 하러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술도 제일 세고 입담도 제일 좋았다. 60대 초반의 연구소장과 공장장은 활기가 없어보였다. 연구소장이 앞에 있는 소주를 입에 털어놓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장님께 한번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공장을 이전하면 연구실을 없앤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입니까?”

“아직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단, 검토는 하겠지요.”

“이전 하시더러도 연구실 해체는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아웃풋을 내놓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 그건.”

“검토 해보고 나서의 이야기이니까 그냥 술 드시지요. 하하.”

“뭐, 저희도 그동안 실적이 없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검토 결과가 나쁘게 나오더라도 직원들은 배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요?”

“저는 나이도 있어 퇴직해야 되지만 아직 젊은 직원들은 부양가족들도 많습니다.”

“흠.”

“해체보다는 신설되는 부서에 흡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흠, 역시 소장님은 부하 직원들을 배려하는 훌륭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소장님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검토 결과가 나쁘게 나오더라도 우리 식구들을 강제로 내보내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구소장의 얼굴이 많이 펴졌다.

“공장장님은 어째 고기를 많이 안 드십니까? 치아는 좋으시지요?”

“치아는 아직 좋지요.”

영업상무가 너스레를 떨었다.

“형님, 치아가 건강하시면 거기도 건강하답니다.”

이 말 끝에 모두 와하하 하고 웃었다.

공장장이 빈 잔을 구건호에게 주었다.

“제가 사장님을 뵐 날도 며칠 안 남았네요. 오래 모시고 싶었는데 이놈의 나이가 원수네요.”

“벌써 그렇게 되셨나요?”

“저는 다다음달 말일까지 근무합니다. 어느새 정년이 되었네요.”

공장장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흠.”

영업상무가 또 너스레를 떨었다.

“형님, 힘내세요. 퇴직 후 인생이 진짜 인생이랍니다.”

“회사 그만두시면 무슨 다른 계획 같은 것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냥 마누라 눈치만 보고 살아야지요.”

“흠.”

구건호는 풀죽은 공장장이 안 되어 보였다. 그렇다고 공장장의 정년을 연장해 줄 수는 없었다. 회사의 신진대사가 안 되면 조직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구건호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한번 하시지요.”

“어떻게요?”

“퇴직 후 중국 공장에 가서 한 1년간 근무하지 않겠습니까? 촉탁으로 말입니다.”

“예? 중국이요?”

“중국에 인수한 공장이 아직 기술력이 딸립니다. 거기서 1년간 촉탁으로 계시면서 기술 자문도 해 주시고 후진 양성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러면야 저는 좋지요.”

공장장의 얼굴에도 금방 생기가 돌았다.

중국에 잇는 김민혁이 품질인증과 환경인증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중국 공장도 ISO9001과 ISO14000을 받았어.”

“그거 품질인증하고 환경인증 아니야?”

“맞아, 그거 이번에 여기서 땄어.”

“그거 심사비용도 들어가고 유지관리비용도 들어가던 것 같던데.”

“여기서 내가 중국 자동차 회사를 거래 트려고 쑤시고 다니고 있어. 거기서 협력업체로 등록하려면 ISO9001과 ISO14000가 있어야 된다고 해서 받았어.”

“하하, 그건 네가 전문가 아니야? 전에 한국에 있을 때 품질관리 업무를 봤다고 했잖아. 경험 살렸구나.”

“그런데 골치 아픈 게 있어.”

“뭔데?”

“중국 애들 기계 다루는 것 보면 열 받아.”

“왜?”

“툭하면 불량이고 기계고장도 잘 내.”

“그거 열 받게 생겼구나.”

“미치겠어.”

“그래서 말인데, 여기 계신 공장장이 이번에 정년퇴직하거든. 중국 공장에 촉탁으로 1년간 모셔볼까 해.”

“공장장?”

“평생 기계하고 사신 분이니까 가면 도움이 될 거야. 후진 양성도 되고.”

“그럼 나야 좋지. 빨리 오시라고 해.”

“그래, 알았다. 퇴임하고 바로 가시도록 할게.”

“중국 자동차회사 오더 뚫으면 다시 보고 할게,”

“알았다. 수고해라.”

구건호는 새로 들어온 관리담당 윤이사를 불렀다.

“천안 직산에 우리가 경매 받아 논 공장이 있습니다. 한번 가 보셨나요?”

“이야기만 들었지 아직 가보진 못했습니다.”

“오늘 저하고 거기 같이 한번 가보시지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윤이사를 데리고 천안 직산으로 갔다.

빈 공장을 지키고 있던 늙은 경비원이 뛰어나와 황급히 인사를 하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별일 없지요? 공장 문 열어봐요.“

경비원이 자전거 자물쇠로 잠겨 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야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었다.

“어휴, 부지가 굉장히 넓네요.”

“오천평입니다. 그동안 멀쩡했는데 공장 마당에 이렇게 잡초가 자랐네요.”

“위치가 참 좋습니다. 대로변이라서요.”

“그래서 내가 얼른 경매를 받았습니다.”

“굉장히 비쌌겠는데요?”

윤이사가 공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천장 크레인이 녹슬어가네요. 아깝네요.”

“이 공장에다 2천평 정도의 공장 건물을 신축하려고 합니다.”

“옛? 2천평이요?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요.”

“상임감사님 말로는 평당 건축비 2백만원은 들어갈 거라고 합니다.”

“그, 그렇게 될 겁니다.”

“윤이사님은 과거 건설회사에 계셨으니 공장 건물 많이 지어보셨지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앞으로 여기 공장 신축 건설 본부장을 맡아주십시오.”

“예? 제가요?”

“우선 철거부터 해야겠지요. 철거는 용역회사에 맡기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설계회사를 찾아보세요.”

“설계는 제 후배들이 하는 애들이 많습니다.”

“방진이나 항온 항습 등에 신경 쓴 클린 최 첨단식 공장을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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