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기업 확장 (2)
(114)
S기업의 부사장이 크게 웃었다.
“좋아, 도면 한번 보내보지. 시제품 한번 찍어 봐요. 시험 성적서에 반드시 라이먼델 디욘사의 원재료 제품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금형은요?”
“압출 금형이니 여기서 만들어 봐요. 금형 값은 별로 안할 테니 도면 보고 잘 만들어 봐요.”
“수량은 많습니까?”
“납품하게 되면 새로운 모델에 들어가는 제품이니 월 10억 이상 될 거요. 그렇지? 박이사?”
부사장은 같이 온 자기 회사 이사에게 물었다.
“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구건호는 쾌재를 불렀다.
[월 10억이면 일 년이면 120억이다. 현재 물파의 매출이 년 700억이니까 매출이 단숨에 820억으로 늘어난다. 만약에 이 계약이 성사된다면 인원 증원 없이 해보자.]
S기업 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다른 곳도 둘러봐야 하니 일어섭시다. 구사장이 젊고 의욕도 대단하니 우리 S기업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잘 부탁합시다.”
부사장은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요.”
“아니요. 우린 평택과 안산에도 들려야 하기 때문에 식사는 나중에 합시다.”
부사장은 웃으며 구건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총무부장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저, 사장님. 서울에서 지에이치 개발 쪽 직원들이 왔는데요. 아까부터 접견실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 참, 그랬지! 이리 오라고 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강부장과 정지영씨가 허리를 깊숙이 굽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오래간만입니다.”
구건호가 활짝 웃었다.
“그런데 무슨 가방을 그렇게 큰 걸 들고 왔습니까?”
“사장님 안 계셔서 결재 받지 못한 전표들입니다.”
“에이, 내가 없으면 강부장님 전결로 그냥 하시지.”
“그래도 사장님 싸인 받아 놔야지요. 회계사 사무실에서 싫어합니다.”
“일단 오셨으니 공장 현장 구경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구건호는 구내전화로 총무부장을 불렀다.
“이 두 분 공장 구경 시켜주세요. 식사시간도 다 되어가니 대충 한 바퀴 돌면 됩니다.”
강부장과 정지영은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승처럼 줄지어 서있는 유압 프레스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났다.
“무서워요.”
정지영씨가 공장 안을 보더니 앞으로 가길 머뭇거렸다.
“대단하네.”
강부장도 입을 벌리고 공장안을 보았다. 총무부장이 웃었다.
“구건호 사장님은 평택에서 저 기계를 직접 잡고 1년간 제품 찍는 일을 했답니다.”
“구건호 사장님이 젊은 분이지만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강부장은 진심으로 구건호를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구건호는 강부장과 정지영씨를 아산에서 가까운 아산만에 있는 횟집으로 데리고 갔다.
“어머! 바다가 보이네요.”
정지영씨가 상기된 얼굴로 좋아했다.
식사를 하면서 강부장은 불안한 표정으로 구건호에게 질문을 했다.
“저, 질문 하나 드려도 됩니까?”
“예, 말씀하세요.”
“사장님은 큰 공장을 인수하셨으니 계속 여기에 계시겠지요?”
“글쎄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요.”
“서울에 있는 지에이치 개발은 어떻게 하실 런지요? 물파 공장에 비하면 손바닥보다도 작은 회사라 혹시 처분하는 것 아닌가 해서요. 그러면 우리가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건 아닌지 요즘 밤잠이 안 옵니다.”
“하하, 별 걱정 다하십니다. 지에이치개발은 그대로 존속합니다. 앞으로 그 회사도 더욱 키울 생각입니다.”
구건호의 이 말에 강부장과 정지영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랐다. 비로써 음식을 마구 먹기 시작했다.
정지영씨가 음식을 먹고 나서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건의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건의사항 하나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말씀하세요.“
“혹시 기업 CIP(Corporate Identity Program)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일 있으세요?“
“CIP?"
"기업 이미지 통합작업을 말합니다.“
“흠.”
“여기 와서 느낀 건데 물파산업 회사 이름을 바꾸실 생각 없으세요?”
“바꾸다니 무엇으로요?”
“지에이치 테크라던가 지에이치 모터스라던가 하는 이름으로요. 중국공장도 지에이치 중국 유한공사 하는 식으로 하면 이미지 통합에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하, 그런 거야 대기업에서 하는 거지 내가 뭘. 더구나 물파는 거래처에 수십 년간 이름이 알려진 회사라 얼른 바꾸기도 힘들어요.”
“물파는 이름이 안 좋습니다. 일반인들이 그 뜻을 알기도 힘들고 물파스 같은 이미지도 생각나고.”
정지영씨의 이말에 강부장도 허허 소리를 내어 웃었다.
“흠, 그건 그래요. 나도 물파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기업 이미지 통합은 꼭 대기업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사장님이 계속 사업을 확장하시면서 회사를 늘리면 지에이치라는 깃발아래 이미지 통합이 되는 거지요. 고객의 신뢰도를 더 높이는 작업이라고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흠. 정지영씨는 경리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디자인 쪽에도 일가견이 있네요.”
“호호호, 옆에 있는 디자인회사 친구에게 배웠어요.”
“그 디자인 회사 요즘도 잘 돼요?”
“겨우 겨우 버티는 모양이에요.”
“알겠습니다. CIP작업에 대하여는 내가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지요.”
물파를 인수한지 한 달 만에 구건호는 상호를 변경했다.
“우리 회사는 물파에서 지에이치 모빌로 상호를 바꿉니다.”
구건호는 디자인 회사에 맡겨 로고를 다시 만들고 대봉투나 메모지등 모든 물건의 디자인도 새로이 했다.
중국도 ‘지에이치 배건(配件) 유한공사’로 바꾸었다. 배건은 자동차 부품이라는 중국식 단어다.
“김민혁사장? 나 건호야. 공장 이제 잘 돌아가지?”
“구사장이 보내준 운영자금 3억으로 종업원 밀린 급여와 임대료 밀린 것은 다 주었어. 기계도 두 대 빼놓고는 다 잘 돌아가.”
“매출은 일어나고 있지?”
“그럼. 새로운 거래처 발굴은 없어도 기존의 거래처는 다시 거래하기 시작했어.”
“그래도 거래 안 끊으니 다행이다.”
“자기들도 어쩔 수 없겠지. 금형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동안 생산 중단으로 미안했다고 해라. 모기업이 법정관리 들어갔었으니 이해는 하겠지만 말이야.”
“참, 종석이 좀 한 3일 출장 보내줄 수 없을까?”
“박종석이? 걔 지금 생산 쪽 일 적응하느라 바빠.”
“한 3일이면 되겠는데.”
“그래? 알았다. 내가 공장장과 상의해서 보내도록 할게.”
“고마워”
구건호는 공장장을 불렀다.
“박종석 부장은 일 잘 합니까?”
“생산 쪽 일은 아직 헤매지만 공무 쪽 일은 역시 경험이 있어서 잘 합니다.”
“공장장님이 많이 가르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박종석 부장을 중국에 한 사흘 출장 보내려고 합니다. 괜찮겠어요?”
“이쪽에 메인테넨스 일들이 많은데요.”
“그래도 우리 쪽은 인력이 많으니 한 사흘 보내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구건호는 박종석을 불렀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야, 임마! 둘이 있을 땐 형이라고 불러.”
“그래도 누가 들으면 어쩌나 해서. 헤헤.”
“일은 할 만 하냐?”
“응, 공장장이 까다롭지만 역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배울 것이 많아.”
“너, 한 사흘 중국 좀 다녀와야겠다.”
“민혁이 형한테?”
“그래, 가서 민혁이 일 좀 도아주고 와라. 너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헤헤, 그 형 본지도 오래 되네.”
구건호는 총무부장을 불렀다.
“부장님 시청에 들어가셨는데요.”
“그럼 총무과장 이리 와 봐요.”
말쑥한 정장 차림의 총무과장이 들어왔다.
“여기 박종석 생산부장 중국 비자 내주고 중국 가는 항공권 끊어줘요.”
“알겠습니다.”
미남형으로 생긴 구건호 또래의 총무과장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나갔다.
“형, 나 총무과장 볼 때마다 민망한 것이 있어.”
“왜?”
“총무과장이 형하고 동갑 아냐? 그런데 두 살이나 적은 내가 부장이고 자기는 과장이니 말이야.”
“별 걱정 다한다.”
“더군다나 총무과장은 이곳 아산 토박이고 천안에 있는 단국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다는데.”
“넌 공무기술이 탁월하니 대우 받아도 돼. 이번 달에 월급 받았지?”
“받았어. 400이나 받으니 이제 숨 좀 돌리겠어. 적금 하나 들었어.”
“잘 하고 있어. 다른 부서는 자리가 꽉 찼지만 생산 쪽은 공장장이 은퇴하면 자리들이 많이 생길거야. 그때 보자.”
“아냐, 아냐. 난 지금도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어.”
구건호는 영업담당 김상무를 불렀다.
“지난번에 왔다간 S기업 에셈블리 신제품 개발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연구소에서 도면 해석하고 금형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시제품을 찍어내기 위해선 라이먼델 디욘사의 원재료를 두 포대 정도는 가져와야 할 것 같습니다.”
“디욘사에 전화해서 택배로 부쳐달라고 하면 안 되나요?”
“아유, 어림없습니다. 만들어 놓은걸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조건에 맞게 컴파운드 해서 가져와야 합니다. 디욘사는 우리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김상무님이랑 같이 일본 디욘사로 갑시다. 가서 사장을 만납시다.”
“거기 사장이 한국 업체 사장들 잘 안 만난다고 소문났습니다. 전에 물파 회장님 계실 때도 회장님 모시고 같이 갔었는데 안 만나 주더군요.”
“그래요?”
“그런데 사장님, 죄송한 질문입니다만 디욘사 사장님하고 정말 친구지간입니까?”
“예, 맞아요.”
“저는 지난 번 S기업 부사장님이 오셨을 때 그냥 허풍으로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가 봅시다. 같이 한번.”
“알겠습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해 디욘사 사장하고 통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영어 잘하는 내 친구한테 부탁하지요. 김앤정 로펌에 있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또 아미엘과 각별합니다.”
“김앤정 로펌요?”
김상무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구건호는 영업상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전화를 걸었다.
“김영진 변호사? 바쁘지?”
“오, 구사장. 오래간만이다. 요즘 기업 하나 인수해 아산에 있다며?”
“나, 일본에 가야겠다. 디욘사 아미엘 사장 좀 만나려고.”
“그 친구는 왜?”
“회사 업무가 있어서. 다음 주에 간다고 네가 전화 좀 해 줘라.”
“알았다. 전화 해 줄게. 나도 너 가는데 따라가서 일본 요네하라 골프장이나 가고 싶은데.”
“그럼, 같이 가자.“
“아냐, 이번엔 못가. 특허 소송 건을 하나 맡아서 못가. 안부나 전해줘라.”
“알았다.”
구건호가 영업 상무에게 말했다.
“상무님은 영어 잘 하십니까? 디욘사 사장이 미국인이라 서요.”
“죄송합니다. 영어 잘 못합니다.”
“그럼, 일본어는요? 디욘사 사장은 일본에 오래 살아서 일본어를 할 줄 압니다.”
“일본어도 못하는데요.”
“그럼 나하고 똑 같네요.”
“죄송합니다.”
영업 상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저,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데요?”
“친구 조카입니다. 일본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인데 어렸을 때부터 알아서 잘 압니다. 전에 오세영 회장님 모시고 갔을 때도 그 친구가 통역했습니다.”
영업상무가 방을 나가자 사장실엔 구건호 혼자만 남았다. 구건호는 사장실 쇼파에 앉아 길게 누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모리에이꼬의 얼굴이 떠올랐다.
“보고 싶다. 모리에이꼬. 너의 머리는 내가 올려주마. 이 구건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