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119화 (119/501)

# 119

기업 구조조정 (1)

(119)

상임감사가 구건호에게 월간 손익보고를 하였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소폭 늘었지만 금융비용이 너무 많이 나가 경상이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장님께서 기업을 인수하실 때 가져오신 돈으로 임금채권과 일부 외상매입금, 미지급금중 급한 것은 상환했습니다.”

“흠”

“하지만 금융기관 차입금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구건호는 금융기관 채권은 상환하지 않고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금융기관 차입금까지 갚으면서 기업을 인수하면 수백억의 돈을 더 쏟아 부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구건호에게는 증권사에 2,100억의 현금이 있었다.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한 돈이 아무도 모르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내 개인재산은 지킨다. 법인이 망하더라도 개인재산은 지킨다. 물파산업의 오세영 회장을 봐라. 개인재산까지 말려들어갔지 않은가?”

금융기관별 차입금 현황표를 볼 수 있을 가요?

구건호의 말에 상임감사는 경리부장을 불렀다.

“금융기관별 차입금 현황표 뽑아 봐요.”

“알겠습니다.”

경리부장은 5분도 안되어 현황표를 뽑아가지고 왔다.

상임감사가 구건호 앞에서 녹차를 마시며 말했다.

“금융권들은 지금 이자 잘 내고 있으니 채무 독촉은 하지 않습니다.”

“흠.”

“2금융권에서 빌린 돈들이 문제입니다. 오세영 회장님이 돈줄이 막히니까 2금융권의 여기저기서 빌린 돈들이 많습니다.”

“흠.”

“2금융권중 캐피탈이나 저축은행과 같은 곳은 이자도 비싸 돈 나갈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건호는 사장실에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2금융권 돈을 내 돈 갖다가 막아?”

구건호는 혼자 씩 웃었다.

“그럴 수는 없지.”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전에 오세영 회장이 ‘신용보증 개자식들’ 하던 말이 생각났다.

“참, 신용보증에서 연락 온 것 없습니까?”

“오지는 않았고 전화만 왔었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사장님 개인 연대보증 기간 만료로 다시 연장 서명을 받아야겠다고 합니다.”

“흠.”

“사장님 일본 출장 가셔서 몇 일 후에나 온다고 했습니다.”

“흠.”

구건호는 신용보증기금 30억은 다른 곳으로 돌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것은 오세영회장이 서명한 것을 기업인수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구건호는 부채를 안고 기업을 인수했기 때문에 금융기관 채무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개인 연대보증은 절대 하지 않는다.”

구건호는 속으로 이런 다짐을 다시 하였다.

총무부장이 결재서류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왔다. 넓은 사장실에 구건호와 상임감사 둘이 심각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총무부장은 슬그머니 도로 나갔다.

상임감사가 나가고 난후 구건호는 경리부장이 뽑아 논 금융기관별 차입금 현황표를 계속 쳐다보았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 여기저기 많이도 걸려있네.”

구건호는 전자계산기를 꺼내놓고 계산을 해보았다.

“90억 정도 있으면 지저분한 2금융권들은 싹 정리가 되겠군.”

구건호는 자기돈 100억원 정도를 서울 강남에 있는 은행에 예금시켜 놓은 것이 있었다.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구, 구건호 사장님 아니십니까? 잘 계시지요? 반갑습니다.”

지점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후에 어디 안 나가십니까?”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뵙고 싶었습니다.”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서울에 왔다.

“서울에 오니 역시 복잡하네. 난 지방도시 아산 체질인 모양이야.”

지점장은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구건호는 지점장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잠시 기다렸다.

구건호가 지점장실 밖에서 기다렸다. 15분쯤 손님이 나오고 지점장도 따라 나오다가 의자에 앉아있는 구건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사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그냥 들어오시지 여기서 기다리셨습니까?‘

지점장은 호들갑을 떨면서 구건호를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사장님, 사장님은 저희 지점 고액 예금자이신데 돈을 그냥 묵혀두면 되겠습니까? 좋은 상품 안내해 드릴게요.”

“아니, 그보다도 저는 오늘 돈 좀 빌리러 왔습니다.”

“돈을 빌려요?”

지점장이 팜프렛을 꺼내다말고 안경 너머로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 대표이사 명함을 지점장에게 주면서 말했다.

“실은 얼마 전에 공장을 하나 인수했습니다. 제2금융권 채무가 있어 정리 좀 하려고 합니다. 지점장님이 힘써주십시오.”

“대차대조표 가져 오셨습니까?”

구건호가 가져온 서류를 지점장에게 주었다.

지점장은 구건호가 가져온 서류를 한참동안 살폈다. 서류를 다 살핀 지점장은 입맛을 쩍쩍 다셨다.

“갈 데까지 돈을 끌어다 썼군요. 추가 지원은 불가능한 회사네요.”

“그렇다고 내 개인 돈 꿇어 박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지점장은 다시 구건호가 가져온 서류를 보았다.

“영업이익이 별로네요. 구조조정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구건호는 의자에 길게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지점장은 50대 초반이고 구건호는 3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돈이 많은 구건호는 어느새 모든 행동이 달라져 가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강남 큰손다웠다. 구건호에게서 이제 공돌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구건호가 다리를 꼰채 지점장에게 농담조로 웃으며 말했다.

“안 도와주시면 제 예금 다 뽑아갑니다.”

지점장은 이 말에 반응은 하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뭘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방법이 아주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좋은 수라도 생겼습니까?”

“그 회사 공장부지 감정평가는 언제 받았습니까?”

‘제가 기업회생 들어간 회사를 인수한 것이니까 작년에 했겠지요. 법원에 자산 현황 보고를 해야 하니까요.“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건 대개 3, 4년 전에 몰려있네요. 아마 이때가 이 회사의 가장 어려운 시기였을 겁니다.”

“흠.”

“그렇다면 옛날 감정평가서 가지고 차입을 일으켰을 겁니다.”

“흠.”

“좋습니다. 우선 구사장님은 돌아가셔서 최근 감정평가서 원본 준비해주십시오. 제가 다음 주에 시간을 내어 실사를 한번 나가보겠습니다.”

“아산으로요?”

“그렇습니다.”

“흠.”

“그리고 개인 돈 빼간다 소린 하지 마십시오. 간 떨어지겠습니다.”

구건호는 지점장에게 악수를 신청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아산으로 돌아온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서울에서 내가 잘 아는 은행 지점장이 다음 주에 여길 올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 회사 공장 감정평가서 원본하고 사본 한부를 준비해 놓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정평가는 4년 전에도 한번 받았으니까 이전 것도 같이 준비하겠습니다.”

구건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임감사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미소 짓고 나갔다. 은행에서 닳고 닳은 상임감사는 구건호가 무슨 일을 하려는 가 금방 눈치 챈 모양이었다.

“거, 눈치 한번 되게 빠르네.”

구건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국경제 신문을 집어 들었다.

구건호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는데 일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카사카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최지연 사장이었다.

“사장님 접니다. 아카사카의 최지연입니다.”

“오, 최사장님! 마마상 세가와준꼬는 만나보셨나요?”

“만났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모리에이꼬가 후견인 하나는 잘 잡은 모양이라고 말하더군요.”

“일본에도 훌륭한 사업가들이 많을 텐데.”

“아닙니다. 요정 출입하는 일본 사장들은 다 나이가 많아요. 구사장님은 젊은 30대라 그래서 모리에이꼬가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허허.”

“마마상 세가와준꼬는 시부야에 예쁜 맨션 하나가 나왔다고 추천하네요. 시부야 다이칸야마(代官山)에 있는 맨션입니다. 지하철 역에서도 가깝습니다.”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글쎄, 그게 좀... 마마상이 욕심이 많아 85평방미터 짜리를 원하네요. 저는 50평방미터 짜리를 추천했는데 말을 안 듣네요.”

“85평방미터면 우리식으로 25평짜리 입니까?”

“예, 맞습니다. 삿뽀로에 할머니가 계셔서 모셔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흠.”

“구사장님이 결정해 주세요.”

“가격은 얼마라고 했지요?”

“동경도 아파트가 비쌉니다. 동경은 아파트를 주로 맨션이라고 부르는데 시세는 우리나라 강남아파트 수준으로 보면 될것 같습니다.”

“흠.”

“일단 후견인이 한번 보셔야하니까 한번 일본에 오세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건너가지요.”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혼자 중얼거렸다.

“거, 머리 한번 올린 값 치고는 되게 비싸네. 10억 정도는 들어갈 것 같네.”

구건호는 10억 정도를 지출하게 생겼다. 하지만 일본의 최고 게이샤 모리에이꼬는 훗날 구건호에게 오히려 수백억의 재산을 불려주었다. 이때는 서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김민혁이 중국에서 새로운 업체를 뚫었다고 연락이 왔다.

“재주 좋다. 어떻게 해서 납품처를 뚫었냐?”

“역시 인맥이야. 대기업 중국지사에 선배 한분이 차장급으로 나왔어.”

“대학 선배냐?”

“응, 명지대 선배야. 꽈는 틀린데 동아리에서 만났던 선배야.”

“그래? 도면은 받았냐?”

“받았어.”

“금형부터 만들어보지 그래. 금형 값은 거기서 준대?”

“준대. 우리가 만들어서 영수증 제출하라고 했어.”

“그거 다행이구나. 역시 대기업은 신사적이지. 물량은 얼마나 돼?”

“월 5천만원.”

“흠, 1년이면 6억 되겠구나.”

“그런데 도면을 지에이치 모빌로 보내려고 해.”

“여기로? 왜?”

“여기 중국애들 못 믿겠어. 잘못하다가 불량 나오면 안 되잖아. 그래서 금형은 지에이치 모빌의 연구소에 의뢰 하려고 해.”

“흠.”

“미안하지만 연구소장한테 전화 좀 해줘. 중국의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에서 도면 하나 보내니 금형 만들고 원재료는 어떤 걸 써야 되는지 분석 좀 해달라고 말이야.”

“흠, 그거야 어렵지 않지. 전화는 내가 해 줄게. 나도 좋지만 종석이 한테 이야기해도 좋아 .”

“박종석이는 거기서 잘 하고 있나?”

“여기서 공장 현장을 휘젓고 다녀. 공무 일도 딱 부러지게 하고 누구나 만나면 형님 소리를 하니까 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졌어.”

“하하, 종석이가 그런 면이 있지. 처음엔 나한테 와서 죽겠다고 했는데.”

“왜?”

“낙하산이라고 생산부나 영업 쪽에서 씹는다고 못해먹겠다고 했어.”

“그래? 그런 것이 있었나? 난, 몰랐네.”

“종석이보고 넌 적응력에 천재니까 3개월만 버텨보라고 했지. 두고 봐 그놈 이제 공장을 잡을 거야. 붙임성도 있고 의리도 있는 놈이니까 따르는 사람 많을 거야.””

구건호는 박종석이 기특해 보였다.

구건호는 김민혁과의 통화를 끝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김민혁이는 인서울 대학 다닌 효과가 나오는군. 스톡옵션 주길 잘했지. 그랬더니 저렇게 목숨 걸고 영업활동을 하는군.”

구건호는 지방대학을 온전히 졸업을 못해 관리직 취업은 못했었다. 사이버 대학을 다녔지만 남들이 인정을 안해 공돌이로 전전했다. 하지만 김민혁은 달랐다.

“민혁이는 공부 좀 하는 축에 들었었지.”

김민혁은 학교 다닐 때 대기업에 들어간 조원철이나 카이스트에 들어간 황병철처럼 스카이급은 아니어도 중, 상급은 되었다. 고3때 버스 운전기사였던 아버지가 사고만 안 났어도 원하는 대학은 무난히 갈수가 있었지만 집안이 어수선하다보니 조금 낮추어 명지대를 들어갔다.

김민혁은 처음에 대기업 취업을 노렸지만 인연이 없어 지방의 어느 공장에 품질관리직으로 들어갔었다. 품질관리직 1년을 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지 회사를 나와 버렸다. 그 후 7급과 9급 공무원시험을 동시에 공부했지만 나이를 먹다보니 방황하다가 구건호가 차린 회사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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