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20화 (120/501)

# 120

기업 구조조정 (2)

(120)

구건호의 장점은 본능적으로 돈의 냄새를 잘 맡았다. 판단력이 좋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면 과감한 베팅을 하는 배짱이 있었다.

사람이 잘 안되면 남의 원망을 한다.

구건호도 공돌이 생활을 하며 빚에 쪼들릴 땐 부모 원망을 하였다. 그러나 운이 닿으니까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구건호의 학교 성적은 중간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 서울도 아닌 수도권 학교니까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학교 공부는 집안 환경과 비례하는 경향이 많다. 구건호도 좋은 부모를 만나 서울의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전문직이나 대기업을 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돌이로 전전하면서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돈의 흐름을 알고 베팅하는 승부사의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남다른 특기가 있었던 것이다.

서울 강남의 은행 지점장이 공장을 방문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오늘 오후 2시에 서울 강남 은행의 지점장이 내려온다는 군요.”

“일단 공장 청소도 좀 시키고 전에 말씀하신 감정평가서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감사님이 은행 출신이니까 옆에서 잘 대응해 주십시오. 제2금융권을 제1금융권으로 돌려버리면 경상이익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구건호는 공장장과 연구소장, 영업상무도 불렀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니 공장 청소도 좀 하고 반제품 야적한 것 정리 정돈 좀 잘해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50대, 60대, 임원들이 구건호 앞에 깍듯이 복창을 하였다.

지점장이 왔다.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핸섬하게 생긴 은행직원 한사람을 대동하고 왔다.

“반갑습니다.”

‘공장이 생각보다 넓네요.“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구건호는 지점장 일행을 사장실로 안내했다. 감정평가서 원본을 보여주었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땐 공장 감정평가가 50억 할 때입니다. 옆에 연구소가 있는 제2공장은 40억으로 평가 되었습니다. 이밖에 창고 25억, 기숙사 12억, 모두 127억입니다. 1금융권 부채가 30억인데 4개의 제2금융권으로부터 빌린 돈이 90억입니다. 제2금융권 이자만 월 6천만원이 넘습니다.

“최근 감정가는 얼마입니까?”

“제1공장 62억, 제2공장 50억입니다. 창고와 기숙사는 별도로 받아 놓은 게 없네요.”

상임감사가 들어왔다.

“참, 인사하시지요. 저희회사 상임감사입니다.”

“어?”

상임감사와 지점장은 서로 놀랐다.

“선배님 여기 계셨습니까?”

“오, 자네 지금 강남지점에 있나?”

구건호도 놀랐다.

“두 분 아는 사이였습니까?”

“제가 차장시절에 지점장으로 모셨던 분입니다. 여기에 계신 줄은 몰랐네요.”

“법정관리기업 관리인으로 있다가 여기 계신 구건호 사장님이 배려해 주셔서 눌러 앉았네.”

“아, 그러셨군요. 세상이 참 좁네요.”

“이젠 자네가 잘 좀 봐주게.”

“하하,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조건이 맞으면요.”

“일단 서류검토는 나중에 하고 여기까지 오셨으니 현장 투어 한번 하지요.”

“그럴까요?”

구건호와 상임감사, 은행 지점장과 은행원 등 4사람은 현장을 한 바퀴 돌았다. 청소를 한지 얼마 안 되어 공장은 깨끗했다. 현장의 직원들은 구건호 일행이 순회하자 더욱 일을 열심히 하는 척했다.

“어서 오십시오. 공장장입니다.”

지점장은 공장장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였다.

“하루 생산량은 얼마나 됩니까?”

“납품처는 어디 어디입니까?”

지에이치 모빌의 납품처는 대부분 대기업들이었다. 공장장이 3개의 납품처를 댔다.

“흠, 모두 A+ 기업들이군.”

지점장은 기업 이름만 듣고도 그 회사의 신용도가 A+기업인지, B-기업인지 금방 알았다.

현장 투어를 마친 구건호와 지점장 일행은 다시 사장실로 올라갔다.

상임감사가 지점장에게 말했다.

“공장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2금융권 부채만 1금융권으로 몰아주게. 나를 봐서라도 말이야.”

“선배님을 봐서라도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더구나 구건호 사장님은 우리 지점 VIP고객이신데 해 드려야지요. 하지만 저도 위에 보고는 해야 하니까 서류들은 맞아야겠지요.”

“서류가 안 맞나?”

“아닙니다. 맞을 것도 같습니다. 창고와 기숙사 감정평가를 안 받아 놓으셨는데 이것을 평가하면 20% 정도는 올라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 뭡니까?”

구건호와 상임감사가 목을 빼고 지점장을 쳐다보았다.

“주거래 은행을 우리 은행으로 바꿔 주십시오.”

“강남지점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구건호가 상임감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주거래 은행은 강남지점으로 하고 일상적 거래는 같은 은행 아산지점과 하면 되니까요. 단지 거래처에 모두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입출금 거래은행 변경을 해야 하니까요.”

“흠.”

지점장은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구건호에게 말했다.

“제2금융권을 1금융권으로 몰아버리면 월 이자지출만 2천만원 줄어듭니다.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요.”

“흠.”

구건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상임감사를 보고 말했다.

“창고와 기숙사 감정평가를 새로 받아보시고 거래처에 입출금 은행변경은 감사님께서 수고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지점장은 회사 조직도를 보자고 하였다.

총무부장이 조직도를 들고 왔다.

“12개 부서에 1연구소, 흠.... 구건호 사장님 참 대단하십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기업을 운영하시니 존경스럽습니다.”

“별말씀 다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 상임감사로 계신 우리 선배님 잘 좀 봐주십시오. 참 좋으신 선배님입니다.”

“아니요, 내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잇습니다.”

구건호의 이 말에 상임감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은행지점장이 돌아가고 구건호는 사장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회사 조직도를 쳐다보았다.

“구조 조정의 칼을 빼?”

이렇게 생각하다가 조직도를 다시 덮었다.

“디욘사의 아미엘이 다녀가고 나서 시행하자.”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한가해?”

“응, 이젠 숨 좀 돌리겠네.”

“디욘제팬의 아미엘이 우리 공장에 한번 들린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그런가?”

“한국에 와서 우리 공장 구경하고 겸사겸사해서 라운딩도 한번 하자고 했는데.”

“맞아. 나도 들었던 기억이 나. 한남동 요정에도 가서 가야금 소리를 듣겠다고도 했지? 아마.”

“말한 것을 잊어버렸나?”

“내가 전화 해볼게.”

“그래, 부탁한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김포공항으로 아미엘이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천공항이 아니니 다행이네.”

구건호는 김영진 변호사에게 신세지기 싫어 통역할 사람을 사내에서 찾았다. 총무부장을 불렀다.

“영어 잘 하세요?”

“영어 잘 못합니다. 연구실 박대리가 잘 합니다.”

구건호는 박대리를 불렀다. 박대리가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안경을 끼고 호리호리하게 생긴 구건호 또래였다.

“영어를 잘 하십니까?”

“잘은 못하고 간단한 회화정도 합니다.”

“공대 출신이라 연구소에 근무하는 것 같은데 영어는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카츄사 출신이었고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1년간 있었습니다.”

“흠. 오늘 미국인 사장이 오니 통역 좀 부탁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박대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사장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잘못하면 찍힐 수도 있었다. 박대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구건호는 차를 몰고 직접 김포로 갔다. 연구실 박대리를 태우고 갔다.

둘은 차 안에서 별로 말을 안했다. 구건호는 박대리에게 이것저것 물을 용건도 없었고, 박대리 또한 사장이 어려워서 말을 붙이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어떻게 이런 공장을 젊은 나이에 인수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감히 말을 못했다.

“오늘 날씨는 좋네요.”

“네, 그렇습니다. 일기예보는 주말까지 쾌청하답니다.”

이런 정도의 대화만 간단히 오고 갔다.

공항 출구에서 빠져 나오는 아미엘을 구건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동경에서 오는 항공편은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들이 많아 미국인은 금방 눈에 띠었다.

“아미엘!”

“구사장”

옆에 박대리를 아미엘에게 인사소개 시켜주었다.

“우리 회사 직원인데 통역을 하기위해서 나왔어.”

“그래? 하우두유두.”

아미엘이 손을 박대리에게 내밀었다

“이 분은 디욘제팬의 사장님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시간이 많이 있으니 우리 아산 공장을 먼저 구경하고 숙소인 강남 팔레스 호텔로 가자고 통역을 하십시오.”

박대리가 통역을 하였다.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미엘이 귀를 열심히 기울이는 것도 발음이 미숙해서 그런 것 같았다. 김영진 변호사와 이야기 할 때는 자연스러웠는데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전달할건 다 전달할 수 있으니 좋았다.

아미엘이 아산 공장을 둘러보았다.

“흠.”

아미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 공학박사 출신인 연구소장이 나와서 아미엘을 접견했다. 연구소장도 영어를 좀 했지만 박대리 정도의 수준이었다. 구건호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잘 하는 직원은 한명씩 채용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술영어는 매끄럽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연구소장의 설명에 아미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신호를 보내주었고 아미엘의 질문을 연구소장도 금방 눈치 채고 답을 해 주었다. 아미엘은 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하고 스마트폰에 담기도 하였다.

“굳,”

“원더플.”

아미엘은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아미엘과 박대리를 태우고 다시 서울로 왔다. 예약을 해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팔레스 호텔로 왔다.

“짐 갖다 놓고 로비로 다시 내려오라고 하십시오. 김영진 변호사가 곧 온다고 말씀해 주세요.”

박대리가 통역을 했다.

아미엘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김변호사가 왔다.

“구건호!”

“오래간만이다. 특허 소송 건 때문에 많이 바빴다며?”

“너도 공장 인수하느라고 바빴겠구나. 너희 공장 한번 보러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통 시간이 안 나서 못 갔다.”

“응, 천천히 와.”

구건호는 박대리에게 김영진 변호사를 소개시켜주었다.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입니다. 나하고 친한 친구입니다.”

박대리가 김변호사에게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누구신지?”

김변호사가 구건호에게 묻는 표정을 지었다.

“응, 우리 직원이야. 아미엘 통역 때문에 같이 왔어.”

“오, 그래?”

김영진 변호사는 박대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미엘이 정장을 벗어놓고 간편복 차림으로 내려왔다.

“여, 김영진!”

“아미엘!”

둘은 웃으며 포옹을 했다.

로비에서 김영진은 아미엘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 했다. 간간히 구건호에게 말한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박대리는 김영진 변호사가 어찌나 영어를 잘하는지 멍하니 쳐다보았다. 발음은 물론 손짓과 발짓 모두 미국인과 똑 같았다. 박대리가 영어를 잘한다고 명함을 내밀 자리는 아닌 듯 했다.

구건호는 박대리를 보며 말했다.

“김변호사 왔으니 통역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호텔 건너편이 고속버스터미널이니까 아산가는 차가 있을 겁니다.”

“예, 그럼 저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박대리가 구건호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햇다.

구건호가 안 포켓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거 고속버스 차비하고 가다가 저녁 식사하세요. 오늘 통역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박대리는 구건호가 주는 봉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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