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기업 확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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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건호는 물파를 인수 후 30억원을 추가로 회사에 집어넣었다. 증자는 아니고 법인이 대표이사 개인에게 단기 차입하는 형식을 취했다. 회사가 잘 되면 이 돈은 도로 뽑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취했다.
[이 회사에 인수대금으로 회장에게 준 것 20억과 추가로 운영자금 차입형식으로 집어넣은 것이 30억이다. 모두 합하여 50억을 이다. 나는 이 회사에 50억 이상을 집어넣지는 않겠다. 부채는 운영하면서 갚는 것으로 한다.]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우선 임금 밀린 것은 모두 정리하십시오. 나머지는 원재료 공급사의 납품 대금으로 쓰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원재료 납품대금은 그동안 밀린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후 들어오는 물건을 현금으로 즉시 지불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아마 원재료 공급사들이 밀린 것 달라고 조르지는 않을 겁니다.”
[물파는 새로운 사장이 온 후부터 납품대금을 즉시 현금으로 준다.]
이런 소문이 업계에 돌기 시작했다.
박종석이 경기도 양주에 있는 공장에 있다가 아산 공장을 구경하러 왔다. 박종석은 공장을 와 보고 크게 놀랐다.
“와, 규모가 엄청 크네.”
공장에 들어가는 것도 까다로워 박종석은 정문에 방명록을 작성하고 출입증을 받은 후에 들어갔다.
“건호 형이 이런 공장의 대표이사라니 믿어지지가 않네.”
박종석이 공장 사무동으로 가보니 제복 입은 관리직 사원들도 많았다.
“사장님 좀 뵈로 왔는데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후배 되는 사람입니다.”
“약속하셨습니까?”
“예,”
“기다려 보세요.”
한참 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사장실을 들어갔다. 넓은 사장실에 구건호가 회의용 테이블 가운데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어, 종석이 왔냐? 이리 앉아라.”
“형, 축하해. 형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워진 것 같아.”
“뭐라고? 그럼 내가 형이지 네 동생이냐?”
“아니, 그게 아니고 신분에 차이가 너무 나는 것 같아서.”
“별소리 다한다. 커피 할래? 녹차 할래?”
구건호는 구내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녹차 두 잔만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상냥한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종석은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아무 말 않고 녹차만 마셨다.
“짐 다 가져왔지?”
“짐? 안 가져 왔어. 공장 구경만 하러 온 거야.”
“공장 보니 어떠냐?”
“상상을 초월해. 직원들도 많고. 형은 참 불가사의한 존재야.”
“너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냐?”
구건호는 구내전화 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총무부장, 이리 들어오시오.”
잠시 후 넥타이까지 맨 4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여기 이사람 총무부장이 동행해서 공장 내부 구경시켜주고 공장장한테 인사도 시키시오. 내일부터 우리 공장 생산부장으로 일할 사람이요.”
“알겠습니다.”
총무부장이 나이도 한참 어린 구건호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아니, 저, 저.”
박종석이 머뭇거리자 구건호가 인상을 썼다.
“갔다 와!”
생산 현장에는 라인별로 사출기와 압출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힘차게 돌아갔다.
생산현장을 보고 박종석은 눈을 크게 떴다.
“대단하네. 내가 다루어보지 않은 기계들도 많은데. 이건 전부 유압식인가?”
박종석이 기계를 살피고 현장 직원들의 근무하는 것을 자세히 보았다.
공장장이 밖에서 손님과 이야기 중이었다. 전기시설 점검 나온 업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총무부장이 공장장에게 인사를 했다. 공장장은 상무이사 급의 50대 후반이었다.
“공장장님, 생산부장으로 올 분입니다.”
박종석이 공장장한테 공손히 인사했다.
“생산부장? 이력서 갖고 오셨소?”
“급히 오느라 준비를 못했습니다. 내일 가지고 오겠습니다.”
“전에 어디에 계셨소?”
박종석은 머뭇거렸다. 이름도 없는 조그만 공장의 공무과장으로 있다고 하기도 곤란했다.
“경기도 양주에 있습니다. 생산보다는 주로 공무 쪽 일을 많이 보았습니다.”
“기계 고장 나면 그거 하나는 잘 하시겠군. 도면은 볼 줄 알지요? 원가 계산도 할 줄 알고?”
박종석이 머뭇거렸다. 골치 아픈 원가계산 이야기를 하니 만만한 자리가 아닐 듯싶었다.
“배우면서 하겠습니다.”
“여긴 배합표 같은 것도 볼 줄 알아야 하고 간단한 화학 방정식도 알아야 해요. 그런데 나이가 무척 젊어 보이네. 올해 몇이쇼?”
“서른셋입니다.”
“잘 할 수 있을까? 뭐, 사장님이 추천했으니 잘 하시겠지. 잘 부탁합시다.”
공장장이 손을 내밀었다.
박종석이 현장 투어를 마치고 다시 구건호가 있는 사장실로 올라왔다.
“현장 잘 봤지? 공장장도 만나봤지?”
“만났어. 아휴, 그런데 걱정이 앞서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생산과장이나 계장들도 나이가 다 많아 보이던데.”
“괜찮아! 걱정 마. 나는 뭐 나이가 많아서 사장 하냐?”
“형 체면을 깎아 먹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야.”
“맥가이버 박이 왜 그렇게 의기소침하냐? 공장장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다. 일 잘 배워라.”
“여기선 형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
“응? 그, 그건 공식석상에선 사장이라 부르고 사석에선 형이라고 부르면 돼. 짐 안 가져 왔으면 내일이라도 가져와라. 아산시내에 원룸 구하고 입사 구비서류는 나가다가 총무부장에게 물어보면 된다.”
중국의 김민혁에게 연락이 왔다.
“종석이가 물파에 들어왔다며?”
“그래, 지금 현장에서 일 배우느라고 똥 오줌 못 가리고 있어.”
“걔 잘 할 거야. 가방끈 짧아도 눈썰미 하나는 비상한 놈 아니냐?”
“맞아 잘 할 거야. 생산 쪽은 모르겠는데 공무 쪽 일은 끝내주지.”
“종석이, 아니 이젠 박부장이라고 불러야지? 박부장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중국 공장 기계 손 좀 봐달라고 부탁해야겠어. 오랫동안 세워놓아 망가진 곳도 많아.”
“한번 보낼게.”
“아, 그리고 금계건설 쪽에서 합자사 종료 신고가 다 끝나 내일 출자금 모두 반환해 준다고 했어, 내일 오후 3시 지나 통장 한번 조회 해봐.“
“알았어. 그 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둘게. 중국 물파공장 운영자금이나 얼마나 있어야 되겠는지 한번 계산해봐. 총알 준비해야 하니까.”
“알았어. 돈 입금된 것 확인되면 바로 공장이 있는 오현으로 넘어갈게. 오현에 아파트 하나 구해 놓았어. 17평짜리인데 혼자 쓰기에는 널널 해.”
“17평? 한 25평으로 하지 그랬어. 사장 체면이 있는데.”
“아이고, 그건 낭비야. 아파트가 고급아파트라 월세도 3500위안이나 돼.”
“네가 타고 다니던 아우디는 합작사에 반납해야 되지? 오현으로 가면 아우디 하나 장기 렌트해라.”
“고맙다.”
“운전은 네가 직접 하지 마라. 기사 하나 둬라. 중국서 외국인이 직접 운전하면 사고 났을 때 바가지 쓴다.”
“알았다. 고마워.“
“합자사에선 월급 조정도 꼭 중국 측과 협의해야하지만 물파 중국 공장은 독자기업이니 알아서 월급 책정해야 돼. 너 급여 얼마 받고 싶냐?”
“급여? 지금 받던 합자사 대우 수준이면 좋지.”
“지금 합자사에서 얼마 받았지? 서울에서 150만원에다가 합자사에선 6천 위안인가 얼마 받았지?”
“하는 일 없는데 그것도 황송해.”
“중국 물파 공장으로 가게 되면 여기서 주던 150만원은 못준다. 대신 현지 급여를 2만위안(한국돈 360만원 정도)으로 하고 스톡옵션을 주는 방향으로 할게.”
“스톡옵션?”
“사장이 열심히 뛰어 경영 정황이 좋으면 주식 매수 선택권을 주는 거지.”
“흠.”
“스톡옵션은 자본금의 5%로 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회사가 연말에 결산해서 이익금이 10억이 나왔다면 주식매수 청구권이나 아니면 이익배당을 받아 가면 되겠지. 5%면 5천만원 받겠지. 이익금이 20억 나왔다면 1억 받아가고. 어때 할래?”
“나야 고맙지만.”
“벤처기업 쪽에선 이런 방법을 많이 써.”
“흠”
“스톡옵션 연봉계약서(stock option annual income contract) 보낼 테니 서명이나 해서 다시 반송해줘.”
“고맙다. 정말 고맙다.”
김민혁이 감격에 겨워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서울의 지에이치개발의 강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저, 강부장입니다. 서울은 별일 없습니다. 회사도 잘 돌아가고요.”
“강부장님 계시니 제가 마음 놓고 이곳에 내려와 있습니다.”
“정지영씨도 사장님 언제 오시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사장님이 오래 자리를 비우시니 저희들이 불안해서요.”
“하하, 불안할 게 뭐 있어요? 이렇게 자주 전화 통화하는데. 고시텔 수금한 것도 통장에 잘 들어오고 있는 것을 내가 확인 다하고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서울엔 언제 오십니까?”
“당분간 못 올라가니 그리 아십시오. 정 그렇다면 오늘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예? 점심이요?”
“별일 없으면 정지영씨하고 남부터미널에 가셔서 아산행 고속버스 타시면 됩니다. 한 시간 반이면 올수 있을 겁니다. 터미널로 내가 차를 가지고 나가지요.”
“그,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장 구경도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아산터미널에 직접 가지 않고 총무부장을 보냈다. 주요 거래처인 S기업 임원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아서였다. S기업은 대기업인데 새로 부임한 부사장이 협력업체를 한 바퀴 돈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
총무부장은 버스에서 내리는 강부장과 정지영씨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손님들 대부분이 시골 노인들과 학생뿐이라 더욱 그랬다.
“혹시 강부장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물파산업의 총무부장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사장님은?”
“사장님은 못 나오십니다. 주요거래처 임원들이 오셔서 저를 대신 보냈습니다.”
총무부장이 자기의 명함을 강부장과 정지영씨에게 주었다. 강부장과 정지영씨도 자기들의 명함을 총무부장에게 주었다.
“명함이 예쁘군요. 지에이치개발은 부동산 개발회사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로 임대사업입니다.”
“저희 사장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예? 구건호 사장님이 현재 지에이치개발의 대표이사이십니다.”
“아, 그래요?”
총무부장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이 말을 듣고 총무부장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강부장과 정지영씨는 거대한 공장을 보자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이게 모두 구건호 사장님 소유입니까?”
“그런 가 봅니다.”
“어휴, 대단하네요. 건물도 그렇고 제복입은 사람들이 많은걸 보니 정말 큰 회사네요.”
강부장과 정지영씨는 서로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았다.
총무부장이 강부장과 정지영씨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사장실에는 아직 손님들이 안간 모양이었다. 사장실에는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구건호는 S기업 부사장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S기업은 스카이 대학 출신들도 들어가기 힘든 기업 아닙니까? 우리 물파와 같이 작은 회사가 S기업의 협력업체가 된 것은 전임 오세영 회장님의 공이 큽니다.”
“그분은 내가 부장시절부터 잘 아는데 고집이 대단했어요. 단가 책정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납품하지 않겠다는 물건도 몇 있었어요. 수량이 늘어나면 원가는 자연히 떨어질 텐데 말이요.”
“부사장님과 저의 부임일자가 같네요. 이것도 인연이니 앞으로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님? 내가 아제 뻘은 될 것 같은데?”
이 말에 같이 온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아제 뻘요? 젊은 오빠처럼 보이는데요?”
구건호의 말에 사람들은 또 웃었다. 구건호는 자기가 은둔형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런 능청도 부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사장님, 저희 공장 어떻습니까? 시설도 이만하면 뒤지지 않고 인력도 막강합니다. 오더가 더 늘어났으면 하는데 오신 김에 선물하나 주고 가십시오.”
부사장은 같이 온 S기업 이사에게 물었다.
“AM083 어셈블리 제품은 누가 하기로 했나요?”
“아직 오더 못 나갔습니다. 원가 코스트가 높고 원재료도 일본서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난색을 표합니다. 실원기업이 그렇고 카미텍이 그랬습니다.”
“흠, 일본에서 원재료 공급이 안 된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일본 수요 대기도 벅차다고 했습니다.”
“그 제품은 우레탄 계열이라 라이먼델 디욘사 제품이 아니면 안 되는데.”
구건호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제품 저희에게 주십시오. 일본 라이먼델 디욘사의 리차드 아미엘이 제 친구입니다.”
이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특히 물파의 영업담당 상무가 제일 크게 놀랐다.